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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2351

LNCK 2010. 3. 12. 11:47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롬8:26-28, 요14:16-20           01.09.23.설교스크랩



▲제 연약함을 도우신 성령님

어제 저는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지난 수요일 오후부터 몸이 좀 좋지 않았습니다.

몸살 기운이 슬슬 시작되더니 금요일 오후엔 앓아누웠습니다.


설교준비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주초週初에 줄기는 잡아 놨지만

마무리는 주말에 해야 되는데.. 이렇게 앓게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금요일은 일찍 자고, 토요일에는 하루 종일 준비해야겠다 생각하고

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아침 일찍 나갔다가 오후4시에 들어왔습니다.

집에 들어오니까 다시 몸살 기운이 도져서.. 그냥 누웠습니다.


그런데 머리 맡에 설교집이 있더라고요.

거기서 설교 한 편을 읽었는데, 그 설교에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교회로 내려와서 토요일 늦게까지 설교준비를 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이쯤 되면 초조와 긴장 속에서 준비를 하게 되지만

어제만큼은 이상하게 설교 준비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뭔가 잘 될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저의 연약함을 아시고 성령님께서 도우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제목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인 것을 아시고

성령님께서 먼저 저에게 그 사실을 체험케 하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즐거운 마음으로 이 설교단에 섰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은혜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부흥강사 목사님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서, 제일 듣기 거북한 말씀이 뭐냐 하면

설교 중에 손으로 뭘 던지는 시늉을 하면서 "성령 받아라!"하는 겁니다.


성령은.. 던지고 받는 공 같은 게 아닙니다.

성령은.. 사람이 사람한테 나누어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함께 창조에 참여하셨던 하나님의 영,

삼위 중에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란 말씀입니다.


성령은 어떤 징조나 기운이 아닙니다. 감각의 대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신앙의 대상이십니다.

엄연한 인격자이시며, 우리 중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성령님은 ‘돕는 자’

요한복음을 읽다보면 십자가를 지시기 전,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몇 번이나 반복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와 성령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를 읽어보면,

그 3장 사이에 예수님이 성령에 관한 말씀을 무려 4번이나 하십니다.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너무 중요해서 그런 겁니다.


한 두 번 해서는 이해 못할까봐,

어떻게 해서든지 꼭 알게 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반복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느냐 하면 요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가리켜 '보혜사' 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보혜사라는 뜻은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주위에서 돕는 자'(helper)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마지막까지 하시는 일이 뭐냐 하면.. 성도를 ‘돕는 일’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외국에 나간 게 필리핀 마닐라였습니다.

그런데 공항에 내려서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일행을 놓쳤습니다.

정말 아무리 둘러봐도 한국사람 한 명 한 보이고, 어디를 어떻게 가야될지,

땀은 비 오듯이 흐르고, 찾는 사람은 안 보이고,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우왕좌왕 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필리핀 여자가 한 명 오더니 저에게 유창한 한국말로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하고 물어보더라고요.

그 절박한 가운데, 그렇게 돕는 사람이 나타나니까 정말 얼마나 좋던지...

그 여자의 도움으로.. 무사히 일행이 있는 데를 찾았습니다.


도울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그건 얼마나 큰 힘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를 돕는 분이 계시다는 겁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의 도움은 사람 같지 않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잘 돕는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도움은 완벽하십니다. 더 이상 손댈 필요 없이 흠 없는 도움이십니다.


성령은 천지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케 하셨고,

예수님을 사망권세에서 일으키신 분입니다.

바로 이러한 분이 우리를 돕는 자(보혜사)로 내 곁에 와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보혜사 성령님, 저를 도와주세요!’ 이렇게 의지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2. 원래 보혜사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요14:16 말씀 중에 이상한 말씀이 있는데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라는 말씀입니다.


보혜사가 한 분 더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원래) 보혜사는 누구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님


그분은 하늘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분이십니다.

거기에서 보혜사의 일을 하신다는 겁니다.

 

①요한일서 2;1에 보면 참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요?

안 지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가만히 계시냐? ..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말씀해 주신다는 겁니다.

우리를 위해 친히 기도하신다는 거예요.

"이 사람은,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살린 사람이기 때문에 용서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나를 위한 대언자가 되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원문에 보면 바로 이 ‘대언자’나 ‘보혜사’가 똑같이

파라클레토스라는 같은 단어로 되어 있다는 겁니다.

무슨 얘깁니까?

예수님과 성령님이 똑같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겁니다.


②롬8:34절에 보면,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아멘.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돕는 보혜사라는 겁니다.


▲3. 또 다른 보혜사(돕는 자)

그런데 거기다가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을 보내시겠다는 겁니다. 요14:16

예수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라면,

성령님은 땅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이 땅에서 하시는 일이 뭐냐하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아멘.


성령님이 이 땅에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 뭐냐 하면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 최고의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인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가 여러분에게 기도 안 하시는 걸 책망하면서 "기도하셔야죠!"

