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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모자라는 것이 은혜다 2112

LNCK 2009. 10. 2. 17:19


◈좀 모자라는 것이 은혜다                      창3:1~6                             09.07.12.설교 스크랩/축약

                                                                                             *원제목 : 평생의 유혹, 평생의 기도제목


▲다 만족하면.. 오히려 맥 빠지고, 위험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들었던 얘기입니다.

어떤 동네에, 병들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한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병세를 보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하루 하루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겁니다.


인심 좋은 시골이었고,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쌓은 덕이 많았던지

문병객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왔습니다.

물론 할아버지는, 거동도 불편하시고, 말도 잘 못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자기를 찾아오는 문병객들에게

한 가지 똑같은 행동을 보인 게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맞은 편 벽엔

오래 된 동양화 한 점이 약간 비뚤게 걸려져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손으로 그 그림을 가리키는 거예요.

할아버지의 의도는.. 삐뚤게 걸려져 있는 그 그림을 바로 고쳐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다들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찾아오는 사람마다, 그저 할아버지가 가리키시는 그 그림을

한 번씩 힐끔 쳐다보곤 눈길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젊은 시절 그 할아버지에게 큰 도움을 받았던 사람 하나가

문병을 왔습니다. 

그 신사는 자기 은인의 병세를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그 날도 할아버지는 손으로 그 그림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 신사는 환자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깊었던지라,

할아버지의 의도를 곧장 알아차리고, 그 그림을 바로 달아 주었습니다.


이상한 일은 그 신사가 돌아간 후에 일어났습니다.

그날 밤 할아버지가 조용히 숨을 거둔 것입니다.


당시 어릴 적에 이 얘기를 들은 저는,

그 의미가 의아하게 생각될 뿐이었습니다. 도무지 아리송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이 얘기 속에는 뭔가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인생은 넉넉해지는 데서 오는 에너지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모자라는 것도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모든 게 만족스럽다면 인생은 기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맥 빠지는 인생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본문 설명

창세기 3장 본문은, 최초의 인간이 받은 유혹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는 순간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창3:6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 욕망을 다 채우려고 하는 탐심!

그게 인간의 발목을 잡아매는 사탄의 유혹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우리의 기도제목은 어떠해야 할까요?

‘다 채우려고 하지 말게 하소서!’


오늘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집시다!

그래서 웬만큼이라도 해결 하십시다!


▲모든 것을 다 채우겠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

우리에게 닥쳐오는 첫 번째 유혹은,

다 채워져야 거기에 비로소 행복이 올 것이라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다 먹게 하셨습니다.

그 얘기는 풍성히, 모자람 없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를 금하시지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만은 따 먹지 말라는 겁니다.


만약 먹을 게 부족한 상태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게 아닙니다.

선악과가 아니더라도 먹을 것은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아마 평생 먹어도 남을 것입니다.


인간은 피조된 존재요, 제한적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런 조치를 취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다 채울 수 없는 부분을 남겨 두셨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받아들이길 원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사탄이 유혹하는 게 무엇입니까?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3:4~5    


오늘 특별히 유의 깊게 봐야 할 말씀은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게 유혹의 근본입니다.

즉 모든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유혹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채우고, 다 누리고, 다 잘 할 수 있다는 유혹인 것입니다.


즉 우리가 못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다 전지전능의 능력자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모든 분야에 다 만족스런 1등이 되고 싶어합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1등만 하고, 톱top만 합니다.

계속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그 상태로 만족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잘 나가고 있지만 그래도 부족한 부분까지 채워서

perfect! 완전한 톱을 이루려고 합니다.

모든 부분에서 다 일등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신처럼 되려고 하는 유혹'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선악과를 따 먹는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다 채워지면.. 삶의 의욕이 상실될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되면 어쩌면 인간은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서.. 삶의 의욕을 상실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아까 그 할아버지처럼 ‘저 그림이 바로 걸려야 되는데, 바로 걸려야 되는데..’

그 소원이 너무 간절하다 보니까 그게 생의 목표가 되다가,

그게 어느 날 이루어지니까.. 갑자기 살 동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 채우시지 않는 겁니다.

10가지 중에 7~8가지를 잘 하고, 1~2가지 못하는 게 있습니까?


그러면 그건 ‘아! 하나님이 나를 제한하라고 그것을 주셨구나!’

