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과 사랑의 사람 막10:43~44 2007년36째주 설교스크랩/정리
◑크고자 하는 사람, 으뜸이 되는 길
▲드럼 메이저 본능
‘드럼 메이저 Drum Major’는 본래 악장/밴드 리더/군악대장를 의미하는 말인데,
(군악대나 고적대 밴드가 행진할 때, 그 앞에서 지휘하는 사람을 상상해 보세요)
자기가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어 하는 욕망을 '드럼 메이저 본능'이라고 합니다.
'드럼 메이저 본능'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위대한 고지를 바라보게 만들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하게 만듭니다.
▲주께서 가르치신 으뜸drum major이 되는 길은?
예수님은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드럼 메이저 본능’을 없애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본능은 인정하시면서,
그 본능을 성취하는 길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고 가르칩니다. 막10:43-44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델은 낮은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상처와 저주의 사람들을 높이며 섬기며 사랑으로 돌보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으며, 지금도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뛰어남/탁월함은 섬기며, 돌보며, 사랑하며, 종이 되는 뛰어남입니다.
이것이 복음화의 꿈입니다. 이것이 생수의 강이 흐르는 교회의 비전입니다.
▲한국의 교육문화는 - 만점 받는 사람이 되는 것
한국문화는 개인의 뛰어남을 기리며 존중하는 문화입니다.
유교적인 전통은 완벽한 인격적인 틀을 먼저 만들고
사람들을 그 틀에 맞추도록 가르치고 훈계합니다.
개인적으로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들, 인(仁)의 사람, 예(禮)의 사람,
믿음과 덕이 있는 사람 등을 높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존중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가르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유교 영향을 받은 한국의 교육문화는 100점 만점을 받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관계 중심적인 사람을 찾으시는 예수님
성경은 개인적으로 뛰어난 사람보다는, 관계적인 사람을 더 중시합니다.
낮은 자리에 내려가서, 상처입고 저주와 재앙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섬기며,
사랑하며 돌보는 사람들을.. 높이고 훌륭한 사람으로 존중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드럼 메이저의 본능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은 욕망을 달성하고자 합니다.
▲세상은 ‘드럼 메이저 본능’이 지배하는 사회
이것은 다니엘시대의 바벨론 왕의 꿈에서 그 전형을 볼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세상의 중심에 자라난 거대한 나무
- 그 끝이 하늘까지 닿고, 엄청난 열매가 열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짐승들을 먹일 수 있는 나무 - 이것이 느브갓네살의 꿈입니다.
세상의 중심이 되고 하늘 끝에까지 닿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자기의 지배 하에 두고자 하는 욕망이 곧 ‘드럼 메이저 본능’입니다.
‘드럼 메이저 본능’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위대한 고지를 바라보며
그것을 성취하여,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이것을 성취하면 거기에 행복이 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문화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컨셉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큰 자요, 종이 되어야 으뜸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목표를 바꾸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중심에 서는 것, 모든 사람위에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사람, 종이 되어 복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 상처입고 힘들어하는 고난의 사람들을
섬기며,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삶의 목표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선교는.. 섬김과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선교는, 기독교의 뛰어남을 선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선전하고
이슬람이 무지몽매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그 어떠한 것이라도
진정한 선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드럼 메이저 본능’에 불과합니다.
자기의 뛰어남을 소개하는 자기선전에 불과합니다.
(모든 종교가 동등하다는 종교다원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이 유일한 진리이지만,
자세는 겸손과 섬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섬김
그렇습니다. 선교는, 예수님처럼,
다 비우고 낮아지고 종이 되어, 섬기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 생명의 축복을 전달하여야 합니다.
전도자는 낮아지는 사람이요, 종이 되는 사람이요,
섬기는 사람이요, 축복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낮아져서 섬길 때,
전도자가 가는 곳에는 평화가 있고, 행복이 있고, 생명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런 낮아짐과 섬김을
평소의 일상적인 삶에서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평안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사랑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청년이 사랑에 빠졌습니다.
청년이 사랑하는 처녀는, 얼굴이 아주 예쁘지만 성질이 아주 표독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잔인한 취미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녀는 자기를 사랑한다면 그 증거로,
그 청년의 어머니의 심장을 가지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에 눈 먼 총각은 망설이긴 했지만, 결국 어머니에게서 심장을 빼내었습니다.
그는 심장을 가지고, 자기가 사랑하는 처녀를 만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달려가다가 돌부리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넘어진 청년의 손에 들려 있던 어머니의 심장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얘야, 어디 다치지는 않았니?”
진정한 사랑은 자기가 어떤 일을 당하든지 그것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기 아들이 자기의 심장을 빼앗아가는 데도
어머니는, 넘어진 자식이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심장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그 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 눈물로 기도했네.
