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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을 넘어서려면 2172

LNCK 2009. 11. 8. 20:08

◈불가능을 넘어서려면                   막9:17-24               인터넷설교 스크랩, 연도 아마 1998 or 99년초

                                                                                                                                         

 

◑불가능한 난관에 부딪혔을 때, 사람들의 2가지 반응


사람이 살다 보면, 자신의 힘이나 지혜나 능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상황, 환경,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이때 2가지 극단적인 반응이 나타납니다.


▲1. 불가능은 없다... 이런 적극적인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척 정신에 투철한 사람, 매우 적극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앞에 맞부딪쳐 보자’라며 도전의 의지를 불태웁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인생의 많은 역경과 시련이 극복되고

그리고 문제들이 해결되는 그런 놀라운 장면들을 우리는 심심찮게 봅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인생에서 정말 어떤 불가능도 존재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생이 아무리 투지를 불태워도, 극복할 수 없는 불가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서 ‘죽음의 문제’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어도.. 인간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혹 죽음을 연장(지연)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또 죽음을 가져왔던 원인인 ‘죄 문제’를.. 내 힘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를 개선할 수는 있습니다. 좀 더 죄를 덜 짓는 사회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죄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 될 수는 없습니다.


죄에서 파생된 질병의 문제 (우연히 오는 질병도 있지만, 죄에서 오는 질병도 있습니다)

우리는 좀 더 병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병이 없는 사회, 병이 없는 환경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어떤 불가능을 인정해야 합니다.

불가능을 끝까지 거절해 버리면..

그것은 우리가 절대자가 되려는 시도라고 밖에는 말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 때문에, 사람은 연약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불가능은 없다!’ 이런 투지도 (작은 문제 앞에서는) 때로는 필요하겠지만,

(큰 문제를 만나면) 인간은 ‘내 힘으로는 풀 수 없다’고 결국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조그만 불가능에도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

그러나 이러한 자세 말고, 정 반대의 자세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조그만 어려움이 생겨도 도전하지도 않고, 포기해 버리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너무 쉽게 수용해 버리고, 한계를 낮추어 버리고,

인간의 역경 앞에서 스스로 삶을 쉽게 포기 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벼룩 실험

벼룩은 자기 몸 크기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20~30센티 뛸 수가 있다고 해요.

그런데 벼룩 위에다 유리컵을 덮어버립니다.

그러니까 벼룩들이 계속 뛰죠. 그러나 유리컵의 한계 때문에 부딪칩니다.


한 두 시간 이 지난 후에 유리컵을 치우면,

그 이상 뛸 수 있음 에도 불구하고 벼룩들은 7~8센티,

즉 유리컵 높이 밖에 뛰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벼룩 같은 자세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자기의 한계를 너무 낮게 낮추어 버리고,

쉽게 인생의 어떤 난제 앞에서,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삶을 포기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을 봅니다.



◑불가능을 대하는 크리스천의 자세


크리스천은 어떤 인간됨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죠.

그러나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뢰했을 때

우리는 그 하나님과 더불어 이 불가능을 극복할 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단 극복을 하되

내 방식/내 소원대로 극복하는 것은 아니고,

주님의 방식/주님의 소원대로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설명

간질병에 들린 어린아이를, 어떤 아버지가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치유를 부탁했습니다.

제자들이 물론 열심히 노력을 했겠지요.

그러나 이 아이의 병이 도무지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변화산 위에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내려오신 길입니다.

이 때 간질병에 들린 아이를, 예수님께 고쳐들라고 부탁하게 되는데요...

 


▲1. 우리는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을 배워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세 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눅9:19


이 말씀에서 강조된 단어는 ‘내게로’ 라는 단어예요.

아이의 아버지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누구를 찾아 왔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 왔습니다.

아마 예수님을 찾다가 예수님이 없으니까 제자들에게 왔을 거예요.


그 때 예수님이 변화산에 계셨단 말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아마도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못 고친단 말이죠.


▲사람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세요.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이런 접근 방법을 사용합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 빠진 사람들,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에 한번 나와 보세요. 하나님 의지하시면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저는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자,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문제에 대한 해결의 희망을 안고

초청 받은 대로, 전도 받은 대로.. 교회에 나옵니다.

그들이 교회에 나왔다는 사실 만으로.. 그런데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그렇지 않죠.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압니다.


저는 그들의 문제가 물론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서,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또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그들이 참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수 있다면

그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반드시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나 제가 강조하는 것은

교회 나왔다는 사실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님 한 분 이 자기 어린 자녀를 데리고 교회에 나올 때

‘교회 가자’ 이렇게 말씀을 안 하고, 항상 이렇게 말씀을 했대요.

‘야, 우리 하나님 집에 가자.’


그래서 그날도 주일이 되어서 엄마가 ‘우리 하나님 집에 가자.’

