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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LNCK 2009. 7. 29. 21:54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시89:6        -09.07.01.스크랩, 축약, 출처-

 

 

무릇 구름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시89:6

 

 

◑사람은.. 끊임 없이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 부자의 정의가 뭔 줄 아십니까? 어떤 사람이 부자입니까?

부동산이 100억 정도,

그리고 유동자산, 언제나 가용할 수 있는 동산이 뭐 한 10억 정도 가지면

부자일까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미국 사람들 조크로,

<부자는 동서보다 돈을 좀 더 많이 버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동서’란.. 가까운 형제, 가까운 친구, 가까운 친척을 대표하는 말이겠죠.

*동서 : 한 집에 두 자매가 있는데, 자매들이 결혼해서 남편들이 생겼는데,

그 남편들이 처제/처형의 남편을 부를 때 ‘동서’라고 말함.

 

이 말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공감이 갈 수 있는 그런 말인데,

유명한 경제학자 헨리 루이스 멘켄이 만들어낸 말이라고 합니다.

“부자는... 동서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래서 실제로 경제학자 헨리 멘켄이 조사한 결과로는

예를 들어 자기 여동생의 남편이, 자기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벌지 않습니까?

이럴 경우에 언니 된 여자들이, 취업을 하게 될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0%가 더 높다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 ‘내가 나서서 벌어서라도 여동생보다 더 잘살아야 되겠다’는 마음이죠.

이런 생각을 가질 때, 주부가 취직할 확률이 20%나 더 높다는 것입니다.

 

▲이웃 효과

바로 이러한 <비교의식에 의해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라는 것을

프린스턴 대학교의 폴 크루먼 교수가 ‘이웃효과 neighborhood effect’라고 불렀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비교하면서

인간이 자기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게 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자기 여동생의 남편과, 그리고 자기의 남편의 수입을 비교합니다.

거기서 행복과 불행의식이 결정이 된다는 것이에요.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너무나 공감이 가는 얘기입니다.

 

▲아들 대학입학의 ‘이웃 효과’

어떤 엄마가 자기 아들이 Y대학에 들어갔다고, 좋아가지고 막 전화를 합니다.

생전 전화를 안 하던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친척에게까지 전화를 했어요.

 

‘아휴, 안녕하셨어요? 그동안 연락도 자주 못 드려서 너무 죄송해요.

그런데 아휴, 우리 아들이 그놈이 그냥 어떻게 하다가 Y대를 들어갔어요...’

 

‘아, 거참 잘됐다’고 안동에 있는 친척이 막 칭찬을 해줍니다.

서울의 엄마가 가만히 전화통화를 하다보니까,

그 집에도 비슷한 나이또래의 자녀가 있었던 것을 기억해요.

‘아, 정말 그 아무개는 지금 몇 학년이죠?’

‘아, 걔 요번에 고3 졸업했잖아요.’

 

‘아, 그래요? 그럼 대학시험 봤겠네요?’

‘아휴, 그 녀석이 대학시험 봤지 뭐.’

 

‘어느 대학 봤어요?’

‘뭐 어느 대학이랄 것도 없어. 그냥 서울에 있는 그 왜 S대학 있잖아?

그냥 거기 가게 됐어. 운이 좋은 건지...’

 

‘서울대학이요? 그럼 무슨 과요?

‘뭐 좋지도 않아. 요즘 뭐 의사들 다 힘들다고 하잖아.

그런데 그놈이 꼭 그렇게 고집해가지고, 의사가 힘든다는 데도, 서울대 의대를 갔어. 자식. 에이’

 

아, 이렇게 전화통화가 이뤄진 거예요.

서울 엄마가 갑자기 전화를 끊자마자 부아가 막 치밀어 오르는 거지요.

 

Y대 상대 들어갔다고 좋아가지고 펄펄 뛰다가

친척 아들이 S대 의대 들어갔다니까.. 갑자기 피가 거꾸로 도는 겁니다.

이게 사람이에요. 행복과 불행을, 자기 이웃과 비교해서 느낀다는 겁니다.

neighborhood effect - 물론 잘못된 것이지요.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S대 의대 들어갔다고 해서, 하버드 법대에 들어갔다고 해서

내 아들이 Y대 상대에 들어간 것이 속상할 리가 없어요.

 

그런데 바로 내 동생의 아들이 S대에 들어가고

내 아들이 Y대에 들어갔다... 이게 신경질 나는 거죠.

