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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신앙의 길에 대안代案은 없다! 2140

LNCK 2009. 10. 20. 23:15

 신앙의 길에 대안代案은 없다!                   출32:1~6           09.04.19.설교스크랩/편집


 

▲도입 이야기 : 김ㅈㄴ이라고 하는 분의 간증을 읽었습니다. (이 단락 펀 글)

학벌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살던 이 여자 분이

똑똑하고 좋은 학교를 나온 남자를 만났습니다.

이 사람이 자신의 삶에 담보가 되고 보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권유에 따라 성당에 나갔고 영세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해서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남편은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바람이 나서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 버렸습니다.


막막하던 이 부인 앞에, 몇 달 만에 사라졌던 남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러고는 용서를 구했고,

다른 길이 없었던 이 부인은, 남편을 다시 받아들였습니다.


이후로도 여러 해 동안 방황하고 절망하고 좌절하던 남편이 

‘미국은 더 이상 못살겠다, 한국으로 가자’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자신의 동의도 얻지 않고 혼자서 한국으로 가버렸습니다.

부인은 아이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도 힘들거니와

한국에 간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도 아니어서 남아 있는 데,

1년 후 남편이 시댁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자신을  힘들게 한 남편이지만 슬펐습니다.

그렇지만 골치 아프게 하던 남자가 없어졌으니

열심히 교회 다니고 일하며 살면 되지 않겠나,

마음을 다잡아먹고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예배에 참석했지만

인생의 문제가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견디다 못해 10년 이상을 미국에서 산 두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 큰아이가 대학갈 때가 되었는데

이단 교회에서 하는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순종적이던 큰아이는 나이가 들면서 친구의 영향을 받아,

안 된다고 아무리 말려도 엄마에게 대들면서 냉정해졌습니다.

아이가 무서울 정도로 싹 변해 달려드는데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를 많이 닮아서, 형에 비해 심약하고 굉장히 온순한 둘째 아이는

20대 초반에 알코올 중독이 되어버렸습니다.


부인은 도저히 살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도 허무하게 떠나버리고,

열심히 교회 다니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왔는데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고통 속에서 이 분이 간증의 말미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미신처럼 예배를 드리면서 그저 이 땅에서 잘되는 것만 구했던 자기 삶의 결론이

    바로 이것이라고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고,

    어느 날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창22장을 읽고

    큰 도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바치라고 해서 바쳤더니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제물로 죽이지 않고 다시 살려주신 그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 분이,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있지만

자신의 삶과, 자식들의 삶을 다시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겠습니다,

내 아들들을 살려 주십시오 하고 회개하면서 절망하지 않고

계속 믿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게 간증의 끝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는 한 중년 여성의, 슬픔이 가득한 간증을 읽으면서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사는

그 굳건한 믿음이 참 감사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자식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암이 비껴가는 것도 아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태풍이 비껴가지도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인생에서 경험하는 문제들을 동일하게 경험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혹시 ‘예수를 믿으면 그런 일이 절대 안 생긴다더라.’ 라고

들으신 분이 있으면 잘못 들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단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문제는 똑같이 생기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문제 앞에서 넘어지고 자빠지고 절망하고

참 길을 발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 문제를 통한 하나님의 뜻(주로 믿음의 성장)을 발견할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살 것이다.’

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조급해서 급조된 대안을 찾는다.


▲본문 성경 설명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겐,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시간이 좀 늦는다 싶었습니다.

긴장과 두려움이 밀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웬만한 일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 해결됩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 시간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형인 아론에게 찾아와서,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 내라고 조릅니다.


곧 폭동이라도 일으킬 태세였는지.. 아론이 집니다.

아론은 그 일을 거부하고 백성들에게 맞아 죽는 게 더 좋을 뻔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론은 백성들 앞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그 금송아지를 보고 외칩니다.

“바로 이게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우리의 신이로다!”


그리고 다음 날이 안식일이었는데 그 금송아지를 하나님 삼아

그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먹고 마시며 뛰어 놀았다 하는 얘깁니다.


