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9

서서 당하는 KO패, 몹쓸 정신력

LNCK 2009. 8. 31. 11:14

 

◈서서 당하는 KO패, 몹쓸 정신력     시107:1-43     -09.07.27.설교스크랩, 정리-

 

 

◑하나님이 나를 다루실 때는, 무조건 망해 버리세요!

 

▲격투기 선수의 몹쓸 정신력

어느 격투기 시합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백인선수와 흑인선수가 맞붙어서 싸우는데,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흑인선수가, 백인선수의 강펀치를 맞고서 완전히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가

순식간에 일어나는 거예요. 

일어나서 링을 도는데,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은,

지금 밸런스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면서도, 계속 링을 돌더라는 것입니다.

 

링 위를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로, 갈 지之자로 옆으로 막 걸으면서

심판이 카운트를 10을 셀 동안 계속 그렇게 움직이는 거예요.

그리고 끝까지 드러눕지를 않는 거예요.

 

그런데 그 흑인선수의 얼굴을 카메라로 비추는데, 눈동자가 위로 올라갔어요.

‘참, 대단한 정신력이다.’ ... 이렇게 좋게 볼 수도 있습니다만

보는 사람 입장으로는, 마음이 너무 측은합니다.

그를 보면서, 제가 ‘참 몹쓸 정신력이다’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냥 질 때는 질 때는 깨끗하게 지고,

또 다시 회복해서 다음에 잘 싸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계속 저렇게 버티다가, 가끔씩 큰 일 나기도 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의 몹쓸 정신력

하여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로, 몹쓸 정신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수가 많아요.

KO패를 당했는데 좀 드러누우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KO패를 서서 당하면서도,

갈지자로 걸으면서, 이놈의 몹쓸 정신력 때문에

정말 생의 고통스러운 기간을 한없이 연장하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오라는 목적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이렇게 허락하신 거라고 알고

그냥 내 마음이 KO패를 당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 마귀가 넣어준 인간의 주체적 노력/ 책임감/ 성실성/ 정신력을 가지고

이 몹쓸 정신력으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어야 될 정신력을 가지고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끝까지 버티면서 극복해 나가려고 합니다.

 

어떡하든지 자기의 수고와/ 시간과/ 정력과/ 모든 에너지를 다 투입하면서

그냥 번 아웃이 돼서 저절로 육체적으로 꼼짝 못하게 될 상황이 될 때까지도

계속 버텨 나가는 겁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거예요.

 

갈 지之자로 걷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나는 KO 안 당한다. 내가 할 수 있다’ 하면서

서서 당하는 KO패(스탠딩 KO패)를 당하고 있는 겁니다.

 

▲버티지 마시고, 좀 편안하게 드러누우세요.

하나님하고 관계에서는, 이런 질긴 정신력을 발동할 필요가 없어요.

하여간 내 삶에서 너무너무 작은 일이 주어져도

하나님이 아주 눈곱만한 어려운 일/ 힘든 일/ 고통스러운 일을 주시려고 해도

그때 아예 내가 드러누워 버려요.

‘아이고, 나는 죽었다. 하나님, 난 죽었습니다!’ 하고 항복해 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분명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자기가 사탄의 왕국에 대항해서 영적인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자기가 주의 일을 감당하는 가운데 피치 못할 고난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 이런 때는 끝까지 인내해야죠. 성경에 ‘인내하라’는 말씀도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다루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서, 바보처럼 당하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내 체면이 걸린 사역/사업이라서, 지금 물러서면 나는 끝장이란 생각이 들 때,

(절대 끝장 아니거든요)

 

나는 우아하게 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 자아(얼굴/체면/위신/명예)가 송두리째 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 목소리와 얼굴에 힘을 빼야 합니다. 이런 것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십자가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원리> 아닙니까!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히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요12:25등

내 자아와/ 체면과/ 위신이.. 빨리 빨리 죽어야... 비로소 내가 산다는 것입니다. 역설의 진리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망의 고통을 주시는 이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십니다.

시107편은,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노래하면서

이에 그들이 그들의 근심 중에(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13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내시고...

 

이 똑같은 구절이 6절, 13절, 19절, 28절에 반복해서 노래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근심/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근심/고통을 당한 이유가

그 앞에, 나옵니다.

 

 

▲10절,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이 쇠사슬이 뭡니까?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그런 속박이 있는 거예요.

자식, 말썽피우는 남편, 정말 못돼먹은 곤조 있는 아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사업.., 이게 다 쇠사슬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매입니까?

 

11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기 때문입니다.

 

① <지존자가 하시는 일>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든 영역을

다 지존자가 지존자의 일로 삼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걸 우리가 테이크 오버(차지)한 거예요.

우리가 채택해버린 거예요. 우리 일로.

 

내가 돈 벌고 사는 것, 내가 공부하는 것, 내가 건강을 유지하는 것,

내가 결혼하는 것, 부부관계를 잘 유지하며 사는 것, 자식 기르는 것,

이런 모든 일들이 다 지존자의 일이에요. 원래.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께서 처음에 태어나게 하신 곳이 에덴동산, 낙원이었습니다.

이 땅을 낙원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과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과제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멸시'하느냐 하면.

이 세상의 일들을 자기가 하겠다는 겁니다.

