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므온의 노년 눅2:22~32 08.12.28.설교스크랩
*원제목 ; 내가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누구나 인생은 회고할 때가 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말을 합니다.
20대에는 시간이 시속 20Km로 가고, 40대에는 40Km,
60대에는 60Km로 달린다고도 하지요.
이게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연구들 가운데, 미국의 신경학자 ‘피터 맹건’이 발견한 것은,
사람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생리시계(생체시계)가 느려진다는 겁니다.
그가 이런 연구를 했답니다.
사람들을 나이별로 모아놓고 3분을 마음속으로 헤아리게 했더니,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은 오차 3초 이내에서 3분을 정확하게 맞췄는데,
중년층은 3분 16초,
60세 이상은 3분 40초를 3분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60세 이상의 경우, 나는 3분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3분 40초가 지났다는 거지요.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이라는 호르몬 분비가 줄어들면서
뇌 속에 있는 인체시계가 느려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겁니다.
그런 경험, 있으시지요? 나는 하루 이틀쯤 지났거니 생각했는데,
달력을 보니까 일주일이 더 지나가 있더라...
이게 그냥 느낌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다는 겁니다.
이런 현상의 연구로 노벨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계에 표시되는 시간은, 계곡을 흐르는 강물처럼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인생의 초입에 서 있는 사람은 강물보다 빠른 속도로 강둑을 달릴 수 있다.
중년에 이르면 속도가 조금 느려지기는 하지만, 아직 강물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몸이 치쳐버리면 강물의 속도보다 뒤처지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강둑에 드러누워 버리지만, 강물은 한결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늙을수록, 시간의 강물이 자기보다 더 빨리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는 것은,
시간이 빨리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점점 느려진다는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아직 할 일도 많고 갈 길이 먼데,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가고,
시간을 따라가는 나는 점점 느려져서, 시간은 저만큼 앞서 도망가 버리고,
나는 그렇게 가버리는 시간을 뒤쫓아 가기가 힘겨워지니 말입니다.
▲이제 2008년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에 서서, 금년 한 해, 우리 인생을 되돌아봅니다.
금년 한 해는, 나에게, 과연 어떤 한 해였나요?
금년이, 내가 살아온 전 생애 중에서 가장 원더풀한 한 해 였다면.. 잘 된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참 생명을 발견한 사람은,
한 해, 한 해가 정말 새롭게 더욱 wonderful한 한 해가 되어갈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일생을 마칠 때에도.. ‘내 인생은 원더풀했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마지막 해年에 도달하게 된다면,
여러분이 회고하는 나의 일생은.. 한 마디로 과연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인생을 접으면서, 다른 사람이 우리 인생을 어떻게 말하게 될까요?
여러분은 나중에 세상 떠난 후에,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주기를 바라세요?
▲피천득 선생을 추모하며
영문학자요 수필가로 유명한 피천득 선생이 2007년 97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제자들이 그를 추모하면서 고인이 가장 좋아했던
“너”라는 시를 새긴 시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 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가는
너
제자들이 이 시를 선택한 이유는,
고인이 생전에, 자기가 죽은 후에 사람들이 자기를 두고 말하기를,
‘이 사람,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이 시야말로, 그 바람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말할 때, 사람들이,
‘그 사람,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게 된다면,
그 인생은 덧없지만은 않을 것 같지 않습니까?
▲일본 성심수녀회의 ‘스즈키 히데코’ 수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은 살아남은 우리에게 반드시 메시지를 남기고 이승을 떠납니다.
그것은 형태를 달리해서 여러 가지로 표현되지만, 다음과 같은 말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서로를 소중히 (사랑)해 주십시오.
살아있다는 것은 한없이 고귀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1912~2007) 신부도 이같이 말합니다.
“죽음은 우리 삶에서 황홀한 순간이며, 환상적인 만남을 가져다주는 눈부신 순간이다.
