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풍성한 삶 요10:10 09.10.04.설교 및 예화모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성도의 풍성한 삶의 근거.. 아버지 잘 만난 덕분
▲풍성하신 아버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생고생하면서 자수성가해서, 큰 부자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일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게다가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함부로 써대는 겁니다.
아버지가 보기에 너무나 한심하고, 속상한 거지요.
저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걱정도 되고요.
그래서 하루는 불러다가 나무랐습니다.
“얘야, 나는 너만할 때,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얼마나 절약하고 살았는지 아느냐?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재산을 많이 모으게 되었구 말이다.
도대체 너는 왜 이 모양이냐?”
그러니까 아들이 한다는 말이, “아버지는 가난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니까 그랬지요.
나는 아버지가 부잔데 뭐 하러 그렇게 살아요?” 하더랍니다.
▲성도의 삶이 풍성한 이유
이 얘기는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그 속에 귀한 교훈이 숨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자이시고 풍요하신 분이시기에
우리 성도들이 풍요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을에 우리에게 풍성한 열매와 추수를 주셔서 풍성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근본적으로, 우리 하나님께서 풍요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자녀인 우리가 풍요한 겁니다.
우리가 자꾸 이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많이 주셔야 풍성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손에 뭐가 많이 들어와야 만족합니다.
내가 가지지 않으면.. 나는 풍성하지 않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풍요하시기에 우리도 풍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제공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풍요한 겁니다.
▲내 능력으로 얻은 풍요가 아닙니다.
추석을 맞으면서, 풍성한 계절을 맞으면서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 풍요가, 이 충만함이 그냥 저절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수고해서 내 공로로, 내 능력으로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단히 중요한 것을 빼먹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
내가 하늘을 날고 있다고, 내 능력으로 하늘을 날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내 재주, 사람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베푸신 은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곡백과가 영글게 하시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사상 유례가 없는 전 세계적인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오늘까지 우리를 살게 하신 분도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살림살이가 어렵고 사는 게 팍팍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항상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위해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오늘 우리가 삽니다.
▲모두 우리를 위해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시8:4
여러분, 온 세상에 풍성한 모든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셨고,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자격이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것들을 만드셨기에.. 우리에게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이런 풍성한 계절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은총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의 풍성한 삶의 실제 사례
‘풍성한 삶’이라고 할 때, 너무 물질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물질적인 측면도 물론 포함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면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풍성하신 아버지의 자녀들로서
이 세상에서 정말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우리 가운데, 자기 <필요>가 부족해서 괴로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거의 다 나의 <탐욕>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필요를.. 그 분의 풍성하심에 따라서 채우십니다.
나의 탐욕을 채워주심이 결코 아닙니다.
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분의 풍성하심을 따라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빌4:19
But my God shall supply all your need according to his riches in glory by Christ Jesus.
오늘 우리는, 내 필요가 채워졌으면,
이제 풍성하게 사는 법을 터득해 나가야 하는데요...
아래 사례들을 한 번 살펴봅시다.
▲각박한 직장에서, 마음이 풍성한 엄마
“잠자는 아기를 등에 업은, 몸빼바지의 젊은 여자는
조심스럽게 열차 대합실 바닥을 청소했다.
뚱뚱한 역무원은 그녀의 굼뜬 동작을 호되게 나무랐지만
바보처럼 미소 지을 뿐, 그녀는 아무 말이 없다.
잠자는 아가야
어서 자라서
엄마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렴.
너의 평화로운 잠을 위해, 가슴을 찌르는 말에도
웃고만 있는 네 엄마는.. 바보가 아니란다.
말 못하는 바보가 아니란다.”
아기를 업고 대합실 바닥을 청소하는 고된 엄마가
가슴 찌르는 말에도.. 가만히 웃고만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아가의 평화스러운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엄마의 사랑입니다.
역무원의 호된 질책에는 눈물이 나지만
아가를 위해 수고하는 엄마는 그래도 행복합니다.
우리는 가슴 아픈 현실 속에서 사랑을 베푸는 것이
행복하고 풍성한 삶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연탄길>에서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성공한 기업인이, 마더 테레사보다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실제로 빌 게이츠 같은 오늘날의 부자들은 자선행위에도 앞장섭니다.
그런데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처럼
단순하고도 나이브naive한 생각은 없습니다.
성공한 기업인이 돈을 많이 기부할 수는 있겠지만,
‘그 돈을 어떻게 잘 분배하고 나눠줄 것인가?’ 하는 일은 몇 십 배 더 어렵습니다.
