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사람 골3:15~17 07.06.24.설교스크랩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5~17
▲수도원과 교도소의 차이
중세 시대 때 수도원에서 중점적으로 교육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를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차이를 아십니까?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을, 감옥에 들어가는 것으로 여기실 분도 많으실 것입니다.
수도원이나 감옥이나 외부와 차단되어 있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습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수도원이나 감옥이나 비슷합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수도원은.. 하나님 말씀이 있고 감사가 있고 찬양이 있으므로.. 천국이요,
감옥은.. 원망과 탄식과 후회와 불평과 불만이 있으므로..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수도원이지만.. 감사가 없다면 감옥이 될 것이며,
감옥에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함이 있다면 천국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정도/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감옥생활 같다고 아우성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평하고, 불만하고, 탄식하고, 원망하면.. 그곳이 지옥이요,
감사와 찬송과 하나님 말씀이 풍성하면.. 천국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오늘 ‘감옥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면
‘감사’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눈물로 세운 교회
이번에 일본 방문 중에 일본 교인들과 식사를 하다가
‘오사카 사람들은 먹다 죽고, 교토 사람들은 입다 죽는다.’는 속담을 들었습니다.
일본 교인이 하는 그 말을 듣더니, 우리 교인 한 분이
‘우리 교인들은 헌금하다 죽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일본 교인들이 “역시 대단하군요!” 하면서 놀랐습니다.
그 때 제 마음이 쿵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애처로운 말이었습니다.
너무나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 말이 제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그 말을 생각하는데,
우리 교인들 신앙생활을 그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 교인들이 세계에 자랑할 만 한 것은 헌금생활이었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정말 눈물로 헌금하며,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 감사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와 우리나라가, 하나님께 넘치게 큰 복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눈물로 헌신하며 교회를 세워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인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주님 들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옵소서. 복을 주옵소서!’ 기도했습니다.
주) 그런데 앞으로는 한국교회 트랜드가 변하고 있다고 말들을 합니다.
앞으로 시대는, 교회를 세우는데 중점을 두어야 하는 시기가 아니라
교회를 정화하는데 중점을 두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세우는 시기>가 필요했듯이
앞으로 그 세워진 교회를 더욱 <내실 있게 다지는 시기>도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교회를 중단없이 계속 세워야지요.
그러나 트랜드 (유행/강조점)는 .. 세우는 것 보다, 정화하는데 있을 것이라는 .. 예측입니다.
▲미국은 <감사>로 복 받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후르시초프가 한 말입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은
Thank you를 가장 많이 말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No 라고 말할 때도 Thank를 사용하여
No thanks 라고 말한다.
어느 목사님이 처음 미국에 갔을 받은 강한 인상이
하루 종일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감사합니다. Thank you” 라는 말이더랍니다.
지금은 미국도 젊은 사람들은 "Thank you!” 라는 말을 잘 못한답니다.
시내 좁은 길에서 길을 비켜줘도,
엘리베이터에서 상대방에게 먼저 내리도록 배려를 해주는데도
멀뚱멀뚱 쳐다만 볼 뿐 감사하지 않습니다.
(어떤 미국인들은, 이민자들이 이렇게 하지, 원래 미국인들은 다르다고 합니다.)
딤후3:2절에 말세가 되면 벌어질 징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말세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람들의 마음에서 감사가 사라집니다.
왜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을까요?
여러분 자신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공짜 티켓 하나라도 누구에게 주고 싶을 때,
당연히 ‘받으면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지 않겠습니까?
‘받고도 감사가 없는 사람’에게는.. 다음부터는 더 이상 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감사를 가장 많이 고백한 사람은.. 다윗과 사도 바울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환난과 역경 속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를 고백했습니다.
시편은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후,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 왕궁으로 모셔왔습니다.
그 때 다윗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다가 하체가 드러났습니다.
그 장면을 본 왕비 미갈은 다윗을 비난했습니다.
이 말은 당시 상황이, 누구나 덩실덩실 춤출 만큼 기쁜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다윗만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갈의 눈에는 ‘미친 짓’처럼 보였습니다.
바로 그 점을 하나님께서 주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하게 했다고 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에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것 때문에
감사하여 덩실덩실 춤을 출 수 있습니까?
삼하6:21~22절에, 그 때 다윗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는 왕의 지위도 아무 것이 아님을 안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체면 때문에 조용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상 체면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것을 비난했던 미갈은
평생 자식 없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구약에서 다윗의 예를 들었다면, 신약에서 사도바울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 생애를 보면 가난과, 굶주림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일생을 나그네이자 감옥에 갇힌 죄수로 보냈습니다.
고후12장에 보면 바울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그에게 편안히 쉴만한 가정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통스런 여행을 다녔습니다.
내가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11:23~27
그는 감사는커녕, 원망과 불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인 골로새서 편지를 기록한 곳도 별장 침대나 안락한 저택이 아닙니다.
로마의 감옥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7
언제나 함께 하시는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자기가 감옥에 있든지 고생스러운 길에 있든지
언제나 자기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분명히 알았던 바울은
감사를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보고 싶으신 모습인 것입니다.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
혹시 믿음이 좋은 사람을 찾고 있습니까?
믿음 좋은 배우자나 믿음 좋은 며느리, 사위,
믿음 좋은 직원이나, 믿음이 좋은 동역자를 찾으십니까?
그러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불평과 원망과 화가 많다면 믿음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배우자로서는 문제가 많습니다. 직원으로 써도 골치 아픕니다.
다른 사람 흉이나 보고, 험담만을 일삼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빨리 접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형편이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는 하나님께 감사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생활은.. 환경의 차이가 아니라, 믿음의 차이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1880∼1968) 여사는 3중고 장애자였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역경을 다 극복하였습니다.
대학에도 들어가 당당히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많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는 8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노년에 이르렀을 때 한 신문 기자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통 속에서 일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따금씩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신 적은 없습니까?”
그 때 헬렌 켈러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임종 때, 그가 남긴 말은
"아! 참으로 나의 인생은 아름다웠다." 였습니다.
이 고백에서 우리는 헬렌켈러 여사의 믿음이, 참 믿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의 열매가 맺히는 믿음입니다.
그녀가 한 번은 <내가 3일 동안 볼 수 있다면> 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만약 내가 사흘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 먼동이 트는 모습을 보고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들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아름다운 영화를 한 편 보고, 저녁에는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성도 여러분, 헬렌 켈러 여사의 소원은 우리들이 늘 겪는 일들입니다.
헬렌 켈러 여사가 3일 동안만 눈을 뜨게 해 준다면
보고 싶다는 그 3가지 소원이 우리에게는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감사하지 못합니까? 믿음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없는 사람은 아직은 분명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아직 모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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