그렇게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까지 채우려고 하는 데서.. 인간의 불행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 다 채우려고 하지 말게 하소서!

혹 여러분 중에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10가지 중에 7~8가지가 채워져 있으면 내가 만족하지..

하지만 지금 나는 그게 아니잖아! 10가지 중에 겨우 1~2가지 채워져 있는데...’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량 가운데

1~2가지 정도만 빼 놓고는 다 채워져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두 가지도 시간과의 싸움일 뿐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생 기도해야 할 제목 하나가

‘다 채우려고 하지 말게 하소서!’ 라는 겁니다.


이미 채워질 만큼 채워져 있기 때문에

이 기도를 매일 드려야만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오복을 다 받은 사람이 없다는 옛말도 있듯이, 하나님은 다 안 채우십니다.

제가 아는 어떤 젊은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분은 젊은 나이에 벌써 만 명이 넘어가는 교회를 목회하고 있습니다.

교인들도 모두 목사님을 존경하고 다 하나가 돼서

지금도 그 교회는 부흥에 부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그 목사님과 교회를 보면, 모든 게 만족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어찌 보면 목회자로서 10가지 중 10가지가 다 채워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께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자녀 중 한 명이 심한 뇌성마비를 앓고 있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돌봐 주지 않으면,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을 보면

웃는 한 켠에는 언제나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여러분도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니까 그 목사님은 교회가 아무리 성장한다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우리가 다 채우려는 것은.. 유혹이고/ 욕심이고/ 탐심입니다.

그러니까 “다 채우려고 하지 말게 하소서!” 하는 기도는

기도제목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그 기도를 인생 전체의 마음가짐으로 굳게 다지고

행동으로 실천해야만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우리 각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회가.. 열에 열을 다 잘 할 수 있겠으며,

어떤 사람인들.. 무슨 일이든 다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부족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다른 사람이 부족한 것은 내가 채워주면 됩니다.


우리는 다 제한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서로 동역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담과 하와처럼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다 채울 수 있어, 나도 신처럼 될 수 있어, 더 뛰고 더 열심히 노력해보자!’ 

이것은 명백한 사탄의 유혹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담과 하와의 경우에서 보듯,

슬픈 역사를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농구의 황제로 불리던 마이클 조던이, 농구 황제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느 날 야구선수로 신분을 바꾸었습니다. 결국 창피만 당하고 물러났습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 톱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 분야에 만족하고 살아야 합니다.


▲제가 장시간 비행기를 탈 때, 최인호 씨의 소설「상도」5권을 읽어보았습니다.

소설「상도商道」는 거상巨商 임상옥의 얘기입니다.

그는 단순히 장사치가 아니라, 뭔가 나름대로의 인생철학이 있었습니다. 

임상옥은 장사를 하러 다니면서도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계영배(戒盈杯)였습니다.


‘계’는 조심한다는 뜻이고, ‘영’은 가득 차다는 뜻입니다. ‘배’는 잔이지요.

그래서 계영배란..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잔’이 됩니다.

그것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뜻일까요?

늘 그 잔을 보면서 임상옥은 다짐하지 않았겠습니까?


‘나는 가득 채우지 않겠다.

혹 내 평생 가득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나는 그렇게 채우는 것을 경계하고 또 경계하겠다’  그 얘기 입니다.


그렇습니다! 뭐든지 약간 부족한 게 좋습니다.

좀 모자라게 살면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사는 게

하나님 자녀다운 모습입니다.


▲사람 사는 원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현대의 시스템은 참 위태롭습니다.  

최근에 어떤 재벌 그룹이 동네의 슈퍼마켓 정도에서 할 사업까지

뛰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할 게 있고, 하지 말아야 될 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싹쓸이를 하겠다는 것은 정말 천박한 짓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승자라도 흘리는 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레위기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잖아요?

추수할 때 주인은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지는 말라는 거예요.

또 포도처럼 열매 나무라면 그것을 다 따지는 말라고 하세요. 

왜요?


귀퉁이와 떨어진 이삭, 그리고 떨어진 열매 같은 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타향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라는 거지요.


그게 성경의 일관된 정신입니다.

10가지 다 가질 수 있지만, 한 가지 정도는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가지지 못한 한 가지는

인생을 불행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풍요롭게 하는 조건이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게 다 들어오면

그때는 아까 그 할아버지처럼 죽는 수순 밖에는 없습니다.