그렇게 물질을 나누는 일에는 반드시 ‘사랑’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랑 없이 물질만 나눠주는 일은.. 공산주의식 배급과 다름이 없습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가끔 가족/친구 중에 누가 아파서 큰 수술을 합니다.
그러면 대뜸 ‘수술비/병원비가 얼마 들지?’ 부터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수술비도 필요하겠지만,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따뜻한 가족과 친구의 관심과 사랑입니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풍성한 삶을 사는 성도는
가족과 친구 중에 누가 아플 때,
사랑과 관심을 먼저 나누어 주려고 합니다.
물론 물질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따뜻한 가족/성도의 사랑과 간절한 중보기도는..
정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풍성한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혹시 자기 형편이 안 되더라도, 사랑과 관심은 돈 드는 것이 아니라서,
너무나 풍성하게 계속 나눌 수 있습니다.
▲정말 소중한 것을 끝까지 간직하는 사람
1907년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샤클폰은 남극점 정복을 위한 탐험대를 출발했습니다.
그는 이미 과거에 많은 극지방 탐험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 탐험여행은, 진행될수록 비참하게 전개되어 갔습니다.
영하의 기온에서 부는 찬바람은, 가히 살인적이었습니다.
시계視界는 텅 빈듯했고, 나중에는 생존의 희망까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육체는 누적된 피로로 고통스러웠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이 엄청난 노력과 집중력을 요구했습니다.
게다가 식량도 점점 떨어져갔습니다.
결국 남극까지 불과 155킬로미터를 앞두고,
샤클폰과 그의 동료들은
목표를 포기하고 돌아서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절망적인 귀환이나마 안전하게 마치려면.. 가진 짐을 줄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 가운데 상당한 것들을 다 내버렸습니다.
탐험대장 샤클폰은 우연히 동료들이 어떤 것들을 지니고,
또 어떤 것들을 버리는지 지켜보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포기하는 것은 불필요한 장비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부족한 상황이었음에도, 음식이었습니다.
그들이 최후까지 소중하게 간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사랑하는 가족들의 사진과 그들이 보낸 편지, 그들이 준 선물이었습니다.
소중한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이.., 그들을 끝까지 붙들어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존 맥스웰 「내 인생의 보물 친구」에서
사랑스런 따뜻한 가족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는 정말 <풍성한 사람>입니다.
사랑스런 따듯한 가족..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오늘날의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산업사회는
당연한 ‘가족간의 사랑’마저도
형제간 유산 다툼, 부부간 재산다툼, 기러기 아빠, 주말 부부 등의 이유로
당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 ‘사랑스럽고 따뜻한 가족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도리어 이상스럽게 별종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부터 사랑스런 가족사진 한 장쯤은 지갑에 지니고 다닙시다.
그런 사람이 <풍성한 삶을 사는 사람> 아닙니까!
▶가난한 새의 기도 (이해인 시)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 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 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 주십시오.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새에게 물어 보세요. 탐욕이 있는지, 염려가 있는지/없는지?
그런 것이 있으면.. 새는 무거워서 날지 못할 것입니다.
........................................... 더 읽으실 분 ..............................................
▲제한된 자유 속에서도,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막 감옥에 들어온 무기수였습니다.
언제 나가게 될지, 어떻게 이 좁고 퀘퀘한 공간에서 지내야 할지 막막했던 그는
교도소장에게 간절한 청원을 한 가지 했습니다.
"절대 문제를 안 일으킬 테니, 교도소 마당 한 귀퉁이에 정원을 가꾸게 해주시오."
새로 부임한 교도소장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는 처음엔 손이 많이 가지 않아도 잘 자라는, 고추나 양파를 심었습니다.
씨를 심고 그것이 자라감에 따라.. 그는 작은 만족을 얻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여러 종의 장미도 심어보고, 작은 묘목의 씨앗도 뿌렸습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그는 정성스레 정원을 가꿨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래 비록 내가 지금은 자유의 몸이 아니지만
이 정원을 돌보듯 나 자신을 돌봐야겠구나.
또 이렇게 씨를 뿌린 다음 지켜보고 경작하고 결과를 추수하는 정원사의 일이
소박한 것이지만.. 얼마나 큰 보람과 기쁨을 주는가.’
교도소 마당의 작은 땅뙈기에 무언가를 심고 가꾸던 그는
27년 후,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바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입니다.
자유하지 않은 몸이었지만, 만델라는 정신이 자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감옥에서, 원수를 갚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칼을 갈았을 터인데,
그 감옥을 창조적 공간으로 만들었던 만델라는
그곳에서도 마음이 풍성하고도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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