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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기 1998

LNCK 2009. 7. 23. 21:42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기                고후4:7~10                     09.06.06.설교녹취



▲능력의 심히 큰 것은 우리에게 없다.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하려 함이라.  고후4:7


옛날 성경에는 ‘알게’ 라는 단어가 작게 인쇄되어 있다.

왜냐면 헬라어 성경책에 알게 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알게’라는 단어를 빼고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려함이라   고후4:7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을 더 직설적으로 잘 번역했다.


우리들은 질그릇이다.

주님의 능력은 우리 질그릇에 담긴 보배이다.


여러분, 능력이 여러분께 있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려함이라  고후4:7


한국의 교인들이 얼마나 주님의 ‘능력’을 사모하고, 간절히 구하는가?

그런데 혹시, 그 받은 능력①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는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는데... 말이다.


얼마나 많은 교회가 주님의 축복②을 구하는가?

그런데 혹시, 그 받은 축복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는지?


주님이 주시는 능력, 축복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종종 교인들에게 해가 되는 것을.. 실제로 우리는 목격한다.


주님이 주시는 예언③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 예언 때문에 교만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우리 주님 안에서

능력과/축복과/예언과 환상을 받는.. 우리들이 되기 바란다.

 

▲십자가를 통과한 능력/축복/예언과 환상의 예


바울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다고 말했다. 고후4:7


①그래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 내게 능력이 없어도 우겨 쌓이지 않는다. 4:8

능력의 심히 큰 것이 내 속의 주님께 있기 때문이다.


②주님을 열심히 믿고 섬기지만.., 답답한 일을 당할 수 있다.

주님을 열심히 믿고 섬기기 때문에 답답한 일을 당할 수 있다.

이미 자빠져 자는 사람을, 마귀는 공격하지 않는다. 이미 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심히 주님을 섬기다가, 답답한 일을 만난 사람은.. 그러나 낙심하지 않는다.  4:8

내 속에 있는 '주님의 능력' 때문이다.

 

③주님은 복음전도자에게 핍박이 반드시 있을 것을 복음서 곳곳에서 이미 가르치셨다.

그래서 성도는 핍박과 거꾸러뜨림을 당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4:9

이렇게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예수 생명 때문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4: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져야 한다.

그 때 능력과/축복과/예언과 환상을 받아도.. 우리가 넘어지지 않는다.

 

이런 바울이 말한 '십자가'(예를 들면 위의 ①~④)를 통과하지 않고 받은

능력/축복/신비한 예언과 환상은

그것 때문에 교만하게 되어서, 곧장 넘어지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고후4:10

십자가라는 잔인한 형틀의 사형법이 있는가 하면,

로마에서는 또 한 가지 사형법이 있었는데,

그것은 죄수를, 다른 죽은 시체와 함께 묶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죄수는 그 죽은 자를 자기 몸으로 짊어지게 된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이라고 사도바울이 말한 것은

아마 이런 로마의 사형집행법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산자를, 죽은 자와 함께 썩어가게 했다.

이것은 십자가보다 더 천천히 죽이는 방식이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런 식으로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라는 것이다.

죽은 예수님과 함께 묶인 것처럼, 자신을 죽이라고 권면한다.

We always carry around in our body the death of Jesus   NIV


이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증인의 삶을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육신의 기쁨과 하늘의 기쁨

우리의 육신은.. 자신을 표현할 때/드러낼 때 기쁨이 생긴다.

그러나 우리의 영은.. 자신을 부인할 때 하늘의 기쁨이 생긴다.


오늘날 현대 교회가 자칫 잘못하면

교인들에게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자리를 마련해 주면서.. 부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그 공력을 시험할 때..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고전3:13

그것은 풀이나 나무나 지푸라기로 집을 짓는 것이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세우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을 섬기는 교인들이다.


여러분,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신앙을 세우고 있는데,

과연 무엇으로 그 위에 건축하고 있는가?

자기를 드러냄인가, 아니면 자기를 부인함인가?

 

자기를 드러냄은.. 풀이나 나무나 지푸라기로 자기신앙의 집을 짓는 것이다. 곧 사그라진다.

자기를 부인함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자기신앙의 집을 짓는 것이다. 영원히 남는다.


▲계시록에 나타나는 2가지 추수

①알곡의 추수 : 알곡은 익을 때,

땡볕에 바짝 마르면서 물기가 빠져나가면서, 열매가 작아지면서 익는다.

알곡은, ‘세상’의 물기가 빠져나가면서, 축소되면서 익는 것이다.


②진노의 포도의 추수 :

포도는, 세상의 물기를 더 빨아들이면서, 더 커지면서 익는다.