오늘 이 사건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인간의 문제가 뭘까요?

인간은 여하한 일에도 신을 만들어 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으면

가짜 신이라도 만들어서 임재를 느끼려고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얘기는, 우리에게도 이 문제가 동일하게 찾아온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오늘 얘기를 우리 식으로 바꾸어 보면,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모세가 보이질 않고, 내려오는 게 더디다는 것은..

즉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느낌도 없고, 기도해도 응답은 더디고,

내가 처한 상황은 변하는 것 없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우리에게 이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럴 때 우리의 선택은 뭐가 되어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은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내라” 그거였습니다.

즉 진짜가 나타나지 않으니까.. 가짜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신앙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듣는 얘기 중에 하나가 ‘대안을 제시하라’ 라는 말일 겁니다.

그런데 신앙에는, 어떤 의미에서는, 대안이 없습니다.

진짜(하나님)는 하나 밖에 없는데.. 대안을 제시하라고 하면, 다른 대안이 없는 것입니다.


금송아지는 대안이 아니고,

그 외 다른 우상도..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점 보기, 작명, 풍수지리, 맘몬, 쾌락.. 이런 대안을 찾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없으면 “대안이 없다” 그래야 답이지,

“너 떠나가도 딴 사람 있다” 그런다면..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하나님이 임재/응답하시지 않으면.. 임재/응답하실 때까지 기다리거나 매달려야지

다른 대안을 찾는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의 약속이나 기다림은.. 믿지 못합니다.

인간은.. 제 아무리 굳은 약속을 하더라도.. 지키지 못할 때가 있고,

한 없이 기다려 줄 것 같아도.. 시간이 좀 지나면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거기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가 얼마나 많습니까?

군인이 총 들고 탈영하는 경우는.. 대부분 여자친구가 기다려주질 못하고 변심해서입니다.


톰 행크스 주연의 ‘케스트 어웨이’ 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그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무인도에서 4년간을 오직 애인만 생각하면서 버텼는데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와서 보니까 애인은 자기가 죽은 줄 알고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애까지 낳고 살고 있습니다.


남자가 차를 몰고 어느 사거리까지 옵니다.

거기서 멈추고 차에서 나오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망연히 서 있는 모습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얼마나 여운이 오래 가던지요.

이게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움직이는 분이 아니시잖아요?

끝까지 기다리시고, 또 항상 우리를 맞이하려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잘 못 느끼고, 응답이 없다..

그러면서 딴 데로 가버립니다.

그리고 거기서 가짜 신을 만들고,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진짜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데

대안을 모색하고, 가짜를 만드는 버릇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비단 이스라엘 백성의 얘기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얘기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요? 진짜가 올 때까지 좀 기다리는 겁니다.

예수님께 성령을 약속 받은 제자들이 한 일이 뭐였습니까?

마가 다락방에서 120문도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기다렸지,

그들이 무슨 가짜 성령을 만들어 내거나, 어떤 성령현상을 조작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열흘 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에 성령의 임재가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20일이면 그들이 못 기다렸겠습니까? 100일이면 못 기다렸겠어요?

그들이 받은 명령은.. 위로부터의 능력이 입힐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머무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다렸습니다.


우리의 자세도 이래야 되지 않겠어요?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교회의 부흥을 얼마나 원합니까?

하지만 부흥이 임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흥을 억지로 만들어 내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할 일은.. 진짜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누군들 기다리는 게 빨리 오면 좋지 않겠어요?

하지만 더디 오더라도, 올 때까지 꿋꿋하게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취할 자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 거두는 사람들의 제일 중요한 것은 기다림입니다.

성경에서는 기다림을 또 다른 말로 표현하는데 바로 ‘인내’입니다.

인내가 있어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열매 거두는 원리도 알고 보면 다 기다리는 것 아니겠어요?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해석하시면서

눅8:15에서,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그러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하는 사람에게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이 바라고 원하는 일이, 옳은 일입니까?

하나님께나 이웃에게나 유익이 되는 일입니까?

그러면 계속해서 기다리십시오!