 

아니 서울 수도권에 있는 대학도 못 들어간 사람이 수두룩한데도

거기에 비하면 내 아들이 Y대에 들어간 것이 얼마나 행복한 거예요?

그러나 사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올림픽 때도 제일 불행한 사람이 누굽니까?

은메달 딴 사람이에요.

동메달 딴 사람은 은메달 딴 사람보다 훨씬 더 기뻐해요.

3, 4위 결정전에서 3위한 사람들은 그 기쁨이 말도 못해요.

 

그런데 1, 2위 결정전에서 아깝게 져서 2등한 은메달은.. 얼굴이 아주 안 좋아요.

그렇게 서운해 할 수가 없어요. 활짝 웃는 얼굴 두 사람 가운데 끼어가지고.

금메달 좋아하고 동메달은 좋아하는데 은메달은 가운데 끼어서 죽을상이 돼있어요.

 

 

제대로 비교하는 게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다른 우상과 비교해 봅시다.

내 자식보다 가깝고, 내 남편보다 가깝고

내 아내보다 가깝고, 내 부모님보다 가까우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주 가까운 분이신 하나님과 먼저 비교하라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비교하는데서 우리의 행복이 결정이 된다는 것이에요.

 

시89:6절에, 무릇 구름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라고 해놓고

그 뒤로 ‘비교’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계속 나오지 않으나

사실은 비교하고 있습니다. 한 번 보실까요?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서 매우 무서워하실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   시89:7

 

다시 말하면 두려워할 대상을 비교컨대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해야 될 대상은 없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돈을 비교해 보세요.

자, 돈이 힘이 셉니까? 하나님의 힘이 셉니까?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돈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이 필요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더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신들 중에서 여호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라면서 계속 비교해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은 돈이 신이잖아요?

 

▲하나님과 가족을 비교해 봅시다.

내가 남편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당연히 하나님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자녀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 남편이나 자녀나, 애인이나 그 누구든지

하나님과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기로 굳게 결심하며,

그런 삶을 점점 자기 스스로 터득해 나가야 합니다. 이게 올바른 신앙입니다.

 

▲사도바울의 비교

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하나님을 내 것으로 갖고 있는 입장에서 비교를 합니다.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은 이 세상에 나라를 갖고 있는 자들이요

권력을 갖고 있고, 부귀와 영화를 갖고 있고

자기는 하나님을 갖고 있어요.

 

사도바울이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아무리 당신이 나라를 갖고 있고, 온 재산을 갖고 있더라도.. 당신이 나만 못해요.

그러니까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당신도 나처럼 되세요!’

 

이런 종류의 비교의식으로, 사도바울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자랑한 것이에요.

 

▲기업의 비교

무슨 재벌그룹의 회장님과

여러분이 가진, 하나님이 주신 기업과 비교하세요, 제발!

 

‘그대들은 어마어마한 재산과 기업을 갖고 있지만,

나는 내 기업으로 하나님을 갖고 있다. 내 기업은 영원한 기업이다.

망하지 않고, 쇠하지 않고, 녹슬지 않고, 도적이 없는 기업이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심히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수긍하지 않겠지만, 나 혼자 거울을 보고 나에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갖고 있으니까 더 낫다. 내가 더 부자다.’

이 비교의식이 있어야 르호보암이 저지른 우상숭배로 안 빠진다는 겁니다.

왜 우상숭배에 빠집니까? 우상이 하나님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왜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릅니까?

그런 사람들이 과거에 많았어요. 예수 믿어서 돈 잘 벌어보려고 하나님을 불렀어요.

그러면 그렇게 열심히, 애타게 돈을 벌려고 하는 이유가 뭐예요?

 

이미 살아계신 하나님보다는

내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돈이 더 힘이 세다고 느끼니까

그거 갖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진짜 하나님을 비교해서

어마어마한 재벌의 재산 다 모아놓은 것보다

난 하나님 한분 갖고 있는 게 더 세다. 더 좋다. 더 낫다.

이런 비교의식이 있었다면

돈 때문에 그렇게 미친 듯이 인상 쓰고 살지 않아요.

 

그분이 아들을 주셨대요. 아들을. 그냥 말로라도 믿으세요. 논리로라도 믿어요.

아들을 주신 분께서 무엇인들 안 주시겠느냐 했던 사도바울의 말을 말대로 믿어 봐요.

