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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부흥이 오는 방식 P2 / 로이드 존스

LNCK 2009. 9. 9. 15:29

 

◈부흥이 오는 방식 P2                  출33:7-11           -로이드 존스/출처-

 

 

◑부흥이 올 때는.. ‘후원’이 없습니다.

 

▲참된 부흥은 ... 후원이나 광고를 통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제가 볼 때, 현시점에서 매우 심각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즐겨 쓰는 말 중에 하나가 ‘후원’(스폰서) 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생각하는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까지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어떤 일을 해야만 한다고 느낄 때.. 후원을 강력히 원합니다.

(그 후원자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공식적인 교회의 지원을 원하며

(전혀 복음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지원도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후원자를 얻기 위해서 큰 예배당에 가기 원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어떠한 후원도 없습니다.

참된 영적 각성과 부흥의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한 후원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께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세상적인 방식으로 일들을 하려고 한다면 <광고>를 해야 합니다.

또 대단한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어떤 마을에서 집회를 가지려 한다면

그 마을의 지도자가 참석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가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전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아니면 어느 주州의 통치자가 그리스도인이든/그리스도인이 아니든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지원/후원만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주의를 끌 것이고, 큰 집회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모세와, 그와 같은 다른 사람들이 행동한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여러분이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의 비길 데 없는 능력을 의지할 때

사람들의 지원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관심을 가져야 할 후원은 성령의 후원/지원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먼저 사신을 보내어 모든 사람으로 준비하게 하고

공적인 큰 집회를 마련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라고 했습니다. 고전2:3-4

 

그는 무엇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령과 함께하지 않고는 감히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을 모셔야 했습니다.

 

당신은 성령을 더 의지합니까? 아니면 후원/지원을 더 의지하십니까?

성경에는 그러한 지원이 전혀 없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가장 권세 있던 시기나 개혁이나 부흥이 일어났던 모든 시기에는..

그러한 지원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몇 사람이 똑같은 소명감을 느꼈기 때문에 함께 나와서 모였을 뿐입니다.

 

(부흥의 요소나 징조는

뜨거운 소명감, 성령의 열정... 이런 것들이 부흥을 가져온 것이지,

후원이나 지원을 통해... 부흥이 일어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진 바깥에서!

 

▲진 바깥에 회막을 치다.

제가 강조하는 또 다른 요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진 밖에 회막을 세우는데 있어서,

모세는 또 다른 동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세는 이러한 일이 진 중에서 일어날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진은 (금송아지 사건으로)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장막을 진에서 떨어진 곳에 세웠던 것입니다.

이것은 의도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모세는 장막을 거두어가지고 진지 밖으로 나가,

진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을 치곤 하였다. (옮겨 다닐 때마다 그렇게 했다.) 

모세는 그것을 '만남의 장막'이라 불렀다.  (회막, tent of meeting) 

야훼께 여쭈어볼 일이 생기면 누구든지 진지 밖에 있는 만남의 장막으로 나가야 했다. 출33:7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사실상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부정에서 벗어나야 하고

이 죄악된 분위기에서 떠나야 한다. 우리는 대신 여기에서 함께 모여야 한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분리)으로의 부르심입니다.

다시 저는 여러분에게 주장합니다.

 

모든 부흥의 역사를 살펴보면.. 정확히 같은 방식이 발견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그들 중 어떤 사람을 보더라도,

그들의 첫 번째 관심사는 교회의 상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혼의 상태였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200년 전 옥스퍼드에서 시작된 그 작은 움직임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홀리 클럽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웨슬리형제와 휫필드와 그들과 함께 모였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 기독교회는 여전히 기독교회이다.

그러나 기독교회는 매우 무가치하고 죄가 많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신약성경에 묘사된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에 대해

매우 느슨한 자세로 치닫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

 

     그들은 너무 멀리 나가서 약간은 율법주의적인 데까지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원칙과 규례들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보고 메소디스트(규칙주의자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함께 기도해야 하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규칙을 따라 생활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거룩(분리/성별)이었습니다.

