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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복음은 가정의 분쟁을 일으킨다

LNCK 2009. 6. 12. 11:39

 

◈복음은 가정의 분쟁을 일으킨다             눅12:49~53              09.05.17.설교녹취

 

 

▲예수님이 답답함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12:49~50

 

그 답답함의 내용이 그 다음 구절에 이어서 나온다.

복음으로 인해 <가족간에, 친구사이에> 서로 분쟁하는 것이다.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눅12:49~53

 

여러분, 참 복음을 전하지 않고, 참된 복음대로 살지 않으면

대강 대강 믿고, 대충 대충 살면

어쩌면 가족 간에, 친구 사이에.. 사방에 평화가 있다.

분쟁할 일이 절대 없다.

 

그런데 참 복음을 전하고, 참된 믿음대로 살려면,

절대 다투어서는 안 되는 가족 사이에 .. 다툼이 일어나며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친구 사이에도 .. 균열이 생긴다.

 

그런 분열이 없으면 .. 절대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분열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분열이 있지만 .. 십자가에서 전도자가 죽는 사건이 있은 후에

.. 결국에는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결과로 끝나는데... 

 

 

◑성경에 나타난 복음으로 인한 <분열의 사례>

 

주님은 이 땅에 화평을 주러 오셨는데, 그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서 나타난 현상은

먼저 화평과 정반대인 <분열>이라는 것이다.

 

여러분 마찬가지로, <심판>과 <구원>도 같이 붙어 다닌다.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곳에는, <심판>이 짝으로서 나타난다.

내게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때, 타인에게 <심판>이 될 수도 있으며,

또한 내가 <심판>의 자리에 나아갔다가, 비로소 <구원>을 체험하게 되는 경우이다.

다시 말해서, 심판(회개) 없는 구원은..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하는 것이다. 

 

▲1. 가인과 아벨

가인의 예배는 하나님께 열납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벨의 예배는 하나님께 열납 되었다.

 

여러분, 아벨이 그냥 매너리즘에 빠진 예배를 드렸으면,

그래서 가인의 예배처럼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가인과 아벨은.. 사이좋은 형제지간으로 오래 살았을는지 모른다.

 

예수님이 세상에 임하시자., 가족이 둘과 셋으로 나뉘어 분열된다고 했다.

아벨의 제사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자.. 당장 가인과 분열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뭐가 무서워서 장을 안 담글 수는 없는 일이다.

분쟁이 일어나더라도.. 복음의 역사는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분쟁) 후에 부활(복음 안에서 참 연합)이 있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고/살고 나서.. 뒷일(가정 분쟁)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 분쟁을 통해서.. 오히려 가족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올 것이다.

 

▲2. 야곱과 에서의 분쟁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

하나님이 야곱과 에서를 공평하게 대해주셨으면 좋으련만,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동생 야곱 편을 들어주셨다.

그리고 어머니 리브가가 더 깨어 있었는지, 야곱 편에 가세했다.

(방법론은 틀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이삭은, 영적으로 무뎌 있었는지.. 큰 아들 에서 편을 들었다.

 

야곱과 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인해서,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4식구가 2대2로 서로 대결구도를 갖게 되었고, 결국 야곱의 피신으로 일단락되었다.

 

20년이 지나서,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전투적인 기도를 드리고 나서,

결국 에서와 야곱의 관계도 서로 봉합된다. 합력하여 선/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는,

이삭의 가정에, 신앙 문제로, 엄청난 분열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 말씀처럼, ‘내가 화평을 주러 왔으나, 오히려 가족들이 서로 싸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갈등들 역시.. 하나님은 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신앙으로 인한 분열은, 불가항력적이지만,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가정,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신앙의 복을 받은 가정들이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 안에 무시무시한 분열이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덕이 안 되므로, 남들 모르게 쉬쉬 할지 모르나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본문)에 미리 다 예언된 것이다.

 

어쩌면 신앙이 없다면, 그런 가족간 분쟁은 안 생겼을 수도 있다.