신앙은 이것 저것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유행이 아닙니다.

세태 따라 바꿀 게 아닙니다.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리는 모습이 있어야 진짜가 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역사, 주님의 응답이 더딘 이유


그러면 왜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데도, 하나님은 속히 응답하시지 않을까요?

왜 진짜를 더디 오게 하실까요?


시인 릴케가 말한 것처럼,

왜 기다리는 것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그 기다림에 지쳐서 포기하고 등을 반쯤 돌렸을 때에야.. 비로소 보내주시는 걸까요?


오늘 우리가 풀어야 될 숙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가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더딘 응답’의 이유가 뭐냐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첫째는, 우리로 하여금 <더 준비하게> 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할 때 보면, 준비하는 사람은 다 됐다 그러는데

선생님이나 코치 입장에서는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독려하고 훈련시킵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런 자매가 있었습니다.

디플롬(졸업) 시험을 보기 며칠 전에, 주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연주를 했는데,

다들 이구동성으로 이번에는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자매 입장에서는 해 볼만 하다고 생각을 했겠지요.


그러나 자매를 아끼는 주변 지인들 눈에는 부족함이 보이는 것입니다.

다행히 그 자매는 의견을 받아들여서 그 겨울에 시험을 포기했습니다. 실망도 컸겠지요.

하지만 6개월 더 준비해서 여름에 디플롬을 마치고,

지금은 한국에서 훌륭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도 응답이 더디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나 성숙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준비가 더 필요하고, 더 영적으로 무장해야 될 필요가 보이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잘 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준비시키시느라' 응답이 늦은 겁니다.

그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을 보세요.

13년 동안이나 고난을 당했습니다.

물론 13년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보디발 집으로, 감옥으로 그렇게 전전한 것입니다.

준비해야 될 게 있었고, 무장해야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내 놓고 보니까 이해가 되는 겁니다.


보디발 집에서 가정총무를 한 것은 리더쉽 훈련을 시키신 거지요?

감옥에서는 또 어떻습니까?

감옥생활이야말로 요셉에게는 협주곡의 카덴짜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거기는 흔히 말하는 ‘범털’들만 오는 감옥이었습니다.

거기서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을 만나지요?

지금 식으로 하면 장관급입니다.

요셉이 그런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평소 같으면 죽어도 만날 길이 없는데 감옥에서는 만나잖아요?

바닥에서는 신분에 관계없이 말이 통하는 겁니다.


또 감옥에서는 얼마나 시간이 안 가겠습니까?

그러니 서로 모여 있으면 얘기를 안 하겠어요?

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니까 별별 얘기를 다 했을 겁니다.

뭐 어린 시절의 얘기부터 고난 받은 얘기 등 줄줄이 이어졌을 겁니다.


술 장관은 술 장관대로, 떡 장관은 떡 장관대로

자기들이 접했던 온갖 얘기를 다 했을 겁니다.

거기서 그들과 2년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요셉은 애굽 왕궁에서 벌어지는 온갖 얘기를 다 들었겠지요.


정치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또 애굽의 당면한 문제가 뭐며

그리고 누가 진짜 실권자고 허수아비인지,

인맥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또 바로 왕의 성격과 그가 사람을 등용하는 방법 등등

애굽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 파악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가 애굽의 총리를 시키는 즉시

요셉은 미숙함이 없이 일들을 처리하잖아요?

왜 그랬겠습니까?

그 감옥에서의 2년이 사실은 애굽 통치를 위한 준비기간이었던 겁니다.


영국 야당 같은 데서는 정권을 잡을 걸 대비해서

미리 수상 이하 각료들까지 예정된 멤버를 두지요.

그리고 정권을 잡는 즉시 그 멤버가 내각을 구성합니다.


이것을 섀도우 캐비닛 -그림자 내각- 이라고 하는데,

요셉도 감옥에서 2년 있으면서, 이미 그 섀도우 캐비닛을 완성시켜 놓은 겁니다.


사실 다른 데서 배우는 것보다, 감옥에서 배우는 게 더 빠르지 않겠어요?

