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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품꾼의 비유 1941

LNCK 2009. 6. 16. 13:41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20:1~16        -설교 스크랩-



성경을 앞뒤로 자세히 봤더니, 본문 바로 앞에

처음 된 자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 처음 된다고 하시는데,   마19:30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이 말이 나오잖아요. 마20:16


그러니까, 처음 된 자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 처음 된다는 말에

샌드위치처럼 낀 말이 오늘 비유입니다.

난해한 이 본문을 해석하는데.. 열쇠가 되는 것 같아요.

 

8시간 일하고 한 데나리온 받고, 1시간 일하고 한 데나리온 받았으니까.

8시간 일 한 사람은 분통이 났습니다. 처음 된 자가 나중 되었으니까요.

 

그 당시 경제 논리를 모르실 리 없는 예수님이 

천국과 마음이 닿아있는 사람의 마음 생태를 표현해 주고 계시다고 봅니다.

어떤 마음 상태겠습니까?


▲모자라는 마음 vs 풍족한 마음

아침 9시에 온 사람은, 1시간 일한 사람이 1데나리온 받는 것을 보면서

자기는 약 8시간 일했으니까, 임금을 받을 마음의 그릇이 1데나리온에서 8데나리온으로 커졌습니다.

그런데 1데나리온만 받게 되니까.. 7데나리온이 모자라는 마음이 되죠.


반면에 오후 5시에 와서 1시간만 일한 사람은.. 1/8 데나리온 받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1데나리온 받았으니까.. 7/8 데나리온이 넘치게 주어졌어요.


넘치게 받은 사람의 마음... 이것이 천국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본문 바로 앞에,

베드로는, 우리는 다 버리고 주를 따랐다며.., 말합니다.         마19:27

그 속마음은 ‘우리는 무엇을 얻겠습니까?’라고 보상을 바라는 의도임을.. 예수님이 아신 거죠.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우리가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으니, 마땅히 주어질 것이 있지 않겠냐?’고

마음의 경계를 넓힙니다. 그 넓어진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 담아달라고 합니다.

‘모자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이었습니다. (8데나리온 기대한 사람의 마음)


그런 베드로의 마음을 읽으시고, 예수님은 위 본문을 말씀하셨는데,

내용인즉 ‘모자라는 마음’을 갖지 말고, ‘풍족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설교를 많이 들었어요. ‘입을 크게 벌려라.’

축복을 받으려면 그릇이 커야 하기 때문에.. ‘네 그릇을 크게 준비하라.’

우리가 이렇게 배웠다고요.


그런데 주님은 완전히 거꾸로 말씀 하세요.

1/8 삯을 자기 분수에 맞는 것으로 생각했다가 7/8이 더 얹혀왔을 때,

그 과분함. 그 황송하게 여기는 마음이.. 천국이 임한 마음이란 말입니다.


반대로 8데나리온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가 7이 모자라다고 하는 그 사람.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는) 천국을 주셨는데도,

그 마음이 전혀 천국을 못 누리고 있는 마음 상태입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하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이 시조가 온 인류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대학 떨어졌어? 재수해. 재수해서 또 떨어졌어? 삼수해.

오르고 또 오르려는 마음이 누구나 있는 거 아닙니까.


돈도 그래요. 평생 벌려고 애쓰죠. 오르려는 마음.

그래서 예수를 믿어도, 오르려고 예수를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이런 ‘오르라’는 얘기를 교회에서 마음 놓고 한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오르기 위해서 예수를 믿으면, 천국이 주어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퀴즈 하나 낼 게요. 예수님을 좇아가면 어디로 갈까요? 네, 십자가로 가요.

여러분, 예수님을 위해 다 버린다는 것과, 예수님을 좇는다는 것은 같은 뜻입니다.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내려가다가 내려가다가 못해서

십자가에까지 내려가서  꼬꾸라지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겁니다.

목표를 똑바로 보고 가세요. 어디로? 십자가로!


