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니라 나다 Not You But I! 삼하 7:1-17 09.07.19.설교스크랩
요즘 인기있는 설교, 사람들이 좋아하는 설교는
하나님을 믿고 '네가 최선을 다 해라'는 식의 설교들인데요...
대부분 또 그렇게 살아갑니다.
요즘 대부분 신자들의 신앙은, 하나님은 당연히 믿으니까,
삶은 내 의지대로 열심히/성실히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걸 잘 되게, 하나님이 축복해 달라는 겁니다.
내가 주인이고, 하나님은 복 주시는 허수아비인 셈이지요..
그런 우리 신앙을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성령님께서 분별력을 주실 것입니다.
◑1.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성경적인? 격언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God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미국민의 82%가 이 격언을 성경 말씀이라고 여긴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렇게 알고 있었던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스 시대의 속담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미국 사회의 정신적인 유산처럼 만든 사람은 벤자민 프랭클린입니다.
정신과 의사이며 영성가인 제랄드 메이 박사는, Gerald May
이 격언이 성경의 사상과 매우 닮아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매우 비성경적이고 반성경적인 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이 격언이 사용되는 경우를 보면,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도구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전 국민을 전쟁으로 몰아세울 때,
이 격언을 자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격언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강조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격언이 또 하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고,
모든 것이 너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Pray as though everything depended upon God
and act as though everything depended upon you.
이 격언도 역시 성경 말씀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성경에 있는 말은 아닙니다.
누가 한 말인지 정확히 밝힐 수 없을 만큼,
2천년의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들은 대부분 이 격언을 사용했습니다.
어거스틴이나 마르틴 루터 같은 분들이 이 격언을 사용할 때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강조했을 터인데,
오늘날 이 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합니다.
▲제랄드 메이 박사는 이 두 격언이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격언들이 인기가 있고, 유명한 이유는..
1. 하나님에 대한 나의 불신앙과
2. 내 운명을 내가 지배하려는 끊임없는 내 소원을
정당화/합리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 격언들은 자기 의지대로 살려는 욕구를 부추긴다.”
I think such sayings are popular because they rationalize our mistrust of God
and our subsequent desire to master our own destinies.
They are propaganda for willfulness.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두 격언을 조심해야 합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radical trust in God)를
손상시키고,
우리의 죄성 안에 있는 ‘자기 통제의 욕망’을 부추길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성경은.. ‘다윗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더 강조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제대로 보고, 우리의 인생길을 제대로 걸어가려면,
매일, 매 순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성에 숨어 있는 ‘주인에의 의지’ 혹은 ‘통제에의 욕망’을 경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나 하기에 달렸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참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되게 의지하고 살려고 힘쓰는 사람조차도,
너무도 자주, 마치 내가 내 삶의 주인인 양, 모든 것이 내 손에 달린 양,
마치 내가 우주의 중심인 양,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우리 삶에, ‘내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죠. 의지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앞세우면 불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사무엘하 7장의 이야기를 보면,
다윗도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는 다윗이 영광스러운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고,
태평성대로 진입하던 시기였습니다.
성경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원수에게서 다윗 왕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으므로,
왕은 이제 자기의 왕궁에서 살게 되었다.” 삼하7:1
여기서 저자는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다윗이 영광스러운 대제국을 건설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방에..'
어떤 이는 이 서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왕 위에 오른 다음, 이웃 나라들을 제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싸움을 싸워야 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얼마나 자주 죽음을 각오했었는지를 거론하며,
다윗의 공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습니다. 죽을 고초를 수 없이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이룬 것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이 성경 저자의 판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애초에 다윗을 왕으로 택하지 않았다면,
사울 왕의 집요한 살해 음모로부터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다윗의 마음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도우시지 않았다면,
그리고 다윗을 통해 영광스러운 나라를 일으키실 마음을 먹지 않으셨다면,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선한 임금으로써 계속하여 선정을 펼치려면,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법궤을 제국의 중심으로 모셔 들일 때의 그 믿음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제 아무리 큰 일을 이루어도
다만 스스로를 들볶는 일일 뿐이요,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있으면.. 실패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그 믿음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도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나라들이 모두 두려워 떨만한 강대국을 건설하고 나서
이 믿음을 잠시 망각했습니다.
