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열리지 않을 때 계5:4 설교 편집
요즘 ‘말씀이 열린다’는 말이 자주 들립니다.
‘말씀이 술술 깨달아진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펴도, 성경을 읽어도, <말씀이 열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는지.. 몇 분 의견을 모아 보았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5사례는, 각각 다른 5분입니다.)
◑1. 엉엉 울기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계5:4
하루는 제가, 성경을 읽다가 이 구절에 딱 멈추게 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계시를 받다가,
어떤 ‘두루마리(오늘날로 치면 책)’를 받았는데,
그것을 펴거나 보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자
사도요한이 ‘크게 울었다’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은 ‘슬피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이 구절을 외우면서 오래 동안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멈추게 되면,
저도 (사도요한처럼) 엉엉 우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정말 슬피 우는 자세로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고
다시 성경을 읽거나, 다른 참고서적을 읽었을 때
저는 ‘성경이 열리는’ 경험을.. 지금까지 계속 여러 번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제 비밀입니다.
주님은 눈물에 약한 분이십니다.
말씀을 펴 놓은 채로, 제가 어린아이처럼 슬피 울면, 말씀이 깨달아지더라고요!
(꼬마 아이가 장난감 가게에서, 엄마 옷자락 붙잡고 무조건 울면,
엄마의 경제능력이 충분치 않더라도.. 너무 불쌍해서 장난감을 사 주게 되잖아요!)
성경을 올바로 깨달으려면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지식/학문/신학적으로만 접근하면,
성경을 이상한 방향으로 깨달을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 두루마리’가 펴지지 않고, 읽을 수 없다고
엉엉 우는 사도요한을 보실 때,
주님은 얼마나 그가 사랑스러우셨을까요?
오늘날 우리도, 주님과 사랑의 관계에서, 말씀이 열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녹취
◑2. 회개하기
이따금 설교 준비를 하다보면, 도무지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말씀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설교는 해야겠는데.., 무슨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몰라 헤맬 때
결국 나는 성경을 덮어버리고, 기도로 하나님께 묻습니다.
“제게 회개해야 할 것이 있나요?”
그러면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머리에서 번개처럼 떠오릅니다.
‘아, 내가 또 잘못했었구나!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뉘우치며 회개한 다음, 다시 성경을 펴서 읽으면
놀랍게도 그 본문 속에서, 전해야 할 말씀의 영감이.. 쑥쑥 떠오릅니다. <#1639
◑3. 문맥 살피기
‘성경해석의 왕은 문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본문을 해석할 때, 본문의 전후 문맥을 꼭 살핍니다.
특별히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아서 힘들어 할 때
본문 앞의 1~2장, 뒤의 1~2장과 함께 읽어나가면.. 본문이 확 깨달아집니다.
예를 들면, 고전13장도 사랑장입니다.
그런데 고전12장에 보니까.. 12장 내내 ‘은사’에 관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고전14장에 보니까.. 14장도 역시 ‘은사’에 관해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끼인 고전13장은, ‘사랑 장chapter’이라고 하는데,
문맥을 통해 이해하자면.. ‘모든 은사를 사용하되 사랑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고전13장을, <일반적인 크리스천의 삶>으로서 ‘사랑’을 얘기하기도 합니다만
※고전13:4~7절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삽입구/부연설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후 문맥을 통해서 보면, 고전13장은 <은사 사용에 있어서의 사랑>입니다.
방언을 해도 사랑으로, 예언을 해도 사랑으로 하라.. 는 것입니다.
전후 문맥을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약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방언도, 예언도, 설교도.. 그 좋은 것이 도리어 흉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녹취
◑4. 설교준비에 있어서 ‘일상성 극복하기’
‘특별함’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지루하고도 짜증나는 ‘평범함/일상성’을 통과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평범함’을 무시하고, 왜 그런 ‘일상성’을 거치려 하지 않고,
자신이 특별해 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까?
새 별을 발견해서 그 별에다 자기 이름을 붙이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선 밤하늘에 떠 있는 모든 별들을 다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남들과 다르게 연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사람의 연주를 다 들어봐야 되지 않겠어요?
재미없고 지루하고 짜증나지만, 그 일을 거쳐야만
자기만의 연주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설교를 준비할 때도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로운 관점을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영감을 얻는 일도 아니고,
기억의 저편 속에 있는 예화를 끌어내는 일도 아닙니다.
이미 예상이 되고, 읽어봐야 뻔한 문서들과 자료들 수백 페이지를 읽고 검토하는
그 평범한 시간들을 견디는 게 가장 힘듭니다.
특별함은 평범함/일상성이란 긴 터널을 통과할 때만이 보이는 법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열정은 비로소 뭔가를 창조해 내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2111
◑5. 기도로 묻기
‘주여,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합니까?’
‘주여, 무슨 자료를 찾아봐야 합니까?’
‘주여, 당신의 종을 통해서, 무슨 말씀을 전하기 원하십니까?
주님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것을 제게 좀 가르쳐 주세요!’
말씀을 대언할 사람은, 이렇게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I have put my words in your mouth. 렘1:9
말씀을 대언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사실 계속되는 기도의 시간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버텨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자기 말이 아니라, 주님이 자기 입에 넣어주시는 렘1:9
그 말씀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말씀이 자기 마음에 쾅쾅 부딪히거나
어떤 설교에 대한 주제와/대지와/흐름이 훤하게 '열리는'
즉, 말씀을 주실 때까지, 자리를 안 떠나고, 끝까지 기도로 물으면서 버티면 됩니다.
기도로 물으며, 머리에 복기復記가 가능할 정도로, 뼈대를 세웁니다.
이 과정이 전체의 절반인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립니다.
나머지 절반은 받은 말씀을 타이핑하며 살을 입히는 시간입니다. ▣ 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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