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신앙, 싸구려 신앙 눅12:1~21 -08.09.28.설교스크랩-
*원제목 : 진짜 중요한 것
▲명품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 명품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명품 한두 가지 안 가지고 있으면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미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명품시장은 너무 거품이 많이 끼어서,
명품이 사치와 허영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명품이 명품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냥 저절로 된 것이 아니었지요.
명품이라는 건 제품의 가격보다도, 브랜드의 가치인데,
그 브랜드가 그런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엄격한 자기 통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조그마한 결함도 허용하지 않고, 자기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제품을 만들자는 것,
아무데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쓰다가 쉽게 버려지는 싸구려는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이
오랜 시간동안 변하지 않고 지켜져서
어느 순간 명품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가치 있게 만들고, 그 가치를 지키는 일에 있어서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품이 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기독교의 가치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요즘 그다지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어떤 선교신학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기독교가 자신을 너무 싸구려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싸구려가 뭡니까? 가치가 없다는 거지요.
쓰다가 시원찮으면 쉽게 버리고 함부로 무시해도 좋은, 별 가치 없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명품과 정반대되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독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소중하게 지키지 못하고
함부로 여겨서, 남들이 보기에 교회 자체가 싸구려로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지요. 교회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
즉 복음의 내용들
예를 들면.. 사랑, 은혜, 평화, 용서, 기쁨, 생명, 영생, 소망...
이런 것들을 교회가 가르치고 선포하기는 하는데,
실제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생활 속에서는 그런 것들을 아주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는 겁니다.
(명품으로 존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그것을 가치 없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교회에서 세상 재물을 탐내지 말고 하늘에 재물을 쌓아두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늘에 재물을 쌓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세상에서 재물을 쌓기 위해, 세상 사람들에 뒤지지 않는 열심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을
교인들 스스로 가볍게 여기고 쉽게 무시하니까,
그런 가치 위에 세워진 교회 역시 싸구려로 여기게 된다는 겁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복음의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생명을 바쳐 사랑하고 희생하고, 필요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순교할 때,
세상은 교회를 존경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지금 세상이 교회를 함부로 대하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의 책임이 크다는 겁니다.
누구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그 가치를.. 가치 있는 것으로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그 문제와 관련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 설명
▲예수님이 한참 복음의 가치를 설교하고 계시는 중에... (이를테면 명품 복음)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복음을 가르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그 다음에는 그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인 다음에 지옥에 던질 권세를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라.
또, 참새 한 마리도 잊지 않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머리카락까지 다 세고 계신다 . 눅12:4~7
박해의 시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면
예수님도 천사들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하겠다.
또 그렇게 통치자들에게 잡혀서 끌려갈 때에, 무슨 말을 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눅12:8~12
그러니까, 예수님은 복음의 가치들을 열심히 설교하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질문을 합니다. (이를테면 싸구려 질문)
자기 형제가 하나 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가서
아버지의 유산을 혼자 먹지 말고, 형제들과 나누라고 말해달라는 겁니다.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아니고, 이게 느닷없이 무슨 말입니까?
아마도 이 사람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모습이 권위 있게 보이고, 카리스마가 있으니까,
‘옳다, 이 사람이 말해주면 되겠다.
내 형제가 내 말은 듣지 않지만, 이 랍비의 말이라면 들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이 사람의 요청도 따지고 보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공정하게 나누게 해달라는 겁니다.
정의의 문제와 분배의 문제, 경제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예수님의 개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일단 명분은 있어 보입니다.
경제적으로 불공평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정치적으로 개입해서 정의를 수립하는 일이니,
예수님으로서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사람 살아가는 일에는 언제나 있는 일이고,
교회로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바르게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한 마디로 개입을 거부하십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느냐? 눅12:14
예수님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하십니다.
나는 정의를 세우는 재판관이나 공평한 분배를 시행하는 분배인이 아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게 정의의 문제와 경제의 문제가 얽혀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는 거지요.
그런데 왜 예수님은 개입하기를 거부하셨을까요?
