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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안에 좌절이 없다 2109

LNCK 2009. 9. 30. 21:28

◈예수 그리스도 안에 좌절이 없다                   행13:42~52                 09.08.30.설교스크랩


 

▲도입 일화 : 오늘의 고난은 내일의 간증이 된다.

지난 목요일, 오랜만에 친구 목사를 만났습니다.

5년 전에 교회를 개척하고, 100명이 넘게 모이는 부흥을 주셨는데,

교회가 세 들어 있는 건물이 부도가 나서 경매에 들어갔는데,

유찰이 계속되다가 전세 보증금도 받지 못할 형편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대책 없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 목사님 마음은 얼마나 상심될까... 안타까웠습니다.


그 때 나도 모르게 불쑥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목사, 오늘은 이런 절망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만

5년이나 10년 뒤에는 이 일이 반드시 큰 간증 거리가 될 거야!”


그런데 제가 말을 해놓고도 ‘내가 어떻게 이렇게 담대하게 말을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주님이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이 하셨다고 생각되는 것이,

그 말 한 마디에 그 목사님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렇지? 유목사, 이 일이 분명히 간증거리가 되겠지?”


어떤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생각만 하면 좌절만 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그 어려움이 큰 간증 거리가 될 것이란 믿음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우리를 낙심하지 않게 하시는 분임을.. 그 때 놀랍게 경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말씀대로 살아가더라도,

좌절의 순간이 수없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낙심과 좌절에서 건져내십니다.


여러분 중에도 기가 막힌 어려움, 좌절에 빠지신 분이 혹시 있다면

여러분도 동일하게 얼마 가지 않아서.. 이 일이 큰 간증 거리가 될 것입니다.

오늘 주신 설교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본문 설명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말씀으로 인한 부흥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가면서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고 했습니다. 13:42


여러분, 설교를 듣고, 같은 설교를 또(or 더) 해달라고 해 본 적이 있었습니까?

사도바울이 전하는 말씀에 얼마나 은혜가 되었으면 그러했겠습니까?

그리고 모임이 끝난 후에 집에 가지 않고 남아서, 바울을 따라 다녔다고 했습니다. 13:43


여러분도 그럴 때가 있지요?

집회 후에 설교자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어서 기다려 본 적이 있었습니까?

은혜가 되니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안식일에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했습니다. 13:44

그다음 안식일에 바울이 말씀을 전하려고 갔는데, 그 도시의 사람이 거의 다 모였다니..

그 날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자기 집에 돌아가서

가족과 이웃 사람들에게 얼마나 꼭 말씀을 들으러 오라고 전했는가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지간하면 오라고 한다고 또 옵니까?

그런데 비시디아 안디옥 시민들이 거의 다 모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3장의 본문 말씀에 보면,

병자를 고쳤다거나 귀신을 내좇았다는 이적을 행하는 일이 없이,

오직 복음만 전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대단한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울의 복음 증거에 성령님이 크게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뜻밖에도, 잘 되고 있는데.. 쫓겨나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렇게 부흥이 일어나고, 말씀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 일행이 거의 쫓겨나다시피 떠난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 일행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이유는, 유대인(지도자)들이, 바울 일행을 시기하여,

처음에는 비방의 말을 하다가,  13:45

결국에는 그 지역 집권자들을 충동하여 쫓아내게 한 것입니다. 13:50


그러니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나가게 된 사도바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 뭐 하십니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는 계신가요?”

할만도 하지 않습니까? 

못된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나님께 원망이 나올 법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니 참 신기한 말씀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13:52



◑해석


▲쫓겨나면서도, 불평이 아니라,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다니요?

지금 되어지는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전도하다가 말씀의 역사가 그 도시에 강하게 일어났는데

그 지역 집권자들에게 쫓거나가는 제자들 마음에,

불평 원망이 아니라, 기쁨이 충만했다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오늘 성령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동일한 역사를 경험하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도 그 일을 당하고, 처음에는 답답했을 것입니다.

말씀의 역사는 일어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놀랍게 일어나는데

핍박이 오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내쫓길 형편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주님,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이 낙심 중에 주님을 바라보다가.. 해답을 얻었습니다.

‘아, 이렇게 되어 있었던 것이었구나.

이것이 복음의 장벽이 되고 훼방이 된 것이 아니고

또 하나님이 이렇게 되도록 만드신 일이었구나.’ 하는 을 얻고 나니까

오히려 기뻤던 것입니다.


▲그 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 이방인에게로 향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사49:6)’ 하니   13:46~47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실 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셨던 것을 기억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예수를 믿을 것 같은 유대인은.. 바울을 핍박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복음의 열매가 풍성히 맺힌 것입니다.


환란을 당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핍박이 일어나서

왕성한 전도 역사가 일어나는데도 쫓겨나가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끝까지 가게 하리라. 이사야49:6


‘아, 그렇구나, 내가 지금 복음을 전하다가 여기서 좌절을 당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나를 빨리 이방인에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구나. 할렐루야!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됐단 말입니다.


뜻밖에도 이방인들이 복음을 환영했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13:48~49



◑적 용


▲1. 좌절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오히려 기뻐합시다!

그렇습니다. 유대인의 핍박은 복음 전파의 좌절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안 좋은 것을, 허락하실 리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나게 된 것을

이제 다른 곳에 가서 전할 때가 되었다는 싸인으로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이것을 깨닫게 하시니

좌절이 될 상황에서도 기쁨이 충만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어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오늘 바울 일행처럼 반드시 좌절에서 다시 일어나서

기쁨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교우들에게 하나님이 보이시려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2.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환란과 핍박이 있어도 반드시 기쁨을 주십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살전1:6

 

환란이 있어도, 성령의 기쁨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핍박이 있어도, 주의 말씀의 놀라운 은혜/위로가.. 우리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건강 때문에/ 또는 재물의 문제로/ 인간관계로 인해서/ 불의의 사고로

혹시 기가 막힌 어려움이 있어 실족하고, 낙심하고, 좌절한 분이 있으시다면

오늘 예수님을 더욱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어떤 일도 그 속에 기쁨을 발견하게 되고

그 어떤 사람도 다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3. 낙심될 때..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좌절에서 이겼습니까?