그랬더니 그날따라 그 집 꼬마가 이런 대답을 하더래요.

‘나 안가요.’

‘왜 안가니?’

‘밤 낮 가 봐야 하나님이 집에 안계시데요?’


이 꼬마는 당연히 하나님을 찾을 것을 기대하고 교회를 둘러보았지만

하나님이 안보인단 말이에요. 아주 솔직한 말이죠.

저는 교회의 책임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책임이라고 믿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집

우리가 예배를 왜 드립니까?

성경공부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을 경험케 하는 것이예요.

어떤 출석도장을 찍거나, 단순한 성경지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공부의 초점을 단순한 지식의 획득에 두는 것은

성경 공부를 가장 나쁜 방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거예요. 주님 만나는 거예요.

예수님을 만나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죠.

교회의 본질은 단순한 빌딩이 아니예요.

이 빌딩이 어떤 마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빌딩 안에 들어 왔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를 구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드리는 그 곳에 두 세 사람 이상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곳,

그리고 주의 이름을 높이는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하나님을 경험하거든요. 예수님을 만나는 거예요.

예수님을 만나면 자기 문제가 해결 되요.


▲교회는 나오는 데서 끝나면 안 됩니다.

교회에 나왔다... 이것은 좋은 스텝입니다. 중요한 스텝(단계)입니다.


사실 교회 문턱 하나 넘어 들어오는 것도 쉽지는 않아요.

아주 중요한 일을 하셨어요.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무엇이 중요해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신유기도 받을 때에도..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자기의 어떤 문제의 해결을 기도할 때

흔히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갖는 기대 가운데 하나는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기도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그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성경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 병든 자들아, 교회의 장로들을 즉 교회의 지도자들을 청하라

그리고 지도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면서 위해서 기도 하라.  약5:14


그러나 그럴 때라도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지도자가 병을 고칠까요? 아닙니다. 지도자는 도구/매체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궁극적인 치유자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치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사람이 고치는 것처럼, 그렇게 설명을 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당에 영험이 있는 듯이, 거기 가면 고쳐진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합시다.

그것은 신앙의 정도正道에서 벗어간 것입니다.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 고쳐진다 하더라도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이 쉬운 사실을.. 얼마나 자주 잊어버리는지요?


▲영적 지도자의 책임... 초점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여러분, 사람이 자기가 기도해서 병자들이 한 명, 두 명 계속해서 낫게 될 때

(기도해줘도 안 낫는 사람은 이게 문제가 안 됩니다. 잘 낫는 사람이 문젭니다.)

사람은 십중팔구 미혹에 빠집니다. 마치 자기가 낫게 한 것처럼요.


비슷하게, 설교를 잘 하는 사람도, 자기가 은혜 끼치는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노골적은 아니지만, 자꾸 어떤 암시를 줍니다.

자기에게 기도 받으면.. 병이 낫고,

자기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이렇게 계속해서 초점을 자기에게 모은다면,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상한 집단으로 점점 변모하는 것입니다.


신유기도의 은사가 있건,

설교의 카리스마가 있건,

그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이 보여 지고,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부대, 자기 친위대’를 만드는 것은.. 정상적 기독교가 아닙니다.


※여러분, 실제로 우리가 어떤 사람의 설교를 들었을 때

그 설교의 초점이, 설교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에게 임한 신비체험만 간증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것은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참 신비하다 하더라도)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비체험 간증도, 10년에 한 번 해야지, 자꾸 하면.. 결국 잘못됩니다.


그리스도가 정말 높임을 받느냐? 하나님이 정말 선포 되느냐?

해결자가 하나님이라면, 성도들을 데리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거예요.

절대로 자기를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자기가 다른 종보다 차별성이 있는 것처럼 소개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차별성을 소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길이요, 그가 진리요, 그가 생명이십니다.

그분이 홀로 선한목자 되십니다. 그 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세요.


여러분이, 영적지도자들의 도움을 받는 순간까지도

‘하나님, 이 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대해야지,

그 종이 어떤 능력을 가진 것처럼 착 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오십시오.

주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실 능력이 반드시 있으십니다.

단, 문제는, 내뜻대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해결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다 맡기셔야 합니다. (아래 2번에서 생각해 볼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아올 때,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정말 예수님이 나를 고칠 수가 있다.’ 예수님을 신뢰하셔야 합니다.


자, 제자들이 병 고치는 일에 실패한 이후에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막9:28


종용히 묻자오되... 조용히 물었어요. ‘왜 우리는 못 쫓아냈지요?’

크게 묻기에 창피했을지도 모르지요. 실패한 후이니까요.

