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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열정 2111

LNCK 2009. 10. 1. 22:13

◈비전, 열정                        고후11:23~27                        09.08.02.인터넷 설교중 일부 스크랩



◑신경림 목사님이 말하는 ‘비전’     


우리는..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을 비전이라고 부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당신의 계획’을 비전이라고 여기십니다.


▲미국 워싱턴의 웨슬리 신학대학 부총장이신 신경림 女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이, 남편 목사님을 따라서 처음 미국으로 건너 온 자기 상황을 가리켜서

'쓰리 스트라잌' 이라고 표현 하시더군요. 야구에서 3 strike 이면 아웃이지요?


‘3 스트라이크’란

-영어도 한 마디도 못하고,

-여자에다가,

-그래서 미국에서 아무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한국만 그런지 알았더니, 1970년대 당시엔 미국에서도

여성이라는 벽이 꽤 높았다고 합니다.

남편의 공부를 돕기 위해, 자신은 접시를 닦으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 분의 어머니는, 그 분을 임신했을 때부터, 태 속의 아기를 목회자로서 서원을 했다는데

낳고 보니 여자여서 여간 실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미국 생활을 하는 중에

정식 학생도 아닌 자기에게, 청강의 기회가 주어지고

어찌 어찌 신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나중에 '조건부 정식 학생'이 되면서 겨우 졸업하는 등,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그리고 그 주州에서는 처음으로, (감리교) 여성 목사로서 안수를 받게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미국 교회의 담임으로 가셨는데

거기서도 생각지 않은 일들이 벌어져,

거의 문 닫기 직전의 교회를 회복시키고

젊은이들의 교회로 바꾸는 데 성공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남편 목사님의 임지를 따라, 시골에서 수도 워싱턴으로 이사를 하고,

거기 있는 웨슬리 신학대학의 학생으로 석사와 박사 코스를 마치는 기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웨슬리 신학대학의 부총장 자리가 공석이 되었을 때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이 신경림 목사님이, 타인의 천거로 인터뷰를 하게 됐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총장 후보 원서를 제출해 놨던 겁니다.


너무나 말이 안 되는 얘기라 장난삼아 면접을 봤는데,

놀랍게도 55명의 다른 후보를 제치고, 여성으로서, 그것도 외국인으로서,

더더욱 (박사과정?) 학생신분이었던 신 목사님이 부총장으로 선출되셨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분이 하신 일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세계를 다니면서 목회자가 꼭 필요한 대륙과 오지를 찾아서

신학교를 세우시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지명도로나 그 업무로 보나

남편 목사님보다 훨씬 더 바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겁니다.


이제는 미국의 다른 유수한 대학에서도 총장으로 오라고

러브 콜이 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는 웨슬리 신학대학에 너무 많은 사랑의 빚을 져서

거기서 더 일해야 한다면서 사양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 감리교회에서는 이 분을 모시고 설교와 강의를 들으려고 애쓰는 교회가

한 두 교회가 아닙니다.


▲제가 이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분의 삶에도 큰 은혜를 받았지만

더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은, ‘비전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였습니다.

이 분이 설교 말미에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자기는, 흔히들 말하는 비전이란 게, 자기에게 아무 것도 없었답니다.

만약 있었다면, 단지 목회자 아내로서 남편을 잘 내조하고

어머니로서 두 아이를 잘 돌보는 거였다고 합니다.


그 외에는 생각도 못한 이유가, 좀 전에 말씀드린 3strikes 상태,

즉 뭘 할래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더 이상 여지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자기 어머니가 그토록 바랬던 목사도 됐고,

영어 하나 못하는 여자가 현지 교회의 담임자가 되기도 했고,

더욱이 학생신분으로 부총장까지 되는,

그야말로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전을 이루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지금 이렇게 된 것은

자기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이었다는 겁니다.


즉 자기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던져져서

그것을 극복하려 애 쓰고 또 애 쓴 것이

알고 보니 하나님이 계획이었고

하나님이 그 목사님에게 바란 비전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자신의 비전을 너무나 분명하게 계획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계획이 너무나 분명하면

하나님이 개입하실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비전이란.. 내가 만들어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 가는 게 진짜더라는 겁니다.


