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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2026

LNCK 2009. 8. 10. 11:49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삼상12:1~25       09.08.09        -설교 스크랩, 출처-

                 


▲현대인들이 설교를 대하는 한 단면

제가 미국에 갓 건너갔을 무렵, 어느 한인 교회의 주일예배 시간에

그 곳을 방문 중이던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수사력이 좋고, 유머 감각도 뛰어난 분이었던 까닭에

그날 그 분의 유창하고도 재미있는 설교를 다들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그 목사님의 설교는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가르치며 신앙생활에 적용시키는 '주경 설교'가 아니라,

그냥 성경의 한 구절만 따서 제목으로 내어 놓았을 뿐

그 내용은 주로 ‘자기 이야기’였습니다.


무슨 자기 유학 시절의 경험담이라든지,

다른 교회에서 자기가 보았던 일,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하고 재미있기는 했지만,

실상 영적으로 은혜스러운 내용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약간 충격 받았던 것은.. 아래 내용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돌아가는 시간에 제 곁을 지나치던 어느 젊은 부부가 서로 말하기를

"설교가 저 정도는 되어야지!"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매 주일마다 성경 말씀을 펼쳐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보다는

그저 3~40분 정도 자기네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설교가

'제대로 된 설교'라고 여겨졌던 것이었습니다.


아마 비단 그 젊은 부부뿐만 아니라, 이 현대 교회의 적지 않은 교인들이

설교를, 바로 그런 자세로 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타나는 소위 유명한 설교들을 살펴보면,

훌륭한 설교란 것이 결코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며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사무엘의 설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무엘의 고별 설교


내가...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삼상12:1~2

이때는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막 등극을 하여

공적 직무 수행을 정식으로 시작했을 즈음이었습니다.


즉 사무엘은 자기가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수행해 왔던 정치적 직무는

이제 사울 왕에게 완전히 이양을 했으며

남은 생애는, 오직 선지자 직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사무엘이 사사로서는 마지막으로 했던

일종의 고별설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설교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3절에서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고,

먼저 자신의 지금까지의 전 생애를 백성들 앞에 내놓으면서

자기가 공인으로서 불의를 저지르거나 부정을 행한 일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를 검증받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5절에 나오는 대로, 사무엘은

자기가 사사로 지내는 동안 물질생활에 청렴결백했으며

자기 말에 대하여 성실했으며,

또한 그 어떤 권력 남용도 저지르지 않았음을 백성들로부터

일단 확인을 받은 후에 그의 고별설교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처럼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서의 공직에서 물러나면서

이제 풀타임 선지자가 된 사무엘은 온 백성들 앞에서 과연 어떤 설교를 했습니까?

이 시간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말씀의 사자(使者)를 통하여 선포되어야 하고

회중이 청종해야 할 설교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 행사를 선포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12:6~11


▲6절,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며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시니...


사무엘의 설교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습니다.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시니

그의 설교는 세상 이야기도 아니고, 자기 경험담도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선포일 따름이었습니다.


▲7절, 그런즉 가만히 섰으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하여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하여 설교를 시작합니다.

그 하나님의 의로우신 행사란 바로 출애굽부터 시작하여

가나안 정착과 사사 시대를 지나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한없는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셨던 역사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담론하리라 reason 는.. 어떤 증거를 제시하면서 확인시켜 준다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의롭게 역사하신' 사실에 대하여

사무엘 자신은 백성들 앞에서 언제든지 확실하게 선포할 수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8절,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너희 열조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그 두 사람으로 너희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이곳에 거하게 하셨으나

▲9절, 그들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우상 숭배에 빠져

그 하나님 여호와를 잊음으로써 주변 이방 민족들에게 고통을 받게 되자

그럴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러 사사들을 통하여

그들을 결정적인 위기에서 구출해 주셨습니다.


▲11절,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로 안전히 거하게 하셨거늘

"여룹바알"은 기드온의 별명이며,

"베단"은 바락 혹은 삼손의 다른 이름인 것 같으며,

이들 모두는 "입다"와 "나 사무엘"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사사들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가리켜 '여호와께서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

이라고 한 것입니다.  12:7


▲설교는.. 여호와께서 행하는 모든 의로운 일을 선포하는 것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 백성들만 볼 때에는

당연히 그 받는 징벌을 통하여 완전한 멸망에 이르러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스라엘의 불의와 배반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용서하시고

재삼재사 구원해 주신 것은 실로

하나님만이 발휘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바로 이 사실을 백성들에게 주지시켜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선한 분이신지를 선언하고,

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풀어 주신 공의로운 역사가

얼마나 위대하고도 고마운 것인지를 선포한 것이..

그의 설교 첫 대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해 주셨으면...' 하는 사람의 기대나 요망 사항에

맞아 떨어지는 성경 구절들을 여기저기서 모아 적당히 뜯어 맞추는 것은

결코 설교가 아닙니다.


참된 설교는 ‘하나님께서 오직 당신의 선하신 뜻과 전능의 능력으로써

과연 어떤 일을 행하셨으며 행하고 계시며 앞으로 행하실 것인가?’

