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0~2001 그 이전

한 무화과나무에 내린 심판 2038

LNCK 2009. 8. 17. 22:09

◈한 무화과나무에 내린 심판                    마21:18~22             -2001년12월경 설교스크랩, 출처-

 

 

아래에 '심판의 표적' 이란 개념이 새로워서, 스크랩해서 보관해 둡니다.

 

 

◑본문 설명 및 해석


▲본문 정황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불과 며칠 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본문인 ‘무화과를 저주해서 마르게 하기’ 전에  마21:18~22

그 전날 예수님은 ‘성전 청결’을 단행하십니다.  마21:12~17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굴이 되었습니다.

장사치들의 시장바닥이 되어버렸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 양 팔고 사는 시장이에요.

아주 이렇게 더러워진 성전을 보시고, 예수님은 분노했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요. 채찍을 들어서 모두 내쫓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아팠습니다. 어쩌다가 성전이 이 모양이 되었는가?

그리고 가까운 마을, 베다니 마을에 가서 하룻밤을 쉬시고

그 다음날 새벽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많은 위선자들과 거짓지도자들이 우글우글 대고 있는 저 썩어빠진 성전을

마음에 생각하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십니다.


그 대제사장에 의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십니다.

그것까지 생각하시며..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길에,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게 됩니다. 때마침 예수님은 몹시 시장했습니다.

배고픈 가운데 저 무화과나무에서 어떤 열매를 얻어 잠시라도 시장기를 해결하실

생각으로 나무에 가까이 갔으나...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더니

그 나무가 즉시로 말라버렸습니다.


아니, 무화과나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왜 애꿎은 나무를 저주해서 마르도록 하십니까?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것은 <유대종교와 그 지도자들에 대한 표적>입니다.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신’ 이 본문은,

앞서 ‘성전 청결’을 단행하신 본문과 연결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유대 역사는,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신 표적을 통해 보여주신 것처럼

그 후에도 계속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여.. 실제로 말라버리고 맙니다.

주후 70년경, 로마에 의해 완전히 망하고 맙니다.

 

▲본문을 이해하려면, 유대의 무화과나무의 특성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있는 무화과, 그것은 좀 특별합니다.

우선 그 키가 5~7미터까지 자랍니다.

나뭇가지는, 키보다 옆으로 많이 퍼져서 7~10미터까지 퍼집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 잎이 비교적 큽니다.

그래서 멀리서 볼 때,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도 굉장히 무성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는 1년에 열매가 2번 열립니다.

4월경에서는 1년 동안 묵은 나뭇가지에서.. 그대로 열매가 생깁니다.

이 열매는 먹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아주 맛도 없고 떫고 씁쓸합니다.

먹을 만한 것이 못되지만.. 그래도 정 배고픈 사람들은 이 열매를 먹고

잠시 시장기를 면할 수 있는 그런 열매올시다.


그리고는 9월 즈음에 진짜 열매가 맺습니다.

이것은 새로 나온 가지에 달린 열매입니다.

그리고 노랗게 익으면 냄새도 좋고, 맛있는 무화과 열매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병행구절 막11:13절에 보면 제 철이 아니다 하는 말은

9월에, 그 맛있는 열매가 맺을 바로 그 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금 본문은 4월입니다.

예수님은 먹을 수 없는 무화과 열매를 구했는데.., 그것마저도 없었습니다.


이 사건이 계시하는 바는,

지금 유대종교의 현실이.. 이 무화과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먹지 못하는 열매’라도 어떻게 좀 구해보려고 해도

그나마 그런 열매도.. 도저히 구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의 음식 찾는 이야기   註1) *맨 아래     


예수님이 지금 배가 너무 고파서, 막 짜증을 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 ‘열매 없는 나무’에 대하여 심판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중요한 계시적 의미가 있는 것이올시다.



◑심판의 표적


▲표적의 양면성

여러분, 표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는 좋은 편으로만 생각하려고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입니다.

