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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경건의 척도

LNCK 2009. 7. 29. 09:42

◈말은 경건의 척도        약3:1~12절,         09.06.28.설교녹취

 

◑‘말’은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다.

 

▲유대인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한 임금님이 아주 똑똑한 신하 2명을 불러서 명령을 내렸다.

한 신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오도록 명령하고,

또 다른 한 신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오도록 했다.

 

얼마간 기간이 지난 후에 두 신하가 답을 얻어서 임금님께 나아왔다.

가장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 명령받은 신하는, 이렇게 보고했다.

‘임금님,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사람의 혀입니다.’

 

그랬더니 가장 악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오도록 명령받은 신하도 이렇게 보고했다.

‘임금님, 이 세상에서 제일 악한 것이 사람의 혀입니다.’

 

▲언어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빛이 있으라!’

그러니까 말은 원래 하나님께 속해있었다.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가 ‘언어’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는데,

그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사람에게 말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처럼 말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언어는, 모든 피조물 중에서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인 것이다.

 

▲글(문자)도 말에서 나왔다.

사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사람이 말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 글을 사용해서 사상, 문학, 역사 등 모든 것을 기록해서 문명이 발전해 왔다.

만약 글(문자)이 없다면, 문명의 발달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원시사회를 가 보라, 그들이 원시 그대로 남아있는 이유는, 글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이 중요할진대, 글도 사실은 말에서 나왔다.

을 기호로 부호화해서 옮긴 것이 이다. 이 없으면, 도 없다.

즉, 이 없었다면, 인간의 찬란한 문명 발달도 없었을 것이다.

 

▲말은 타락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로 말이 중요하다. 말로써 신앙생활 한다.

말이 없다면 우리 신앙생활은.. 성경이 없어진다.

설교도 없을 것이고, 기도도, 찬송도 없을 것이다.

말이 없으면.. 신앙생활도 없다.

말이 없으면.. 사람은 동물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복 중의 하나가

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이 죄로 타락할 때, 도 함께 타락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타락하니, 그 본성에서 나오는 말도 자동적으로 함께 타락한 것이다.

 

▲거듭난 사람의 말은 성화되어 간다.

아름다운 것일수록, 부패하면 더 더러워진다는 말이 있듯이,

말은 원래 아름다운 것이었으나, 죄로 타락하면서 말도 같이 더러워져버렸다.

그래서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찌르고 상처를 주는, 악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교회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주로 ‘말 때문에’ 상처 받는다.

왜 교회가 시끄러운가? .. ‘말 때문에’ 시끄럽다.

 

우리는 거듭난 사람들이다.

거듭났다는 말은, 우리 속에 옛날에 타락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어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듭남의 증거가 나타나는데,

언어도 따라서 거듭나서, 점점 거룩한 말, 아름다운 말을 하는 입술로 성화되어 간다.

 

 

◑말에 관한 야고보 사도의 교훈

 

▲1. 말 하는 것은 자유지만,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예를 들면, 도적질 하면 안 된다.

도적질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책임추궁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남에게 도적질 하지 말라'고 가르쳐 놓고, 자기가 도적질하면,

이 사람은 ‘도적질 한 데’ 대해서도 하나님 앞에서 책임추궁을 당하고,

‘남에게 도적질 하지 말라고 가르친데’ 대해서도 책임추궁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만큼 책임이 더 무겁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가급적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뜻으로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권면한 것이다.

 

▲2. 말이 온전한 크리스천이.. 성숙한 크리스천이다.

 

2절,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어떤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온전한(성숙한, 완전한) 사람인가?

- 야고보 사도는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 말을 아름답게 잘 하는 크리스천이.. 온전한 크리스천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높이 계신 하나님을 뵙는 장면을 보면,  사6장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대면했을 때, 이사야의 첫 고백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는데,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사야가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할 때 이렇게 고백했다.

‘제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으로,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그랬더니 천사가 제단 숯불을 가져와서 이사야의 입술에 대면서

‘네 죄가 사하여졌고, 네 악이 제하여졌다’고 말한다.

 

여기서 보면, 이사야가 고백한 자기의 대표적 죄가 ‘말’이었다.

사함과 정결케 됨을 대표하는 것도 ‘입’, 곧 '말'이었다.

말이 신앙생활/경건생활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제일 많이 짓는 죄가 입으로/말로써 짓는 죄이다.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2~3만 마디의 말을 하는데,

이렇게 말을 많이 하다보니까, 말로써 죄를 많이 짓는 것이다.

 

그런데 말로 죄짓는 것을.. 성도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게 큰 문제다.

말에 실수가 없고, 말이 진실하고, 말을 유익되게 하는 사람이

성숙한 크리스천이다. 약3:2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한다.

크리스천 모임에 가도, 교제를 1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고...

1시간 이상 길어지면, 쓸데없는 말을 자꾸 하면서, 말로써 죄를 지으니까 그렇다.

