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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제4계명 2077

LNCK 2009. 9. 11. 12:38

◈십계명 제4계명                                     출20:8                                09.08.09.설교녹취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출20:8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경위 / 성경적 원리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나와 있고,

‘주일을 지키라’고는 나와 있지 않다고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더 성경적이다!’ 라고 주장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순진하게 읽으면 일면 일리 있는 주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물론 성경에 ‘안식일을 주일로 바꿔서 지키라’는 명령은 안 나온다.

그러나 성경에,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하라/하지 말라’는 명백한 명령형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소돔성을 유황불로 심판하셨다.

소돔성을 방문한 천사 일행을, 주민들이 동성애 하겠다고 소동했다. 창19:5~9

 

그런데 창19장 성경 본문에, ‘동성애 하지 말라’는 직접 명령이 없고,

하나님이 동성애 때문에 소돔성을 불로 심판하셨다는 기록도 없다.

그러나 소돔성을 불로 심판하신 것을 보고서, 우리는 깨닫는다. ‘동성애가 범죄'인 것을.


즉 ‘명백한 명령형’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라’는 명백한 명령이 없지만,

신약성경 전반을 보면..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된다.


▲기독교가 처음 태어났을 때, 성도들은 안식일에 회당 예배에 참석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끼리 성도의 집에서 매일의 예배를 드리면서...  둘 다 참석했다.


안식일에 당시의 유대 회당은, 강론을 돌아가면서 했다.

어느 안식일에 기독교파 (나사렛파로 알려짐. 그 외 바리새/사두개/에세네파가 있었음)

설교할 차례가 되면, 사도들은 그것을 복음전파의 기회로 삼았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전부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안식일 예배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인들은, 사도행전에 보면 날마다 모이기에 힘썼다.

날마다 성전에서도 모이고, 집에서도 모였다. 행2:46, 5:42


이 ‘집에서’ 모인 모임은.. 특별히 기독교인들만의 모임이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기념하는 성찬과 애찬을 나누며,

유대교와는 본질이 전혀 다른 그들만의 모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시기는, 아직 주일이 형성되지 않았고, 그냥 매일 모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기독교인들을 쫓아내 버렸다.

이 시기 즈음에, 주일(일요일)예배가 점점 형성되어 갔다고 보면 된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쫓겨나는 것을 계기로,

신학적/성경적으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계기로,

초기 기독교인들은 ‘주일’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전도여행에서, 이 ‘안식일/주일’ 문제를 살펴보면

사도바울이 2차선교여행 다닐 때까지는, 회당 안식일 예배에 참석했다.

그러나 3차선교여행 때는, ‘안식 후 첫날’ 예배에 참석했다. 행20:7


(주. 2차와 3차선교여행 중간의 어느 시기에, 유대교가 기독교를 배척했든지,

아니면 유대교가 사도바울을 배척했든지.. 그런 ‘회당금지’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매주 첫날’(일요일/주일)에 예배드리고 있었다. 고전16:2

※고린도전서는 3차선교여행시 에베소에서 쓴 편지였다. 고전16:8


▲중요한 것은 ‘주일 예배’가 신약성경의 기록에 나와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성경기록이 끝난 다음에, 교회가 ‘주일’을 지키기로 결정했다면,

‘주일 예배’의 권위가 없어진다. 교부들이 약속해서 만든 인간의 제도일 따름이다.


그러나 사도바울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항상 성령의 직접적 인도를 받고 있었다.

①그들이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주일날에 모였고

②또한 그런 주일날에 모인 예배가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주일 예배의 권위’를 보장해 준다.


성경에 직접 명시는 없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라는 성령의 인도를.. 그래서 받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주일예배’의 성경적 근거는.. 위와 같이 있다고 본다. ①+②

 

▲신학적 원리를 생각할 때도, ‘주일’이 맞다.

<안식일>은.. 천지의 창조사역의 완성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런데 죄의 유입으로 말미암아 이 창조사역의 은총이 흐려졌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속사역을 이루셨다.

우리는 이 구속사역을 통해서 새 은총을 누리는데,

그 구속이 이루어진 날이 주일날 새벽이고,

그 구속사역의 완성(다 이루었다)을 기념하는 날이 ... 바로 <주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일>은 <안식일>의 완성으로도 볼 수 있다.

