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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귐의 기도」

LNCK 2009. 7. 23. 04:36

 

◈「사귐의 기도」                            마7:7~8                                 도서 스크랩

 

<김영봉 목사, 「사귐의 기도」에서 스크랩

*출처 : 다음 카페 [아굴라와 브리스가] → 밑줄친 독서노트

 

 

 

▲기도에 대한 오해

기도로 흥한 한국교회가 자칫하면 기도로 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한국 교회가 앓고 있는 질환은 헤아릴 수 없지만, 기도병은 그 무엇보다 치명적이다.

 

왜 이런 식으로 기도하게 되었는가?

기도를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이 오해가 우리 기도 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다.

 

기도는 어제나 '나의 요구'를 말씀드리는 것이요,

기도 응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요,

능력이 있는 기도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어내는 기도라고 생각한다.

 

얻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요,

기도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목표를 이룰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불굴의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

그러므로 얍복 강변의 야곱은 모든 기도자의 영원한 모델이다..... 라고 오해했습니다

 

아빌라의 테레사( Teresa df Avila)가 한 말을 들어 보라.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

마치 노예에게 말하듯 하고, 말하는 태도가 부주의하고,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반복한다면,

나는 그것을 기도라고 볼 수 없다. 하나님, 아무도 이렇게 기도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사귐의 기도 p.14-15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

영성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다.

굳어버리면 영성은 죽는다.

진정한 자유로움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때에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면 자유도 발견하고, 그분을 잃으면 자유도 잃는다"

쉐어러(Paul Scherer)는 말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껍질을 벗어 버리고 그분이 인도하는 대로

물 흐르듯이 따라가는 것이 영성 생활의 원리다.

기도에서도 이러한 자유로움은 존중되어야 한다.           / 사귐의 기도 p.70

 

 

▲기도의 진정한 응답

기도의 진정한 응답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그 상태다.

그 만남에서 차 오르는 기쁨과 평안이다.

바다 속과 같은 든든한 평안이 차 오르고,

전에 맛보지 못하였던 희열이 전 존재를 감싼다.

 

이러한 경험에 이르면, 우리가 요청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기도'라는 말은 있을 수 있으나

'응답이 없는 기도'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중언부언하는, 헛말로 된 기도라면 모르되

하나님께 드리는 바른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점]

* 우리의 이기적인 요청이 이루어지는 것은 좋아할 일이 아니라 긴장할 일이다.

*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사귀는 것 자체가 응답이다.

* 바른 기도를 하는 한 응답 없는 기도는 없다.

* 진정한 응답은 나의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p.64

 

 

▲올바른 기도

올바른 기도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도자가 떠맡는 과정이다.

기도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6;8)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며,

마침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일어나는 것이다.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생기는 것도,

하나님이 무력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분의 뜻을 위해 일어날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

아무도 하나님을 위해 일어나려 하지 않으면서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그 옛날 십자군 원정 때처럼 하나님을 위해 칼을 들어 원수를 칠 사람들은 많지만,

하나님을 위해 고난의 길을 걸어갈 사람들은 별로 없다.

하나님을 대신해 영광과 승리를 누리려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분을 대신해 고난과 손해를 감수하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기도가 아니고는 그런 결심을 할 수 없다.

 

[요점]

* 하나님과 사귐이 지속되는 한 모든 행동은 기도가 된다.

* 사귐의 기도를 하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 늘 기도하기 때문에 따로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속임수다.

* '기도의 삶'은 '삶의 기도'로 연결되어야 한다.

* 기도는 하나님의 관심을 살피고 떠맡는 일이다.

* 기도는 기도한 대로 살겠다는 결심이다.                       p.53

 

 

 

기도를 제대로 이해하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도는 계속되어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기도란 영이신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의식을 일깨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찾으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것이 기도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늘 성령 충만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기도의 초점은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을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쉬지 않는 기도의 삶"이다.

 

가끔, "삶이 곧 기도다"라는 말을

"따로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왜곡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생활 자체가 기도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은,

따로 시간을 내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완전한 기도의 삶을 산다 하더라도

기도시간을 따로 지키지 않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시라.

그분처럼 밀도있게 늘 기도하는 자세로 사셨던 분이 또 있을까?

그런데도 그분은 밤이 깊을 때까지 기도에 전념하곤 하셨다.

새벽마다 제자들은 그분을 찾아다녀야 했다.                     p.49

 

 

▲믿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경우

우리가 원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간청하는 것을 좋은 기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믿음의 표현이 아니라 불신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나 기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요청한 것보다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거나,

우리가 잘못 알고 필요 없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사상가이며 문학가였던 키에르케고르는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라고 갈파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욕망을 제거하려는 노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에 깊이 들어갈수록 하나님께 요구하는 사항이 줄어든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의에 맡기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이기적 욕심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테레사 수녀의 말대로 기도는 침묵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말을 멈추고 침묵 가운데 하나님이 자신을 둘러싸고 계심을 느껴야 한다.

마음에 확신이 들어찰 때까지 침묵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확신이 마음속에 충만하게 되면

비로소 깨어나 하나님과 진정한 만남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아담 클라크는 "기도에 필요한 것은 혀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했다.