자신의 성공으로 인해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자신의 권력으로 못할 것이 없었던 그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이룬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자신의 제국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그가 강성대국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는데,
그의 업적으로 인해 그는 그 믿음으로부터 미끄러질 찰나에 있었습니다.
◑3. ‘자기 의지/자기 도취’를 꼬리 내리는 다윗
오늘의 본문을 주의 깊게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전성기에 접어들면서 다윗은, 궁정 예언자였던 나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백향목 왕국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2절)
그러자 나단도 동의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슨 일이든지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3절).
예언자 나단으로서는 성전을 짓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배려가 갸륵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날 밤에 하나님은 예언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삼하7 :5~16절까지 나오는 긴 말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집을 지어 주겠다는 것이냐?
집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냐? 너냐, 나냐?
네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말이냐?
목동인 너를 택하여 기름 부은 것도 나요,
네가 싸울 때 승리를 안겨 준 것도 나다.
과거에 그랬듯이, 내가 장차 너를 위대한 왕으로 만들 것이다.
내가 너의 이름을 빛나게 할 것이다.
너뿐 아니라, 너의 후손들이 대대로 왕위에 올라 이 나라를 견고히 다스리도록
내가 지켜줄 것이다. 누가 주인이냐? 네가 아니라 나다!”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주의 깊은 독자라면 또렷한 특징을 하나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나의”, “내가”, “나를”이라는 표현을
이상할 정도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금 다윗은 자아도취에 빠져서, 타락한 권력자들이 자주 그렇게 하듯,
말끝마다 “내가”, “나는”, “나의”, “나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요 제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이면 못할 것이 없다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겨냥하셨습니다.
▲나단으로부터 이 말씀을 전해들은 다윗은 정신이 번쩍 났던 것 같습니다.
삼하7:18절 이하에 보면, 그는 성막으로 들어가서
주님 앞에 꿇어 앉아 기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쉽게 교만해지기도 했지만,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에도 민첩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한껏 부풀었던 마음으로부터 바람을 빼어 내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자기 인생의 참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다시 확인하며 고백했고,
처음 가졌던 믿음의 눈을 되찾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계획보다, 더 멋지고 놀라운 계획을 주권적으로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아, 너는 좀 빠져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기도 중에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께서 몸소 이 계시를 이 종에게 주시고
‘내가 너의 집안을 세우겠다!’ 하고 말씀하여 주셨으므로,
주님의 종이 감히 주님께 이러한 간구를 드릴 용기를 얻었습니다.” 7:27
그는 나단이 전해 준 말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생각하고 꿈꾸는 것보다, 더 놀랍게 계획하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토록 귀하게 여기시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다윗은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의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셔서,
나의 자손이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대를 잇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하나님, 주님께서 직접 그렇게 약속하여 주셨으니,
주님의 종의 집안이 영원토록,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다윗은,
자기가 성전을 건축하겠다던 자기 계획/의지를 단념하고,
대신에 자기 집(다윗 왕가)을 세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의지를 받아들입니다.
(훗날 메시아의 탄생까지 멀리 생각하면..
하나님의 계획/의지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적용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 의지’로 살아가는데 익숙합니다.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음성은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울림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도 다윗과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①어떤 사람들은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면 다 된다!”고 장담하고 있을 것입니다.
②또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주인으로서의 불합격 판정을 내립니다.
무능한 주인에게 인생을 맡기고 회의와 절망과 한숨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합니다.
③또 어떤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갑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자주 고백하고,
또 가끔 그렇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잠시뿐,
나는 다시금 내 삶의 주인으로 등극하여, 내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힘을 씁니다.