그 때 예수님이 실패의 원인을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막9:29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원인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간접적으로 지금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이 아이의 병이 고쳐지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세대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그리고 본문과 똑같은 기사를 취급하고 있는 마17:20절에도 보면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예수님의 대답 : 믿음이 있기는 하되, 적은 자

오늘 이 세대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곳에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임재를 계시 하시고, 당신의 손길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예수님을 향한 어느 정도의 믿음이 없었겠습니까? 어느 정도의 믿음.. 있었겠지요.

믿음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오늘 우리도 어떤 정도의 믿음은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이는 있지만, 우리 가운데. 그래서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주님 앞에 가까이 나와서 봉사도 하고, 섬기는 것 아니겠어요?


여러분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믿음이 없으십니까?’ 하면 기분이 안 좋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이 (있기는 있지만) 적은 자여!’


그대들이 실패한 이유,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그것은 믿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믿음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충분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 믿음이 적었을 까요?

자, 우리가 믿음/믿는다고 말할 때 중요한 것은 '믿음'이란 단어 자체가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자기 자신을 믿습니다.

‘내가 기도하면 뭐가 될 것 같고,

내가 기도하면 귀신이 쫓겨 나갈 것 같고..’


반대인(부정적인) 경우로 자신을(무능력함을) 믿기도 합니다.

‘내가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 일도 안 될 것 같고,

내가 아무리 기도해도 귀신이 쫓겨 나가지 않을 것 같고..’


그런데 정말 주님을 신뢰하십니까?

우리는 주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도,

기독교인들조차도 은근히 사실은 나를 믿고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의 제자들의 심리 분석

본문의 제자들의 경험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이 과거에는 귀신을 내쫓고, 병 고치는 일에 성공을 했었습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 70명의 제자들에게 전도하러 내 보낼 때

권세를 주어서 내 보내셨습니다.

그 때 ‘병자가 낫고 그리고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성공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또 성공할 줄 알았어요.


더욱이 이 본문의 상황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 제자들의 아주 미묘한 심리적 상태를 읽어낼 수가 있습니다.


자, 지금 여기 이 병든 아이와 씨름하고 있는 제자들은 9명입니다.

3명은 지금 변화산에 올라 간 겁니다. 3명의 대표적인 제자가 없어진 거예요.

9명만 남아 있었을 때, 본문에 없지만 제 추측에는

이 9명이 아주 신이 났을 것 같아요.

‘우리도 한 번 뭔가를 보여주자.’ 그랬는데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밑바탕에서 자기 과시, ‘우리도 뭔가를 할 수 있다.’

그 순간이 크리스천들이 실패하는 순간 입니다.

내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할 때.. 사실은 실패합니다.


신앙의 역설은 이것입니다. 내가 약함을 느끼는 순간,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는 순간,

나의 무기력을 느끼고, 나의 좌절을 느끼고,

그래서 정말 하나님 없이는 못 살구요, 주님 없이는 할 수가 없을 때,

그 때 우리는 강해지는 것이죠. 주님의 능력으로!


실패의 원인이 거기에 있어요. 자기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면서도, 제자들이면서도 순간적으로 그 주님 을 신뢰하기보다도,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 그 순간

9명의 제자들은 보기 좋게 실패를 경험한 것입니다.


▲적용

여러분, 이 한 해에 우리 각자가 주어진 인생의 길을 살아갈 때

우리 앞에 수다한 문제들이, 그리고 난제들이 우리를 괴롭힐 때.. 기억하십시오.


1. 문제를 주 앞에 가져 나오시길 바랍니다.

나(구역장, 멘토)는 도울 수가 없어요.

그러나 나의 하나님은 형제를 도와주실줄 믿습니다.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시오.


2.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 하십시오. 자신을 신뢰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반드시 우리의 도움이 되실 줄 믿습니다.

(주. 지금까지 잠깐 중간 정리였습니다.)



▲3.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것은,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방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수록..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돼요.

기도 안 할수록.. 자기 생각, 자기 의지, 자기 계획에 의지하게 됩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  막9:29


똑같은 기사가 마17:21절에도 나옵니다.

거기에 ‘없음’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고 난외주로 바깥에다 코멘트를 해 놨어 요. 뭐라고 썼습니까?

<어떤 사본에 의하면, 기도와 금식이 아니고서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


기도와 함께 금식까지 강조하신 것으로 되어 있어요.

금식은 무엇입니까? 기도의 가장 강렬한 형태가 금식입니다.


▲간절한 기도의 형식 ‘금식기도’

어떤 사람들이 종종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도 어려운 일이 많아서 기도해 봤어요. 그런데 해결이 안 되던 데요?’


그때 제가 가끔 반문 합니다. ‘금식까지 해 보셨습니까?’

한 두 번의 기도가 아니라 정말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

금식은 기도의 가장 간절한 형태입니다.


저는 금년 연말 연초를 보내면서 특별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금식의 도전’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금년 한해 내 개인적인 내 영성 계발의 목표 중의 하나가,

금년에는 금식을 좀 많이 하자.