그 때, 인생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것이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절대로 망쳐서는 안 되는 그 두 가지 일은.. 사랑하는 것과 (잘) 죽는 것이다.”
결국 죽음을 준비하며 지금 살아있는 우리들이 할 일은,
믿음과 사랑과 용서 입니다.
◑시므온의 노년
▲1. 늙어서도 여전히 사명의 사람 시므온 눅2:26
본문은 시므온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 사람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29절,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신다는 문맥을 봐서,
그가 연로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2:26
그 약속을 믿고,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며 일생을 살아왔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아무리 나이가 많고 노쇠해도,
네가 죽기 전에 반드시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시므온이 그냥 오래 살 것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렇게 사명과 약속이 있었기에.. 노인이라도 무시 못 합니다.
아까 얘기한 식으로 하자면, 이 사람의 삶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평생 그리스도를 기다리다가 결국 만난 사람이었다” 라고
결국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2. 경건한 노인, 시므온 2:25a
시므온이 이런 약속을 받게 된 것은,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눅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인이라서.. 어쩌면 쉽게 고삐가 풀릴 수 있습니다.
노인은 일선에서 물러나 있고, 나이도 많으니까..
자신 스스로, 또는 사회에서..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립니다.
그러나 노인 시므온은
그 어느 제사장, 선지자보다 더 경건하고 의롭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계시가, 성령의 감동이
수많은 종교지도자들 다 놔두고, 시므온 노인에게 임했습니다.
▲3.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노인 시므온
눅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여기서 ‘그리스도를 본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태어나신 아기 예수,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눈으로 본다는 뜻이겠지요.
이건 단순히 태어난 아기를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세상에 임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눈물 흘리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는 겁니다.
이제는 상처받은 사람들, 아파하고 탄식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신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 선포한 말씀은, 이사야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눅4:18~19
시므온이 본 것은, 바로 이 일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메시야가 오셔서 이런 일들을 하시겠구나.
이제 하나님의 위로가 시작되는구나. 이제 구원이 시작되는구나.’
▲4. 평안히 세상을 떠나는 노인 시므온
시므온은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보고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2:29~32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보고, 시므온은 거기서 주님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아직 핏덩이인 어린 아기를 보고서,
시므온은 이방 사람들에게 계시하는 빛을 보았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다고 말합니다.
마음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으면.. 그는 정말 성공한/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는, 더 이상 여한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사실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오늘 밤에’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날을 매일 연습하면.. 나중에 나도, 시므온처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위3번,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시므온.. 에 관계된 글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온기의 힘>입니다.
“가난 때문에 모래사장에 눈물 뚝뚝 떨어뜨려본 사람은,
가난 때문에 제 울음소리에 놀라 깨어본 사람은 안다.
그 어떤 것보다.. 마주 잡아주는 손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천 마디 위로의 말보다.. 한 번 안아주는 온기의 힘이 더 크다는 것을.
병문안을 와서.. 숱한 위로의 말을 전하는 사람보다,
환자의 손을 꼬옥 잡고 오래오래 곁을 지키는 사람이 더 진실하다.
눈물을 흘릴 때.. 흔한 위로의 말을 던지는 사람보다,
말없이 그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더 진실하다.
파산했을 때.. 위로의 백 마디 말보다..
내 어깨를 꾸욱 쥐어주는 손길이 더 진실하다.
비를 맞고 있을 때.. 온몸으로 함께 비 맞아주는 우정이 더 진실하고,
슬퍼하는 연인을.. 품에 안고 가슴 아파하는 사랑이 더 진실하다.
백 마디 찬사보다.. 손을 꼭 잡은 신뢰가 더 진실하고,
천 마디 고백보다.. 사랑을 담은 시선이 훨씬 진실하다.
그것이 바로 온기의 힘이다.
그러니 슬픈 그 사람의 손을 맞잡고 마음의 따뜻함을 전해주기를...”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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