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7

두 가지 방면의 시험

LNCK 2009. 6. 24. 08:53

https://www.youtube.com/watch?v=MU7DO1XZfwE 

◈두 가지 방면의 시험                     눅16:13                  설교녹취, 아마2007년경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16:13

 

 

▲성공하고 축복받을 때, 내 신앙이 시험받는다.

갑자기 예기치 못한 승진, 돈방석, 자녀 대학입학 등의 성공이 일어났을 때

거기에 내 마음이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

약간 기뻐해도 될 일을, 너무 뛸 듯이 기쁜 나머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

 

왜냐하면 ①자기 자랑에 몰두하고,

거기에 온갖 시간과 정열을 다 쏟아 붓기 때문이다. <자랑과 교만>

 

②또한 등 따습고 배부르니까.. 자연적으로 영적인 긴장감도 떨어지면서

어떤 세상적 재미로 자신을 방임한다. <쇼핑, 오락, 과도한 레저 생활 등>

 

③세상 일이 잘 될수록, 세상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세상일에 더욱 몰두하게 된다. <야심, 더 큰 성취욕>

 

이런 저런 이유로,

대단히 성숙한 신앙적 성숙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십중팔구 타락하게 된다.

전에는 안 그랬던 사람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이다.

 

▲또 반대로 코너에 몰릴 때 신앙이 시험받을 수도 있다.

(보통 코너에 몰리면, 영적으로 재무장하게 되는데

재무장하기 전에.. 심한 영적인 갈등을 겪게 된다. 시험에 빠진다.)

 

제가 가장 코너에 몰릴 때는, 자녀와 관계가 멀어질 때다.

자녀와 싸우거나 자녀가 반항하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

‘우째 이런 일이... ’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그러면 일이고 뭐고.. 일절 다 싫어진다. 저는 이런 적이 참 많았다.

 

이런 일이 홀연히 일어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녀가 내 삶의 전부(우상)’이었다는 것이다.

늘 입술로는 하나님만 섬긴다고 했지만,

사실은 자녀가 우선이었고, 하나님은 부수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자녀문제’로 ‘하나님 신앙’이 종종 휘청거리는 것이다.

 

자녀문제 말고도, 돈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이성문제, 명예문제도 마찬가지다.

진짜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은,

그런 부수적인 문제들이 휘청거려도 (살다가보면 휘청거릴 때가 있다)

하나님 신앙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이 더 중요하니까!

 

그런데 그런 세상적인 문제가 위기에 봉착하면

당장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시험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것은 내가 세상을 섬기고 (자녀, 물질, 명예, 이성 등)

 

하나님은 ‘다만 나를 복 주시는/주셔야 하는 분’으로 이용했다는 뜻이 된다.

내가 원하는 장단에 따라 따라서 춤 춰 주셔야 하는 ‘꼭두각시 같은 하나님’이다.

 

▲반복해서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두 가지로 우리를 시험하신다.

갑자기 잘 되게 하심으로써 .. 나를 시험하시고   <타락, 나태>

갑자기 안 되게 하심으로써 .. 나를 시험하신다.   <원망, 울분>

 

갑자기 불치병 선고를 받았을 때, 또는 갑자기 사고를 당해 휠체어 장애인 신세가 되었을 때

기도, 예배... 다 싫어진다. 하나님도 원망스럽다. ‘하나님, why me?’ 한다.

자기가 하나님 믿은 것 자체를 후회할 때도 있다.

‘차라리 내가 교회를 안 다녔더라면.. 이런 일도 어쩌면 없었을 터인데..’

 

그 때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내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직 믿음이 젬병이구나.

내가 주님을 믿은 게 아니라, 세상 우상(물질, 명예, 쾌락)을 믿었고,

주님은 내가 세상 우상을 얻는데 필요한 도구쯤으로 여기고 있었구나..’

 

갑작스런 실패와 삶의 절망이 찾아올 때 우리는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습니다. 세상을 다 버리고/내려놓았습니다.’ 하던 나의 고백이

빈껍데기뿐이었음을 알게 된다.

진짜 죽고 내려놓았더라면, 이렇게 실망하지 않을 것인데

사실은 하나도 죽거나 내려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도 실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반응은

‘에잇, 나 이제 봉사 안 할 거야! 전도고 뭐고 다 때려치워!’