그렇게 말씀드리면 여러분은 이렇게 받아치세요.

"그럼요 기도하구말구요. 내 속에서 성령님께서 얼마나 기도하시는데요"


사실 성령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의식하고만 있어도

그게 얼마나 큰 믿음인지 모릅니다. 겁날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그 사실을 잊지 마시고 꼭 기억하시길 축원합니다.


▲4. 마음의 간절함/사모함이 (방언보다) 더 필수적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들어도 마음 한 가운데

"그런데 이런 모든 얘기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얘기지,

나는 그 흔한 방언도 아직 못 받았는데.. 내게도 성령이 계신 건가?"

이렇게 고민하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교회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고, 사실 하나님이란 분이 계신지 어떤 지도 모르는데

성령은 무슨 성령...?"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십니까?

이런 의문에 대한 결론부터 내립니다.

갈릴레이가 교황청을 향해 "너희가 아무리 지구가 돈다, 안 돈다 떠들어도

거기에 관계없이 지구는 돈다" 그렇게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들이 살아 계시냐, 안 살아 계시냐?' 하는 것에 관계없이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에 관계없이

성령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고전12:3


다만 대부분의 경우, 멀리 떨어져 계시므로, 성령님을 피부로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과 교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성령님은 기도할 때마다 우리를 가까이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4:7


방언을 하면 좋지만, 안 해도 괜찮습니다. (필수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다만 필수적인 것은, ‘주님/성령님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통회하고, 간절한 자를.. 주님은 절대 모른다 하지 않으십니다.

(방언도 좋은 것이지만, 잘못 쓰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맙니다.)


▲5. 영원토록 함께 계시는 분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그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래도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함께 계시고, 성도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데’.. 그 기간이 언제까지냐? 하는 겁니다.


이런 불안에 대해서도 오늘, 우리 주님은 분명하게 답하고 계십니다.

요14:16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언제까지라고요? 영원토록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토록, 이 세상 끝날 때까지 함께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헤어질 것부터 걱정합니다.

사람에게는 그런 헤어짐의, 이별의 공포가 누구나 다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언제 떠나신다고요?

떠나시지 않습니다.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기쁠 때나/ 슬플때나,

평안할 때나/ 고난당할 때나

성령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더군다나 결정적으로 그 말씀을 뒷받침 해 주시는 말씀이 있는데

요14:18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우리를 부모 없는 자식처럼, 절대로 고아처럼 그렇게 두시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것만큼 더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 있을까요?


제가 고등학교 때, 저희 반에 고아원 원생아이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항상 뒷자리에 모여 앉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시간에 그 친구들이 갑자기 서로 주먹이 오가면서 싸웠습니다.


모두들 깜짝 놀랐죠. 선생님도 물론이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걔네들을 불러내서 혼을 내키고는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어이가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친구들이 부모 없이 고아원에 있으니까

얼마나 먹고 싶은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았겠습니까?

그래서 자기들끼리 돈 3만원이 있으면.. 뭐에 쓸까를 놓고 얘기했던 겁니다.

있지도 않은 돈을 가지고요.


그러다가 서로 사고 싶은 게 달랐나봅니다.

그래서 싸우다보니 주먹다짐까지 하게 됐다는 거예요.

돈이 있지도 않는데..


여러분은 지금 웃고 있지만.. 얼마나 처량하고 비참합니까?

아, 그때 저는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았습니다.


우리도 아마 주님이 우리를 버리면 그것보다 훨씬 더 처량하고 비참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시지 않겠다는 거예요

다시 오시겠다는 겁니다.



▲6.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라.

이는 내가 살겠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19~20


세상은 예수를 볼 수 없게 되는 날이 올 거라는 겁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승천하시고는.. 세상은 예수님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안 계신 예수님을.. 우리는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요?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게 돼서 예수님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즉, 보내신 성령님을 만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만나는 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누구시냐? 성령님이 어떤 분이냐?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성령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더 이상 고아가 아니야. 내가 가고 나면 이 땅에 성령이 오실 텐데

그렇게 되면 너희는 훨씬 행복해지는 거야.

내가 육체로 있게 될 때는.. 너희들이 나를 찾아다니고,

옆에 없으면 불안해하고, 내가 세상을 떠나면 나를 못 보게 되는 거야.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그럴 필요가 없어.

왜냐하면 내가 성령으로 너희 속에 항상 있게 될 테니까!

더 이상 나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고, 불안해 할 필요도 없어.


내가 너희 속에 있게 되면, 너희는 내가 한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왜? 네가 하는 게 아니라, 네 속에 내가 일하니까!

그래서 내가 떠나는 것은 너희에게 유익이야.

떠나는 게 아니야. 영원히 함께 있는 거야.

성령이 너희와 함께 있을 거니까. 너희는 절대로 고아가 아니야."


