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한 압살롬 삼하15:1~6 -09.05.19.설교스크랩, 편집, 출처-
듣는 분에 따라서, 잘못 오해하시면,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만
혹시나 성령의 음성인지도 모르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잘 들어봅시다.
▲압살롬 ..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하고 왕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준비작업을 할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아버지 다윗 왕에게 판결을 의뢰하기 위하여 다가오는 모든 백성들을
길거리에서 자리를 마련하고 다 가로챕니다. 그래서 뭐라고 얘기하느냐 하면.
‘네가 생각하는 그 너의 주장이 다 옳다. 그러나 어쩌겠느냐?
다윗 왕은 네 올바른 주장을 송사해서 결정해줄 만한 사람들을 세우지 아니하였다.
내가 너희들에게 공의를 베풀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올바른 주장을 펼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마.’
이렇게 말하고 백성들에게 입 맞추면서, 호의를 베풀면서 뭘 했습니까?
사무엘하 15:6절까지 보면 성경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 하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 했다고 표현합니다.
시편 58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모반을 바라보면서 지은 ‘저주시’입니다.
(피난 가서인지, 아니면 과거를 회상하면서인지 확실치 않음)
압살롬과 압살롬을 도와서 이 모반을 준비하던 방백들, 신하들,
반란부대 지도자들을 향하여 이 저주를 퍼붓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저주의 의도, 저주의 계기, 동기가 무엇입니까?
저주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한 데> 있는 것이에요.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해 낸 것
다윗 왕이 누구입니까?
①모든 일을 하나님께 묻지 않으면 행하지 않는 자였습니다.
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물으면서 행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에게 와서 판결을 요구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의견을 묻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다윗 왕으로부터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했다는 것은,
그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해낸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②또한 다윗왕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과 그 무리들은.. ‘자칭 왕, 자칭 권위’를 주장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대리자로 세운 사람을 함부로 폐위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의 마음을 꼬드겨서
자기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은 ‘도적질하는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시편58편에서 다윗은
이들이 바로 뱀이요, 독사의 새끼들이며,
하나님의 공의적 저주가 내리는 것에 합당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시58:4
성군 다윗이 어떻게 그렇게 심한 저주를 퍼부을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독설을 퍼부으셨습니다.
너무 심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신약에도,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던, 즉 <백성의 마음을 훔치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마23장에,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저주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천국 문을 닫고 너희도 안 들어가고 천국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한다. 마23:13
-너희가 온 천하를 다니며 교인 하나를 얻은 다음에는, 너희보다 더 지옥자식이 되게 만드는구나. 마23:15 .
바리새인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같은 분과 제일 가깝습니다.
(모든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이 그렇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고요.
비판이 아니라, 경각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이 설교문을 읽고서 자기를 돌아보아야지, 남을 겨냥해서 비판하지 맙시다.)
그런 분들이 교인 하나를 얻으면 더 지옥자식이 되게 만든다고 하시면서
‘화 있을진저!’ 저주로 퍼부어대십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얘기하시면서.
◑백성의 마음을 훔치는 구체적인 예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백성의 마음을 뺏어가는 자들이 어떠한 자들인가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압살롬의 예를 들어 살펴봅시다.
교회에 충성하고, 목회자에게 인정받는 성도나 재직들 가운데
신앙이 여전히 미숙해서 어린아이 같고, 정작 하나님께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압살롬'에게 마음이 빼앗긴 경우입니다...
▲1. 무조건 편들어주기
삼하15:3,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①하나님의 마음을 뺏는 자가 하는 짓은,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 왕께 판결을 받기 위하여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합니까?
‘너의 일이 옳다마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것은 ‘네가 당면한 재판 문제에 대한 너의 입장이 옳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입니까? 무조건 그를 편들어 주는 것입니다.
판결을 받기도 전에, 이미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을 옳다고 인 쳐줘버립니다.
이게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비법입니다.
②서구 사람들이 보다 이성적이라면,
동양(한국 포함)사람들은 보다 감성적입니다.