그 분이 한 번은 미국 생활이 너무나 힘들어서 울면서

“하나님! 저 어쩌면 좋아요? 이제는 제가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그렇게 통곡을 했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괜찮다 얘야! 네가 길을 잃어버렸어도 나는 네 위치를 알고 있단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려므나!”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동안 우리가 원하는 비전만 추구했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비전은 별로 고려하지 않아 왔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누가 봐도 우리의 되어진 모든 일이 하나님이 친히 하셨다는 증거가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게 비전이고 그게 향기 나는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비전은 어제 속에 있지도 않고, 내일 속에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날에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을 몸서리치도록 치열하게 살아야

그 오늘의 이어짐으로.. 비전은 열매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계획하심 따라

자신의 삶에 깊이 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꿈꿨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전을 이룬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열정


▲1. 열정에는 고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정이란 타오르는 듯한 세찬 감정입니다.

무엇을 하든 그런 마음으로 해야 뭔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열정의 영어 단어인 ‘passion’ 에는 열정이란 뜻 외에

전혀 다른 또 한 가지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은 수난, 고통, 질고입니다.


왜 열정이란 단어를 고통과 동의어로 썼을까요?

왜 열정과 고난은 같은 단어이겠습니까?

알고 보면 열정은 반드시 고난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즉 고난을 제껴논 열정은.. 허수아비 같은 것이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사도바울의 사례만 봐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을 통해서 자신이 고백한 것처럼,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 번 옥에 갇혔습니다.

매도 수없이 맞았는데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았고, 한 번 돌로 맞았습니다... (중략)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며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런 무수한 고백들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렇게 숱한 고난을 당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 세계를 뒤덮으려는 열정에서 나온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그의 열정이란 ‘열정=고난’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열정은 있는데 고난은 싫다구요?

그건 기름 떨어진 자동차처럼 아무 것도 아닙니다.

워낙에 열정은 전염성이 강한데, 고난이 빠진 열정은 결코 전염되지 않습니다.

영향력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열정은 고난을 감수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더 필요한데요... ↓


▲2. 열정은.. 평범함을 마스터한 끝에 오는 특수함


예수님도 30년 동안은 여느 인생처럼 사셨습니다.

목수라는 생업을 가지셨고, 동생들과 어머니를 부양했으며,

동네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일을 하셨으며, 울고 웃고 분노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공부했고, 로마 시민으로 살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며,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도 열심이었습니다.

 

어쨌든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러나 열심히 일상을 사셨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지금 우리가 아는 진짜 예수님, 사도바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열정이란, 평범함을 마스터한 끝에 오는 특수함이라는 겁니다.


▲열정은 특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특별함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지루하고도 짜증나는 평범함을 통과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평범함을 무시하고, 왜 그런 평범함을 거치려 하지 않고,

자신이 특별해 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까?


새 별을 발견해서 그 별에다 자기 이름을 붙이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선 밤하늘에 떠 있는 모든 별들을 다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남들과 다르게 연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사람의 연주를 다 들어봐야 되지 않겠어요?

재미없고 지루하고 짜증나지만 그 일을 거쳐야만

자기만의 연주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설교를 준비할 때도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로운 관점을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영감을 얻는 일도 아니고,

기억의 저편 속에 있는 예화를 끌어내는 일도 아닙니다.


이미 예상이 되고, 읽어봐야 뻔한 문서들과 자료들 수백 페이지를 읽고 검토하는

그 평범한 시간들을 견디는 게 가장 힘듭니다.


열정은 특별해야만 의미가 있고

그 특별함은 평범함이란 긴 터널을 통과할 때만이 보이는 법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열정은 비로소 뭔가를 창조해 내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무엇이든 현재/오늘 열심히 성실하게 하십시오!

비전을 따른다고 하면서, 현재에 게으른 사람은.. 비전 아닙니다.

비전을 미래에서 현재로 끌어오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열정엔 고난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과

평범함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 또한 잊지 마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여러분의 열정은 날개를 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주의 종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 꿈, 비전, 소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