일의 모든 원리가 다 그렇습니다.


냉장고도 70~80 % 정도 채울 때 냉장효과가 가장 좋고,

우리 위장도 2/3 쯤 채웠을 때 가장 쾌적한 법이고,

우리 생활도 뭔가 부족한 게 있어야.. 그게 삶에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뭔가 욕심을 가지고 추구하면.. 그 일은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마음을 비우고 ‘그거 없어도 살아’

이렇게 집착을 버리면.. 의외로 쉽게 다가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안 먹어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마저 따 먹었을 때.. 인생은 소용돌이친 것입니다.


집착을 버리십시오!

다 채우려는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부족한 게 오히려 넉넉함의 조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에게도 이 계영배가 있었습니다.

정말 사도 바울만큼 은사와 능력을 많이 받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받은 김에, 더 받으려고 했던 거 아닙니까?


‘한 가지 더, 제발 제 몸에 가시.. 그거 하나만 더 해결해 주세요.

그러면 아무 것도 바라는 것 없이 복음만 전할게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만큼은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에 사도 바울도 그 뜻을 깨닫지요.

고후12:7에 그 내용이 나와 있는데, 같이 읽어 보실까요?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에게 있었던 육체의 가시 한 가지는,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더 하나님과 가깝게 했던 계영배였던 것입니다.  

       

▲우리 평생의 유혹은.. 다 채우려는 유혹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평생 다 채우려고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용쓴다 해도.. 우리는 부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방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8~90 % 채워지면 거기서 머무르고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채워짐은 거기까지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만족하고 감사하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족한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우리에게는 최선입니다.


선악과까지 따 먹으려고 탐내지 마십시오!

선악과는 그대로 두는 것이 복입니다. 


탐욕에 대한 집착을 버리시고,

일평생 ‘다 채우려는 마음을 진실로 내려놓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몸매도.. 너무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요즘은 얼짱, 몸짱, S라인.. 이런 말이 유행하면서

너도 나도 얼굴이나 몸매를 완벽하게 가꾸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필요 이상의 시간과 정력을 거기에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같으면 생각도 못 할 일들을, 지금 꿈꾸거나 행하고 있습니다.

못 나면 못 난대로 살아야 되는데.. ‘성형 수술하면 되지’ 합니다.

살을 빼려면 운동해서 뺄 생각을 해야 하는데.. ‘지방흡입수술 하면 되지’ 그럽니다.


사실은 보이고 싶은 것일수록, 자랑하고 싶은 것일수록 감추는 게 아름답습니다.

보이는 것을 맘껏 보이고 자랑하고, 싶은 것을 맘껏 자랑하면

그건 망하는 수순일수도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압살롬의 자랑은 길고 윤기 나는 머리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에 그 머리털이 나무에 걸리는 바람에 정말 웃기게 죽었습니다.

그래서 매력은.. 보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감추는 데 있다는 건 정말 사실입니다.


목회를 오래 하신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또 제 개인적인 목회 경험을 종합해 보면 참 이상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얼굴 예쁜 자매들의 얘긴데요.

예쁜 자매들은 (행복할 것 같지만) 시험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그렇게 예쁘면, 대체로 하나님이 총명함까지는 같이 안 주세요.

그래서 판단력이 흐립니다. (물론 예외도 입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남자를 만나도.. 좀 아니다 싶은 사람을 만납니다.

좀 못 생겼으면 신중하기라도 할 텐데,

자기가 예쁘다 보니까.. 그냥 주변에서 꼬시는 남자 중에

덜컥 만나서 사귀고.. 어찌 어찌 결혼을 하는 겁니다.


오래 못 가더라고요.

그래서 일찍 가정이 깨지는 것을 봅니다.

어린 나이에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거지요.  


그런 현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아세요?

‘아! 저 자매가 여성적인 매력이 덜 했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

저 자매가 조금만 덜 예뻤다면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텐데...’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겁니다.


▲마치는 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선악과!

그래서 동산의 모든 실과를 다 갖고도, 그 없는 한 개까지 더 채우려는 욕망!

이것은 앞으로도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할 것입니다.

성령께 의지하고 기도하시면서 이겨 나가십시다.


다 채우려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좀 부족함이 있는 인생을 사랑하시는 성도가 되십시다.                   ▣ 삶의 통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