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은 사람 엡2:5~8 설교 편집
◑40대 남성이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하지만...
▲우리나라 40대 남자 사망률이 높은 이유
우리나라 40대 남자 사망률은, 같은 40대 여자들보다 3~4배 더 높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나라 40대 남성 사망원인 조사에 의하면
1위는 간질환
2위는 자살
3위는 간암
4위가 뇌졸증.. 이런 순서라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사망원인의 공통점은, 다름 아닌 스트레스이다.
▲남자들은 40대에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한다.
영국의 과학자들이, 전 세계 80개국에 2백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그 조사결과에 따르면,
선진국은 물론이고, 개발도상국가, 저개발국가에 이르기까지 총 망라해서
그 남자들의 개인적인 수준 차에 상관없이, 즉 빈부/교육수준의 고저에 차이 없이
세계 모든 남자들에게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10대 때 까지는, 남자들이 거의 행복하게 산다고... 조사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부터 점점 스트레스 수치가 증가하다가
30대를 넘어서 40대에 이르면
스트레스에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50대를 넘어가면서, 차츰 누그러지다가
65세 이상 70대를 넘어가면
다시 10대 시절의 행복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70대의 스트레스 수치가, 10대의 스트레스 수치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왜 40대 때,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하는가?
40대 때가 되면,
사람들이 비로소 <자기 성취의 목표>가 어느 정도 판가름 나는 시점이 된다.
쉽게 말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과/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판명 나게 된다.
이 때 대부분 사람들/특히 남자들은,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기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40대 때에, 남성들에게 스트레스가 심하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30대 때는 그래도 장밋빛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다들 있었는데,
40대 중반에 도달할 즈음, 자기가 생각했던 성공에 도달하지 못했음이 판명되고,
특히 잘나가는 남들과 비교해 보면서, 자꾸만 뒤처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불안과 초조, 좌절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성취에 대한 좌절, 그 절망감이 극에 달하는 시간이.. 40대~50대 초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좌절된 성공에 의한 스트레스>는 40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스트레스의 강도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모든 세대의 사람에게 예외 없이 주어지는... 어떤 정신적 괴로움이다.
40대에 그 스트레스가 더 집약되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은연중에 압박감과 패배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사실 이런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혹시 한 분야에 성공을 하더라도, 모든 분야에 다 성공할 수는 없으며, (오복을 다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또한 아무리 자기가 한 분야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자기보다 더 성공한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천국의 삶’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 은혜를 받아야 한다. 은혜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
▲은혜를 받아서, 어떤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운 사도 바울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1~13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부자로 살다가.. 가난하게 사는 것을 끔찍이 두려워한다.
어떤 명예를 누리던 사람이.. 거기서 실직했을 때.. 무척 전전긍긍한다.
※관련글 : 사랑과 인정에 굶주린 그대에게 / 임영수 목사님
그러나 사도바울은, 자신이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안다고 간증한다.
즉 부자로 살다가, 가난하게 살 때에도, 자기 행복감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대로, 가난하게 살다가.. 갑자기 부자가 될 때.. 이상하게 변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풍부에 처하거나/ 비천에 처하거나.. 일체의 비결을 배운다.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내 마음에/ 내 삶에 천국이 임하고, 만족이 있다는 것이다.
◑은혜를 받으면.. 인간의 가치가 회복된다.
▲이태리 칸초네(가요) 중에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니?’라는 노래에 보면,
그 가사가 기가 막히는데, 그 노래를 들으면, 막 닭살이 온 몸에 돋는 것 같다.
당신의 눈은 저 하늘의 모든 별을 다 모아서 만들은 것 같고,
당신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금광의 금을 모두 녹여 만든 것 같소!
그런데 이 표현은, 절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드셨는데,
그 인간의 가치는,
이 땅의 모든 금을 다 모아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인간의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의 목숨을 맞바꾸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가치는 = 예수님의 가치와 동등하다.
‘예수님’이란 엄청난 몸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구해 내셨기 때문이다.
그 가치를 ‘세상의 모든 금’에 비교하랴!
▲죄가 우리 인간의 안목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귀중한 인간이, 죄의 유혹을 받아서 타락했다.
그 소중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잊어버렸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 그리고 낙심한다.
키를 비교하고, 가진 돈을 비교하고, 자기 직위를 비교한다.
집을 비교하고, 차를 비교하고, 자녀를 비교하고, 모든 것을 비교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괴감/패배감에 빠진다.
죄가 우리 인간의 안목을.. 다 그렇게 흐리게 만들었다.
죄악이 인간의 가치관을 마비시켰기에..