이 마음이 포도원 품꾼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 따라 가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모습이 내 모습이라고 고백하면,

내 분수가 결정이 되요.


1데나리온도 못 받을 처지였는데, 1데나리온이나 받았으니

얼마나 황송한 것입니까? 얼마나 풍족한 것입니까?


아이를 공부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질 때,

내가 십자가에 달린 포지션에서 그 아이를 바라봅니다.

내 분수와 함께 그 아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디라고 봅니까?

좋은 대학가서 쭉쭉 뻗어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여러분, 만일 이렇게 안 보면, 믿음이 아니에요. 큰일 나는 겁니다.

내 자식이 걸어갈 길도.. 주님 따라가다가, 십자가까지 도달하는 것이

그의 길임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이지요.


내 아이를 바라볼 때, 내 아이의 마지막 길은, 언제일는지는 모르지만,

주님 따라가다가, 십자가에 달리는 겁니다.

그 아이가 찾아야 할 자리는 과장, 부장이 아니라.. 십자가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과 내게 주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 나'라는 신분의식으로 보는 것이.. 참된 믿음이에요.

우리는 내 죄로 이미 죽은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으로 보면.. 황송하지 않는 게 없어요.

남편을 봤는데, 뭔가가 마음에안 들고 못마땅하고 부족해요.

그래서 남편을 무시하는 마음... 아직 우리의 기대가 큰 탓입니다.

우리 신분의식이 팽창되어 있어서 그래요. (8데나리온 기대한 사람처럼)


이 세상의  어떤 자리도, 십자가의 자리 보다 비참한 자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을 만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다 나한테는 과분해요...


▲십자가를 통해 남편과 자녀를 바라봅시다.

이진법복음선교회 수요영성강좌 나와서 들을 정도 믿음이면,

웬만하면 다들 남편 깔볼 겁니다. 조심하세요.

믿음의 차원에서 남편보면서 ‘저 인간 아직 멀었어!’ 그렇게 생각하시죠?

지금 남편이 낮아 보이시죠?


진정으로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생각을 못 갖고 있어서 그래요.

십자가 자리가 자기 자리인 사람들 마음에는, 그런 게 생길 수가 없어요.

여러분이 주님의 십자가 자리를 완전히 이해한다면.. 그렇지 않아요.

 

내가 갖고 있는 한계를 넓히면.. 남편이나 아이가 작아 보여요.

그러면 아이를 크도록 불리죠. (기대를 크게 갖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커진 한계를 채울 수가 없는데, 엄마는 자꾸 커지라고 (풍선처럼) 막 불어대니

애들이 터지죠. 반항과 일탈로 표현되는 것 아니에요?


자식은 이런 겁니다. 하나님을 믿고 자식을 바라보면서,

나와 자식이 같이 갈 길은 십자가에 달린 자기의 모습으로 에요.

서울대, 하버드대 들어가면.. 이 아이 마음이 높아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고,

초봉 10만 불짜리 회사 들어가면.. 경축할 일이 아니라 걱정할 일이에요.


낮아져야 해요. 취직을 못하고 빌빌거린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기회에 십자가를 알게 해 주세요.’ 

‘자기의 처지를 알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가 바뀌어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 아이에게 이루시려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거죠.


▲항상 풍족한 마음, 과분한 마음으로 삽시다.

그러니까, 어떻게 남편, 사업, 자식을 바라보느냐.

항상 내 신분을 잊지 않는 것... 자 보세요.

아이가 공부를 잘 하다가 성적이 뚝 떨어졌다. 화가 나죠.

화가 날 때, 십자가에서 죽은 나를 되찾습니다.


그리고 ‘그래, 내게 과분하지’ ...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다 내 버리고 선교사로 가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자꾸 화를 나게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저 남편도 나한테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한 시간 일했는데 한 데나리온 받는 품꾼의 마음 상태. 과분하게 여기는 마음.

이것이 천국의 마음상태입니다.