 

② 그럼 <우리의 일>은 무엇입니까?         ↔지존자가 하시는 일

우리의 일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경영해내는 것이 아니라

위에 것을 찾는 게 우리의 일이라는 거예요.

 

땅에 살면서 위에 것을 찾는 게.. 인간의 본연의 잡job이라는 겁니다.

그게 메인 잡이에요.

위에 것을 찾고 위에 것으로 기뻐하고 이 땅에 살면서.

그게 하나님의 백성의 백성 된 모습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전부 하나님을 '멸시'해요. 가장 높으신 분을. 그분의 일을 빼앗아가면서.

제가 제 자식 키우는 것 - 이거 제 일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돼버린 거예요. 거꾸로.

그래서 자기 힘으로/ 자기가 주권자가 돠어서/ 자기 뜻에 따라서 자녀를 키워 나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고통을 주십니다.

이 땅의 일들. 하나님의 일들을 내 일 인양 뺏어가지고/지존자를 멸시하면서

이 땅의 일들을 해나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시고, 그것을 막으세요.

 

이때 깨닫는 사람은 좋은 거예요. 뭘 깨달아요?

‘아, 내가 하나님으로 나 자신을 채워야 될 것을

내가 자식 걱정하며/ 남편 걱정하며/ 직장 걱정하며/ 사업 걱정하며

하나님이 하셔야 될 이 땅의 일들을 내가 마음속에 채우고 있었구나.

내가 지존자를 '멸시'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얼른 KO가 돼야 되요. 넙죽 엎드러져 버리는 거예요.

 

여러분,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1절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이 할 일을 내가 하면서 멸시하는 겁니다.

내가 더 낫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보다.

하나님일 하실 일을 내가 하면서.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게 됩니다.

 

어떤 넌센스를, 우리가 날마다 연출하고 있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일 할 일을 내가 하면서, 내 일로 테이크 오버하고,

내 일로 채택한 뒤에, 내가 그 일을 경영해나가면서

그 일이 잘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빌고 있어요.

이런 넌센스가 어디 있어요?

 

▲12절,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고통을 주시는 상황이 벌어졌습니까?

-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KO되어 넘어져도/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어,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는 거지요.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도와줄 사람을 애타게 찾는데,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때에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6절, 13절, 19절, 28절

이 때 사람들은 비로소 부르짖게 됩니다.

 

그런데 부르짖으면서 스스로 KO패 당하는 사람이 있고, (이래야 합니다.)

부르짖으면서도, 끝까지 몹쓸 정신력으로 버티는 사람이 있습니다.(이러면 안 됩니다.)

그 부르짖는 내용이, 자기 소원/ 자기 해결책/ 자기 뜻을 관철시켜 달라는 것이지요...

결국, 여전히 자기가 지존자인 셈입니다.

 

◑몹쓸 정신력을 버립시다.

 

우리의 영원한 KO장소가 어디입니까?

주님의 십자가가 아닙니까?

주님의 십자가에서 가르쳐주시는 거예요.

 

'너는 언제나 KO다.' 

 

자식 앞에서 내가 KO패 당해요.

왜 되지도 않을 몹쓸 정신력을 가지고

그 자식을 내가 길러보겠다고 갈지자로 걸으면서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 흰자위가 보이면서도

그냥 자식을 길러보겠다고 몹쓸 정신력으로 버티는 겁니까?

 

왜 이 세상에 사업을 하면서 몹쓸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KO패 당해야 마땅할 사람들이 일어나가지고

동서남북도 못 가리면서 갈지자로 걷고 있는 겁니까?

얼른 엎드려요. ‘이 세상일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KO패다...’

 

자식 앞에서 KO패요, 남편 앞에서 KO패요.

 

계속 일은 안 되는데..

하나님이 고통을 주시고, 환난을 주셔도

이걸 이겨내야 된다는 겁니다. 이걸 이겨내야 된대요.

 

교회에서도 그래요. 이걸 이겨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께 끝까지 기도하라는 거예요.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때까지.

 

완전히 정말 ‘돌아이’들을 만들고 있어요.                    

여러분, 서서 KO를 당하지 마세요. 그냥 바짝 엎드리세요.

 

 

완전히 엎드러져서 KO패 당해서

더 이상 세상에서 소망의 줄이 끊어졌을 때

이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을 갖고 싶어서 ‘하나님, 살려주세요. 살든지/죽든지 하나님 뜻에 다 맡깁니다.’

 

 

우리 인간이 할 일은, 위에 것을 찾는 일이고

이 아래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위에 계신 지존자께서, 당신의 일로 삼고 해나가시도록, 나는 도구만 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사랑, 하늘은 땅 사랑!

 

이것이 어긋나서 우리가 땅을 사랑해버리면

하나님이 우리를 낮추시기 위하여.. 고통을 주시고,

우리는 다시 고통 중에 부르짖으며, 다시 주께로 돌아오는 사이클이

우리 일생에 반복되는 것입니다...

 

 

'분류 없음 > 2009'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0) 2009.09.01
일평생 결국 믿음 싸움 2059  (0) 2009.08.31
밀레도의 작별 2057  (0) 2009.08.29
‘영접한다’는 말의 의미  (0) 2009.08.28
십계명 제2계명 2055  (0) 2009.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