 

이때 비로소 진정한 기도가 시작된다.

침묵 후에 새롭게 시작되는 기도는 성령과의 깊은 사귐을 통해

나의 영이 충만하게 되는 과정이며,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거짓됨을 발견하고 "참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나님 안에서 나를 찾고 진정한 나로서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은

결코 한순간에 완성될 수 없다. 그것은 일생동안 지속되어야 할 기도제목이다.

 

[요점]

* 기도는 하나님의 선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 기도는 하나님을 내 뜻대로 바꾸려는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나를 바꾸려는 노력이다.

* 기도는 대결과 투쟁이 아니라 애정 깊은 사귐이다.

* 기도는 협상이 아니라 상담이다.

* 기도는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경험이다.                     p.43

 

 

▲기도는 사귐이다

기도의 참된 의미는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기도를 '영이신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사귄다'는 말은 마음을 열고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귐의 일차적인 결과는 닮음이다. 진정한 인격적인 사귐을 나누면

두 사람은 서로 닮게 된다. 이심전심의 일심동체가 된다.

 

영이신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향해 문을 열고 기다리신다.

우리가 눈을 떠서 그분을 뵙고 그분을 향해 마음을 열고

우리 삶에 그분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사귐이 시작된다.

 

기도를 통해 영이신 하나님과 사귀다 보면, 요청할 때도 있고,

침묵할 때도 있고, 찬양할 때도 있다.

묵묵히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도 사귐이다. 그 모든 것이 기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되는 한 우리가 하는 행동이 모두 기도다.

이렇게 사귐의 기도를 지속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점점 깊이 참여하게 되고 그분을 닮아간다.

 

무엇인가를 요청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우리 자신이 변화되고,

우리의 열망과 의지가 하나님께 조율된 다음,

비로소 입을 열어 무엇인가를 구해야 한다.

그 때에야 우리는 참된 것을 구하게 되고 하나님은 기꺼이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

 

능력 있는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을 강요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구하는 기도다.

그러므로 사귐의 기도 없이는 진정한 기도의 능력을 소유할 수 없다.    p.15-16.

 

 

▲반복해서 청원할 기도

주님은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마 6;33)

한번 구한 것으로 족한 것은 '먹고 입고 자는 것'인 반면

지속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가리킨다.

'내가 원하는 일'은 한 번 요청하는 것으로 족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끊임없이 우리의 삶 속에 이루도록 힘써야 한다.    p.110

 

 

▲진정한 회개 기도

진정한 회개는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정도로 약해진 자신의 영성을

뼈아프게 확인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적인 건강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회개 기도는 영적 수술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회개 기도를 한 사람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거나

잘못을 범하는 빈도를 점차로 줄여 간다.

반면 회개 기도를 단순히 용서받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같은 잘못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리고 마침내 반복되는 참회의 기도에 스스로 권태로움을 느끼고

기도의 열정을 잃어버린다.

 

한 가지 더 생각할 점이 있다.

우리는 용서 매커니즘에 너무 깊이 빠지기도 한다.

어떤 잘못이건 하나님의 용서만 있으면 모든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이웃이 받은 상처와 손해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용서를 빙자하여 부정직한 삶을 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가 선지자는 이러한 사고 방식에 일침을 가한다(미 7;9).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첫째, 잘못에 대해 대가를 당당히 받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징벌이 사랑의 표현임을 믿어야 한다...

 

* 영성이 깊어질수록 회개 기도는 더 빈번해지고 깊어진다.

* 영성이 깊어질수록 회개 기도는 '행한 잘못'에 대한 회개로부터

   '행하지 않은 선행'에 대한 회개로 나아간다.                 p.102.

 

 

 

▲하나님과 얼마나 밀도 있게 만나십니까?

새벽기도회에 나가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로 기도하느냐이다.

단순히 새벽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새벽기도회에 가서 충분히 기도할 수 없는 사람은

하루 중 다른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새벽 예배 시작 전에 개인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좀 더 서두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과 대면할 시간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하나님과 얼마나 밀도 있게 만나느냐가 중요하지,

얼마나 자주 교회 행사에 참여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잘못하면 껍데기만 가지고 스스로 기도의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렇듯 일상생활 중에서도 기도할 수 있는 틈을 찾아야 한다.

찾아보면 하루 일과 중에도 기도할 수 있는 자투리 시간이 많이 있다.

단 5분이라도 좋다. 침묵기도에서 5분은 매우 긴 시간이다.

잠깐 동안의 기도는 일에 몰두하느라 잊었던 하나님을 다시 찾는 좋은 습관이다.

이러한 습관이 있어야 하나님과의 사귐을 지속할 수 있다.

 

"어떻게 쉬는 시간에까지 기도하라는 말이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바른 기도를 못해 보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잡담하는 것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하나님과 함께하면

신선한 힘이 내면에 차 오른다. 참된 쉼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요점]

* 기도시간을 정하고 가능한 한 그 시간을 지키라

* 하루에 얼마동안 기도하는 것이 옳은가? 할 수 있는 한 많이!

* 하루를 기도로 출발하라

* 일상 생활의 자투리 시간을 기도로 채우라

* 하루의 생활을 기도로 정리하고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취하라.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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