원래 안식일이 있었으나, 인간의 죄로 인해 훼손된 것을,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완성하심으로써, 안식일도 다시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지키는 것이다.



◑안식일/주일의 원리 -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는 날


우리는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지키지만,

그 안식일 속에 담겨있는 정신은 고스란히 가져와서 주일을 지킬 필요가 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낸다.   출20:10

하나님은 처음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과 바다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신 것은

일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일하며 살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은총으로 살도록 지음 받았다.

아무리 사람이 노력하고 수고해도...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안식의 복’을 받아야 하고,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20:11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를 받아야... 평안하게 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이 일하며 노력해서 사는 날은... 6일간이고,

사람이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받아 사는 날이... 7일째 안식일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내 노력으로 사는 것을 중단하고, 쉬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살아 나간다는.. 그런 원리를 담고 있다.


물론 안식일에 ‘쉰다’는 원리도 있지만, 그 쉬는 이유가 무작정 피곤해서 쉬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내 노력으로 얻으려는 수고를 중단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산다’는 원리를 존중함으로써, 일을 중단하고 쉬는 것이다. ★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노력으로 다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야 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그것을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안식일의 원리다.


▲안식일의 은혜 = 다른 말로 복 받는 날

왜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는 쉬어야 하는가? 그 ‘원리’가 무엇인가?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20:11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쉬셨고/복주셨고/거룩하게 하셨다고 했다.

즉 사람은 자기 노력(6일)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7일에)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은혜를 받아 사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 안식일의 원리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의 원리는 <단순히 일을 안 하는 것>에 있지 않다.

일을 안 하는 원리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은혜를 받고 사는 인생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의미/원리에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내 노력을 중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은 은총의 신학의 핵심이다.>


이렇게 볼 때, 흔히 안식일 논쟁의 가장 뜨거운 핵심인

‘어디까지가 일이고/어디까지가 일이 아니냐?’의 논쟁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일을 하고/안 하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원리와 핵심은.. 안식일에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사는 인생임을 믿기에

일을 쉰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원리를 무시하고, ‘일하지 말라’는 문자에만 집착했다.

그 결과 ‘무엇이 일이냐?/어디까지 일이고, 어디부터 일이 아니냐?’로 공박했다.

이것을 따지면.. 정말 논쟁이 끝이 없어진다.


주일날 주부가 요리하지 않을 수 없고, 주일날에도 우리가 불을 켜야 한다.

어디까지 일이고, 어디부터 일이 아닌지... 너무 복잡해진다.

안식일의 원리를 무시하고, 문자에만 집착할 때 그렇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정을 6백여 가지 정해놓고, 힘들게 지켰다.

그렇다고 주님으로부터 칭찬 들은 것 아니다. 오히려 외식한다고 책망 들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이 극단적/문자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두고서

우리는 꼭 그들이 잘 한다고 칭찬할 수는 없다. 원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안식일의 의미를 살려서 주일을 지킨다고 볼 때

주일도 마찬가지다.

주일은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고 누리는 날이다.

내 힘과 노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복으로 사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안식일/주일이다.


우리가 주일을 쉬는 이유도,

우리가 받은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 노력/내 수고/내 땀 흘림을 다 쉬고 중지하는 것이다.

그 구원의 은혜를 기리고, 감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날, 모든 수고를 쉰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고 기리는 뜻이 된다.

내 공로는 아무 것도 섞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적 적용


▲1. 엿새 동안 힘써 일하는 사람이.. 주일을 잘 지킨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엿새 동안 쉬고, 주일날 또 쉬고... 이런 사람은 안식의 복이 없을 것이다.

제 7일째 안식의 복은.. 6일 동안 열심히 일한 것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 6일 동안 열심히 일한 사람이... 7일째 쉴 때 쉬는 기쁨이 있는 것이지,

6일 동안 쉰 사람이... 7일째 쉬는 것은... 쉬는 것도 고통이 된다.

 

▲2. 예배드림으로써 주일을 지킨다.

안식일의 원리가.. 내 노력을 쉬고, 하나님의 은총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은총/은혜에 참여’하는 길이.. 바로 예배를 통해서이다.

그렇다. 예배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가장 최고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모든 은총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새롭게 확인한다.

그러므로 주일을 잘 지키는 길은.. 무조건 집에서 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잘 드리는데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배에 너무 쉽게 빠지거나 지각하지 마시라.