병자를 고치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문둥병을 깨끗하게 하고

거친 바다를 고요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이렇게 좋은 면으로 표적이 나타납니다만...


그러나 반대적인 표적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나무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 그러니까 나무가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심판하시는 표적’도 반드시 있습니다.


병든 자가 건강해지는 것만이 표적/기적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이 병드는 것도 표적입니다.

잘되던 사업이 일이 꼬이면서 망하는 것도 표적입니다.

그래서 지진이 표적이요, 재난도 표적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표적/기적이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좋은 방향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심판적인 표적/기적,

이런 부정적인 면으로 나타나는 큰 이적도 함께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본문 말씀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상징적으로/ 예표적으로/ 예언적으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시는 길에서,

유대종교와 그 지도자들을 바라보시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은 제사장이 하나님의 종이기에, 직접적으로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간접 심판을 하시는 겁니다. "영원토록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그런데 결국은 예언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40년 후에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지금까지 다시 회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일화

제(곽선희 목사님)가 어렸을 때, 김익두 목사님 밑에서

몇 번 성경공부를 한 일이 있습니다.

이 분이 싱글싱글 웃으시면서 자기 경험담을 말씀하는데

너무 재미있게 들은 말씀이기에, 제가 지금까지 기억합니다.


초여름에 모내기 할 때, 김익두 목사님이 어떤 마을을 지나가노라니까

모내기하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는 거예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분입니다. 가까이 가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랬대요.


밥 먹던 청년 하나가 나오더니

"목사님, 이 마을에서는 전도 안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왜요?"


"며칠 전에 비가 오고,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쳤는데,

동네 한가운데 있는 서낭당 나무를 때렸어요. 저 나뭇가지가 부러져 불에 탔어요,

또 바위를 때려서 바위가 무너지고요,

벼락이 논바닥을 때려서 논바닥이 푹 패였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아니, 나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바위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건 왜 때렸습니까?

아, 하나님이 안 계시던지... 만약 진짜 계시다면 장님이든지 그럴 거"랍니다.


목사님이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요. 그래서 돌아서서 급하게 기도를 했대요.

'하나님, 지혜를 주십시오' 했더니,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더랍니다.


그래서 "자네 학교 다닐 때 서당에 다녔나? 학교 다녔나?"

"학교에 다녔습니다."


"선생님의 손에 무엇이 있던가?"

"막대기가 있지요."


"그 막대기는 무엇에 쓰는 것인가?"

"아니, 흑판도 땅땅! 때리고, 책상도 땅땅! 때리고 뭐, 그런 거죠."


"흑판이 무슨 죄가 있나?, 책상이 무슨 죄가 있기에 책상을 치나?"

"아 그거야 학생들이 졸지 말라고..."


"여보게! 벼락이 지금은 바위를 때렸다만은, 다음에는 네 머리를 칠수도 있다네" 그랬더니

"아이고, 아이고,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 청년이 예수를 믿고, 그것이 중심이 되어서 거기에 교회를 세우고,

그 사람이 장로가 되었다고... 이런 얘기를 김익두 목사님께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대신 치신> 예수님

여러분, 대신 치신다는 걸 잊지 마세요.

하나님의 사람, 당신을 칠 것인데,

열매 없는 당신을 쳐야 할 것이지만은,

지금 간접적으로 누군가를 쳤어요.

내 대신 누군가가 매를 맞고 있어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점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열매가 없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입니다.

길가에서 잎만 무성해서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주고 있는 무화과처럼,

예루살렘 성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었어요.

그 위선이 심판을 받을 것을, 예수님이 표적으로 예고하신 것입니다.



◑적용


여러분,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사랑을 받고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지요.

용서받았으면 용서의 열매를 맺어야지요.

긍휼하심을 입었으면 긍휼의 사람이 되어야지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으면 겸손이라고 하는 열매를 맺어야지요.