그래서 내 편, 네 편으로 편가르기를 하고,
아군이 하는 일은 (틀린 일이라도) 모두 옳고 정당하며
적편이 하는 일은 (맞는 일이라도) 어떻게든 약점을 찾아내어.. 틀리다고 판단내립니다.
선악의 문제, 옳고 그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가서 여쭈어야 하는데,
마치 선악과를 따먹고서, 선악을 하나님처럼 임의로 판단하게 된 아담처럼 행합니다.
특별히 지도자는 이런 면에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자기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다가는
또한 그 사람을 내 편 만들기 위해서, 무조건 두둔하는 것은
압살롬의 길이요, 그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도적질해 내는 ‘악행, 모반’입니다.
③좀 더 확장해서 적용하면, 요즘 교회가 어떻게 해요?
예를 들어서 성도가 ‘사업이 잘 안 됩니다.’ 말하면
사업이 안 되는 교인이 갖는 마음이 뭡니까?
먼저 자기 사업에 대해서 스스로 판결을 내려버려요. 어떻게요?
‘사업이 안 되는 이 상태는 잘못된 거다. 사업이 잘 되어야 된다.’
그런 마음으로 교회에 딱 앉아 있습니다.
그러면 저 같은 목사님들이 뭐라고 설교를 하느냐 하면.
‘사업이 안 되십니까? 하나님께 간구하면 사업이 잘 될 줄로 믿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기 이전에 가졌던 소원에 대해,
‘네 일이 옳다.. 너의 생각이 옳다.. 너의 판단이 맞다..’
이렇게 다 인정해 줘버립니다. 맞장구 쳐주는 것이지요.
④자녀사랑도 마찬가집니다. 성도의 판단을 다 맞다고 인정해줍니다.
‘내 자식이 세상적으로 출세해야 돼. 좋은 대학 들어가야 돼.
나는 무조건 건강해야 되고, 무조건 형통해야 되고...’
이런 모든 소원과 모든 판단들을 다 옳다고 얘기 해줘버립니다. 다 옳다고.
‘맞다, 네가 너 스스로 좋고 나쁨을 판단한 그 판단 그대로
세상에서 갖고 있는 그대로 갖고 들어와라. 네 판단은 다 맞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해나가는 편법이라는 것이에요.
사실 성경적 진리를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진실대로 말하면, 그 성도님과 대립하게 되니까
교회의 화합을 위하여, 무조건 옳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지요.
문제는 압살롬이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서, 자기편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2. 거짓 약속 주기
①압살롬이 이렇게 거짓약속을 줍니다.
내가 왕이 되면, 내가 너희의 일을 재판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서게 되면,
너희가 옳게 생각하고 있는 그 소원대로 다 일이 처리가 될 텐데...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삼하15:4.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걸 공의라고 얘기하면서. 정당하다고 얘기하면서.
점점 심화돼가는 것이에요. 거짓약속을 주는 겁니다.
당신들이 교회(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는 걱정과 교회사랑, 맞다 이거에요.
다른 교회보다 돈이 많아야 되고, 다른 교회보다 시설, 장비가 강해야 되고
다른 교회보다 안정돼야 되고.. 그 걱정 맞다 이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왕이 되면.. 이루어준다는 것이에요.
자기 같은 올바른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다 그렇게 된다는 것이지요.
②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한 대로 (진리를 떠나서) 나의 호불호의 기호를 따라서
내가 선호하는 방향을 따라서 하나님 잘 믿으면
하나님이 다 이루어주신다고 거짓말 약속을 해댑니다.
또한 ‘좋은 교회, 능력 있는 지도자’ 만나서 그의 축복(기도)을 받으면
‘네 소원대로 다 이루어지리라’ 그러니 ‘네 입을 크게 벌리라’고 말합니다.
그런 미래를 긍정하라는 거예요. 긍정해. 그러면 다 긍정하는 대로 되니까.
비전을 정해놓고 바라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대로 다 되니까.
이게 다 뭡니까?
하나님으로부터/진리로부터.. 백성들의 마음을 갈취하고 도적질해나가는 겁니다.
왜 그런 헛된 공약/거짓말을 해댑니까?
누가 비전을 마음에 바라보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해요?
될 사람은.. 비전 안 봐도 되고, 안 될 사람은.. 비전 봐도 안 되요.