예수 안 믿었으면.. 그 집이 오히려 편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술 한 잔 마시고.. 서로 화해하고 그러지 않는가!

복음으로 인한 갈등이 아니면.. 술 한 잔으로 화목할 관계가 세상에 많다.

 

그러나 신앙의 문제로, 복음이 역사하는 곳에는.. 가족간 분열이 생긴다.

목사와 장로 간에 (복음으로 인한) 분쟁이 생길 수도 있고..

 

분쟁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터부시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만 분쟁 가운데, 복음으로 사는 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으면 된다.

그 분쟁에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부활로 승리하는 것이 된다.

 

▲3. 요셉도 마찬가지다.

신앙 문제가 아니었다면,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갈 일이 없었다.

형들이 요셉을 특별히 핍박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가인과 아벨처럼, 에서와 야곱처럼,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했다.

 

인간적 생각으로는, 이왕 꿈을 주시려면, 모두에게 단체로 보여주셨다면

가족 간에 아무 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오직 요셉만 편애하는 것 같으니까

다른 형제들이 못 참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부족한 목회’ (편애를 뜻함) 때문에

요셉의 형제들 사이에 .. 심각한 분열이 생겼던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신앙이 좋으면, 남편이 부족하여 아내를 핍박하거나

남편이 신앙이 좋으면, 아내가 믿음 부족으로 남편을 훼방하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두 사람이 같이 충성하고, 같이 타락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신앙으로 인한, 가족간 분열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분열 가운데도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섭리가 반드시 숨어있다.

요셉의 경우처럼!

 

우리 가족 사이에 분열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를.. 척 생각해 보면

먼저는 나 자신의 영적 성숙이다.

나 자신의 더욱 정결한 신앙이다. 가족의 핍박을 통해서.

 

그리고 그 다음 섭리는, 핍박하는 그 가족의 구원과 영적 성숙이다.

척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나중에 화목한 뒤에는.. 정말 진짜로 화목한, 본드로 붙인 가족사이가 되는 것이다.

 

▲4. 에스더, 모르드개, 유대민족도 마찬가지였다.

바사 제국에서 그들은 다른 민족들과 어울려서 편안히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신앙 문제로, 그 민족이 몰살의 위험에 처했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부림절이 지켜지는 데, 유대인들은 ‘사람의 귀’처럼 생긴 과자를 만들어 먹는다.

‘하만의 귀’라는 과자이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부림절에 씹어서 과자로 먹는다.

 

결국 <에스더와 모르드게 - 그 가족의 결속력>이 유대민족을 구하게 된다.

‘가족의 힘’이다.

만약에 그 ‘가족의 힘’이 없었더라면, 부림절의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여러분, <화목한 가족의 힘> ... 이것은 대단한 것이다.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그것은 <갈등>을 거친 다음에 비로소 온다.

 

▲무서운 <가족의 힘>

한 한국학생이 미국 가정에 입양되어 갔다.

미국인 엄마는, 그 한국학생을 위해, 손수 김치를 만들고, 볶음밥을 해 주었는데 

정말 맛이 없었지만, 그 정성으로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몇 해 지나서, 그 학생이 잘 적응할 때, 어느 날 미국인 아빠가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

‘내가 내 인생에 몇 가지 잘 한 결정이 있었는데,

네 엄마랑 결혼한 것과

또한 너를 우리 아들로 입양한 것이란다!’

 

그날 그 한국 학생은 마음에 어마어마한 감동을 받았다.

항상 한국에서 자기를 버린 부모와 헤어진 동생에 대한 아픔이 있었는데

그 모든 괴로움을 능가하는 감동이요, ‘가족의 힘’이었다.

그는 오늘도 훌륭한 사회인이 되었고, 훌륭하게 사회와 교회를 섬기고 있다.

 

▲사역자 가정의 분쟁

오늘날 젊은 사역자 부부들 가운데

‘남편이 목사만 아니었으면’ 천국이 되었을 가정도... 많다.