열매는 다 어디 갔습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간곡하게 말씀한 바 있습니다.

1만달란트라고 빚을 졌다가 주인에게 탕감 받은 사람은

자기에게 1백 데나리온 빚 진 사람을.. 반드시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용서의 열매’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긍휼하심을 얻은 사람은 긍휼의 열매를 맺어야지요.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원수 사랑을 받고 내가 구원을 받았거든

내가 어떤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겠단 말이에요?

당연히 ‘용서하는 열매’를 맺어야지요.

이제는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이 무서운 경고를 듣고, 우리는 새롭게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충성과 진실, 감사에서 감사로, 사랑에서 사랑으로, 은혜에서 은혜로,

아름다운 열매를 이제는 맺어야만 할 것입니다.



............................................... 더 읽으실 분 ............................................



▲배고픈 사람의 음식 찾는 이야기   註1)

여러분, 가난한 사람,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마음 상하기 쉽습니다.

무엇인가 기대했다가 또 실망을 합니다. 배고픈 사람은 코가 예민합니다.

아 배고픈 사람, 정말 배가 고프면 배만 고픈 게 아니에요. 슬픕니다. 이게 인간이올시다.

제가 6·25 전쟁 때입니다. 광산에서 탈출해 가지고 나와서 산에 숨어있을 때,

몇 달 동안 산에서 헤매는데 식량이 없습니다.

 

그저 뭐하나 생기면 그저 그런 대로 이렇게 저렇게 먹을 수도 있지만은

어떤 때는 식량을 구할 수가 없는 것이 토벌대들이 밑에서 막 찾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저분들에게 발각되면 그냥 즉석에서 총살을 당합니다.


그래서 높은 산으로만 헤매는데 이게 뭐, 식량이 있을 리가 없죠.

그래서 그 산에 물이 흐르는 곳에서 가재가 거기 있더만요.

그거 몇 마리 잡아먹으면서 시장기를 끄고 그랬는데,

몇 일 동안 밥을 못 먹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마침 비가 옵니다.


몸은 젖지요, 배는 고프지요, 와∼ 높은데서 내려다보니까

저 산밑에 오막살이 외딴집 하나가 있어요.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죽더라도 먹고 죽자. 내려가서 뭔가 좀 구해보겠다'하고 목숨을 걸고

그 무서운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 집에 가서 사정을 하고 "이렇게 내가 몇 일을 굶었는데 먹을 것이 없을까요?"

아무 것도 없어요. 고구마 몇 개 있던 거 다 먹었대요.

그리고 그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떡하지요? 저희는 지금요,

식량을 구하러 동네로 내려가려고 하던 참입니다."


그리고 뭐 꿀, 꿀 받아 놓은 거 이만큼, 한 종지 주면서

"이것 밖에는 없는데요"그래요. 참 실망했습니다. 배가 더 고프더라고요.

그래 뭔가 있을까 하다가 없으니까 더 아주 힘이 빠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예화 : 좋은 포도열매 얻기 바라는 프랑스 농부 이야기

일본에 어느 대학 교수가 학생 몇 명을 데리고 프랑스 파리에 가서

포도주에 대해서 현지답사와 함께 연구를 하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포도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이 뭐겠습니까?"

물었을 때에 쟌 그로트 교수라고 하는 분은 아주 자세하게 친절하게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포도를 얻는다는 것은 기후와 토질이 80%를 결정합니다.

기후가 좋고 햇빛이 좋아야 되고, 그리고 토질이 또한 좋아야 됩니다.

여기에 80%가 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20% 뿐입니다.

그런데 포도 씨앗을 심어서 포도를 딸 때까지 7년이 걸립니다."


그러니까 이 포도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결정하고 알아보는데 7년 걸려요.

그러니까 또 다시 다른 포도를 또 심고,

또 이렇게 특별히 배합해서 또 심고, 7년마다 겨우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좋은 종자 하나 만드는데 30년 걸립니다."


