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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의 날개 2175

LNCK 2009. 11. 10. 12:46

◈암탉의 날개                          마23:37                        08.06.05.설교녹취


 

◑헤어져도 너무 비참하게 헤어졌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너무 비참한 결별

지나간 역사이고, 나의 일이 아니라서 그러려니 하지만, 사실은 끔찍한 일이다.

이스라엘 민족만큼,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오래도록 받은 민족이.. 역사에 없었다.

그런데 끝이 너무 비참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처참하게 버리셔서, 주후 70년경 완전히 망하게 하시고,

성전도 불타고, 예루살렘도 이방인에게 짓밟혀서, 그때 이후 2천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을 버리셨다.

 

이스라엘 민족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가장 극형인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복수하는 것 같다.


▲오늘날 이혼하는 부부들을 보면.. 깨끗하게 갈라선다.

서초동 법원 앞에 가면, 이혼 판결 받고 나오는 부부들을 종종 보는데,

20년을 같이 살았던 부부가, 서로 등 돌리고.. 깨끗하게 헤어지는 장면을 본다.


이왕 헤어지고 결별하려면, 이렇게 서로 깨끗하게 헤어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는 그렇지가 못했다.

헤어지는 마당에.. 서로가 서로를 죽인 형국이다.

서로 아주 비참하게 헤어졌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2천 년 이상을 너무 서로 사랑하고 친했던 사이가, 깨끗하게 헤어지지 못하고,

이렇게 최악의 살인극을 벌이면서.. 서로 헤어져야 했었나?



◑비참한 결별의 이유 : 서로 원하는 것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병아리를 보호하는 암탉의 무서움

여러분, 병아리는 암탉의 날개아래 들어오게 되어있고,

암탉은 병아리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암탉의 본능이다.


시골에서 보면, 암탉이 병아리를 자기 날개아래 품고 있을 때에는

그 때 독수리가 날아오더라도,

산양을 나꿔채는 발톱을 가진 독수리도,

병아리를 품고 앉아 있는 암탉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한다.


암탉이 너무 표독스럽게,

자기 날개 아래 병아리들을 필사적으로 방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엄마들도, 이렇게 병아리 품은 암탉처럼 매우 사납다.

여자는 연약하지만, 같은 여자이지만.. 엄마는 전혀 다르다. )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병아리들이, 암탉의 날개 아래의 보호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보호하고 지켜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그 지켜주시려고 하는 은혜를

이스라엘은 왜 저버리는 것일까?


아니, 지켜준다는데, 지켜주면 좋지 않는가?

그런데 왜 지켜주시는 그 주님의 은혜를 거부하는가?


▲이해를 돕는 예화

제가 어릴 적에, 저희 집에서 개를 한 마리 키웠는데,

할머니가 늘 개밥을 주셨다.

하루는 할머니가 제게 ‘철아, 개밥그릇을 좀 가져오너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가 개밥그릇 가지러 갔다가, 하마터면 우리 개에게 물릴 뻔했다.

우리 개인데, 자기 개밥그릇을 제가 만지자 (자기 밥을 날라 주려는데)

그 개가 그걸 모르고, 나를 물려고 으르릉 거리며 덤벼들었던 것이다.


자기 개밥은 할머니만 주시니까, 아무도 손대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저는, 개를 냅다 걷어차 버리고, 그 개밥그릇을 빼앗아서, 개밥을 날라 주었다.

(이 예화는,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모른다는 얘기임)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지켜주시려고 애가 타셔서

나중에는 자기 독생자까지 보내셔서 지켜주시려고 애를 태우시는데,

왜 이스라엘은.. 그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쳐서 죽였는가? 왜?


이스라엘이 지킴을 받고 싶어 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자 하는 것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1.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지킴을 받기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가정, 우리 자녀, 우리 재산 등 (현세적 세상 복)이다.


그런데 예수 믿고, 이런 것을 지킴 받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솔로몬, 요셉, 다윗, 에스더.. 몇 사람 안 된다.

(신구약을 통 털어서 아무리 손가락을 꼽아 봐도 10명을 넘기기 힘들다)


오히려 예수 믿고, 세상 복을 다 상실했다.

스데반, 바울, 초대교회 성도들.. 오히려 다 빼앗겼다.

야고보 사도는 목이 잘려 죽었고, 사도들은 숱하게 감옥에 들락거렸다.

