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절의 의미 2가지 행2:1~4 07.07.01.설교스크랩
*원제목 : 성령께서 임하신 복된 날
오늘 우리는 구약의 율법 그대로 맥추절을 지킬 필요는 없고, 그렇게 지키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맥추절’에 담긴 신령한 의미를 지킬 따름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강림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맥추절을 성령강림절과 동시에 지키는 교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맥추절도 중요합니다.
오늘은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 감사 절기를 말씀하셨는데,
-애굽으로부터 구출 받은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무교절),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드리는 맥추절,
-연말에 추수한 곡식을 저장하면서 드리는 수장절입니다.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일반적으로 맥추감사절이 추수 감사절만 못한 감사절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1년 농사를 다 짓고, 주신 수확에 대해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첫 열매를 얻고 그 첫 열매를 감사 예물로 드리라는 것은
너무 심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추수 축제는 있지만 ‘첫 열매 감사절’은 없습니다.
그러나 맥추 감사절은 매우 중요한 감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지키게 하신 것은 영적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의 영적 의미는.. 십자가 구원입니다.
-맥추절의 영적 의미는.. 성령강림입니다.
-추수절은.. 예수님의 재림과 영생 천국의 축복입니다.
세 절기가 다 중요하지만 맥추절은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절기입니다.
결코 작은 감사절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살려면, 성령님 받지 못하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령 때문에 교회도 세워진 것입니다.
◑의미1. 맥추절은.. 성령이 임하신 날
▲맥추절에 맞추어 성령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성령이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행2:1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실 때를 이미 정해 놓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그 날이 (부활한지 50일째 되는) 오순절 인데,
때마침 ‘맥추절’로 지키던 시기와 같았습니다.
우연히 맥추절과 성령강림일이 겹쳐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맥추절에 성령이 강림하게 하셨습니다. 행2:1
그 의도란., 맥추절이 ‘첫 열매를 거두는 날’이라면
오순절/성령강림절 역시.. ‘교회라는 첫 열매’가 맺어진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맥추감사 신앙’이 ‘성령충만한 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보리나 밀을 추수(맥추)하지는 않지만
성령강림의 첫 열매로서 교회를 주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맥추감사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충만을 재점검하고, 사모하며, 영위하는 삶을 기념하는 날로서
오늘날에도 맥추감사절/성령강림절은 반드시 기억되어지며, 지켜져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신앙 생활합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 맥추절에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복이고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복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1. 성령충만하면.. 오순절에 성령받은 제자처럼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버립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전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였던 것이 드러날까봐 숨어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순교할 위험을 각오하고 담대하게 나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자로 바뀌어졌습니다.
장신대 주선애 교수는, 똥이 마려운 것처럼 기도가 마려운 사람이 있고
찬양이 마려운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냥 앉아 있어도 기도하고 싶어서 여기 가서 기도하고, 저기 가서 기도하고.
그냥 찬양이 터져 나와 걸어가면서도 찬양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찬양하고. 잠자다가도 찬양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 얘기하고 싶고, 보혈을 얘기하고 싶고,
하나님의 능력을 얘기하고 싶고, 새 하늘과 새 땅 얘기하고 싶어서
사람이 없으면 돌멩이 앞에서도 말하고, 담벼락에다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성령의 바람 때문입니다.
▲바치는 것이 즐겁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 즐겁고
헌금하면서도 더 많이 바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교우가 있습니다.
설교를 듣는 시간보다, 헌금하는 시간이 제일 좋은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헌금하는 것에 대하여 부담스러워 하고,
남이 많이 바치는 것도 걱정하는 분도 계십니다.
이렇게 극단으로 달라지는 이유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남자 분들이 예수를 믿을 때, 첫 단계에 부딪히는 것이 헌금 문제입니다.
남편 눈에, 먼저 믿은 아내는
집안에 돈만 있으면 다 교회에다 바치려고 혈안이 된 사람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을 아직은 그 정도 밖에는 체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 남자 성도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오히려 아내가 걱정할 정도가 됩니다. 우리 남편 좀 말려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변화된 파스칼
불란서의 수학자며 사상가인 파스칼은 어느 날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서
그 날 밤 너무 황홀한 감격 가운데서 "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거듭 거듭 고백하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철학에서 만들어낸 논리적 체계로 이루어진 관념이 아니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파스칼의 생은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인생 목적은 철학, 사교가 아니었습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 시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파스칼이 쓴 '팡세' 가 오늘날에도 그렇게 소중한 책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 책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유월절만 알고, 맥추절은 모르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즉 십자가 대속의 은혜는 알지만, 성령충만의 은혜는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분명히 깨달으면
모든 문제의 답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알면 해결됩니다.
죄는 결코 노력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 천국이 성령님을 아는데 있습니다. 용서가 성령님을 아는데 있습니다.
축복과 승리, 성령님을 아는 데서 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시고 죄사함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믿음을 분명히 갖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믿음은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까? 아직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습니까?
이제 성령님을 모시고 사니까 정말 충만함으로 감격으로 기쁨으로
은밀한 죄도 없고, 두려움과 염려도 없고,
오직 예수님 한 분으로만 만족하고 사십니까?
그러면 그 믿음은 맥추절 절기를 지키는 믿음을 갖고 사시는 것입니다.
▲맥추절이 없으면 수장절도 없습니다.
여러분, 맥추 감사절은 그저 교회에서 1년 중에 한번 지나가는 절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하나님께서 주시게 되어있는 복입니다.