‘남편이 사역자이기 때문에’ 가정에 엄청난 분열이 오는 경우도 ... 꽤 있다.

 

우리는 본문 예수님 말씀을 곱씹어 보아야한다.

그러나 복음으로 인한 <갈등>을

십자가를 통해 해결하고 나면

그 때 주어진 <화목>은 ... 엄청난 파워를 발휘한다.

 

‘가족의 화목한 힘’이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생기게 된다.

 

 

◑해외 선교지에 일어나는 예

 

▲몇 해 전에, 인도 혹은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크리스천 자매가 모슬렘 형제로부터 구애를 받았다.

 

크리스천 자매는, 모슬렘 형제에게 말했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내가 원하는 결혼 조건은 단 한가지다....’

 

모슬렘 형제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형제는, 집에 가서 생각해 보고 나서 답을 하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 때까지, 자기가 사랑한 여인이 크리스천이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답을 하기로 한 날, 그 형제는 크리스천 자매를 만나서

그녀의 얼굴에 염산을 끼얹어 버렸다.

그녀의 얼굴은 형체가 처참하게 변해버렸다.

 

그 나라 신문은, 이 자매의 처참하게 변한 얼굴을

칼라사진으로 게제 했다고 한다. 본 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도, 모슬렘/힌두교 국가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진노에서 해결함을 받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의 진노를 피하지 못할 수 있다. 사람의 진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진노다.

 

▲얼마 전 뉴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모슬렘 국가 왕자가 우울증과 불면증이 있었는데,

그가 우연히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가, 크리스천의 안수를 받고, 병이 낫게 된다.

그가 아버지 왕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예수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가 나를 고쳤습니다.’

 

예수 신앙 때문에

가족 사이에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분열이 생긴 것이다.

 

결국 뉴스에는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그 왕자는 몇 달 전에 맨하튼에서 독살 당했다고 한다.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의 부하들에게, 독살 당했던 것이다.

올해 2009년에도, 이런 일들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에도 세상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구원 받기 위해서)

자기 가족과 자기 민족의 진노를 피하지 못할 수 있다.

 

사도바울도 그랬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그는 자기 민족 유대교인들로부터 혹독한 진노를 피하지 못하고, 늘 쫓겨 다녀야 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서 버림 받는 것을 .. 두려워하지 마시라.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믿음은.. 불로 시험된다.

 

▲과거에 성경책에는 붉은 색깔을 칠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양의 피’를 의미하는 색깔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붉은 색’이 혐오스럽다고 지우고, 대신에 ‘금빛’을 칠하고 있다.

 

그 성경책에서 ‘붉은 색’을 없애는 만큼

오늘날의 교회가 ‘십자가’에서 멀어진 게 아닌가 싶다.

 

여러분, 과거에 역사 속에 보면

이 성경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전달하려던 사람,

또한 이 성경의 말씀대로 그대로 살려던 사람은... 피를 흘려야 했었다.

양의 피를 칠할 필요도 없이, 자기 피를 성경책에 뿌려야 했었다.

제 명을 다 살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그 날에 불로 공력을 시험하리니... 고전3:13

여러분, 우리 신앙이 나무나 풀로 세운 것이라면

그 날에 불로써 시험할 때, 다 타서 없어져 버린다.

하나님 앞에서 내 믿음이 증명되지 않는 것이다. 다 타서 아무 것도 없게 된다.

 

그날(심판 날)에는 불로써 내 믿음을 시험하겠지만

오늘에는 우리 각자의 가정에서 하나님은 내 믿음을 시험하신다.

 

오늘날 가정의 분쟁/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타협하거나 도망가는 사람은

그날에 불로 공력을 시험할 때.. 볼 것도 없다.

나무나 짚으로 세운 믿음의 집이 되는 것이다. 다 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에서 내가 분쟁/핍박을

십자가를 지고 이기는 사람은

‘금과 은과 보석으로 세운 집’이 될 것이다.

심판의 날, 불로 시험하는 날에도.. 내 믿음이 든든히 서 있을 것이다.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