 

예루살렘에 핍박이 나자, 오늘날 이라크 난민처럼, 성도들은 인근 나라로 피신을 가야했고

그러면 부동산, 직장, 사업.. 이런 것 다 포기해야 했다. 

제자들은, 예수를 따라 나설 때, 세상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원해서 스스로 다 포기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 복을 더 크게 여겼다.  註1)


(오늘날 우리가 원하는 바 현세적 세상 복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셨던 것인가?


▲2.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진짜 우리들을 지켜 주시기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암탉이 그 날개아래 새끼들을 보호한다는데, 도대체 뭘 지켜주신다는 것인가?

평화(=평강)를 지켜 보호해 주신다.


예수님 말씀에, 암탉이 그 날개 아래에,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보호하려 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마23:37


여러분, 예루살렘은 이르(도시)+살렘(평화)=‘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암탉이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날개 아래 지킨다는 뜻은,

그 자녀들의 평화, 그 도시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고 하는 그 내용/알맹이는,

현세적 세상 복이 아니라, (그건 지키고/안 지키고를 떠나서 근본 관심사가 아님)

근본적으로 성도들의 평강을 지켜주신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골3:15


그런데 이렇게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하는 것(평강)은.. 내가 보기에 너무 시시하다.

‘내 마음의 평화, 평강’ .. 그런 쓸데없는 것 말고,

제발 ‘내 건강’을 지켜주시든지, ‘내 물질’을 지켜주시든지.. 그랬으면 좋겠는데..

내 생각에는, 건강과 돈만 많으면.. 평화와 평강은 저절로 따라올 것 같다.


하나님이 굳이 내게 평강을 주실 필요 없이

돈과 건강을 주시면.. 그 평강은 저절로 따라올 것 같은데..,

하나님은 돈과 건강을 주신다는 보장은 없으면서.. 평강만 주시겠다는데..

이거 원, 하나님은 뭔가 좀 꽉 막히신 분 같아 보인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7


    우리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하도록 지켜 주신다는데..

    그런 것 보다는, 현실적으로 우리 아이 학교성적이나 팍팍 오르도록 해 주시면

    내 마음과 생각은 저절로 평강으로 지켜질 것 같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우리는 ‘마음의/영생의 평안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항변한다.

    당장 의.식.주의 평안을 달라고 주님께 요구한다.

    그런데 그런, 내가 요구하는 의식주의 평안은 안 주시고


    대신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라면서

    세상에서 ‘환난’ 당하는 것을, 예수님은, 아예 기정사실화 해 버리신다. 


    이건 거의 사기에 가깝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평안을 누리게 하려면, 환난을 안 주셔야지!

    환난은 환난대로 주시면서.. 그것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또 평안을 주신다고 하신다.   요16:33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세상(마귀)을 이겼다는 분이, 왜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도록 허용하시는가?



※지금까지 설교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피 튀기는 결별의 이면에는

이스라엘이 받기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주시기 원하는 것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기 원한 것은.. 세상적, 현세적 복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기 원하신 것은.. 마음의 평안(=평강)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입장을 놓고 봐도, 오늘날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 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기 원하시는 ‘마음의 평안’ .. 그런 것 보다는,

의.식.주와 현세적인 복을.. 하나님께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주 엉망이라는 것이다.

부부라는데, 혹은 부자지간이라는데.., 서로 핀트가 영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주님과 이혼하는 신자도 있다.



◑‘평강’이 주시는 게 뭐가 나빠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가?


주님이 평강을 주시면 .. 받아서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왜 평강을 주시러 오신 예수님을 ..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했나?

그런데 필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참 평강을 얻으려면, 먼저 포기해야 할 것이 있었다.

여러분, 예수님이 주시는 참 평강은,

먼저, 세상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면.. 못 얻는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5:24


※정passion과 욕심desire/lusts을.. 어떤 분이 이렇게 표현했다.

정passion은.. 밖으로 팽창하려고 하는 욕심이고,

욕심desire은.. 자기 안으로 끌어당기려고 하는 욕심이라고!


사업을 확장하고, 건물을 늘이고, 해외로 진출하는 것들은.. 정passion이고,

여러 가지 욕심을 품고서, 자기 마음속의 욕심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욕심desire/lust이라고


물론 우리가 사업도 팽창해야하고, 복음도 팽창해야 하고,

마음에 욕심도 어느 정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한 것들이어야 한다.