③또한 비전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비전에 (수동적으로, 하늘의 힘에 의해) 사로잡히는 거지
진짜 비전을 보고 간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내가 비전을 바라본 게 아니에요.
내가 긍정을 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큰 비전을 가지라/세우라고 목청을 돋웁니다.
비전이 아니라 사실은 욕심이지요. 욕심을 크게 가지라고 돋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거짓 공약을 남발합니까?
이것이 거짓 공약이 맞는 것이
만약 그 약속대로 다 이루어졌다면
성도들이 지금 다 거대 기업을 하고 있을 것이고,
한국은 세계 제일의 부유한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해 봐도 안 되더라’ 하면서,
이제는 슬금슬금 교회를 떠나고 있지 않습니까?
④왜 그런 달콤한 헛된 약속을 해대요?
몰라서 내가 묻는 줄 아십니까?
다, 저 같은 목사 같은 사람들이 교인들의 마음을 도적질해내는 겁니다.
쉽게 말할까요? 교회 많이 오게 하려고. 사람 많이 오게 하려고. 부흥시키려고.
뭐 대단히 거룩한 이유가 있는 줄 아십니까?
별 고상한 말을 다 뱉어내요. 그러나 이유는 그냥 교인 많이 오게 하려고.
제가 목사라서 잘 알아요.
그래서 만약 성도들이 잘못된 믿음을 가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들고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도적질하는 것이라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하는 저주를 들을 수 있으므로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3. 거짓 친절
그리고 거짓친절을 베풉니다. 압살롬은, 왕자로서,
자기 앞에 무릎 꿇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 백성을 무척 사랑하는 것처럼 정답게 키스를 합니다.
삼하15:5,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①교회가 하는 게 뭐냐? 위로해주래요. 위로. 격려해주래요. 뭘 격려 하냐면?
‘아, 사업이 안 되십니까? 힘내세요.
더욱더 열심히 새벽형 인간이 돼서 새벽부터 한번 뛰어보시죠.
가문의 번영을 위해서 새벽기도도 하고
그리고 나가서 뛰면 아마 세상일이 잘 될 겁니다’하며 격려합니다. 위로합니다.
전화 걸어서 탐방합니다. (전화 걸지 말라는 뜻은 당연히 아닌 것 아시죠?)
그리고 ‘우리 목사님 친절하다. 우리 목사님 따뜻하다’는 평판을 듣습니다.
예, 맞습니다. 당연히 목자는 양떼를 사랑하고 친절해야죠.
그러나 자기 편 만들려고 친절해서는 안 됩니다.
압살롬이 친절한 것은, 우매한 백성들을 호도해서
자기 부대를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목사가 교회 손님처럼 다니는 사람들 말고,
핵심 멤버들 중에 몇몇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해서
탄탄한 ‘자기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을 절절히 섞어서, 충성하는 부교역자/재직은 중용해서,
어느 기업 못지않은, ‘조직력’을 갖추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 은혜/성령/말씀/변화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체제 유지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데도 지도자는 ‘자기 강력한 리더십’을 오히려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체제를 ‘인본주의 교회’라고 말합니다.
(비난을 하지 말고, 기도하며 대안을 마련하세요)
②여러분, 제일 무서운 게 있어요. 제가 제일 무서운 게 있어요.
목사가 유명해지는 거더라고요.
그게 저한테도 제일 위험하고, 복음이 전해지는 일에도 제일 위험해요.
사람들이 십자가복음이 끝내주게 좋다는 말 대신에
‘우리 목사님이 좋다’는 라는 말을 한다 하면
다 지금 그것들에 마음이 도적질당하고 있는 겁니다.
목사의 섬김을 통하여
교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가서 하나님을 만났다면
당연히 ‘하나님이 좋아요’ 하며 난리쳐야지.
왜 부흥한다는 교회 가서 말을 들어보면
‘우리 목사님이 좋다’는 겁니까?
우리 예수님이 좋고, 우리 복음이 정말 굉장한 능력이 있고,
우리 하나님이 좋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자기를 세워주고, 자기 기분 맞춰주고, 자기편을 들어주니까
그래서 좋다는 것입니까?
