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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속에 발견되는 내 모습 2128

LNCK 2009. 10. 13. 18:08

◈요나 속에 발견되는 내 모습                욘4:1~11                   09.05.17.설교스크랩

                                                                                                *원제목 : 해법은 어디에?


커크 더글러스가 주는 삶의 통찰력 - 좌절할수록 남을 돌아보라!


어린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커크 더글러스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버지이지요.


아마 30대 이상은.. 커크 더글러스의 영화를 한 두 편은 봤을 겁니다.

‘OK 목장의 결투’라든가 ‘스팔타쿠스’ 등

총 83편의 영화에 출연한 미국의 대표적 배우입니다.


그가 올해 92세가 됐는데, 이 분이 자기 얘기를 쓴

「시련은 곧 희망입니다」My Stroke of Luck 라는 책을 냈습니다.       


▲95년도엔가.. 그가 흔히 ‘중풍’이라고 부르는 뇌졸증에 걸리게 되지요.

이 책은 거기에 대한 투병기입니다.


그는 온 몸이 마비가 돼서, 꼼짝달싹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서, 병원의 환자와 똑같은 투병생활을 시작하지요.


사람들에게 늘 주목을 받던 사람이라.. 그런 비참한 상태를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권총자살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맙니다.

방아쇠를 당기려고 해도.. 손가락이 완전히 구부려주질 않는 겁니다.


그래서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 준 것은, 그가 기르던 강아지였답니다.


강아지를 길러보신 분은 잘 아실 텐데,

강아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이루어질 때까지.. 주인에게 요구를 합니다.


밖에 나가고 싶으면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문 열어 달라고 계속 문을 박박 긁습니다.


그리고 ‘제발 한 번 안아 주세요!’ 하면서 침대에 두 발을 걸쳐 놓고

끝까지 기다립니다.


한 10분 정도만 그렇게 버티면.. 아무리 강심장 주인이라도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정말 그런 애완견을 보면 ‘강청하는 기도’가 어떤 건지 배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커크 더글러스가 자기 개에게서 그런 모습을 봤던가 봅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그래, 내가 아무리 몸이 마비가 됐어도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그러면서 (전동 휠체어를 움직여 가서) 자기 강아지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강아지를 안아주는 일을 했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뭐냐고요?

‘모든 생명체는 도움이 필요한 거구나’ 하는 것이었답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돕고 섬기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고 합니다.


그 후에 커크 더글러스는 기적적으로 치유가 되지요.

(중풍에서 아주 조금씩 회복되어, 나중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영화에도 출연합니다.


▲그가 그렇게 투병생활을 정리하면서

‘병과 싸워 이기는 법’을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해 준 게 있습니다.


①첫째는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지금도 안 좋지만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하고 있는 게

도움이 되더라는 겁니다.


②둘째는,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하는 것이고,


③셋째는 ‘유머 감각을 잃지 말라’ 라는 것이고


④넷째가 가장 강력한 메시지인데 - 바로 강아지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좌절을 이겨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유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어떤 암환자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비슷한 얘깁니다.

흔히 말하는 강남의 잘 나가는 부인이었는데,

암 선고를 받고 암 병동에 가 보니, 자기보다 더한 사람이 많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을 돕다 보니까.. 자기 병은 호전이 되더라는 겁니다.

조금 지나니까 암세포가 점점 다 사라져 버리더라는 겁니다.


그 부인은 삶의 의미를 새로 깨닫고

지금도 암 병동에서 계속 환자들을 돌보고 있답니다.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가 배우는 게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뇌졸증이나 암을 앓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에게도 막아내기 힘든 난관이 올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할 일은 나 자신에게 집중할 게 아니라

방향을 바꿔서 더 많이 섬기는 자리로 가면

대부분의 문제는 호전된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나쁘다 해서 나 자신에 몰입하게 되면

나아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깊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나 - 자기 문제에만 깊이 침잠하다가 .. 침체에 빠지다.


▲1. 자기 문제에만 몰입해 있는 요나

요나서 4장에서, 요나 선지자의 문제가 뭡니까?

자기 고집을 꺾지 않으니까 깊은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된 겁니다.

하나님이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요나에게 물으시지요?

4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오늘 요나의 문제든/우리 문제든.. 그 모습은 똑같습니다.

자기 세계 속에 꽁꽁 갇히는 것!

그리고 그 문제로 인해 하나님께 불평하고, 대드는 것입니다.

바로 그게 우리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선지자입니다.

자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을 위해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게 사명인데, 그가 사명 따라 살 때는..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기와, 자기 나라만 생각하게 됐을 때,

(박 넝쿨 마른 것으로 불평하고, 니느웨가 망하는 것을 바라며 기다릴 때) 

즉 자기 문제에 몰입하게 됐을 때 

그때부터 깊은 침체가 오기 시작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떤 좌절과 곤경의 순간에 처했을 때,

나 자신에게만 몰입하는 순간.., 우리는 영적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욘4:1절에,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그랬는데, 그 이유가 뭐였습니까?

니느웨가 부흥한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요나는 선지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니느웨 사람들도 구원 받아야 될 대상이라는 것에는 전혀 생각이 못 미칩니다.


오직 요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하나,

니느웨는 망해야지.. 부흥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자기가 죽는 게 낫다는 겁니다.

자기 아집에 빠져 헤어 나올 줄 모릅니다.


그러면서 지금 하나님께 악을 쓰는 것입니다.

오만 불손도 이런 오만 불손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스스로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2. 내게 문제가 생겨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문제가 내 눈에 들어온다.