그래서 한달에 적어도 하루 온전히 하루 이상을 금식하는데 바치자 이렇게 결심했어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불가능의 문제들이 있어요.

우리의 힘, 우리의 지혜, 우리의 생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이런 난제들을 뚫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경험하기 위해서 주 앞에 엎드리는 사람들!


▲초대 교회의 능력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초대 교회의 능력은 기도의 능력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는,

초대 교회가 굉장히 이상적이 교회라서 지금 현대교회 보다 굉장히 우수한

어떤 교회라는 상상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와 똑같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보다 훨씬 교회 규모가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는 당대의 세계에,

그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과 충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었느냐. 기도와 금식에 있었어요. 금식에.


사도행전에 페이지마다 우리는 기도와 금식의 장이 없이

사도행전의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기도가 세계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글랙 롤’이 쓴 사도행전 강해를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있다가, 아주 충격적인 도전을 한 가지 받았어요.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사도행전에 교회들은 회의 보다 기도를 더 많이 했다.

그들은 만약 1시간 회의를 한다면, 틀림없이 2시간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어떠한가?

오늘날의 대부분의 교회들은 아마 2시간 회의를 했다면

1시간은커녕 단10분도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서 제가 찔렸어요. 나 보고 하는 이야기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교회 회의부터 좀 구조를 바꿔야겠구나.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30분 회의를 했다면, 적어도 30분 이상 기도하고,

우리가 1시간 회의를 했다면, 1시간 이상 그 보다 훨씬 더 엎드려서

하나님 우리가 의논한 이 문제들 가운데 하나님 이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회의보다 더 많이 기도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엎드림이 있다면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이 책을 읽을 때, 갑자기 오래 전에 제가 영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생각이 났어요.

오래 전에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제게 꼭 하나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비행장에 어떤 선교사님이 저를 pick up하러 나왔는데,

“목사님, 런던에서 뭘 보고 싶으세요?”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한 대답은 이런 대답이었습니다.

“나는 스펄젼 목사님의 교회를 보고 싶어요!”


‘설교의 왕자prince’라고 일컬어지는 스펄젼 목사님이 사역하던 교회에 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 봤어요. 주일날 가봤습니다.

한 200명도 안 모 여요. 찬양도 힘이 없었고 무력해진 회중.

설교도 큰 감동이 되지 못했어요. 저는 슬펐습니다. 저는 뒤에 앉아 계속 울었습니다.


‘어째서 스펄젼 목사님의 교회가 이렇게 되었을까?

한때 6천명 이상의 회중들이 꽉꽉 자리를 채우던 이 교회.

아니 많이 모일 때는 1만 명 이상씩 모여서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영광으로 불타오르던 이 교회...’


스펄젼의 전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이 교회를 방문하면,

목사님은 항상 방문객을 데리고 교회 본당이 아니라 교회 아래층으로 데리고 갔데요.

그 아래층에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 목회의 비밀은 바로 여기 기도하는 이 성도 들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다.

저들의 기도 때문에, 오늘 우리 교회는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단순히 스펄젼 목사님의 탁월한 설교만을 하나님이 쓰신 것이 아니라,

그 기도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그들은 한때 그 교회의 황금기를 누리고, 영국을 변형시키는 변혁의 초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펄젼 목사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어떤 전기 하나를 읽어보니까

스펄젼 목사님이 떠나간 후에 교회는 비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심상치 않은 변화중의 하나가.. 기도하는 운동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나는 만약 기도하는 성도들이 기도의 자리를 계속 지켰더라면

그 교회는 지금도 능력 있는 사역을 계속 하리라고 믿습니다.

기도가 사라질 때.. 하나님은 영광을 그 교회에서 거두신 것입니다.


▲나가는 말

저는 금년 한 해 동안, 저와 더불어 함께 사역할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

그리고 특별히 제직들이 먼저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와 함께 엎드려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때때로 자주 엎드려 금식도 하십시다.


우리 앞에 주어진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 우리 식사를 단절하고

주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기 시작할 때

저는 믿습니다. 하늘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부어질 것 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교회의 능력을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문제도 떠나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주께서 여러분에게 기도의 능력과 엎드리는 금식의 능력을 가르쳐 주시는

한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문제가 우리 가정 앞에, 우리 민족 앞에 놓여 있지만

하나님 기도하며 살겠어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겠어요.

하나님 특별히 이 한해 동안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정말 엎드려 기도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고

우리 앞에 주어진 모든 문제들을

정말 주님을 붙들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때로 인생의 절박한 순간에 정말 식사까지 단절하면서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들.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우리 민족이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 민족은 새로워 질 것입니다.


우리가 잠들면 우리 민족은 어두워 질 것입니다.                                                                #2172

하나님이여 우리 가운데 기도를 가르치시고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부어 주시옵소서.                ▣ 기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