그런 문제는 예수님의 관심사가 아니어서.. 였을까요?
말하자면 교회는 그런 일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것,
사회 정의를 위해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걸까요?
◑해석 : 예수님은 탈속세주의?
▲한 세대 전에, 일부 교회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참 많은 역할을 해서,
우리 역사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 전에는 교회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교회를 존경하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건 아무 필요 없는 일,
적어도 교회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거라는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해서 일본에 저항하셨던 분들은 뭐가 됩니까?
삼일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끄시고 거기 참여하셨던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뭡니까?
공산주의의 종교박해에 저항해서 순교하신 분들은 뭐가 됩니까?
그분들이 그냥 교회만 지키고 있었던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일본제국주의나 공산주의에 반대해서 저항하고 투쟁하다가 순교하신 분들이 대부분인데,
그러면, 그런 분들은 하지 말아야 했던 일을 하신 거란 말입니까?
▲하지만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23장에서는 예수님이 종교적인 일에만 몰두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했지만, 이것들도 마땅해 행해야 했다.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마23:23~24
정의를 세우는 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일이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
교회가 세상을 향해 믿음을 세우고 신의를 지키는 일,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하루아침에 약속을 깨고 말을 바꾸지 않는 것,
이런 일들이 모두 중요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치 한국교회를 향해 하시는 말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날이 갈수록 교회는 거대해지고 예배는 버라이어티쇼처럼 화려해지는데,
막상 교회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정의와 자비와 신의는
너무나 가볍게 취급해버려서
교회 자체를 싸구려로 만들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겁니다.
◑예수님 말씀의 진의 眞意
그러면, 지금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 의미는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유산 분배에 개입해달라는 사람의 요청에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느냐고 하신 다음에, 12:14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눅12:15
← 이 말씀이 14절을 말씀하신 진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정의의 문제, 분배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개인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 옳지 않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돈을 벌게 해주고
정의의 명분으로 개인적인 원한을 풀어주는 일에 개입할 생각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인 탐욕/명예/이권을 위하여
예수님/신앙/교회를 끌어들이거나 이용해먹으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싸구려를 조심하라는 뜻)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 예수님은
고난의 시대, 박해의 한 가운데서
어떻게 신앙을 지키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흔들리지 않고 살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시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느닷없이 재산 분배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그 사람은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박해도 당하기 싫고, 그런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는 일에도 관심도 없다는 거지요.
영원한 생명이야 어찌 되었던 간에,
지금 당장 내 몫으로 들어와야 하는 아버지의 유산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 내 이익과 내 욕심을 채우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이 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눅12:15
▲예수님은 지금 구원에 대하여, 영생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신앙의 문제에 대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어떤 믿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던 겁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괴롭고 아프고 힘들더라도
믿음을 지키고, 어떤 위협과 협박 앞에서도, 혹시 손해/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당당히 고백하라고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하시던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재산을 모으지 말라거나,
돈을 많이 가지면 안 된다거나 하는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 문제를 들고 나온 사람에게 예수님은,
나는 그런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거기 생명이 달려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에 예수님을 끌어들이고,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비유를 하나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자가 농사를 잘 지었습니다. 수확을 많이 거두었어요.
수확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부자는 창고를 더 크게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말하기를,
‘이제는 몇 년 충분히 먹고 살 만큼 쌓아두었으니, 마음 놓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아가겠다.
그러면 그 모든 재산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눅12:16~20
돈 벌지 말라는 겁니까? 부자가 되면 안 된다는 겁니까?
열심히 일해서 수확을 많이 거둔 게 악한 거라는 말씀입니까? ...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런 말씀을 하시려는 게 아니에요.
지금 예수님은.. 자기에게 유산 분배를 의뢰하려고 온 사람과,
함께 말씀을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명은 물질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창고(부동산)를 여러 개 짓는다고.. 하나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적용
▲지금의 현실
교회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고 핵심가치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생명의 문제, 구원의 문제와 더불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 맞습니다. 틀림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말을
너무 싸구려로 만들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교회만 다니면 예수 믿는 거고,
그러면 구원받은 거니까...