그래서 내 야망은 죽고, 주님의 열정passion과 소원desire이 되어야 한다.

 

십자가를 통과 하지 않은, 십자가에서 죽지 못한 정과 욕심은

자기를 괴롭게 하고, 사회에 고통을 줄 뿐이다. '야망/야욕'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그토록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기 원하셨던 평강!

그것을 얻으려면.. 자기 백성들이.. 반드시 정과 욕심을 먼저 내려놓아야 했었다.

그래서 주님은 반복적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일례로, 예수님이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누가복음에도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왔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꾸 부자들을 까는 듯한 설교를 하셨다.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

부자 나사로가 땅에서 호강하다가 지옥에 갔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부자 청년에게, 네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당시 그 시대의 부자들, 기득권층들은

한 마디로 듣기 싫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그 말씀을..


자기들이 믿고 있던 바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섬겨서, 지금 그 결과로 부자가 되었다고 자랑하고 있는데,

(그리고 너희가 가난하게 된 것은,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믿고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정반대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12:31


그러니까 결국은,

평강을 주러 오신 예수님을, 덥석 물어버린 것이다.

(서두에 제가 개에게 밥 주려다가 오히려 물릴 뻔한 예화를 들었다.)


자꾸 예수님이 ‘세상을 버려라, 세상을 등지라 그래야 하나님 나라(평강)에 들어간다’라고 가르치시니까,

그 소리 아예 더 이상 못하도록.. 돌을 들어서 예수님을 친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오래도록 비참한 결별을 하게 되었다.

이혼을 해도, 좋게 웃으면서 헤어지지 못하고, 서로 극한 보복을 한 형국이었다.


그러니까 암탉이 날개 아래 모으듯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세상 것들을 놔야 그 날개 안으로 들어오는데..

그것을 절대 못 놓고 있다가, 결국에는 ‘놔라’는 예수님을 죽여 버렸다.

살려뒀다가는 자기들이 더 큰 괴로움을 당할 것 같으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지킬 것/가진 것이 많았다.

그러니까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명예도 갖고 있었고,

재산도 갖고 있었고,

지위와 체면도 갖고 있었고..

그렇게 세상 것들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하늘의 평강은 없었다.

사람들에게 외식하고, 남에게 외적으로 보이는데서 오는.. 가식적인 안정감 뿐이었다.


반면에 창기와 세리를 지킬 것/가진 것이 거의 없었다.

명예도 없었고,

재산도 없었고, (세리는 제외)

체면도 없었다.

그러니까 ‘다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는 주님의 가르침에

금방 따를 수 있었다.

‘다 버리는 것’이 상대적으로 너무 쉬웠기 때문이었다. 이미 거의 다 버리고 있는 상태였다.

(후략)

 

...................................  더 읽으실 분 .........................................


※오늘날에도 청부론, 소위 ‘깨끗한 부자’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 주장이 완전하려면, 2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반드시 해야 한다.


하나는, 성경과 기독교는 물질적 가치관을 그리 최고의 우위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깨끗한 부자가 되기 전에, 먼저 물질적 가치관(물질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그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2가지 질문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성경적으로 하고 나면,

‘청부론’은, 생선으로 치면, 꼬리와 지느러미만 남을 것 같다. 안코가 없어지는 것이다.


‘(깨끗하게) 부자가 되어서, 물질의 양적인 힘으로 선한 사업에 힘쓰겠다’는 전제는

(그 마음이 갸륵하다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 성경에서 강조되는 원리가 아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바울은 결코 물질의 힘을 동원해서 사역하신 적이 없으셨다.


 

     註1)

이 설명은, 예수 믿으면, 모든 세상 것을 다 빼앗긴다는 것을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럴 상황이 오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그렇고, 앞으로 ‘종말적 대환란’이 오면 그럴 것이다.  *great tribulation


위 설명은, 다만, 오늘 우리가 귀 따갑게 듣듯이

예수를 믿으면, 주님이 우리 현세적 복들을 모두 보호하시고 보장하신다..

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신자들의 소원이지만, 성경에 확실히 보장하신 것은 아니다.


물론 현세적 복들을 하나도 안 주신다는 말도.. 성경에는 없다. 받든지/못 받든지.. 크게 상관 안 한다.

다만 성경의 관심과 초점은 영생에 있다는 것이지, 현세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영생은.. 현세를 포함하는 영원한 미래를 뜻한다.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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