 

▲재미 있는 내용이라서, 다시 한 번 인용합니다.

 

밴쿠버에 있을 때, 우리 교회 옆에 멀지 않은 곳에 한인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에서 어느 집사님이 로또에 당첨됐대요.

그래서 십일조를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요) 뭐 20만 불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속이 뒤집히는 거예요.

막 시기심이 생기고, 부럽고,

그리고 그쪽 교회 목사님이 영력이 훨씬 더 나은 거 같아요.

 

우리 교회 교인은 로또가 왜 당첨이 안 되냐 이겁니다.

‘이거 목사가 영력이 없기 때문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까지 막 들 지경이에요.

 

그런데 이 때 찬송이 흘러나와요.

옆에 교회 교인이 로또 타서 십일조 20만불 냈다 그러니까

그게 내 일로 여겨지고 기뻐서 찬송이 막 나오는데...

 

이게 바로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의 찬송이라는 거예요.

이런 사람의 마음에는.. 항상 찬송이 나오게 되어 있죠.

항상 천국의 영광이 임하게 되어 있죠.

 

여러분, 로또 2백만 불이 큽니까? 하나님이 크십니까?

로또 2백만 불 받은 사람이 부러워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로또 2억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분이시지요! 

그런 하나님으로, 우리가 다른 신들과 비교하며/자랑하며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더 읽으실 분 .............................................

 

▲시편 89편의 배경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됐을 때 르호보암이 하나님을 버려요.

그리고 아세라 목상을 갖다놓고 온 산당에서 우상숭배가 만연하게 됩니다.

그래서 열왕기상에 보면 하나님의 분노가 격발되었다고 얘기해요.

하나님의 분노가 충천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징계하시느라고 애굽의 왕 시삭을 쳐들어가게 만들고

그 결과 르호보암이 성전과 왕궁의 모든 보화들을 다 시삭에게 뺏겨버리고

성전에 놔두었던 금 방패까지 다 뺏겨버려서, 놋 방패로 대신하게 됩니다.

시89편이, 바로 그 사건을 배경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에요.

 

▲시편 89편의 내용

그런데 노래의 내용이 뭐냐 하면. 52절로 길기 때문에 요약해서 설명하면

*1~18절까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합니다.

 

 

*19~37절까지 내용은 하나님이 언약을 맺어주셨어요.

이스라엘백성과 언약을 맺고, 다윗과 언약을 맺어주십니다.

그런데 르호보암 왕 때, 애굽 왕 시삭에게 고통을 당할 때,

다윗 왕에게 언약해주셨던 하나님의 그 사랑과 자비의 언약,

 

즉 ‘내가 지켜주겠다. 내가 높여주겠다. 내가 보호해주겠고

너희 다윗의 왕위를 자손대대로 이어 내려가도록 하겠고

혹시 계명과 율법을 어기면 내가 인생채찍과 막대기로 훈계를 할지언정

사울 왕을 버렸듯이 버리지 않겠다.’

 

이렇게 사무엘하 7장에 나오는 다윗언약을 기억해내면서

그 언약을 반복하는 내용이 19~37절까지 나타납니다..

 

*38~52절까지는.

어떻게 그렇게 언약을 맺게 된 상황인데

지금 현재 르호보암 왕 때 현실이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느냐?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언약을 말씀해주셨는데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 그 언약의 현실과는 상충되고 모순되어 보이는

비참하고 굴욕적인 현실이 주어졌습니다...’

이 얘기를 지금 노래하고 있어요.

 

▲내용을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지켜지느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끝없이 비교하면서 살 때라야만

바로 이 언약이 지켜진다는 것이에요.

1~18절까지의 고백이 반복돼야 된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 같은 분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죠.

그 어느 누구도 비교해 볼 때, 하나님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얘기죠.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노니 재앙이 아니고 화가 아니고 평강이다.

내가 너희에게 평강을 주노라.

내가 주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강과 같지 아니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하나님이 나에게 긍휼을 베푸시며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내 삶을 평강으로 이끌어 가시기 위해서

주님의 십자가사건을 통해, 신약의 우리에게는 새 언약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다윗 언약보다, 훨씬 더 놀라운 약속입니다.

 

 

    이 언약을 우리는 굳게 믿고서

‘하나님 같은 분이 세상에 없다.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없다’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되고, 

가나안복지/하나님의 나라를 주님이 허락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관련글 :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가 없사오며                                                        ▣ 우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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