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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한 차원 더 높은 감사를 2151

LNCK 2009. 10. 27. 10:34

◈한 차원 더 높은 감사를            합3:16~19                 09.10.04.설교스크랩



◑도입 예화


▲1백 년 전에, 비엔나 의과대학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산부인과 교수 한 사람이, 어느 날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산부인과 의사니까 거의 매일 아기를 받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돌보는 산모들은 출산 후에 죽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다른 병동에 있는 산모들은 빈번하게 죽는 거예요.


그래서 그 원인을 추적해보니까 놀랍게도

그 이유가 아주 단순한 데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연히 그 원인을 동료교수들한테 알려주고 시정할 것을 권했지요.


그런데 다른 동료 교수들의 반응이 어땠냐 하면,

그 얘기를 듣자마자 펄쩍 뛰면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 교수는 헝가리 사람이었는데, 외국인이라는 것 말고도

교수들 중 가장 실력 있었기 때문에 '왕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만약 그 교수의 말이 사실로 판명되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오스트리아 의대교수들은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결국 그 헝가리 교수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되고 맙니다.

이 비화는 나중에 그 헝가리 교수가 죽은 후에야 밝혀집니다.

그리고 그 교수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그 간단한 원인이란 게 뭔지 아십니까?

‘의사들이 분만 시에 손을 씻지 않아서’였습니다.

이 얘기가 1900년대 초 얘기니까

그때만 해도 의료기술이나 의료장비가 지금 같지 않았습니다.

 

물론 요즘처럼 의사들이 수술할 때 끼는 고무장갑 같은 것도 없었지요.

그래서 의사들이 맨손으로 아기를 받았는데,

바로 그때 의사의 손에 있는 나쁜 균들이 산모들에게로 감염됐던 겁니다.

세균에 대한 이해가, 아직 바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지요.


사람의 생사가 아주 간단한 일을 생략하는 데서 갈린다고 생각하니까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알고 보면 우리 인생도, 아주 사소한 것에 의해서 엇갈립니다.

믿음생활 역시 똑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믿음생활을 해 오면서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은

그 기준이 딱 한 가지로 갈리는 것을 봤습니다.

그 작은 기준은 '감사가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감사제목이 없어도.. 찾아서 감사하는 사람

거두절미하고,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감사’라는 말이 사라지면

여러분의 삶은 그때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게 될 겁니다.

그러나 반대로 ‘감사’라는 말을 입에 자주 올리면 올릴수록

여러분의 삶은 점점 더 윤택해지고 풍요로워 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람에게 감사하면.. 여러분의 지경은 점점 넓어질 것이고,

그 감사가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면.. 여러분의 삶은 점점 더 행복해질 겁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느냐는 겁니다.

일도.. 찾아서 하는 사람이 있고, 생겨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크게 나는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겁니다.

'감사' 역시 생겨야 하는 사람과, 찾아서 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헬렌 켈러 여사를 보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처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여러분은 너무나 풍족하고, 감사할 조건은 무한대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헬렌 켈러 여사의 시 한편으로도 충분히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단 한번만 저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 볼 수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떨어지는 저 낙엽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 볼 수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저 깊은 산 속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저 아름다운 가르침과 자상한 친절을 베풀어주시는

설리번 선생님의 아름다운 미소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저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나에게 그 귀한 감동을 주시는 필립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다면

내가 단 한 번만 내 삶을 바꾸어 놓았던 그 감동스런 성경 말씀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읽을 수 있다면


내가 단 한 번만 지는 해의 그 아름다운 노을을 직접 바라 볼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소원이 없으리.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으리.


헬렌 켈러 여사가 단 한 번만 가지기 원했던 것들을

우리는 날마다 풍성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하지 마시고, 지금 있는 것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거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사거리는 찾아보면.. 내 주위에 널려 있습니다.



◑본론 : 하박국의 ‘한 차원 높은 감사’


      ▲하박국서 개론

우리가 오늘 대하고 있는 말씀은 하박국서 말씀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주전 6백년쯤 유다 여호야김왕 때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하박국서는 3장으로 되어있는 짧은 성경이지만, 그 내용이 대단히 철학적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박국 선지자를 이스라엘 철학의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짧기 때문에 단 10분이면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공감할 텐데, 이 성경을 읽고 나면 속이 후련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생기는 의문들이 있지요?

무척 많지만 간추려 보면 몇 가지로 압축되는데,

바로 그것을 이 하박국 선지자가 우리 대신 하나님께 질문해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답을 얻어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니까 1장은 질문이요, 2장은 응답이요, 3장은 찬양입니다.