이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한 사람이나 몇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자기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참된 복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첫 번째 관심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자기들도 거룩해지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 그 영광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일종의 구별이 생기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은 기독교회를 분리하려는 겁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로이드 존스)는 기독교회를 분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중 어떤 사람을 다루려 하실 때

이러한 구별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랑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바리새인들처럼 "나는 너보다 더 거룩하다"는 자세도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일단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상태를 위한 소명의 짐을 느끼기 시작할 때,

그는 즉각적으로 이러한 헌신에 대한 부르심을 느낍니다.

말하자면 그는 "진 밖으로 나갑니다."

 

우리는 물리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진짜 튀어나가지 마세요)

물론 물리적인 면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원리(↔물리적)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이 바로 원리입니다.

 

이와 같이 심각한 부도덕성과 불경건과 불신앙이 팽배한 이 시대에,

악이 소리치고 거만하게 굴며 떠들썩하게 자랑하는 이 시대에,

제가 묻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러한 부류에서 분리(거룩)되라는 부르심에 대해서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시대 시대마다 부흥을 일으켰던 주인공들은

평범한 기독교 신앙생활로서는 충분치 못했습니다.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참된 삶과 거룩한 생활을 나타내는 것밖에는

그런 상황을 다룰 수 없음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사람들이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장막을 진 밖으로 멀리 옮겼던 것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거룩해져야 한다!’  (성경 본문에는 이 말 없음)

 

제가 이 모세의 행동을 보고 강조하는 또 다른 요점은,

그는 분명히 어떤 비상한 행동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어떤 부가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흥이 일어날 때 이러한 초기 단계에서는, 먼저 사람들이 ‘구별 되려고’ 일어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부흥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저 잠깐 동안의 흥분이나 흥미나, 어떤 기쁨이나 현상들만을 위해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어떤 기이한 일이 일어날 것이고

우리는 대단히 흥미 있는 시간을 맞게 될 것이라는" 태도를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참되고 진정한 관심의 첫 번째 표시는

우리가 얼마나 무가치하며 부정한 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별시켜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바로 당신은 구별됨의 필요성을 느끼고 계십니까?

 

우리는 어쨌든 일상의 자세를 벗어나 이 장막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은 예외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비상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던 궤도를 벗어나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마음에 인상 깊게 싶어주고 싶은 질문이 여기 있습니다.

이같이 엄청나게 악한 시대에, 여러분은 예외적인 어떤 것을 하고 있습니까?

 

그저 하나님의 집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일로 만족하고,

어떤 틀에 박힌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합니까?

물론 교회가 축복을 받고 모든 것이 잘되어 갈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에 나와 선교회 일을 하고, 주일학교에서도 가르치며,

교회의 일상적인 일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제가 묻고 있는 것은,

여러분을 구별시키는 의도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이 주는 위대한 교훈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부흥을 위해 움직일 때, 바라보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정말 놀라운 것은,

장막이 있어야 할 원래 장소는, 그 진영 가운데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장막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사를 읽어보면, 이 점을 거듭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몇 사람이 소명을 느껴서 스스로를 구별시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은 그들의 장막 문에 서서 쳐다봅니다./구경합니다.

그들은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일이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와 한 두 사람이 진영을 벗어나 기도하러

그 회막으로 나아가곤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출33:8

 

여기서 매우 놀라운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한 일은, 고작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식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다만 모세가 그 장막을 진 밖에 세워 놓고,

그와 몇몇 다른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그 곳을 찾아간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장막 문 앞에 서서 모세가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이야기했고,

모세가 무엇을 하며,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개인들을 들어 사용하여, (마치 촉매처럼/불쏘시개처럼)

급기야는 대다수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그들은 다만 어떤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희미한 의식을 가지며,

모세와 그와 함께하는 몇 사람의 행동을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할 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가 그러한 위치에 있음을 생각하면 저는 대단히 행복합니다.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침내 살아계신 하나님의 간섭이 아니고는

그 어떤 것도 충분할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한 사람들이

도처에서 몇 사람씩 생기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교회 전체에서 희미하게나마 이러한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믿습니다.