이런 요나를 우리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시나 잘 보십시오.


요나는 높은 곳에 초막을 짓고 거기 앉아서

니느웨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고 있었습니다.


중동지역이라 뜨거웠겠지요?

하나님이 요나를 시원하게 하시려고 호박넝쿨을 준비하십니다.

그늘이 생기니까 얼마나 좋은지요?

이 일로 요나가 ‘크게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무슨 대단한 게 아니지요?

우리를 인정해주고 격려해 주는 한 마디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모처럼 시험 한 번 잘 보고, 모처럼 연주 한 번 잘 했다 칭찬 받으면

뛸 듯이 기뻐합니다.

그렇게 아주 작은 것에 위로를 얻는 게.. 우리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벌레로 하여금 밤새 그 박넝쿨을 갉아 먹게 하십니다.

요나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그늘은 없어지고

햇볕이 내리쬐는데 얼마나 뜨거운지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 요나가 어떻게 하지요?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가 나으니이다 하니라.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욘4:8~9 


박 넝쿨 하나 있다가 없앴는데 지금 요나는 길길이 뛰는 겁니다.

완전히 이성을 잃었습니다.

자기 문제에 빠져서 다른 문제는 전혀 못 보는 겁니다.


그런 요나를 보시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뭡니까?

요나! 네가 심지도 않고 수고도 하지 않은 이 말라빠진 호박넝쿨 하나도

너에겐 목숨처럼 소중하지? 하물며 이 니느웨에는 12만이라는 인명이 있는데,

내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이겠니? 그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도가 뭘까요? 뭘 교훈하시려는 걸까요?

우리는 내 문제에 대해서는..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에도 그렇게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남들에 대해서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인데도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해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그것보다는 내 옷이나 모자(박넝쿨) 하나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똑같은 ‘요-나!’이지요.


먼 해외가 아니더라도, 가까이 있는 이웃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남이 살든지 죽든지.. 그것에는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 생각 안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우리에게 “너희도 한 번 당해봐라” 하시면서

문제를 주시는 겁니다.


내가 문제를 만나면

비로소 다른 사람의 문제도.. 내 눈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안 보이는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자기가 햇볕에 말라 죽게 된 곤경을 당하면서

비로소 영적 갈증과 곤고함 가운데 죽어가는 니느웨 백성들과

그들을 염려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나만 죽게 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죽게 된 사람들이 이렇게 가득 하구나!’

 

사실 이것은 무서운 얘깁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 배려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고통당하는 게 어떤 건가를.. 깨닫게 하신다는 겁니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외아들을 잃고 수기를 썼는데,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그것들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그 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나는 철저히 무관심했습니다.

최소한 의식적으로 남에게 악을 행한 적이 없다는 자신감이

내가 하나님께 겁 없이 당당하게 대들 수 있는 유일한 도덕적 근거였습니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 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명료하게 깨달았습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지 더 이상 말씀 안 드려도 알 것입니다.

결국 요나의 문제나, 박완서 선생의 문제나, 우리 문제의 해법은 다 똑같습니다.

방향을 나에게서 외부로 돌리는 겁니다.

하나님과 이웃 쪽으로 방향전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C.S 루이스가 쓴 ‘스크류테이프의 편지’ 책에 보면 이 사실이 더 명확해 집니다.

(이 책은 마귀들이 자기들끼리 나눈 얘기를, 우화처럼 그려 놓은 책입니다.)


마귀 대장이 신출내기 마귀에게 크리스천을 넘어뜨리는 방법을 말해 주는데,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자기 내면의 세계에 몰입하게 해라,

자기 문제에만 집중하게 해라, 그러면 그들은 영락없이 시험에 빠질 거다’

하는 얘깁니다.


요나가 정말 하나님을 경배의 대상으로 믿고, 이웃을 사랑하는 대상으로 삼고,

선지자로서의 자신을 깨달았다면.. 그는 니느웨 사람들의 아픔을 생각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했다면

오늘 같은 영적 침체는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요나는

자기 자신의 이 모든 과오들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많은 말씀을 나누었지만 내용은 간단합니다.

고난이 오고 난관이 올 때마다

그 해법은 자기 자신에 집중할 게 아니라

역으로 외부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움 당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섬길 때

바로 그것이 치유책이 된다는 것입니다.


▲적용 및 마치는 말

 

①요즘 우리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렵습니다.

해법은.. 외부로 방향을 바꾸는 데 있습니다.

나누는 일과 선교하는 일에 더 주력해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 자신의 문제는 호전될 기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방향을 바꾸라는 우리 하나님의 싸인으로 알아야 합니다.


②관심을 나에게서 → 바깥으로 돌립시다.

먼저는 하나님께 고개를 돌리십시오.

요나 같으면 싫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니느웨로 가서 전심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웃에 대해 문을 여십시오!

그들의 필요가 뭔지를 파악해서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커크 더글러스나 박완서 선생이 어떻게 다시 일어났는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스스로 영적 침체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자신에 문제에 몰입해 봐야 거기에 해결책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시되, 나라와 교회와 목사와 지체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바랍니다.


될 수 있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관심을 끄십시오!

그리고 이웃의 필요가 뭔지 세밀하게 관찰해서

섬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과감하게 섬기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 여러분 모두는 성령 충만함으로 활력을 되찾은

여러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③요나의 박넝쿨 시험이 우리에겐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와 교회와 백성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예방해야 합니다.

관심을.. 내 쪽에서 하나님과 이웃 쪽으로 전환하시기 바랍니다.                                   ▣ 크리스천 삶(리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