▲하박국서 3장 전체가 찬양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3: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시기오놋이란 ‘경이로운 곡조, 훌륭한 악보’라는 뜻을 가진 음악용어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놀랄 만큼 아름답고 장엄한 곡조를 붙여서 합창으로 불러라!"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3:19절에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로 끝납니다.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3장 전체는 ‘성가대의 찬양곡’이라는 것입니다.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니고, 영장으로 맞춘 노래

즉, 지휘자가 있어서 지휘에 맞춰 성가대 전체가 하나님을 위해 부르는

감사와 찬양의 특별한 순서라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유의 깊게 봐야 할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도대체 그렇게 찬양해야 될 이유가 어디 있을까? .. 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찬양을 부르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감사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하박국 선지자가 그렇게 감사할 이유가 무엇인가?


얼마나 감사하면 그렇게 장엄한 성가대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 것인가?

그것을 우리가 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질문과 하나님의 응답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의 울분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이 아니지 않습니까?

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힘 있는 자들이 약한 자를 억압하는 세상을 보시고도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2장에서 하나님이 응답을 하시는데, 그 응답이라는 게 동문서답입니다.

바벨론을 통해 유다를 멸망시키겠다는 겁니다.

하박국은 참을 수 없어서 더 심한 울분을 터뜨립니다.

“하나님 그게 또 무슨 말씀입니까?

왜 유다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우리 유다를 멸망시키시려는 겁니까?”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재차 응답을 하시자,

오랜 묵상 끝에 그것을 깨달은 선지자가 3장에서 드디어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한 감사로 끝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한 질문은 크게 3가지인데,

- ‘하나님! 왜 침묵하십니까?’

- ‘하나님 왜 그렇게 섭리하십니까?’

- ‘하나님 왜 하필이면 악인을 사용하십니까?’ 입니다.


▲하박국의 울분 - 이유 있습니다.

사실 오늘 하박국 선지자의 울분은 괜한 것이 아닙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축복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신명기에 책으로 기록해서 약속했던 거였습니다.


여러분! 신명기서가 어떤 책입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그겁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가장 소원하는 번영을.. 아주 확실하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버리면.. 벌을 받아서 세상에서 망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신명기의 화려한 약속을 보면,

설교자와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즐거움을 줍니다.

복 받는 얘기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28:3~6


네 대적이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7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셔서  :8

너는 꾸어줄지라도 꾸지 아니할 것이요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하며 :12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너는 오직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행하라. :13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11:14


정말 꿀송이처럼 단 성경 구절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지금 하박국 시대는 어떤 형편입니까?

신명기에 약속한 축복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대적들이 쳐들어오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해주신다더니

오히려 하나님이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침략하도록 시키십니다.


또 유다의 사회상은, 착하게 사는 사람이 가장 못사는 풍토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이 하박국이 울분을 터뜨린 겁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믿으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백성이

무엇 때문에 갈대아 사람의 침략을 받아야 하고,

나쁜 짓 안하고 죄 없이 살려고 하는 사람이

왜 이 사회에서 가장 못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그 얘깁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하박국의 질문과 울분이 나오는데

그 모든 것을 요약하면 이런 얘깁니다.

 

   ‘왜!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하나님이 지키지 않으십니까? 하나님도 거짓말하십니까?

   설사 우리 유다 민족이 잘못이 있다 칩시다.

   그래도 전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침략자로 사는, 갈대아 사람보다는 의롭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갈대아(바벨론) 사람을 일으켜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살육하고 빼앗고 재앙을 만나게 하십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모순입니다.

   갈대아 사람이 우리 민족을 파멸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실수입니다.

   어째서 이렇게 하십니까?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질문에, 하나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이렇게 하박국은 수도 없이 많은 질문과 울분을 토로하지만,

하나님은 너무도 간단하게 단 한 마디로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그 대답 후에 하박국 선지자는

어떻게 자기 마음이 돌아섰는지, 아무 설명 없이 찬양을 시작합니다. 3:1~

 

그 하나님의 한 마디가 뭐냐?

로마서 전체의 주제가 됐던 말씀이고

마르틴 루터로 하여금 종교개혁을 일으킨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다같이 합2:4절을 읽어봅시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아멘!


앞의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은.. 갈대아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이스라엘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라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말씀은

너무나 깊은 말씀이라 한 두 마디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다만 쉽게 풀면 이런 말씀이 될 겁니다.


‘나의 생각은 너희하고는 달라. 깊고 넓기 때문에 너희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어.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 형편과 기준을 갖다 대고 따지고 덤벼드는 그런 삶이 아니야.

오히려 자기가 겪는 모든 고난과 일들이, 내 섭리 가운데 주어진 거라고 믿는 거야.

결국 끝에 이기는 사람은 너희인 거란다. 바로 그것을 믿는 믿음이야!’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그 섭리를 믿고.. (불평/원망 없이).. 그냥 믿음으로 살아나갑니다.


3:1~15절에서 하박국이 성령에 감동되어 부르는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설령 바벨론이 몰려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면서, 두려움에 빠지지요.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합3:16


한 마디로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힌 모습인 것입니다.

무서워서 어찌 할 바 모르고, 혼이 나간 모습입니다.