 

 

◑구름기둥의 임재/하나님의 영광/부흥이 다시 돌아오다

 

▲구름기둥의 임재가 다시 회복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이러한 행동을 인정하시고, 그 행동을 장려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는 그 행동을 기뻐하신다는 표를 주십니다. (진 바깥에 회막을 친 것, 거기 가서 기도한 것)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출33:9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그 구름 기둥을 철수시키셨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눈에 보이는 표증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행동의 결과로 인해, 구름 기둥이 그전과 같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임재의 표증을 주신 것입니다.

 

▲구름기둥이 돌아오면 나타나는 현상(부흥의 현상)

이러한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구름기둥/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면

새롭게 소생하는 일이 나타납니다.

교회의 예배가 더 뜨거워지고,

사라졌던 것이 되살아나며,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성령의 책망과 격려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도 속에 새로운 바람과, 새로운 기대감, 새로운 자유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바로 구름 기둥이 돌아온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별하기 위해서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합니다.

 

무정함과 겉발림은 적어지고

새로운 부드러움과 새로운 관심과 새로운 고뇌의 표증이 나타납니다.

 

어떤 나이 많은 사람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즉 그들이 교회의 기도 모임에서 고대하고 있었던 것은 

곧 갈망과 고뇌와 기다림의 "오Oh" 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올 때, 그것은 곧 구름 기둥이 다시 돌아왔다는 표증입니다.

 

▲부흥의 주인공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의 행동을 기뻐하신다는

매우 분명한 몇 가지 표증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라보시며, 사람이 그 친구와 말하는 것처럼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이 모세와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 끝나면 모세는 진으로 돌아왔습니다.  출33:11

 

다른 말로 해서 무엇보다 먼저 그 소명감을 느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곧 응답해 주실 거라는 암시를 주십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모든 부흥의 역사 속에서 이 사람들은 한동안 고뇌의 기간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그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느낌을 가지는 시점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으며,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으며

그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확증을 모세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얼마나 큰 격려가 됩니까?

 

▲구름기둥, 즉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 영광 앞에 백성들은 경배합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은 장막 문에 서서

모세와 다른 사람들이 회막으로 나아가는 모습만 바라보던 이 사람들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구름 기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장막 문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은 회막 입구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장막 입구에서 절을 했습니다.  출33:10

 

여러분도 알다시피, 부흥이 일어나면

교회 전체가 영향을 받고, 그 영광에 사로잡히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서적으로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반드시 그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회막을 떠나지 않은 여호수아

또한 이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33:11

 

이것은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셨고 응답하실 거라는 암시를 받고

진영으로 돌아가 백성들에게 보고하려 했습니다.

 

즉 거기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으며, 구름 기둥이 다시 임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며

그 얼굴을 백성들을 향해 돌리신 것을 의미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을 보고하려 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더 행하려 하신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시초요 하나의 초기 단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고대하는 마음을 주목하십시오.

여호수아는 모세가 백성들에게 보고하러 가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더 많은 계시/임재를 주실까 하여.. 장막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더 많은 것이 오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장막에 남아서, 계속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학수고대하는 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으며,

어떤 비상한 일이 곧 일어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 부 흥            

 

 

주) 출26장에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성막 tabernacle에 대한 규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막이 완성된 것은 출36:8절입니다.

그러나 성막 이전에 회막이 진 중앙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있는 동안 송아지 숭배 사건이 출32장에서 일어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모세는, 진 중앙에 있던 회막을 모세는 일시적으로 진 바깥에 세운 것입니다... 출3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