더 이상 신앙의 문제는 끝났다고 치워버립니다.
그 다음부터는, 지금 본문에 끼어든 사람처럼,
재산의 문제와 같은, 개인적인 탐욕을 채우는 것을 신앙의 중심 주제로 붙잡고,
그것만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이 자기의 핵심가치가 되고,
심지어는 그 일을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건,
비웃고 얕보고 멸시하건 말건, 관심도 없다는 겁니다.
자기 때문에 예수님이 싸구려로 여겨지고,
자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욕을 당해도,
그런 일에는 신경도 안 쓴다는 겁니다.
한번 물어보십시오. 교회 안다니는 사람들한테,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으냐?’고요.
말로는 영생과 구원에 대해서 제일 많이 얘기하는데,
대부분 지금 교인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여기서 성공하고 출세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제일 관심이 많고
그걸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대답할 겁니다.
(또 그런 내용의 설교가 많이 전달되고,
또 청중들도 그런 내용을 즐겨 듣습니다. 실제적인 설교라고 합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인들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뭐인 것 같으냐?’고 물어보십시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하나님의 나라, 그런 거라고 대답할 줄 아십니까?
아닐걸요?
출세하고 성공하고 권력을 잡고 으스대며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우리가 지금 스스로를 싸구려로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싸구려가 아니고, 오히려 명품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게 바로 그겁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눅12:20~21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두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부요하지 못한 교회,
그런 기독교인은 부자일까요, 싸구려일까요?
세상 사람으로서는 부자일지 몰라도, 기독교인으로서는 싸구려일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말씀은, 바리새인에게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드려라. 마22:21
돈도, 권력도, 그게 아무리 크고 많아도,
구원이나 영생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지요.
그게 그리스도인의 본질도 아니고, 신앙의 척도도 아니라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
그게 그리스도인이 할 일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고귀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아두는 것,
열심히, 땀 흘려 일해서 재산을 모으고,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되는 것,
그게 좋다/나쁘다 이야기를 하시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건 그렇게 열심히 하고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면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인색한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질책을 하시는 겁니다.
▲눅12:1~20절, 본문의 주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쌓아두는 일과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일을 비교하면서
어느 쪽이 좋으냐/ 혹은 어느 쪽이 중요하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둘은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황제와 하나님이 비교대상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으로 살지 말고,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라는 겁니다.
부자가 되는 게 좋으냐/나쁘냐가 문제가 아니고,
돈을 벌 때나, 돈을 쓸 때나, 일할 때나 놀 때나, 언제나, 어디서나,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라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예수 믿는 사람이 지켜야 할 본분을 소중하게 지키라는 겁니다.
신앙에 있어서 타협하지 말고,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서 신앙도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이익을 보든/ 손해를 보든,
좋은 일이든/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든,
우리의 믿음을 지키며,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스스로를 싸구려로 만들지 말라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을 사람들의 비웃음거리로 만들지 말라는 겁니다.
▲명품 추수감사절이 되려면?
오늘은 우리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 때, 거듭거듭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이란, 귀하신 하나님께, 나 자신을 귀하게 바치는 의식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내가 돈을 이렇게 벌었습니다.
나한테 돈 벌게 해주셔서 고마워서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드리니까, 내년에는 돈 더 많이 벌게 해주세요.”
그런 게 아닙니다.
추수감사절은, 나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겁니다.
“내 손에 부귀영화가 있건 고난과 가난이 있건,
내 미래가 보장되어 있건 막막한 안개 속이건 상관없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하나님만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습니다,
세상의 어떤 유혹과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세상이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겠습니다.”
하는 결단과 헌신의 의식인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싸구려로 만들지 마십시오.
‘감사헌금 좀 드리고, 더 큰 것 받아내겠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가치들, 우리의 믿음을 싸구려로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명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언제나 당당하게, 자존심을 지키며,
세상이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갑시다.
우리로 인해 하나님이 존경받으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귀하게 여겨지도록 합시다.
추수감사절에, 이런 결단과 헌신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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