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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십자가에서는 아무런 기적이 없었다

LNCK 2009. 9. 26. 22:54

십자가에서는 아무런 기적이 없었습니다 - YouTube

 

◈십자가에서는 아무런 기적이 없었습니다     막8:11~12       -칼럼 스크랩/ 정리-

 

 

1. 삶을 살 때, 너무 화끈한 기적적인 일이 내게 일어나기를 바라지 마시고,

대신에 일상을 충실히 사십시오, 일상도 매 순간이 기적입니다.

 

2. 기적보다는 십자가를 추구하십시오.

십자가를 추구하는 사람은, 기적(대박, 요행, 한 건)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일이 되어지는 것은,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며 기적을 바라는 것은.. 순수한 신앙일 수 있습니다.

삶의 위기가 닥칠 때 하나님께 매달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이 기적을 요구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절대 허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적을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신뢰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약한 인간의 가장 순수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바대로 기적이 안 일어나도.., 내 삶 자체가 경이로운 기적입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앙인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버리거나 그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가난이 부요함으로 바뀌지 않고,

심각한 질병이 치유되지 않고,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그의 신앙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런 극적인 변화만이 기적이 아니라, 내 삶 자체가 기적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 진정한 신앙인은 살아 숨을 쉰다는 것 자체가 기적임을 압니다.

삶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기에,

세상 곳곳에서 그분의 손길을 감지하기에

그의 모든 삶은 그냥 감사입니다.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음이.. 사실은 가장 큰 기적입니다.

무슨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랄 이유가.. 그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곧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섭리의 손길을 느끼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기적의 신앙이 아니라.. ‘신앙의 기적’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내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시며 세밀하게 섭리하심을 믿는 신앙을 갖게 된 것이.. '신앙의 기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막8:11) 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고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기적(표적)을 구하는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시고(눅11:29)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4:4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 때문에 하나님을 믿겠다는 인간들의 태도를.. 멀리 하셨습니다.

그분은 신앙(믿음)이 기적보다 선행先行함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기적을 구합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예 한술 더 떠서,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들기도 합니다.

돈을 내세우기도 하고, 헌신을 내세우기도 하고, 생명을 걸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고 걸고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도무지 주님께 드릴 것이라곤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주께 받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왜 그리 자주 잊어버리는지요?

 

주님께는 순서(신앙이 기적보다 선행)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왜 그리도 쉽게 잊어버리는지요?

 

▲기적을 추구할수록, 신앙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어집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일수록.. 기도가 쉽게 변질됩니다.

하나님을 기적을 일으키는 연기자로 만들고.. 그 연기를 보며 즐기려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신앙인이 아니라.. 구경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삶의 변화는 그만두고라도

자기가 누구이고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무관심해 지기 마련입니다. (신앙의 본질에 무관심해집니다.)

 

그러나 믿음은, 무엇보다 꾸준한 자아성찰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고, 기적만 추구하는 사람은

(초신자 때에는, 기적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순수한 신앙이라 쳐도)

바른 신앙/ 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은사나 신비주의를 선호하는 분들도 비슷한 위험이 있습니다.

짜릿하고 극적인 체험을 추구하는 문화 속에서

그런 기적(은사, 신비주의)은 구하면서도

자기를 성찰하는 기도는 하지 않는.. 이상한 신앙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기적은 한 때 흥분하다가도.. 곧 잊혀져 버립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조롱하였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막15:29-30)

 

그들의 요구는, 기적을 행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흥분하여 '이분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떠들면서

온갖 소동을 벌이며 그분을 추종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소동은 가라앉고, 기적은 그들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잠시 기적의 소동을 일으킨 분으로 기록되었다가

세상의 다른 모든 위인들처럼 잊혀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는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다만 쓸쓸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열 두 군단(로마의 한 군단은 보통 6천명x12=약7만)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해서

엄청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는.. 너무도 무기력하게.. 십자가만 지셨습니다.

 

오늘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제자들에게는.. 기적이 필요 없습니다.

오늘도 십자가를 안지고 주님을 좇는 제자들에게는.. 기적으로 뭘 보여주려고 합니다.

 

‘무슨 병이 나았네! 불임이 임신되었대!’ 이렇게 적극 홍보하는 것은.. ‘기적주의’입니다.

(그러나 표적이 저절로 따르는(막16:20)것은.. 괜찮습니다. 그 때에도 표적을 사방에 홍보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던 주님의 십자가,

그러나 그곳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엔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기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힘으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날에도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기적은,

남을 감탄시키는 기적(표적)이 아니라, 내 존재를 변화시켜주는 기적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기적'입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바라볼 때 내

내 모든 삶과 내 환경의 모든 것이.. 기적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루 하루가 주어지고,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열매가 맺고 눈보라가 몰아치고,

일 하고 대화 하고, 사랑하고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일까지 모두

숨 쉬고 살아가는 모든 일상이.. 사실은 기적임을 바라보면서 

내 삶 자체를 감사로 받아 찬양으로 주님께 올려드리게 됩니다.

 

이때 나의 예배는.. 참된 예배가 되고

내 주변 세상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속에서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기적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신앙이란, 바로 이런 기적이 내 안에 자라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기적

주님은 ‘십자가의 기적’을 이루시고                 ↔기적의 십자가

우리에게도 그 기적에 동참하라고 우리를 격려하시는데

 

우리는 십자가 때문에 평안하지 못하다고,

‘십자가를 없애는 기적’이, 내게 일어나게 해달라고

내가 원하는 바대로의 기적이, 내 기도의 응답으로써 일어나게 해달라고 

떼를 쓰며 매달리고 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각오와 노력이 없다면

안타깝지만 그것은 ‘예수님과는 관계가 없는 믿음’입니다.

 

주님은 '기적의 십자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는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냥 무능하게 묵묵히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십자가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거기서 주님의 사랑이 흘러나왔습니다.

거기서 주님의 희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앞에서 죄인들이 자기 죄의 사죄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마치는 말

오늘도 우리는, 내가 원하는 바대로 기적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순간 순간이 기적이며,

 

큰 기적을 보여줌으로써 십자가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십자가를 짊어 짐으로써,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는,

즉 '십자가의 기적'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기적은, 자기에게 부족한 무엇을 자꾸 채우겠다는 것이지만,

십자가는, 자기를 자꾸 비우는 것입니다.

자기 죄성, 욕심, 옛 자아, 체면, 야망... 이런 것들을 더 채우겠다는 것은 '기적'이고,

더 버리겠다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내가 더 채워서 저들에게 뭔가 보여주어야지, 저들이 주님을 믿을 거야...'

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은 아직도 '네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자기를 비우고 무기력해져라,

그 때 그리스도가 너를 통해 나타나고, 그러면 저들이 나를 믿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 신유,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