▲7. 그래서 능력power도 받게 됩니다.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계신 ‘예수의 영/성령’의 도우심으로 일하니까

필요할 때.. 성령의 능력도 자기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능력이 있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주(內住)하시는 성령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에

어떤 일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8:37


어제 설교집를 읽다가, 어떤 목사님의 25년간 목회하시면서 깨달으신

목회비결의 고백을 읽었습니다. 딱 일곱 글자였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결론은 성령이다" "결론은 성령이다"

내 속에서 뜨겁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믿기만 하면.. 문제는 끝이라 이겁니다.



▲절망적 삶 속에서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버티며 승리한.. 믿음의 거장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맨 나중에 나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동생이 불놀이를 하다가.. 불에 타 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다른 동생 하나가 집 근처 벌목 현장에서 나무에 치여 죽는 것을 봤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세 형님들이 차례로 급사急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6.25 때는 아버지와 가족들이 눈앞에서 공산당에게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자신은, 8.15와 6.25의 사선을 수없이 헤매다가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몇 해 전에는 고등학교 교감으로 봉직하던 동생이 10~16살까지 딸 넷을 남겨놓고

간암으로 죽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후 1년이 지난 후에는 (남한에 하나 남은) 딸이

위암으로 157일 동안 고통을 겪다가

어린 두 딸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 비극을 당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동생과 제수가 죽고,

막내 동생은 지금 간경화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고아원을 차려야 될 정도로, 모두가 자녀들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분이 이 이야기를 글로 썼을 때는 환갑을 맞는 나이였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상황입니까?

만약 여러분이나 저나 그분이 겪은 사건을 하나라도 겪었다면

우리는 아마 주눅이 들어서 일어나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런 줄줄이 이어오는 비극을 겪으면서도

놀랍게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하나의 얼굴로는 웃고, 다른 얼굴로는 운다.

내 영은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깊은 곳에서 샘물같이 환희가 솟는다.

그러나 다른 마음의 하늘에서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옆을 보면 정신착란증에 걸릴 것 같고.. 위를 보면 현기증이 난다.

내 안을 들여다보면 죄와 추한 것들이 있고..

과거는 회한과 슬픔뿐이고.. 미래는 안개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나는 주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과거는 아무리 더럽고, 아프고 서러워도

내일과 새해와 미래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페이지,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이 열려 있다.


시집가는 처녀처럼 새 날을 맞이하여 새 집에서 새 살림 꾸려 새 사랑을 살자.

한 해 한 해를 사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도 아니다.

한 발짝, 한 호흡, 주님을 사랑하며 창세기 첫날처럼,

날마다 영원한 첫사랑으로 살자. 내게 깊은 위로와 감사와 찬송과 평안이 있다.

그것은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은혜로 내게 주시는 것들이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게 바로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분이 바로 한국대학생선교회의 김준곤 박사님이십니다.


그렇게 험한 눈물 골짜기를 거쳐 오면서도.. 기쁨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늘 향해서 처녀가 새 살림 꾸미듯이.. 새 인생 바라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겼습니다.

이런 초인적인 능력이 어디서 나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내안에 계신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마치는 말

지금 말씀드린 김준곤 목사님의 경우처럼, 특별히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가 문제가 너무 커서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

그때도 우리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 대신 기도해 주십니다.


그것도 그냥 건조하게 기도하시는 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간절한 애닯음과 안타까움을 가지시고 친히 기도해 주십니다.


여러분! 지금 힘드십니까? 앞날이 걱정되십니까?

파도처럼 몰려오는 문제들이 겁나십니까?

자신이 없으십니까?

이 모든 걱정 근심에 해답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문제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성령님을 믿으십시오.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셨던 성령님, 우리는 모르고 있었지만

우리 죄 때문에 끊임없이 빌어 주셨던 성령님, 그 분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늘 노래하잖아요?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그 누군가가 누굽니까?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절대로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조금만 더 견디세요. 성령이 주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다만 성령님께서는 인격체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일하시고 싶어하십니다.

여러분이 일을 안 하셔도 성령님이 대신 해 주시지만,

여러분이 협조해 주셔야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이 내 안에 계신 것만 믿으시면 됩니다.

그분이 내 전 생애를 주관하시고 계획하시고 일하신다는 것만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내 전부를 스스럼없이 꺼내 놓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세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같이 가 주세요.

내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끄는 힘으로 그대로 끌려가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성령의 동행하심이 어떤 건지 체험할 것입니다.


성령님은 일생 여러분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여러분의 연약함을 도우실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이 땅에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셔서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우리를 위해 친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여러분 일생 다하도록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크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깊이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이 나마의 우리 모습이라도

성령님께서 함께 해 주신 은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와 늘 동행하시고, 앞으로도 함께 하실 성령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위해 지금도 간구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의지하고

앞으로도 그 동행하심을 굳게 믿어

의심 없이 주님과 함께, 이 생명 다하기까지 함께 갈 수 있도록 믿음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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