 

여러분, 하나님은 두 가지 방식(형통과 환란)으로 우리를 시험하신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친 것처럼, 

내가 진짜 <하나님만 사랑>하는지... 아니면 <세상을 더 사랑>하는지... 하나님은 테스트 하신다.

 

더 주거나/반대로 빼앗아 가 버리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테스트하시는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제 자녀와의 관계를 좀 더 나누고자 한다.

저는 제 스스로, 자녀와의 관계가 전부가 아니라고 여기고 살지만

제가 자녀와 대판 싸우거나 서로 대화가 단절되면,

나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림을 느낀다.

목회고 뭐고,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질 정도로 낙심하게 된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주님은 나 자신을 깊이 보게 하신다.

‘아하, 자녀가 주님보다 더 커져 버렸구나! 그래서 이런 일이 생겼구나!’

 

나 스스로는 ‘내게 주님이 전부’라고 고백하며 따랐지만

그 순간에 ‘그게 아니었음’을 내가 알게 된 것이다.

 

▲이번에 <부흥>팀이 와서 저희 교회에서 사역하는 기간을 가졌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많이들 열심을 내어서 동역해 주셔서 참 고마웠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의 그 열심도 ‘옛 사람의 옛 욕심’일수도 있다.

입술로는 주님을 위해서 열정을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위해서 막 열정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흥 팀이 얼마나 아파하면서 우리 교회를 떠났다.

 

주님의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지만 (명목)

결국에는 그것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설쳐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본질)

 

정말 저희 교회가, 세상적인 광고효과로 부흥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신 예수님 방식으로,

흠모할 만한 것이 없으셨던 예수님 방식으로,

그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린다.

그 멸시천대 받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말구유(심령)에 모시는 방식으로

저와 여러분의 심령이 부흥하게 되시기 바란다.

 

▲여러분, 십자가가 매력적으로 보이고, 세상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되기 바란다.

세상이 과도하게 매력적으로 보이면,

나중에 세상 일이 휘청거릴 때.. 땅이 꺼질 듯이 한숨짓고 낙심하게 된다.

 

여러분, 세상 일은

잘 될 때나/안 될 때나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일이다.

 

잘 된다고.. 자랑하고 거기에 빠질 일도 아니고,

안 된다고.. 한숨짓고 원망할 일도 아니다.

십자가에서 나 자신이 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 죽은 사람에게는 둘 다 없다.

그래야 부활의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살 수 있다.

 

목회자로서 저는

교회가 잘 될 때.. 거기에 자랑하고 빠질 수가 있고

교회가 어려울 때.. 거기에 낙심하고 원망할 수 있다.

이것은 목회마저도 ‘내 야망’이 될 수 있는 시험이다.

 

내가 죽은 사람은.. 목회가 잘 될 때도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교만에 빠지지 말고,

어려울 때도 여전히 주님을 더욱 붙든다.

잘되고/못되고 그게 다 부수적인 것이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교제하고, 순종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다.

 

▲제가 믿기로, 신앙의 부흥은 가장 초라하고, 가장 어려울 때 찾아온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교회가 잘 될 때.. 절대 오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개교회적 부흥을 기도하지만,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회의 자랑을 위해서.. 오지 않을 것이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며

사람들이 기대하지도 않았던 사람,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 곳에서

하나님의 부흥은 일어날 것이다.

 

잘 되거나/못 되거나에 관계없이

오직 주님 한 분만을 제일로 섬기는 사람을 통해서.. 이 시대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잘 되거나 못 되거나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

자기 죽음의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따르는 사람을 통해서 되어질 것이다.

 

우리 교인들 중에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봉사와 섬김이 얼마나 많은지..

저는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한 우리 교인들 중에도, 남의 눈에 띄지 않지만,

자기 개인적 극심한 고통과 환란을 통해서도

자기 죽음을 체험하며 꿋꿋이 신앙생활 해 나가는 분들이 많음으로 .. 감사드린다.

안 겪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찾아온 것이라면,

그런 연단을 통해서도.. 십자가를 깊이 발견하고 체험하는 귀한 기회가 될 줄 믿는다.          ▣ 삶의 통찰력       

 

 

'분류 없음 > 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으로 살아갑시다 1962  (0) 2009.06.30
맥추절의 의미 2가지 1956  (0) 2009.06.25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원리 1937  (0) 2009.06.12
감사하는 사람 1934  (0) 2009.06.11
하나님의 공의   (0) 2009.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