 

▲3. 말은 작은 것이지만, 무서운 힘이 있다.

 

약3: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몸을 어거하며

 

4절,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말馬이 크고 힘이 센 짐승이지만,

고삐만 제대로 잡으면, 말을 잘 제어할 수 있다.

배가 크지만, 배의 키를 잡으면, 원하는 곳으로 배를 몰고 갈 수 있다.

 

사람의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자기 말이, 자기 인생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말하는 대로, 말馬이나 배의 방향까지 돌릴 수 있듯이,

자기 인생의 항로는 물론이요, 공동체의 나아갈 길도.. 말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말에 자기 인생이 달려있고, 말에 공동체의 미래가 달려 있다.

 

▲4. 말의 악한 영향력을 불에 비유하고 있다.

 

5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절,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건조기에 무심코 버린 담뱃불 하나가, 온 산을 다 태울 수 있다.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생애를, 혹은 한 공동체를 모두 불태워버릴 수도 있다.

 

‘너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놈이야!’ 등

부모가 자녀에게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그 아이에게는 한 평생 마음에 못으로 단단히 박힐 수 있다.

그래서 아이는 속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반대로 겉으로 부모에게 공격적으로 변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 말을 해결하는데, 몇 달이 걸리고, 몇 년이 걸리고

심지어는 한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

 

말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5. 이렇게 중요한 언어생활이 내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약3: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8절,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서커스를 보면, 사자, 곰, 코끼리, 호랑이 등 모든 동물이 다 길들여진다.

그런데 혀는 참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길들여진 것 같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비방이나 교만의 말이 튀어나온다.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날마다 자기 언어생활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길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9절,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절,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

12절,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내 언어생활을 반드시 훈련해야 한다.

우리는 2가지를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자기를 체크해 나가야 한다.

 

①나쁜 말, 유익 되지 않는 말은 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나쁜 말이므로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거짓말을 예사롭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거짓말을 무척 싫어하신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짓말 하다가 죽었다.

 

-남의 험담을 하거나, 남의 험담을 옮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제가 주일 오후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교회 여전도사님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다.

‘목사님, 원집사님이 예배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서 즉시 교회로 달려가서 사정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교회 사무직원이 하는 말이,

‘목사님, 원집사님이 예배마치고 집에 가시다가, 버스에서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나중에 원집사님을 심방해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교회 계단에서 넘어진 것도 아니고,

버스 내리다가 넘어진 것도 아니고,

자기 집에서 아침에 교회가려고 나오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져서 입원했다는 것이다.

 

제가 이 때 큰 교훈을 얻었다. 말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남의 말은, 듣고는 기도해 주고, 절대 옮기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한 마디를 들으면, 막 부풀려서, 자기 주석을 삽입해서 전달하는데,

이런 사람은, 야고보서 3장을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할 것이다.

 

맞는 말, 정확한 말도, 유익되지 않으면.. 말하지 말아야 한다.

   고전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②좋은 말, 복된 말은 많이 하자. 

하나님을 향해서는 감사의 말, 찬양의 말

사람을 향해서는 칭찬, 위로, 축복의 말

믿지 않는 사람을 향해서는 복음 전하는 말

-이런 말들은 가급적 많이 하는 훈련을 쌓아가자.

 

 

◑말에 대한 통찰력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마치 기도처럼, 하나님께 다 상달된다.

 

더 중요한 것은, 말에는 기도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신다.

그 말 자체가 - 기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민14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10정탐꾼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가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말한다. 민14:2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원망하는 말을,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햐아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서 엎드러지리라  민14:27~29

 

백성들이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원망하고 불평하니까

하나님이 ‘그래 너희 말대로 해 주마’ 하시고,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셨던 것이다.

 

여러분, 얼마나 무서운 얘긴가?

원망과 불평의 말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은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시는 분’이시다.

 

▲노래도 조심해서 불러야 한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찬 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차중락이란 가수가 불렀는데, 이 쓸쓸한 노래를 부르다가

이 가수가 젊은 나이에 정말 낙엽처럼 사라져(죽었다)버렸다고 한다.

 

배호 라는 가수도 ‘돌아가는 삼각지’ 같은 슬픈 노래를 주로 부르다가

일찍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일제시대 때 윤덕심 이라는 가수도 ‘사死의 찬미’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나중에 현해탄에서 그는 애인과 같이 물에 빠져 자살했다고 한다.

 

‘산장의 여인’을 부른 여자 가수도

진짜 홀로 외롭게 일평생 산장에서 살다가, 외롭게 산장에서 죽었다고 한다.

 

자기가 부른 노래대로.. 사람이 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쨍하고 해뜰 날 돌아왔단다’를 부른 가수 송대관은

실제로 지금 쨍하고 해 뜬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가수협회회장을 맡아서 수고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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