현대 크리스천들은, 너무 쉽게 예배에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예배를 드렸다.


그냥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주일예배를 정성껏 드리는 것이.. 4계명을 잘 지키는 길이다.


▲예배를 잘 드릴 때, 안식도 얻게 된다.

쉰다고 했는데, 쉬는 것은.. 다른 말로 재충전이다.

여러분, 예배야 말로.. 가장 좋은 영혼의 쉼이요, 재충전의 시간이다.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림으로써, 일주일동안 모든 피로를 다 씻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무장한다.

예배야말로, 크리스천의 최고의 휴식인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더 타임즈’는

<주일날 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수명이 7년 더 길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었다.

예배를 드리면서 안식을 누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계속 받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더 오래 산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러분, 예배는 전인치료의 놀라운 시간이다. 

-찬송을 기쁨으로 부를 때..우울증, 신경성 위염, 과민성 대장염.. 등이 치료된다.

(요즘 음악치료라는 것도 등장하지 않았는가!)

-기도는.. 쉽게 말 못하는 내 내면을, 하나님과 대화를 통해 치료받는 시간이다.

여러분, 회개기도와 사죄의 확신은.. 엔돌핀을 돌게 한다. 내 몸에 건강을 준다.

-설교는.. 마음의 평강과 안정을 준다. 내 마음이 평안하니, 내 육신도 치료된다.


물론 이런 유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만 교회를 다니면 안 되지만

(그런데 이런 목적으로만 교회 다니는 사람도 꽤 있다.)

어쨌든 구원의 은혜 말고도, 덤으로..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은, 일주일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곤을

다 풀고 집으로 돌아간다.

여러분, 은혜를 받으면.. 삶의 스트레스가 다 풀리게 되어 있다.

독수리처럼 새로운 힘으로 재충전된다.


▲3. 일하지 말라는 뜻도 분명히 해야 한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이것은 내 노력으로 사는 시도를 관두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에 참여하기 때문에,

은총과 반대인 내 노력적 시도를 모두 중지하는 것이다.


이 원리를 잊어버리고,

어디까지가 일이고/어디까지가 일이 아닌 것인가... 논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주일날은 내 노력으로 얻으려는 시도는 중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일 날 일 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얻는다...

그것을 믿는 것이 주일 성수이다.


그러므로 주일 성수는..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하는 신앙고백이다.

그러므로 사업하는 분이나, 공부하는 학생도

주일날에 사업 안 해도, 공부 안 해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얼마든지 더 잘 살 수/공부 더 잘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 외 주일날 좋은 책을 산다든지.. 자동차를 탄다 든지..

이것은 주일 성수와 별로 관련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내 노력으로 뭘 얻으려는 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말의 의도는,

주일날 뭘 해야 된다/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율법적으로 따지기 보다는

‘원리’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주일날 내 노력으로 뭔가를 이뤄보겠다는 일체의 시도’는.. 잘못된 것이요,

‘하나님의 은총에 참여하는 모든 일’은 .. 적극적으로 일해야 한다.


그래서 주일은 즐겁고 복된 날로 지내야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일이 생겨도, 주일날에 자녀들을 꾸짖는 것은 옳지 않다.

대신에 칭찬하고, 격려하는 날로, 즐거운 날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집은, 과거에 한동안 주일날 저녁에 특별히 고기를 구워 먹었다.

(요즘은 건강상 이유로, 고기를 잘 구워 먹지 않는다.)

그러니까 주일날에는 맛있는 최고의 음식을 먹는 것도 좋다고 본다. 

주일날은 좋은 날, 은총이 가득한 날이란 것을.. 자녀에게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4. 적극적으로 주일날에는, 하나님의 은총을 나누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도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시고,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셨다.

우리도 그냥 가만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은총을 널리 전파하는 일에 ..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이것이 주일을 잘 지키는 일이다.


우리는 과거에 안식일에 ‘일 하지 말라’는 문자에만 매여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 일도 안 하고, 주일날 집에서 TV만 보고 시간 때우는 것이

주일을 잘 지키는 것일까? ...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주일날 더욱 선한 일들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전파하는 일에

다른 날보다 더욱 앞장서는 것이.. 주일을 잘 지키는 의미가 된다.                                  ▣ 기독교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