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을 인하여 삼하9:1~13 09.09.04.설교녹취
오늘 저는, 제 생애를 움직인 가장 귀중한 본문을 여러분과 나누기 원한다.
이 본문은, 다윗이 ‘자기에게 껄끄러운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데...
▲문제 제기 : 선교지 선교사들의 공통적인 숙제는 ‘사랑’
‘사랑’은 국내 교회에서도 큰 문제이지만,
선교지의 선교사들에게서도 가장 큰 숙제이다.
선교사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한 마디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현지인 제자에게 배신당해서 무척 아팠다’는 고백이었다.
심지어는 ‘그 나라의 교단, 교회, 목회자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인도, 인도네시아 등 거의 세계 모든 지역에서
수고하는 우리 선교사들의 공통적인 고백은
‘현지 교인이나, 현지 교회로부터 배신당하고, 고발을 당해서
건물이나 토지를 어쩔 수없이 빼앗겼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무척 힘겹다’는 고백들이었다.
이런 원수들은, 사실은 우리 공동체 안에도 얼마든지 있다.
주님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지만, 그게 말은 쉬운데,
사실 눈앞에 보이는 ‘원수 같은 형제’를 사랑하기란... 정말 어렵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다윗으로부터, 어떤 대인관계법/해법을 배울 수 있는데...
◑본문 설명
▲요나단이 생각나다
성경에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참으로 특별했다.
그런데 요나단이 전장에 나가서 죽고, 다윗은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한다. 삼하1장
사무엘하1~8장까지는, 왕이 된 다윗이
전쟁에 나가서 승승장구 승리하는 기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삼하9장에 이르러.. 전쟁에서 한 숨 돌리게 된 다윗은
자기를 그토록 아껴주었던 형 요나단을 생각하게 된다. *형: 삼하1:26
그러면서 두 사람이 예전에 맺은 언약을.. 다윗이 기억해냈다.
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자손 대에까지 이르게 하자는 언약이었다. 삼상18:3, 20:14~17,
▲그래서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을 생각해서, 요나단의 후손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사울 집안의 종 시바가 나타나서
요나단에게 므비보셋이란 아들이 살아 있는데,
마길이란 사람 집에 빌붙어 살고 있다는 보고를 한다. 삼하9:4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서 볼 점은,
시바가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그가 ‘절뚝발이니이다’라는 말이다.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삼하9:3
▲다윗 왕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파격적인 은총을 베푼다.
9:7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9 왕이 사울의 사환 시바를 불러서 이르되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라 하니라
11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삼하9:7~11
◑관찰
▲므비보셋 사건이, 너무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이 삼하9:1~13절까지, 삼하9장 전체에 너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냥 ‘다윗은 의리가 있었다. 그래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재산을 다 찾아주었더라’
라고 하면서, 한 두 절로 짧게 끝내도 될 것을,
본문은 13절을 할애해서 아주 자세하고 길게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므비보셋이 다윗의 상에서 먹었다’는 말은 무려 3번이나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무슨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뭔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가르치시고 싶은 교훈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므비보셋은 절뚝발이더라
사무엘하 9장 마지막(13)절은 이렇게 되어있다.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그가 절뚝발이인 것을, 성경은 왜 재차 강조하는 것일까?
왜 (성경에서) 므비보셋에 관한 행적을 시작하면서
(시바는) ‘그가 다리를 절뚝인다’고 특별히 보고했을까? 9:3
왜 므비보셋에 관한 행적을 마감하면서도,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로 끝낼까? 9:13
여기에는 분명한 뜻이 있는데...
◑해석
▲처음에 다윗은, 장애인을 차별한 것처럼 보인다.
구약에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그런 문화가 있었다.
모세오경 등을 통해서
장애인들은 ‘하나님께 천벌을 받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유대인의 한 사람인 다윗도, 그런 ‘장애인 멸시’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장애인을 미워하게 된 또 한 가지 결정적 이유가 성경에 나온다.
▲다윗 왕이 여부스 족속과 전쟁할 때였다.
예루살렘은 고지라서, 천연요새와도 같았다.
그래서 그 안에 살던 여부스 족속을 (아마 여호수아 때부터) 쉽게 정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옛날 전쟁에 보면, 보통 먼저 설전舌戰을 시작하는데
말로써 서로 시비를 거는데,
여부스 사람들이 높은 데서 내려다보니
이스라엘 군대가 우습게 보였고, 특히 다윗 왕은 예쁘장하게 생겨서 그런지
아주 농락하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라는 말이었다.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저희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삼하5:6
이 말이 다윗의 자존심을 굉장히 건드린 모양이었다.
당시에는 장애인을 멸시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래서 아마 최고의 욕으로 들렸을 것이다.
다윗이 애들 말로 ‘뚜껑이 열렸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예루살렘을 점령하러 올라가라. 가거든 먼저 소경과 절뚝발이부터 죽여라!’
그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삼하5:8
이 말은 다윗의 실언이다.
전쟁에서, 불쌍한 소경과 절뚝발이를 살려주어야지,
그것도 먼저 죽이라는 것은.. 명백한 다윗의 잘못이다.