유월절이 없이 맥추절이 없고, 맥추절없이 수장절이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자가, 영생의 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맥추절 감사절을 결코 소홀히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었는데 왜 나는 성령충만함이 없을까?
성령충만함을 모르고 아직도 신앙 생활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중동 지역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시다가 한국 교회에 담임 목사로 청빙받아 오신 목사님이
목회하시면서 심방을 다니시다 보니
그렇게 ‘시험들었다, 상처받았다’는 교인이 많은 것에 놀랐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중동에서 한국에 와 보니, 여기는 예수님 믿는 일에는 천국이더랍니다.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어야 하고, 가족이나 친척으로부터 버림받고
직장에서 쫓겨나면서 예수 믿는 회교권의 중동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시험 들었다 상처받았다’ 하더랍니다.
목사님 말씀이 한국 교인들은 너무 편해서 시험들고 상처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충만하지 못한 것입니다.
▲성령의 복을 왜 나에게 주시지 않는가? 하나님이 안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유월절/십자가) 위에 굳게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맥추절을 알지 못하고 맥추절 감사 신앙이 없으니 성령충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흥회를 인도할 때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것을 정말 믿습니까?”
“정말입니까?” “아멘!”
“예수님이 당신의 주님입니까?” “아멘!”
“정말입니까?” 끝까지 “아멘!”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염려도 걱정도 없으시지요?” 그러면 묵묵무답 입니다.
이런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보면 모든 문제는 결국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서도, 여전히 예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지 못하고,
예수님이 주님 되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알지만 맥추절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의미2. 첫 열매를 드리는 날
그러면 맥추절 감사 신앙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맥추감사절의 정확한 의미는 보리추수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첫 열매를 수확하는 때가 보리 추수 때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맥추절이라고 붙인 것이고,
실제로는 첫 열매 감사 신앙입니다.
첫 열매를 바치는 것은 <의무 조항>은 아니지만
바치는 사람들의 간증에 의하면, 놀라운 은혜가 임한다고 합니다.
▲첫 열매를 드림은, 모든 것을 다 드린다는 의미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는
나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분명해야 맥추절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맥추 감사절의 의미가 첫 열매 감사인 것을 깨닫고 보면,
성경을 읽다 보면 놀라운 말씀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첫 열매를 드린 아브라함
제가 맥추절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 기도로 하나님께 구했는데,
그 때 마음에 생긴 감동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첫 열매 이삭을 바쳤고(맥추절을 지켰고)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믿음의 조상’이란 반열에 굳게 섰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첫 아들이었고 모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고, 아브라함은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해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였습니다.
그제야 하나님께서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것을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첫 열매 감사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첫 열매를 기념하여 자원해서 드릴 때, 의무 조항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아브라함처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맥추절 감사 신앙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께서 크게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잠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도대체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이 무엇이길래
하나님께서 이처럼 맥추절을 지키는 자에게 큰 복을 주시겠다는 것일까요?
맥추절 신앙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리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신앙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때는 풍성한 때가 아닙니다.
결혼 직후 힘듭니다. 그래서 감사를 잊기 쉽습니다.
오랫동안 직장 구하기를 기도하다가 드디어 직장을 얻었습니다.
그 때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소홀히 하기가 쉽습니다.
연초에 누구나 긴장이 되고 살기에 빠듯합니다.
그래서 첫 열매 감사를 잊기 쉽습니다.
아무나 초실절 감사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함이 믿어지지 않으면 못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심을 진정 믿지 못하면 못합니다.
‘첫 열매 감사’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납니다.
그러므로 첫 열매들 드리는 맥추절은, 믿음으로만 지켜지는 감사절입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유월절이 없는 자에게는 맥추절도 없습니다.
나아가 맥추절이 없는 자에게는 수장절도 없습니다.
이 세 절기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전에는 몰랐지만, 맥추절 비밀을 깨닫고
제 자신이 맥추절 예물로 바쳐진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목사로 바치셨습니다.
형제들 중에 특별히 잘난 것이 있어서 바친 것이 아니고
처음 태어나났기 때문에 바치신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무하셨다, 섭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의 길이 좋고 만족스러우셨다면
첫 아들에게 이 복을 물려주어야지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를 하나님께 바칠 때, 당신들이 가장 힘들 때였습니다.
6.25 피난 후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목회의 길에서도 가장 힘들고 어려울 초반에 첫 아들을 얻고
목사로 하나님께 바쳤으니 잘하신 일입니까?
제가 고3 말 신학교 원서를 써야 할 때, 어머님께서 여러 번 묻고 또 물으셨습니다.
“너 정말 신학교에 가고 싶니? 가고 싶지 않으면 안가도 돼.”
어머니께서는 저를 낳자마자 하나님께 드리고서도
마지막 순간에 잠시 흔들리셨던 것 같습니다. 제 처지가 애처로우셨던 것 같았습니다.
제가 일반 대학에 가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고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당시 목회자의 삶은 힘든 삶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목사로 바치신 것은 힘드시지만
그 길이 복된 길이라 믿으셨기 때문이고,
오직 첫 열매는 하나님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 부활, 추수, 성탄, 성찬, 장애
'분류 없음 > 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령이 가난해야 부흥이 일어난다 (0) | 2009.07.02 |
---|---|
성령으로 살아갑시다 1962 (0) | 2009.06.30 |
두 가지 방면의 시험 (0) | 2009.06.24 |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원리 1937 (0) | 2009.06.12 |
감사하는 사람 1934 (0) | 20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