하나님이 만드신 자신의 아름다움을 올바로 평가하거나/감상하지 못하고
괜히 남들과 비교하면서, 원망하고 불평에 빠진다.
이렇게 타락으로 인해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과 ‘그것의 가치를 보는 안목’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거듭날 때, 다시 차츰 회복되게 되는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새생명을 얻은 모습으로 새로 태어난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는데...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2:5~6
▲르왁 커피 이야기
최근에 제가 르왁 커피를 한 통 선물 받았는데,
그 작은 커피 한 통이 무려 20만원이나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비싼 것을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그냥 진열장에 넣어두고, 쳐다보고만 있다.
그 커피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가 제게 임했다.
여러분, 원래 르왁 커피는,
인도네시아의 사향고양이가 야생커피 열매를 따 먹고는
그게 소화가 안 되서, 배설물로 나온 커피 열매를... 그 원료로 한다.
이 비싼 커피의 원료가 ‘고양이 똥’이란 말이다.
사향고양이가 먹고 배설한 커피 열매! (이 과정에서 무슨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더러운 고양이 똥을 수거해서, 물론 더러운 이물질은 다 제거하고
거기서 채집한 커피원두를 가공해서... 아주 비싼 르왁 커피가 만들어진다.
우리 하나님의 걸작품인 인간을
사탄이 (마치 사향고양이처럼) 취해서 먹고, 배설해 버렸다.
사람은 죄악 가운데.. 완전히 버려진 존재요, 똥처럼 무가치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똥처럼 버려진 존재가 되었고, 자기 스스로도 '존귀한 가치'를 갖지 못하며 산다.
그러나 구세주 예수님이 오셔서
그 오물덩어리 속에서 우리를 꺼내주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고,
말씀으로 가공해 주시고, 성령으로 새롭게 포장해 주셔서
우리의 가치가 (마치 르왁 커피처럼) 완전히 ‘고 부가가치’를 다시 회복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교회에서 아름답게 예배드리는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다...
▲그런데 진짜 자기의 가치를 회복한 사람은
그냥 자기의 변화된 신분, 자기가 하나님의 가족이 된 사실에 만족하면서
가만히 앉아있지 않는데 ...
◑진짜 은혜 받은 사람의 증거
진짜 자기의 신분이 고상하게 회복되었고,
자기 가치가 타락 이전처럼 아름답게 회복된 사람은
<은혜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일에 자신을 투신한다.>
왜냐하면 그 일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요,
그 일을 통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 된 것을
스스로 확신/확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가치가... ‘사람의 영혼’이고
그 영혼을 구원하며 살리는 일에 자신을 투신하는 일이 ... ‘가장 가치 있는 일’이고
그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가장 가치 있게 사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자신의 가치를/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한 사람은
절대 평범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이 세상 복음전파 사역에 아낌없이 내어드림으로써
다시 한 번 자신의 변화된 존재감을 스스로 대내외에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고,
자기가 무슨 전문직종에 종사하더라도
자기 인생의 최고 목적, 삶의 최종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전파와 구령 사업'이 된다.
◑은혜 받은 사람은, 은혜스럽게 은사를 나타낸다.
은혜(선물)은 헬라어로 ‘카리스’이고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타’이다. 서로 비슷한 말이다.
따라서 카리스를 드러내지 못하는 카리스마타는 온전하지 못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지 못하는 은사는, 참된 은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사를 받아서, 자기 실력이 출중할 수 있다.
굉장히 탁월하고, 능수능란하게 그 일을 누구보다도 더 잘 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일을 하고 난 다음에 은혜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면, 그가 자기 은사로 시행하는 일들을.. 잠시 쉬거나 중단해야 한다.
그것은 참된 성경적인 은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은사는, 그 은사의 시행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은혜가 끼쳐지게 된다.
은혜와 은사의 헬라어가 같은 어근이기 때문이다.
조금 서툴러도, 그 사람이 그 일을 하면, 늘 은혜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은사자’이다.
그 일을 잘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일을 통해서 은혜가 남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은 죽어라고 했는데,
그 일 때문에 상처받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면,
그 일을 계속 하는 것을 심각하게 재고해 보아야 한다.
※ <은혜 /카리스> 단어와 어원이 같은 말 중에 우리가 잘 쓰는 말이
또 <감사하다 /유카리스테오> 가 있다.
은혜의 마음은.. 곧 감사의 마음인 것이다.
정리하면, 은사가 나타나는 곳에는
반드시 은혜가 나타나게 되어 있으며,
또한 그곳에는 (원망과 불평이 아닌) 감사가 나타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은혜스런 은사의 시행)은 은혜 받은 사람의 하나의 증거다. ▣ 은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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