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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2082

LNCK 2009. 9. 14. 19:19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고후4:3~6                09.07.05.설교 녹취/편집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4:6



◑하나님은 빛을 비추십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창1:3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빛을 비추십니다.


마4: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자연인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려면

‘빛이 비춰져야 합니다.’


내 지식, 내 경험, 내 이성, 내 직감으로는.. 절대 예수를 제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빛의 터치를 받아야 합니다. 빛의 조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울이 그 빛의 비췸을 받은 후에, 비로소 변화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변화 받기 전에,

구약성경을 많이 읽었지만, 자기 지식으로 볼 때, 예수는 잘못된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가던 도중에

‘큰 빛이 자기에게 비취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즉시 사흘 동안 눈이 멀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큰 빛의 비췸을 받은 후에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보게 되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 망하는 자들, 곧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마치 눈에 무슨 꺼풀이 씌워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않습니다. 못 보는 것입니다.

‘이 세상 신’인 사탄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못 보게 만듭니다.


고후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말씀 안에도 ‘빛’이 있습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4, 그(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사도요한은, 자기를 ‘빛에 대해 증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1:7, 8

참 빛은 오직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1:9


하나님 말씀을 능력 있게 전하면,

사람들의 영혼 속에 빛이 환하게 비춰지게 됩니다.

말씀 안에 빛이 있고, 말씀 그 자체가 바로 빛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씀이, 사도요한처럼 ‘빛에 대하여 증거’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춰주시는 분이십니다.


(창1:3절에서)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4:6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 속에, 예수님을 알게 되도록.. 빛을 비추십니다.

앞서 하나님은, 그 빛을 스불론, 납달리, 요단 강 저편에도 비추셨고,

다메섹으로 달려가던 사울에게도 비추셨고,

빛으로 오셔서, 공생애 3년 내내 그 빛을 비추셨습니다. 요1:9


이 빛을 받아야, 우리가 비로소 변화됩니다.

예수가 누구신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사영리를 통해서 영접기도를 따라할 수 있습니다.

또는 초청전도집회를 계기로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빛이 우리 영혼 속에 비춰지지 않으면

오랜 교회생활도.. 어쩌면 그야말로 종교생활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 빛이 정말 강하게 비춰지면

(복음의 영광을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더러움을 보면서,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게 됩니다.

죄의 권능(무서움)을 깨닫게 됩니다.

‘오호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며 탄식하게 됩니다.


이 빛은 은혜로 비춰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안 구해도.. 비춰질 때가 있으며,

내가 구해도.. 안 비춰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그렇지만 노력하는 사람이.. 당연히 은혜를 더 잘/빨리 받을 것이므로

우리는 이 빛이 비춰지기를, 주님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자되고, 성공하기를 원해서 주님을 좇는 많은 사람들이

참 빛을 발견하고, 그 빛 앞으로 나아올 것입니다.


 

주님은 소리로도 말씀하시지만, 빛으로 나타내 보이십니다.


벧전1: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위 구절은, 하나님은 소리로도 나타나시지만,

으로도 나타내 보이심을 .. 보여주십니다.


출애굽 광야 시절에도, 하나님은 천둥과 번개와 친 음성의 ‘소리’로 나타나셨지만,

불/구름기둥의 영광으로.. '빛'으로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소리로도 자신을 나타내시지만,

빛으로도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듣기도 하지만) 보게 하십니다.


‘주님은 빛’이신 것은,

주님은 소리로 우리에게 말씀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그 영광을 보여 주십니다.


그 빛 앞에서, 우리는 온전한 회개가 시작됩니다.

과거보다 더 깊은 회개로 나아갑니다.

 

 

▲빛이 비췰 때, 비로소 회개가 되어집니다.

회개가 안 되는 것은, 어두움 가운데 있기 때문에, 더러움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빛 되신 주님의 빛이 비췰 때,

또는 복음의 영광의 빛이 비췰 때,

비로소 우리는 ‘내 더러움’을 보게 됩니다. (또는 우리 공동체의 더러움을)

그 때 자연적으로 회개가 일어납니다.


그 빛이 비취기 전에는,

아무리 회개하라는 푸시push를 받고서, 회개하고자 애쓰는 데도

진정한 차원의 회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더러움을 해결하기 이전에,

내 어두움부터 해결 받아야 합니다.

즉, 주님의 빛, 말씀의 빛, 복음의 영광의 빛이 내게 비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여, 이 시간에

(우리의 귀를 열어주셔서, 주의 음성을 듣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주의 영광의 광채를 보게 하옵소서.


그 빛 앞에 환하게 드러난, 나의 추함과 더러움을 보게 하시고,

더욱 깊은/진정한 회개에 이르게 하옵소서.


우리가 결심해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비추시는 빛 가운데 드러난 것들을 회개하면서

주께서, 내가 보기 원하시는 것(죄)들을.. 온전히 볼 수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인, 회개의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그런데 이 빛의 비췸은, 일생에 <몇 번> 비취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예로 들면,

①처음에 그는 그 빛의 비췸을 받고, 그물을 버려두고 사도로서 주님을 좇았습니다.

그리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마16:16


②베드로가 두 번째로 이 빛을 체험한 계기는

변화산에서, 정말 영광스럽게 변화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때였습니다.

베드로는 잠시 정신을 잃고서, (우리 모두도 아마 정신을 잃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는 빛나는 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마17:2

거기가 얼마나 좋았든지, 그 산에서 집짓고 계속 살고 싶어 했습니다.


③그런데 그 빛이 흐려졌는지,

어쨌든 그는, 주님이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을 한 번, 두 번, 세 번 부인하기까지.. 전혀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한 번 부인했을 때, 또는 두 번 부인했을 때,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했더라면... 어쩌면 파국까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세 번까지는 부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갑자기 닭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에게 (일생에 세 번째인지) 또 빛이 비췄습니다.

그래서 그는 통곡하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④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에게 아직 빛이 더 비춰져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우는 새벽에, 통곡하며 회개했지만,

그냥 갈릴리에 눌러 앉아, 물고기나 잡으며 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행2장에서, 오순절날 다락방에서

다시 한 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강력한 빛을 체험합니다...


▲야곱의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전 생에를 놓고 보면, 빛이 몇 번 비취었습니다.

①야곱은 모태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알았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태신앙이.. 야곱의 신앙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②야곱이, 주님을 확실히/선명하게 체험한 것은,

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해 갈 때, 벧엘에서 정말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광경을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을, 그것도 ‘아주 길게’ 들었습니다.  창28:13~15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③야곱이 주님의 ‘빛’을 더 강력하게 체험한 것은.. 얍복강 가에서였습니다.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는 가운데서,

그는 더 이상 이전의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창32장


그는 확실히,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얍복강 가에서, 언제 빛이 나타났느냐고요?

주님은 빛이십니다. 주님을 체험하는 사람은 빛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빛을 체험한 야곱은, 사도바울처럼, 자신의 눈이 새롭게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전에 원수로 보이던 에서가, 이제는 형제로 보여졌습니다...

 

 ★관련 찬송 : 주님 당신은 사랑의 빛 / 보기 및 듣기 링크 -클릭-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