다윗이 이렇게 실언을 할 정도로.. 약이 머리끝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당시 사람들에게 쇼크를 주었든지.. 이스라엘에 속담이 되어버렸다.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삼하5:8
여러분, 다윗도 일반 이스라엘 사람 중에 한 사람인지라
그들의 문화적 배경에서 나오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잖아 깔려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여부스 족속으로부터, ‘너는 장애인보다 못하다’는 모욕을 들었을 때,
다윗은 (그래서는 안 되지만) 당시에 여부스 부족의 ‘소경과 절뚝발이’를
매우 미워하고 노여워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 본때를 보여주는 심정으로, 그들을 학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뭐, 내가 소경과 절뚝발이보다도 못 하다고? 그래 한 번 맛 좀 봐라’
그래서 이스라엘에 속담이 생길 정도로.. ‘그들을 집에 들이면 안 돼! 그러면 혼 나!’
할 정도로 다윗이 심하게 화를 냈던 것 같다.
(※‘소경’ ‘절뚝발이’ 대신에 ‘시각장애우’ ‘지체 장애우’ 이렇게 써야 하지만,
그냥 이해하기 쉽게 성경에 나온 대로 쓰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사무엘하 9장>에 이르러, 이 (장애우 차별) 속담을 다윗이 스스로 깬다.
이런 앞선 상황과 배경을 이해하면,
시바가 므비보셋에 대해 설명할 때,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삼하9:3
라고 주저하면서 말한 것이.. 이해된다.
당시 속담에도 그렇고,
다윗이 일시적으로 흥분한 것 때문에도 그렇고,
세간에는 ‘다윗이 소경과 절뚝발이를 아주 혐오한다’라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시바가 조심조심 ‘그가 절뚝발이라고’ 아뢴 것이다.
▲다윗은 특별히 절뚝발이 므비보셋을 자기 식탁으로 초대했다.
그래서 삼하9장에, 므비보셋이 절뚝발이라는 말이 처음과 끝에 2번,
므비보셋이 다윗의 상에서 먹었다는 말이 3번이나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다윗은 어쩌면 스스로
‘밥맛 떨어지는 사람’과 같이 하루 3번, 그것도 매일같이 식사한 것이다.
저는 여기서 다윗의 인품을 배운다.
자기가 아무리 싫은 부류의 사람이라도,
그는 기꺼이 식사를 같이 했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삼하5:8절에서는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 라고 했다.
어쨌거나 다윗은.. 절뚝발이를 미워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다윗은, 절뚝발이인 므비보셋을 항상 자기 식탁으로 초청했다.
이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삼하9장은, 므비보셋 사건을 자세하고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고 본다.
◑적용
▲요나단을 인하여
다윗이 그렇게 자기 성향이나 기호를 무시하고
므비보셋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요나단을 인하여/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였다.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삼하9:1
여기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을 발견하게 된다.
다윗은.. 자기와 언약을 맺은 <요나단을 인하여>
자기 개인적으로 그토록 싫어하고 혐오하는 절뚝발이를 사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과 언약을 맺은 성도들이다.
그 <예수님을 인하여>
그 예수님의 사랑하는 자녀 된 사람.. (요나단의 자녀 된 절뚝발이 므비보셋 같은 사람)
그가 비록 나에게는 원수/혐오자/기피하고 싶은 인물이지만
내가 그를 사랑할 수 있고, 함께 식사도 먹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요나단을 인하여, 즉 예수님을 인하여... 그렇다.
▲조금 다른 각도로 봐도 마찬가지다.
다윗 왕은.. 하나님
요나단은.. 예수님
절뚝발이 므비보셋은.. 나이다.
나는 내 죄로 인해,
하나님 보시기에 혐오스런 인물이요, 기피해야 마땅할 인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죄인된 나를.. 주님의 잔치 식탁으로 초대하신다.
한 번만 초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날마다..
은혜의 예배의 자리로.. 언제나 늘 초대하신다.
왜요?
<예수님을 인하여>이다.
예수님과 맺으신 십자가 언약을 인하여
나는 아무 공로 없고, 아무 잘난 것이 없지만
주님 앞으로 나아가, 모든 예수님의 은총을 다 받고, 상속을 다 되찾고,
하나님의 식탁 앞으로 날마다 초대되는 것이다.
▲마치는 말 : 요나단을 인하여
우리 모두에게는 므비보셋과 같은 존재들이 있다.
선교사들에게도 있고, 우리 각자 개인에게도 있다.
정말 죽을 때까지도 안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저 사람 천국에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되는 사람도 있다.
천국에서까지 보기 싫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여러분, ‘요나단(예수님)을 인하여’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식사 같이 앉아서 못 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아직도 용서 못하는 철천지원수’가 만약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요나단(예수님)과 언약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요나단(예수님)이 내게 별로 깊은 관계가 아닌 것이 증명된다.
내 친구 되신 예수님이.. 나와 그리 가까운 친구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저 원수도.. 내게는 여전히 용서할 수 없는 원수가 된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는 말씀이
맞다는 말이다. 요일4:20 ▣ 크리스천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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