▲반복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과분하다는 말을 입으로 내서 말을 하려면

자꾸 모든 것에 대해 연습하세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어떤 것에 대해

첫 번째 드는 감정을 바로 나가기 전에, 내 신분을 기억하고,

십자가에서 죽은 자임을 마땅히 받아들여, 과분합니다, 과분합니다, 과분합니다.

세 번만 말해 보세요. 다 그 자리가 천국으로 바뀝니다. 그렇게 입으로 시인하세요.


▲십자가는 역설의 진리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는 이상해요.

낮아지고 낮아져서 십자가에 도달한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하늘아래 뫼가 도달 할 수 없는.. 더 높은 하늘 위로 데리고 갑니다. 이상하죠.


진심으로 십자가의 뜻을 명확하게 깨닫게 되고,

십자가를 붙잡고 내가 거기 매달린 사람임을 알고 가장 낮은 자리에 도달했을 때,

그 사람은 구름 위로 올라가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물 같아요. 물은 특성상 높은 곳으로 올라 갈 수 없잖아요.

계속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만 하죠. 가장 낮은 바다까지 도달합니다.

그 바다에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 수증기로 증발하여 구름위로 올라가죠.

구름위로 올라간 물은 다시 비가 되어 내려와 만물을 살립니다.

 

▲아내를 예로 들어보면,

내가 아내면서, 십자가에 달린 신분임을 잊지 않고 과분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요.

내려가고 내려가서 십자가의 의미가 와 닿는 순간에.. 내 마음은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몸은 아직 죽지 않더란 말이죠. 나를 하나님이 남편에게로 돌려보냅니다.

생명을 살리는 비가 되어서 남편의 영혼을 깨우치고,

남편의 영혼을 살리는 mission(보내진다)을 갖고 오게 됩니다.


남편을 고치려 들고 바꾸려 들지 말고, 먼저 감사하면서 내 마음에서 바꾸세요.

내게는 넘칩니다. 과분하고 감사합니다..


주기도문에서 주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그 외의 것은 다 분에 넘치는 것임을 알라고요.

그러면 그 나머지 돈 모두가 다 하나님께로 버려지고,

생명을 살리는 재물이 되어서 쓰임쓰임마다 천국의 열매가 생겨나리라 믿습니다.


▲마치는 말

‘과분하다’의 반대는 ‘미흡하다’입니다.

십자가를 진정으로 받아들인 자에게 과분하지 않는 형편은 없습니다.

모든 게 다 내게 과분합니다.


내가 아직도 무엇인가가 미흡하다면

내가 주님의 십자가의 자리에 가지 않은 것이고

내 믿음이 부족한 줄 알고 다시 씨름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주님을 좇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천국을) 이미 얻었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새롭게 얻어서 천국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천국이 와서 내 환경이 천국으로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 품꾼의 비유. 요지가 여기 있습니다.

당연히 1/8데나리온 받을 것이라 여겼던 일꾼이 한 데나리온 다 받았을 때

느끼는 황송함이 천국이에요.


마땅히 받을 것 다 받았는데도, 자기 혼자 기대를 넓히고

‘이 상태로는 아니야, 부족해’ 라며 기대(욕심)를 채우려는 사람은

예수를 일찍 믿었음에도 나중 되는, 천국을 상실하는, 그런 불신앙이 될 것입니다.

처음 된 자 나중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앞과 뒤에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될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자리가 나의 신분이요 나의위치로 가장합당한 자리임을

늘 기억함을 통하여 이 세상 주어지는 모든 환경을 다 풍성합니다. 황송합니다..

하고 살아감을 통하여 천국을 이루며 주님 따라가는 사람 되게 해 주시고,


내게 주어진 남편 자식 사업 재정의 상태 그대로를

예수님 이름 붙잡고 감사함을 통해 예수님 이름을 위해 버리는 것이 되어서,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몇 배나 받는 복된 삶이 간증거리가 될 수 있도록

저희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은 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