그러다가 결국 진노의 포도주 틀에서 밟히면서 심판받는다.


마지막 날에 2가지 종류의 교회가 있다.

세속에 물든 것을 회개하면서, 세속을 점점 내어보내면서 익는.. 알곡 같은 교회가 있고,

세속의 방법을 받아들이면서, 그래서 점점 더 확장되면서 익는.. 포도 같은 교회가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에 진노의 포도주 틀에서 밟힐 것이다.

십자가를 부인하고, 세상적 방식을 받아들여서 무조건 확장된 교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이라 그랬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받는다는 것이다.


▲금과 은과 보석이 되는 이유

여러분, 나무나 광석 같은 비교적 연약한 재질들이

어떤 강한 압력에 의해 사정없이 짓눌릴 때

그것이 단단해져서 금과 은과 보석이 된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그래서 사방으로 짓눌릴 때

나무와 풀과 같던 연약한 성도들이.. 금과 은과 보석과 같은 성도로 변한다.


그래서 핍박과 십자가는 좋은 것이다.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것이.. 그래서 넘어지는 고통을 당하면서..

그래서 눌리고, 압력을 받고, 죽을 것 같은 고통속에서... 결국은 우리가 보석된다.


그래서 고난은 정말 축복보다 낫다. (갑자기 아멘이 안 나오는군요!)

성경과 2천년 교회사가 증거하는 바로는

고난은 축복보다 좋다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과 복음전파로 인해서

답답함과 우겨쌈과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일이 있으시길 바란다.

이것이 보석이 되는 진정한 축복이다.


어떻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로 인한 핍박을 한 번도 당하지 않은 분이 계시는가?

그것은 절대로 예수를 잘못 믿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마지막 때로서, 마귀도 필사적으로 공작을 펴고 있는데도

마귀의 공격 한 번 당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어떻게 마귀가 발악하는 것을 한 번도 느끼지 못하는가?

어떻게 우는 사자 같은 마귀의 울음소리가 쑥 들어가고 조용한가?

이렇게 우겨쌈과 넘어뜨림과 핍박이 없다는 것은.. 자기가 이미 넘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의 기독교는.. 상당수 지금 핍박 속에 있는 현실을 직시하시라.

오늘날에도 능력/축복/예언 등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달라고 부르짖는 부흥회가 한국의 어딘가에서 열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해외로 한 번 눈을 돌려보면,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자기 나라에서 핍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아마 전 세계 나라의 60~80%가 될 것이다. 국가 단위로 보면 그렇다. 


그런데도 예수 믿으면서 ‘편한 것’만 찾으면서

거기에다 예수님 덕분에 능력/축복/예언과 환상 등의 신비한 능력을 찾고 구한다면

다른 나라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어쩌면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여러분, 그리스도와 함께 현재 고난당하고 있는 해외의 성도들을 기억하며

감옥에 갇힌 자를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그런 사람들은, 적어도 ‘축복, 축복 타령’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무엇으로 기뻐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가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함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통해서

주님께 쓰임 받는 귀한 교회가 되기 바란다.


오늘날의 교회는, 십자가의 ‘고난’이 사라지고,

대신에 ‘세상이 주는 기쁨’이 마치 신처럼 숭상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그 고통의 혜택을 받아서

어떻게 하면 자기는, 고통없이, 기쁨과 축복을 더 받을 수 있을까? ... 그것에 골몰하고 있다.


여러분, 우리는 축복과 기쁨을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고통 받으시고, 기쁨을 포기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즐거워하는 저와 여러분 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는 말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4:10


여러분, 이 생명이 바로 ‘부활 생명’이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부활의 생명이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 때

남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고, 더디게 가는 길로 보이지만

영원히 쇠하지 않는 ‘부활 생명’으로 살게 될 줄 믿는다.


우리가 날마다 회개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으면 .. 결국 그냥 썩어 없어지게 되지만

그러나 날마다 회개하면서 변화되는 삶을 살면 .. 썩어 없어지지 않는 보석이 된다.


지금 아무리 아름다워 보이고, 화려하게 보여도 ..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썩어 없어져 버린다. 아니면 진노의 포도주 틀에 밟힐 것이다.

그러나 날마다 회개하며 변화하는 사람은 .. 영원히 변치 않는 보석이 될 것이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자기 집을 건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전3:12


여러분은 오늘, 나무/풀/짚의 건축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금/은/보석의 건축을 하고 있는가?


다시 말해서, 십자가 고난의 길, 예수 죽은 것을 짊어지고 가는.. 좁은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면 능력/축복/신비한 환상 등의.. 넓은 길을 가고 있는가?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넓은 길로 가지 않고,

좁은 길로 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원 드린다.                                               ▣ 십자가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