주님의 말씀(이사야49:6)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주님 말씀에 비추어 보니, 유대인의 핍박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습니다.

“이방인에게로 가라는 것이구나!”


좌절과 낙심이 올 때, 우리는 더욱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무덤에 묻혔을 때,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다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제 끝났다.’


예수님이 무덤에 묻혔을 때

여인들이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 시신에 발라드리려고 갔습니다.

그들 마음속에는 슬픔, 낙심, 좌절로 꽉 찼습니다.

그 때 천사들이 나타나서 여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눅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제발 좀 슬퍼하지만 말고 놀라지도 말고,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한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너 왜 그렇게 낙심 가운데 있니? 너 왜 그렇게 좌절하고 있니?

내 말 좀 기억해 봐!’

예수님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주님이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문제 있는 사람들 속에서도, 발견되어지는 하나님의 섭리

지난 안식월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분명히 주신 말씀이

<선한목자 교회가 교인 수나 건물 크기로 소문난 교회가 아니라,

‘사랑으로 소문난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멘’ 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 목적이 달라지자, 사람들이 달라 보이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사랑이 안 되는 사람, 부흥에 걸림돌 되는 사람이

이제는 너무나 귀한 존재로 부각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시려고, 제게 붙여주신 사람들로 보이는 것입니다. 


전에는 ‘선한목자 교회가 교인도 많고/예배당도 크고/부흥되는 교회로 소문나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마음 한쪽에 있다 보니까.. 대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구분이 되었습니다.

-교회 부흥에 큰 도움이 될 좋은 사람,

-교회 부흥에 문제가 있는, 걸림돌이 될 사람... 이렇게 이분법으로 딱 구분이 되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랑으로 소문 난 교회'를 세우리라는 교회 목표가 정해지고 나니까

문제가 많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가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변화되어야.. 사랑으로 소문날 것 아닙니까?

문제가 하나도 없는 사람끼리 모이면 사랑으로 소문날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랑으로 소문 날 거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문제 많은 사람도.. 다 하나님의 계획이더라는 것입니다.


▲일화 : 사기꾼 같은 형을 주신 섭리를 발견한, 동생 목회자

어떤 목사님에게 형이 한 분 계신데, 아버지의 유산을 나눌 때

“저는 목사가 될 사람이니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형이 다 가지세요.”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래도 되겠느냐?” 하며 두말도 않고 재산을 다 가지더랍니다.


또 그 목사님의 결혼식 때, 형이 축의금을 접수했는데,

그 축의금을 챙겨가지고 도망가 버려서,

하객들을 대접했던 갈비탕 집 주인의 손에 붙잡혀,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답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지만, 그런 형이 있다면 어찌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그 형 때문에 자기는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별의 별 사람을 다 만나는데,

그것 때문에 혈기내고 실수하고 좌절할 뻔 하였지만.. 자기가 다 이겨냈답니다.


‘그래도 우리 형보다는 낫다.’

이런 생각이 드니.. 용납 못할 사람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목회가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무슨 어려운 환경을 당하시더라도,

그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일행처럼, 복음 잘 전하다가 쫓겨나도, 더욱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행13:52


.................................. 더 읽으실 분, 관련 예화 ................................


D. L. 무디(1805-1898)는

‘인간은 깨진 그릇과 같으므로, 계속 충만하게 되는 방법은

물이 쏟아지는 수돗물 아래, 그 깨진 그릇을 갖다 놓는 방법 밖에는 없다.’

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정말 깨진 그릇과 같습니다.

목사도, 장로도, 다 깨진 그릇인 것은 똑같습니다.

그래서 한번 성령으로 충만해졌다고 해서, 그 충만함이 계속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계속 수돗물 아래로, 그 깨진 그릇을 갖다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목회자 사모님이 40세에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모님은 그만 낙심하고 절망했습니다. 남편 목사가 미웠습니다.

‘남편 때문에 내가 병이 났어! 개척 한다고 고생만 시키더니 내가 이렇게 된 거야!’


어느 날, 한 목사님이 찾아오셨는데, 사모님의 낙심된 마음을 느꼈습니다.

그 목사님은 며칠 후에 다시 찾아오셔서, 노트를 한 권 꺼내주시면서

“사모님, 감사 거리를 찾아 적어보세요.” 하시더랍니다.


그 목사님이 앞에서는 “예.”하고 받았지만 속에서는 불같이 화가 나더랍니다.

‘내가 이 꼴이 되어서 감사 거리가 어디 있어? 뭘 적으라는 거야?’


그리고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믿져야 본전이니) 감사 거리를 한번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내 육신은 죽어가지만 내 영이 구원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을 옷을 입히지는 못하지만

공부도 잘하고 부모 말 잘 듣고 순종하는 것을 생각할 때

이런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거리가 생겼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남편 때문에 속상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남편이 좀 고지식한 것 말고는 이런 남편도 없다 생각하니.. 남편도 감사 거리였습니다.

처음에는 감사 거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감사 거리를 적다보니 노트 한 권이 부족하더랍니다,

그러면서 회개가 터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불평하고 원망했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회개를 하면서 사모님의 마음속에 성령이 기름 부어졌습니다.

기도 문이 열리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암이 치유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 고난의 신학, 영광의 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