나가서 돌아다닐 데도 없고, 시간은 많고,

살아있는 인물들은 널려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훈련장이 어디 있겠어요?


언젠가 소설가 이외수 씨가 자기 집필실을

감옥처럼 꾸며놓고 글을 쓴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또 재수생들은 한 번 들어가면 함부로 나올 수 없는

기숙 학원 같은 데를 자진해서 들어갑니다.


그런 게 다 무슨 얘기겠습니까?

거기 들어가면 빠르니까 그런 겁니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이 훈련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돈 한 푼 안 받으시고 감옥에 집어넣어서 배우게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그런 일이 없겠어요?

지내놓고 보세요.

우리가 정상적으로 놔 두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특별한 기회를 주셔서, 가르쳐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과 난관은 우리들의 선생님인 것입니다.

그 고난과 연단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지식과 경험이 쌓입니다.


나오미가 자기 따라 오던 두 며느리를 고향으로 돌려 보낸 이유가 뭐겠어요?

자기도 과부 생활을 10여 년 해 봤잖아요.

시어미 아니라 한 인간으로도

남편 없이 사는 건 정말 지옥생활이라는 사실을 안 겁니다.

 

며느리들이 또 하나의 자기로 살아가는 것은, 눈뜨고는 볼 수 없었던 겁니다.

고난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은, 남을 이해하는 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저래 고난은 유익합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어려움과 난관 속에서 굉장히 많은 지식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쉬운 길을 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뭘까요?

더 중요한 것을 얻게 하시려는 겁니다.


정보라든가, 인맥이라든가, 관계라든가, 필요한 지식 등등

더 유리한 환경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넉넉함이 우리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부족함이 우리에게 더 많은 지식을 가르쳐 주는 학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절대 더디다고 생각 마세요!

더딘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을 주시려고

훈련시키시고 배우게 하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엮어 놓으시고 평평하게 고르시고 심어두시는 손길을 통해

결국에는 승리케 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믿으면서

더 준비하며 기다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둘째로, 응답이 더딘 이유는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늦는다 싶도록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환경적인 것들을 채워주고 우리를 무장시키도록 하는 외적인 의도도 있지만,

또 하나는 내적인 이유 때문 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정의할 때,

믿음이란..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갭을 매우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속은 항상 크지요? 그러나 현실은 초라합니다.

그러면 그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갭을 어떻게 메우겠어요?

바로 거기서 일하는 게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약속과 현실 사이가 크면 클수록 더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더딘 응답을 주시는 이유는

그 시기 동안 믿음을 성장시키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든 우리 주변에서든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특징이 뭐던가요?

대개 큰 시련과 굴곡이 있던 사람입니다.

즉 현실과 약속 사이의 갭이 컸던, 그래서 응답이 늦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때 가짜를 만들지 않고, 진짜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하나님 바라보고 나아갈 때

그 사람들은 믿음의 성장이 왔던 것입니다.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통해서 내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해 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지요.


난관을 해석하는 것을 배우고,

또 하나님의 관점이 어떻다 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즉 늦은 응답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열 두 정탐꾼 얘기를 잘 아시지요?

12명의 정탐꾼들이 자신들이 정복할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긍정적이고, 나머지 10명은 부정적으로 얘기합니다.


가나안 족속들에 비하면 자기들은 메뚜기 같다 그러고,

성벽은 강하고 견고해서 도저히 뚫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해석의 차이가 아닐까요?


일은 언제나 해석한 대로 진행되게 마련입니다.

어떻게 보면 열 명의 정탐꾼들은 바보 같아 보이는 겁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스파이들이니까 신체조건도 좋고, 보통 사람들보다는 특별한 사람들로 뽑혔겠지요.

외지에 가면 이방인들은 금방 눈에 띕니다.


더군다나 한 두 명도 아니고 남자 12명이라면 사람들 눈에 금방 눈에 띌 텐데,

40일 간이나 가나안 땅을 돌아다녔습니다.

그 사이 불심검문 한 번 당했다는 얘기 없고,

한 사람도 다치거나 구금당했다는 얘기도 없습니다.