이 좋은 포도를 따서 숙성하는데 좋은 포도주가 되려면 30년 걸린다고 그래요.

"나는 100년 후의 행복을 위하여 포도를 연구하고 포도를 심습니다.

내가 만든 이 포도주가, 정말 아름다운 포도주가 될 때는 나는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끈질기게 좋은 포도를 얻기 위하여 이렇게 힘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농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기대한바 좋은 포도가 맺혀지지 않으면

이보다 더 피곤하고 이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화 : 옥수수에 이삭이 안 나오니까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제가 북한에 갔을 때, 옥수수 박사님이라는 김순권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거기 좋은 옥수수 종자를 가지고 가서 이것을 좀 퍼뜨리려고 애를 써요.

제가 두 번이나 만났어요. 그런데 "잘 돼갑니까?"

그랬더니 얼굴이 보니까 벌써 틀렸어요.


"왜 뭐가 문제입니까?" 아, 글쎄 좋은 옥수수 종자를 갔다가 심었는데

잘 자라면서 굵게 자라 올라오더랍니다. "아! 이거 됐다." 그랬더니,

이만큼 자란 다음에요, 이삭이 안 나오고 말더랍니다.


"그거, 왜 그렇소?" 그랬더니 "땅기운이 모자라서요" 그래요.

비료가 모자라서 안 된대요.

보세요. 애써서 종자를 심어서 이렇게 잘 자라오다가

마지막에 이삭이 나오지 않고 말면

이런 실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화 : 일본의 프리터 족

일본에 요새 신종 용어가 생겼는데, 프리터(Parasite Freeter) 입니다.

‘프리터’라고 하는 말은 프리(free)라는 말과 아르바이터(arbeiter)의

일본식 합성어올시다. 이것은 '청년 백수군'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부모에게 기대는 '기생인간'으로 혹평을 당하고 있습니다.

일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부모가 애써서 대학을 보냈고, 대학을 졸업했는데..

직장을 가지지 않습니다. 귀찮으니까요.

부모님들이 집한 채 있는데 거기에 떡 얹혀서 살면서

직장도 가지지 않고 장가도 가지 않습니다. 귀찮은 장가, 왜 가냐고 그럽니다.


그리고 한 주일에 한 두 번 아르바이트 해가지고 용돈 조금 벌어서

이래저래 먹으면서 편안하게 살겠다는 거예요.

이러한 족속이 무려 130만이 넘습니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내서 "freeter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60%가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그랬어요.

이제 일본의 장래가 어디로 갑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 어려운 것을 애써서 대학을 마쳤어요.

대학 졸업한 이 아들이 장가를 안가요. 직장도 얻지 않아요.

그리고 집에서 빈둥거린다면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상하게 또 일본에 있는 일은 이리로 곧 넘어오거든요. 곧 유행이 됩니다.

요새도 보니까 우리 부모님들 가운데 "아, 이 놈이 장가를 안갑니다"하고

고민하는 사람들 많아요. 나보고 좀 구원해달라고 그래요. 내가 무슨 수로 구원합니까?


왜 그런지 아세요? 극단적인 이기주의입니다.

'그 까짓 것 뭘 장가를 가느냐? 아내 위하고 아이들 위하고 아이고 귀찮아!

아버지, 어머니 집 있으니까 얹혀살다가 돌아가시면 내 것 될거고. 뭐 됐구만!'

이러고 사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실망적이냐 그 말이에요.

나무가 번듯하고 잎사귀가 무성하면.. 열매를 맺어야지요!                                            ▣ 기독교 사상     


'분류 없음 > 2000~2001 그 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를 더욱 찬송  (0) 2009.08.25
전쟁의 경륜적 속성 2040  (0) 2009.08.18
네 어머니라 1901  (0) 2009.05.21
장애우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다 1847  (0) 2009.04.17
겨자씨 한 알의 꿈 1661  (0) 2008.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