귀중한 그 보배 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가와 도요히꼬의 섬김과 사랑
일본의 성자라고 일컫는 가가와 도요히꼬가 젊었을 때에
빈민굴에 들어가서 전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폐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자 생사를 걸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경 뒷골목으로 전도하러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온통 인간쓰레기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거지, 부랑자, 창녀, 강도, 사기꾼, 병자 할 것 없이 잡다한 인간들이
악취를 풍기며, 벼룩과 쥐 떼가 들끓는 곳에서 하루하루 연명해 가는 곳이었습니다.
나라에서는 이 지역을 비위생지역이요 우범지대라고 해서
일반 시민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가가와 도요히꼬는 이 음산하고 더러운 빈민굴을
하나님의 사랑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도 꼭 같은 인간의 성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도 사랑이 필요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랑하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께서 위하여 죽은 하나님의 보석들이었습니다.
도요히꼬는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께서
바로 이곳에서 역사하고 있다고 그는 확신하였습니다.
그들은 매일 끼니를 때울 양식이 없는데도. 죽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가가와 도요히꼬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하늘의 복을 전달하였습니다.
하루는 그의 절친한 친구가, 빈민굴로 도요히꼬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 친구가 보니, 도요히꼬는 허송세월만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살인자, 창녀, 도박꾼, 전과자 등 온갖 저질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드리는데,
자기 혼자서 목이 터져라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해서 오물을 토해 놓고 있었고,
창녀들은 앉아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 중에 남자들이 찾아와 창녀를 끌어내니
창녀는 일어나 나갑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도박꾼은, 예배가 끝나자 돈을 내라고 가가와의 따귀를 때렸습니다.
그런데도 가가와는 도박꾼에게 순순히 돈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그 친구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는 가가와를 향하여 “저 사람에게 돈을 주면 가서 또 도박을 할 게 틀림없어.
그런데도 돈을 주다니 너의 행동은 위선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가가와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하신 것 같이 하고 있는 거야.
우리가 어린이를 키울 때 넘어지면 일으켜주듯이
의사가 병자에게 주사를 놓고 또 놓아주듯이
계속해서 사랑을 베푸는 게 내 일이야.”
그는 빈민굴의 사람들을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참아주고, 견디어주고,
믿어주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그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섬기고 축복하였습니다.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심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아무리 험악한 밭이라도, 우리는 힘을 다하여 개간하고
좋은 밭을 만들어 복음의 씨를 뿌리고 사랑으로 섬기면
하나님은 싹이 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선교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전도와 선교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약은.. 찾아가는 시대
구약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찾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성전에서부터 찾아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곳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오라고 하지 않고
고난당하는 사람들, 잃은 양과 같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고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하늘의 웰빙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제는 찾아가는 시대입니다.
가가와 도요히코(하천풍언, 1888~1960)목사님은
성령님으로 충만한 후에 영의 눈이 열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가가와 목사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가와는 동경 뒷골목 빈민굴을 찾아갔습니다.
......................................... 관련 예화 .............................................
▲이름이 네 번 바뀐 선교사
브라질의 성자로 불렸던 미국 선교사 멜랜드(Doug Meland) 내외는
깊은 산골에 들어가 선교하며 평생을 사는 중에, 이름이 4번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곳 주민인 폴리오 인디안은 처음에 멜랜드 내외를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그들을 무기로 괴롭혔던 허다한 백인을 부르던
증오에 찬 명칭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 후 멜랜드 내외는 의료 봉사로써
주민들의 목숨을 구하며 병을 치료하는 헌신적인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를 부르는 명칭이 "존경하는 백인"으로 바뀌었습니다.
멜랜드 내외는 인디안의 언어를 열심히 배워 10년 뒤에는
그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유창한 말을 구사하게 되었고
생활도 그들의 풍습대로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멜랜드 내외를 "백인 인디언"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부상당한 인디언 소년의 발을 씻어 주고 있었더니
인디언들이 "인디언의 발을 씻는 백인을 보았는가?
이 사람은 하늘이 보내준 사람들이다"고 말하면서
그때부터 멜랜드 부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를 향하여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불렀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더러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했으며,
사무엘 선지자를 "하나님의 사람"(삼상9:6)고 하였으며,
엘리야 (왕상17:18)와 엘리사(왕하4:7)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멋진 군악대의 악장이 되는 꿈보다 (내가 안 해도, 할 사람 줄을 섰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는 꿈을 꿉시다.
왜냐하면 전자는 잠시 받는 인정이고, 후자는 영원히 계속되는 인정이기 때문입니다.
▲친구 되어주기
남가주 대학에서 사랑학을 가르치던 레오 버스카글리아 교수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할아버지 한분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계셔서
주변 모든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를 거부하고 계셨답니다.
상담자의 노력도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가족들의 노력도 별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린 소년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와서는
할아버지의 병세는 급격하게 호전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어린 소년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너, 도대체 할아버지 만나서 무슨 일을 했니?”
소년의 대답은 뜻밖에 “아무 일도 안했어요. 할아버지를 붙들고 울었어요”하더랍니다.
이웃들은 다시 물었습니다. “너, 어떻게 할아버지 붙들고 울 생각을 했니?”
소년은 다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와 저는 친구이거든요”
오늘 나는 누구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습니까? ▣ 해외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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