하는 것을 조금도 가감 없이 그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경우에도,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설교자는 오직 '하나님의 자존하심과 그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담론'할 뿐인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12:7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도

목사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모두가 다 공의로우시다.'라는 증거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 편의 그 어떤 상황이나 요구에 대해서는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원래 하나님 되신 그대로,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위대한 역사를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증하시는 그대로 선포하는 것만이

참된 설교인 것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죄인임을 깨우쳐 주는 것이 설교입니다.    12:12~18


▲12절,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의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실지라도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이제 사무엘은 당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르고 있던 가장 큰 죄에 대하여

그들이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의 침공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단도직입적으로 백성들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그 죄란,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무턱대고 왕을 구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여호와께서 그들의 왕이 되어 주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 택한 왕 다시 말해서

그들 자신의 마음에 맞는 왕을 따로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에

그것을 두고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려 하는 대신에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적인 살 길(왕을 구하는 것)을 찾음으로써

그것을 해결할 길을 찾으려 하는 엄청난 악을 저질렀던 것이었습니다.


▲13절, 이제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일단 그들의 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여기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는 말은,

지금 왕으로 세워진 사울이란 사람 자체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왕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리자로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은 세워 주셨지만

그들에게 명하시고 순종을 요구하시는 다스리시는 분은

여전히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아무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15절,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17절,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


사무엘은 왕을 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는 진짜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정확하게 꼬집어서 책망했습니다.

바로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의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고 이어서 선포한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대신에 자기들을 다스려 줄 왕을 찾은 것은

자기네 인생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거부하려는 의도가 여실히 드러난,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극악한 죄'였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밀 베는 때" 즉 건조기였던 그 시기에

때 아닌 "우뢰와 비"를 내리심으로써

사무엘의 그와 같은 설교를 바로 그 자리에서 인증해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곤란을 겪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소홀히 대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불의와 불신앙의 죄에 빠져 들어가 있음을

여실히 지적하고 엄히 책망했던 것이었습니다.


▲적용 : 내 스스로 왕을 세우지 말아야

하지만 신자는 그처럼 자기 속에서 불평의 소리가 커지면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않게" 되고 마는 것을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가 당한 어려움 그 자체에 사로잡혀 버리게 되면

그 어떤 경우에라도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겨야 할"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나서

자기 스스로 왕을 세우게 됩니다.

자기 스스로 벗어날 어떤 해결책을 마련하거나, 또는 ‘해결사’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생애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는 절대주권자 되심을

망각하는 그 순간, 사람은 '자기의 왕'을 구하고 '자기의 신'을 찾는

불신앙의 죄에 빠져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설교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불평불만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된 죄를 깨우쳐 주며,

이런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 불신앙을 경책하는

말씀이 되어야만 마땅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목사님,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잘 안 풀립니까?"라고 불평할 때에도,

목사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한 죄를 회개하고

더욱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십시오." 라는 설교밖에는

달리 더 '부드러운 위로'나 '좋은 조언'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세우신 선지자(사무엘, 오늘 날의 목회자)를 통하여

우리 각자가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큰 죄악'을 일깨워 주실 때마다

그 책망을 달게 받고 즉시 회개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신 구원을 가르쳐 주는 것이 설교입니다.  12:19~25


▲19절,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사무엘의 설교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라고 자복 회개하면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라고 그에게 간청했습니다.


▲20절,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좇는데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그때 사무엘은 두려워 말라는 말로 그의 설교의 결론을 시작하면서

너희가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아직 문제 해결의 길은 남아 있다고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그 구원의 길이 바로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큰 일’

즉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상기하면서

‘오직 그를 경외하며 진실히 섬기는’ 신앙을 끝까지 붙잡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어떤 문제도.. 결론은 항상 이것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21절,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구원해 주지도 못하는 헛된 우상을 완전히 버리고

(여기에는 ‘자기들이 만든 왕/내 생각에 내게 의지가 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돌아오는 것만이

항상 유일무이한 최선의 해결책인 것입니다.


▲22절,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그렇게만 하면 반드시 잘되게 되어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잘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을 무조건으로 벌써 선택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심'

바로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에게

끝까지 소망을 제공해 주는 확고부동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23절,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사무엘은 그런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자기 자신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했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도 - 즉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그들에게 가르치면서

동시에 그들의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면서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는 가운데 그의 설교 사역을 준행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무엘의 설교는 책망과 저주만을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처럼 '악에 악을 더한' 백성에게도 여전히 구원의 길이 열려 있음을 알려 주는 '

기쁜 소식' 즉 '복음'으로 결론이 맺어졌었습니다.



▲마치는 말

설교를 '목사가 강단에서 사람을 야단치는 말'이라고 오해해서도 결코 아니 됩니다.

오늘날 '목사의 말이라고 다 옳으냐?'라고 하면서

'교인들이 너무 순진해서 목사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생각하는 것이 문제'

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기독교계 내에서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목사의 말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며

목사의 말이라고 다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목사가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설교하면 그것은 결코 '사람의 말'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는, 설교자가 성도 영혼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큰 일'을 선포해 주며,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잘못을 지적해 주고’

'여호와께서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텔레비전으로 미국의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실망을 금치 못합니다.

그 분들의 설교는 거의 다 '윤리 강의' 아니면 '인생 상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주권'이나 '성경의 복음'이나 '교회중심의 생활' 같은 것은

귀를 씻고 들어도 들을 수 없으며

기껏 나오게 되는 '성령'의 이름은 순전히 오용되고 도용당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최근에는,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부부 간의 성생활'을 장황하고 적나라하게

설교하는 목사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참된 설교는 사람이 듣기에 좋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며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사려 깊은 조언'도 결코 아닙니다.


설교는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 역사'를 선포하며

'그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에 불과함'을 깨우쳐 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구원의 길'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될 때 설교는 진정

여호와 앞에서.. 백성들과 담론하는 진리의 말씀 선포가 되는 것입니다.                                 ▣ 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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