▲하박국의 ‘한 차원 높은 감사’  ←설교 제목

지금 외부적으로는, 남유다가 바벨론의 침공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속에 있다고 믿습니다. 몸은 부들부들 떨리지만요.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남유다의 경제가 처참할 정도입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7


모든 게 다 없는 거예요!

그 짧은 한 절 속에 부정어가 6번이나 반복됩니다.

못하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지라도....


당시 이스라엘의 3대 과실수가 무화과, 포도, 감람나무(올리브) 입니다.

그런데 과수원마다 농사가 안됩니다.

밭도 마찬가지로 전쟁 통에 다 짓밟혀버립니다. 먹을 게 없습니다.


사람 먹을 것도 모자라니, 가축이 죽어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에 양이 없습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습니다.

인간의 조건으로 보면 완전 절망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상식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원망하고 불안해하는 게 정상입니다.

감사의 이유가 다 사라져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지요?

건강하던 사람이 건강을 잃어버렸습니다. 물질을 잃어버렸습니다.

권력과 지위가 있던 사람이 추락해 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의 이유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박국은 그런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곧 하박국의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 신앙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차원 높은 감사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에서 오는 감사입니다.

신명기에 약속된 대로 꼭 만사형통한 것만.. 하나님의 통치가 아니고,

외부적으로/내부적으로 흔들리고 위기에 처한 것도.. 하나님의 통치(다스림)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열악한 상황도.. 하나님이 다스리시고/붙잡고 계심을 믿음으로..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한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3:18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의인들이 가지는 ‘믿음’이다. 2:4


그래서 모든 암담한 분위기가 18절에서 극적으로 반전됩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참된 믿음이란?

여러분, 참 기독교 신앙, 하박국이 가르치는 믿음, 롬1:17절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세상 모든 게 다 사라지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긴다 해도

하나님은 항상 자기와 함께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기쁨이며, 무엇이 삶의 힘을 줍니까?

여호와 하나님 자신입니까, 아니면 물질/권력/쾌락/축복입니까?

하박국의 고백을 보십시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3:18~19


19절에 기록된 ‘사슴’과 ‘높은 곳’은 승리자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만 함께 해 주시면, 두려울 게 없는 겁니다.

그런 생각에 도달하니까, 하박국의 마음속에 샘솟듯 기쁨이 넘쳤습니다.


▲차원이 다른 감사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겉에 보이는 조건들은 시간이 가면 다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기쁨과 감사와 찬양의 조건이 된다면 언젠가는 실망할 것입니다.

아울러 기쁨도 감사도 찬양도 다 잃고 말 겁니다.

행복하지도 못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라지지도 않고, 변치도 않는 것을

기쁨과 감사의 이유로 삼아야 합니다.

변치 않고 영원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에는 없고, 오직 하나님 자신과 그 분의 사랑뿐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어보십시오!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믿어 보십시오! 어느 날 죽거나 이별하게 될 것입니다.

명예나 돈을 믿어 보십시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보십시오!

그러면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박국은 정말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다면

부족할 게 무엇입니까? 다 된 거 아닐까요? 그 이상 바랄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확실히 만난 사람,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빼앗기지 않는 전부’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감사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많은 말씀을 드렸지만 대주제는 딱 하나입니다.

내가 참으로 감사할 이유는, 내가 참으로 기뻐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님 그 분으로 인하여 3:17~18

또한 그 분을 믿는 믿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4


이것이 한 차원 더 높은 감사라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감사지만

(하박국처럼) 감사할 조건이 없더라도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감사’라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합니까?

물질이 풍성하기 때문입니까?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기 때문입니까? 자녀들이 잘 되기 때문입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이런 것들이 주어져서 감사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르는 불신자들보다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런 이유들이 있을 때만 감사한다면 만일 그 이유들이 사라질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망하겠습니까? 고통스러워하겠습니까? 자포자기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그 이상입니다!

감사의 외적인 이유들이 사라져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혹 잃을 때가 있지요?

하지만 혹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믿는 우리는 괜찮습니다!

그럴 때조차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겁니다.

회복시켜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다시 승리케 해주시고 천국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세상의 조건들을 소유하고도 하나님을 놓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만 붙들면.. 다른 것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참된 기독교 신앙을 회복합시다.

여러분 중에, 아직도 하나님 자신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흠모하며 신앙생활 하시는 것은.. 초보적 신앙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참된 복음을 몰랐을 때에는.. 늘 하나님께 뭘 받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참된 복음을 압니다. 또한 믿습니다.


그것은 ‘그 분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힘을 얻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합3:18~19


지금 내 상황이 엉망이라고요?

그래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시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2:4

고백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비록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우리에 양이 없고, 논밭에 소출이 없어도

하박국처럼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내 발을 사슴의 발과 같이 해 주셔서, 나를 가파른 산 위에도 다니게 하십니다. 3:18~19                    ▣ 크리스천 삶(리빙)  

라고 ‘한 차원 높게’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관련 설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