12명이 40일 동안 가나안을 헤집고 다니다가, 잘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둘 중에 하나 아니겠어요?

그 백성들은 강하고 견고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12명이 온갖 데를 다 다녔는데도 들키지 않았다?

그건 정보가 뻥뻥 뚫리고, 방비가 전혀 안 돼 있다는 얘기입니다.


히틀러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의전을 위해 나왔던 의장대원들의 발이 맞지 않더래요.

그것을 보고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할 생각을 했다지요?

하나를 보면 대략 판가름이 나는 겁니다.


반대로 강하고 견고한데도 12명이 무사히 돌아왔다면,

그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있었다고 해석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12명이 가나안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헤집고 다니다 왔다면,

그것 자체가 가나안 정복은 가능한 게 아니겠어요?

죽지 않고 살아 돌아 온 자기들이 가장 확실한 물증입니다.


그런데 10명은, 바보같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애급으로 돌아가는 게 더 낫다’는 거지요. 민14:3~4


우리 중에도 그런 게 얼마나 많습니까?

한국에 있을 때 참 안타까운 성도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증거인데,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는데

정작 본인은 아니라는 거예요.


죽겠다는 겁니다. 이제는 끝이라는 겁니다.

다 잘 될 거라고 믿는데, 본인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중에도 얼마나 그런 경우가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은혜인 사람이

어디 한 두 명입니까?

그런데도 ‘나는 안 돼요, 죽겠어요, 돌아갈래요, 내일 일은 캄캄해요.’

계속 그러실래요? 


우리 교회도 보세요.

최근에 와서야 어른성도들이 좀 생겼지

지난 9년 동안 학생들 30명 정도로 교회를 유지해왔습니다.

목사인 저를 포함해서 우리 교회가 뛰어난 게 뭐가 있습니까?


위치가 좋습니까, 그렇다고 우리 자체 건물이 있습니까?

아니면 교인들 중에 한 명이라도 부자가 있습니까?

자립도 안 되는 교회에서 유학생들 수십 명이

지난 십 수 년 동안 버텨온 것 자체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남들은 안 된다 안 된다 해도

우리만큼은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되지 않겠어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들 자체보다 더 확실한 물증이 어디 있습니까? 안 그래요 여러분?

 

우리들 존재 자체가 은혜요, 증거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주님은 우리를 굳건하게 하시고

신앙의 내공을 쌓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근육이 언제 생기던가요?

저항할 때 생깁니다.

무거운 것을 들 때, 그 무거운 게 나를 압박하면

거기에 압박당하지 않으려고 밀어제낄 때

그때 다리 근육이 생기고 팔 근육이 생기는 것입니다.


런닝 머쉰에 올라가면 벨트가 돌아갑니다.

가만히 서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넘어져서 다치게 됩니다.

뛰어야만 넘어지지 않고 운동이 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런닝 머쉰 위에 올려놓으실까요?

다람쥐 만드시려구요? 그게 아니지요. 뛰라는 겁니다.

우리 믿음의 근육을 키우고, 우리 영혼을 강건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디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이것을 명확하게 붙잡으십시오!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은.. 그 시간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그 시간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과정 속에는 무의미한 것이란 절대 없습니다.


내적인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을 풍성케 하시고 자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재가 없는 것처럼 느껴도, 영적 성숙에 이를 때까지

인내하고 버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앞길이 캄캄하고, 사면초가를 당했다 하더라도,

하나님 외에 대안은 없습니다.

가짜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훈련과정을 견디면서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우리 위해 필요한 관계를 묶으시고

좋은 환경을 꾸미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 인내하는 시간 가운데 영적인 파워를 기르시기 바랍니다.


부디 삶의 많은 부분을 진짜(하나님/임재)로 채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가정도, 친구도, 믿음도 진짜로 채워나가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가짜 하나님을 진짜인 양 믿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합니다.

더디더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올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그 후엔 탄탄하고 풍성하고 견고한 여러분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더딤을 통해서 진짜로 태어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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