마음이 도적질당한 거 아닙니까?
③도적질당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뭐예요?
십자가복음을 날마다 전하는 거밖에 없어요.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이제는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달린 것 이외에는 말하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노라.
그래서 십자가복음이 전해 진겁니다. 퍼져나간 겁니다.
▲4. 화려함으로 유혹함
삼하15:1,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①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게 화려한 거 아닙니까?
이 압살롬이 모반을 일으킬 때 그 외형을 보면
전배가 50명. 전배가 50명이면 왕의 수준입니다.
(전배: 왕이 행차할 때 앞에 서서 칼을 들고 창을 들고 행진하는 군인)
빼어난 군인들 50명을 앞세워요. 그리고 병거가 있고 말이 있고.
압살롬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그러니까 호위병과 병거와 말..
이런 것들로 인해서 자기를 믿게 만듭니다.
다윗 왕은 자기에게 소송을 가지고 오면
하나님의 의견을 물어서, 하나님께 마음을 돌리는 반면에
압살롬은 자기에게로 돌립니다.
②우리가 흔히 그렇게 얘기해요.
예배당을 짓고 나면 교인이 는다. 교인이 결국 뭘 보고 예배당에 오는 겁니까?
예배당건물을 보고 오는 거예요.
제가 선교회를 하면서 그런 경험을 많이 해요.
멀리서 인터넷을 통해서나 CD를 통해서 이진법복음선교회를 알아듣고 사모합니다. ‘내가 한번 가봐야지’
그래서 2년 6개월 지나는 동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가셨어요.
그중에서 오셨다가 너무 조그마니까 초라하니까 실망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오히려 더 영적으로 강화되는 사람이 있어요.
‘이렇게 작고 초라한 가운데서도 말씀의 역사가 그 멀리까지 전해지고 있구나.’
하며 감격하는 분이 계신가 하면
어떤 분들은 ‘아이고, 이게 뭐야?’
그렇게 말하시지는 않죠. 그러나 표정을 보면 알겠어요.
그래서 제가 그래요. 속마음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외형을 보고 쫓아오지 않고
말씀과 1대1의 관계에서 말씀 때문에만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영락교회 있을 때, 새신자들을 왜 영락교회를 선택했는가. 조사해보면
빌딩/지명도/인지도 때문에 결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아마 장차 이진법복음선교회가 편만해지면서
너도나도 이진법복음선교회, 이진법복음선교회 얘기하기 시작하면
그 유행과 흐름을 따라 무조건 여기가 좋다고 들을 사람도 생길지 모르겠어요.
만약 그렇다면 불행한 것이죠.
▲나(설교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도 그랬습니다.
자, 정리합니다.
누가 주님의 하나님의 저주에 합당한 자들입니까?
-하나님께로 가는 마음을 뺏는 자들이에요.
누가 그러면 하나님께로 가는 마음을 뺏었습니까?
나에요, 나. 내가 우리 자식 마음을 하나님께로 가는 마음을 뺏었어요.
내 남편 마음을 뺏었어요. 내 아내마음을 뺏었어요.
십자가 복음의 진리에서 떠나게 한 장본인이 - 바로 나였습니다.
내가 바로 저주받을 자였어요.
시85편에 나온 모든 저주의 내용이 나에게 합당한 자에요.
내가 압살롬과 같이 행했던 적이, 과거에 있었어요.
(남을 싸잡아 비난하는 설교가 아니라는 뜻)
어쩌면 예수 잘 믿는다는 내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교인 하나를 얻으면, 배나 더 지옥자식을 만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아버지!
원수도 사랑하라 하신 긍휼과 자비의 우리 주님 앞에
어떡하다가 그런 주님으로부터의 저주가 합당할 만큼 악한 자가 되었습니까?
나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방해받았고
나 역시 하나님께로 인도되어가야 될 사람들의 마음들을 방해하였습니다.
남을 방해한 내가 저주에 합당한 자인 것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저주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을 인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저주에 합당한 내가 죽고
축복에 합당한 자로 다시 태어나는 아침시간 되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 리더쉽,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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