모든 것이 마치 자신에게 달려 있는 듯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합니까? 어느 쪽에 속하든 상관없이,
모두가 ‘자기 의지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며,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제국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매일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과, 내 가정, 내 직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간절한 소원보다
더 좋은 계획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매일 그렇게 살아가는 것,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사실을 기억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시며, 나의 제국의 주인이시며,
인류 역사의 주인이시며, 또한 온 우주의 운행의 주인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진실에 역행하여 살면,
그것은 마치 가시채를 발길로 걷어차는 것과 같은 꼴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다 보면,
결국 내 스스로 내 숨통을 옭죄는 결과에 빠집니다.
▲자기 의지로 살아가니까, 현대에 정신적 장애가 많습니다. ★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불안, 초조, 우울증 등을 앓고 있습니까?
신경 안정제와 수면제가 얼마나 많이 팔리고 있습니까?
카운슬러와 상담 치료사와 정신과 의사들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더욱 심해지고 많아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를 다 밝힐 수야 없겠지만,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임에는 분명합니다.
서두에서 인용한 격언처럼,
모든 것이 자신에게 걸려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려 몸부림치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이 더 심해지는 것입니다.
▲‘소년소녀 가장(자기 의지로 꾸려나가는 사람)’이 될 필요 없습니다.
나의 자아는 나 자신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그렇게 지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주인으로 자처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필경 지쳐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래 버티고 어떤 사람은 이내 지친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에게 집안을 맡긴 것과 같은 일입니다.
가끔 소년 혹은 소녀 가장이 집안을 훌륭히 이끌고 사는 이야기가
미담으로 전해지지만,
그들이 어른이 되면 어릴 때 받은 지나친 부담이 병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하려고 버둥대면 탈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오늘 나단을 통해서 다윗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나에게 하는 말씀으로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잘 들어라. 네가 아니다. 나다. 네 삶의 주인은 나다. 네 제국의 주인은 나다.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내가 다스린다.
네가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너는 이슬처럼, 풀처럼 있다가 사라지는 사람이다.
네가 무엇을 하여 나를 유익하게 하겠느냐? 그런 걱정 하지 말아라.
너를 창조하고, 너를 이 세상에 나게 하고, 너를 구속하여
지금껏 너를 살게 한 것은 나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나는 너를 위해 일할 것이다.
너와 네 직장과 네 가정을 위해 내게 특별한 계획이 있다.
네가 몸부림쳐 얻으려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을 내가 줄 것이다.
그러니 너는 다만 나를 의지하여라. 나를 신뢰하여라.
네가 진 (장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의) 짐을 내게 내려놓아라.
너는 다만 내 안에서 쉬고 나를 따라 오너라.
잊지 말아라. 네가 아니라 나다. 나다. 나, 바로 나란 말이다.’
그러므로 내 인생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할 때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내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섭리에.. 나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종종 이것은 마치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하고,
마치 물이 덮칠 것 같은 홍해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때,
자기 의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에 자기를 가만히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여기까지 들으시고 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러면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아무 노력도 하지 말고,
하나님이 다 해 주실 거라고 믿고 하늘만 쳐다보란 말인가?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니,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나는 태만하게 놀아도 된다는 말인가?”
그럴 듯하게 들리는 반론입니다. 그러나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은
‘내 노력을 모두 내려놓으라/그만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섭리/경륜을 최우선적으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힘 쓸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힘쓸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한 편으로는, 자신이 없어도 세상은 아무 변고 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아픔 없이 받아들이는 동시에,
하나님에게 있어서 자신이 더 없이 귀중한 존재임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무엇인가를 해 드려서 귀한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처음부터 귀한 존재로 여겨 주셨고
지금도 그렇게 여기고 계시며 앞으로도 그렇게 여기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큰 업적도 의미가 없음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바심을 내거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들볶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불안감과 두려움에 눌리지 않습니다.
이루어진다 해도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며,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기에,
그는 다만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 전심을 다할 뿐입니다.
대단히 큰 일을 이루었다고 사람들이 칭찬해도 그 사람은 조용히 물러섭니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설사 사람들 보기에, 세상적 가치로 실패하는 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요,
인도하심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에도,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도..
주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또한 필요하면 언제든지.. 주께서 그 삶을 복구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