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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기다림 2227

LNCK 2009. 12. 12. 17:47

◈서로 기다림                                             벧후3:8~13                                       08.11.23.설교스크랩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친구와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약속 시간에 맞춰서 나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친구가 안 오는 겁니다.

그 때는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마냥 기다리는 겁니다.


한참 후에 제가 ‘오늘 바람맞았다’며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커피숍 저쪽 구석에서, 저랑 만나기로 했던 친구가 걸어나오는 거예요.

그 친구는 그 친구대로 거기 앉아 기다리면서, 내가 안 온다고 투덜대고 있었던 거지요.

(커피숍이 제법 큰 곳이어서) 서로가 서로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서두에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지만,

똑같이 주님도,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는 셈이지요.


▲예수님이 생각보다 늦게 오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베드로후서의 말씀도 바로 기다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실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금방 다시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나타난 몇 가지 반응들은,

①‘예수님이 재림하지 않으시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긴 겁니다.


그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어디 갔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 때부터 그러하였듯이 그냥 그대로다’라고 합니다.


②또는 ‘왜 이렇게 늦으시나, 왜 이렇게 안 오시나?’ 하면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믿음을 버리고, 의심하고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오늘 베드로후서 본문 말씀은, 기다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 시간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벧후3:8

하나님의 시간은 사람의 시계로 잴 수 없습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기 때문입니다. 벧후3:8


사람은 천년동안 기다렸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건 우리도 경험하는 거지요.

친한 친구하고 같이 있다가

갑자기 친구가 볼 일이 생겼다고 잠깐 갔다 오겠다고 합니다.

친구가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이 하는 말이 다릅니다.


기다리던 친구는, ‘야, 왜 이렇게 오래 있다 왔니?’ 말하지만,

나갔다 온 친구는, ‘뭐, 금방 왔잖아. 내가 얼마나 서둘러서 왔는데!’ 그럽니다.


시계로 잰 시간은 똑같지만, 시간의 길이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르게 느낀 겁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10분이 1시간 같고, 나갔다 온 사람은 1시간이 10분 같겠지요.


여러분, 수십만 명 중에 1명꼴로, 죽었다가 의식이 다시 돌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몸에서 빠져 나와서, 자기 가족들이 울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공중으로 올라가서 어찌 어찌 하다가.. 다시 정신이 깨어납니다.

영혼이 다시 돌아온 것이지요.


그런데 자기는 잠시 어찌 어찌 하다가 깨어났는데,

보니까 세상에서는 2~3일이 지나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이 세상의 3차원적 시간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갑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것을 ‘천년이 하루, 하루가 천년 같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늦게 오시는 것 같지만,

예수님은 시간의 길이를 다르게 느끼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도 죽으면.. 아마 시간을 지상과는 다르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더디게 오시는 진짜 이유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벧후3:9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이 주님이 재림하시기를 기다리면서,

‘왜 이렇게 안 오시나? 왜 이렇게 늦어지는가?’ 하고 있는데,

사실은 사람들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기다리신다는 겁니다.


나만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데,

하나님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만약 지금 당장 주님이 오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직 주님을 믿지 않고,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아직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문제지만,

예수를 믿고 있다고 하는 우리 역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엄마가 나가면서, 엄마 올 때까지 숙제 다 해놓고 목욕 깨끗이 하고 있어라,

그러면서 나갔어요. 그런데, 엄마가 올 때가 다 됐는데,

목욕은커녕 숙제를 시작도 하지 않고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숙제도 하지 않고 목욕도 하지 않고 있는 아이와 같다면,

그래도 하나님 나라가 빨리 오기를 바랄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실은 믿는 성도들이 준비를 갖추도록) 기다려 주시는 겁니다.

사람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더 절실한 마음으로 (우리가 준비를 갖추도록) 기다리고 계신다는 겁니다.


교우들이 이번 주말에 청계산 등산을 가기로 약속합니다.

‘산 밑 입구에서 몇 시까지 모이자’ 약속합니다.

그런데, 오겠다고 한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 오고 있는 중이라면, 떨쳐두고 그냥 가버리지 않습니다.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가지요.


아예 출발 안 했으면 몰라도, 집에서 출발한 사람이 아직 도착 안 하면

다들 기다립니다. 그래서 같이 올라갑니다. 


예수님도 바로 그 마음이신 것입니다.

아직 준비 안 된 사람들을 위해서, 조금 늦더라도 (재림을)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이라면,

더 두고 볼 것도 없이 지금 당장 다 심판해서 멸망시켰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와 인자가 크신 하나님이시니까..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더 주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거룩한 신부로 잘 준비되는 걸 보시려고.. 기다려 주십니다.


▲아이를 잘 기르는 비결 : 기다려 주는 것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야 잘 기를 수 있을까 하는 건.. 모든 부모의 고민일 겁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항상 하는 말이, 기다려주라고 합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초조해하지 말고,

아이들이 스스로 깨우치고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기다려주라고 합니다.


기다리지 않으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힘들고,

부모는 부모대로 힘들고,

그러면서 아이들하고 부모하고 사이만 나빠진다는 거지요.


하지만, 기다린다는 게 쉬운 노릇이 아니잖아요. 다 알지요.

아이들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게 제일 좋고,

기다려줘야 하고, 그런 거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다 알지만, 막상 실제로 길러보면, 그게 안 된단 말이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려주시느라 얼마나 힘드실까요?

말 안 듣고 말썽만 부리는 우리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말 안 듣고,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우리를 기다려주시느라.. 얼마나 애가 타실까요?

사람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속이 시꺼멓게 타다 못해

새하얗게 재가 되어 버리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기다려주십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려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정신 차리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그렇게 쉽게,

그렇게 함부로 왜 이렇게 더디 오시냐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날, 심판의 날, 재림의 날이

빨리 오도록, 앞당기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왜 빨리 오시지 않느냐고 재촉하지 않아도, 그 날을 앞당길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을 살아가면, 그 날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벧후3:11~12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간절히 바라보고 사모하면

주님이 한 시라도 더 빨리 오실 것 아닙니까?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기다린다는데.. 어슬렁 어슬렁 늦게 오실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행실을 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면서

주님의 날이 앞당겨질 것을 간절히 바라보고 사모해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성도의 신앙자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면, 하나님의 날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나하나 거룩하고, 나하나 경건하게 산다고.. 세상이 달라질까요?

오래 전에 김국환이라는 가수가 불렀던 노래 가운데,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는 내용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매일 집안 살림하느라 고생하는데,

이제부터는 설거지라도 도와주자는 거지요. 그러다 접시를 깨뜨리더라도,

그거 겁난다고 핑계대지 말고 도와주자,

도와주되, 내가 설거지하는 동안 아내가 놀건 쉬건 잠자건 상관말자는 노래였습니다.

 

우리가 자꾸 그렇게 되지요.

교회에서 봉사할 때도, 나만 열심히 하면 되지, 왜 자꾸 남을 걸고 넘어지나요?

‘왜 저 사람은 안할까?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사람인데.. 왜 저러고 있지?’

‘우리 교회는 누구누구만 움직이면 잘 될 텐데..’ 그럽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좋은 생각도 아닙니다.

남이야 놀건/ 쉬건/ 잠자건 상관 말고, 내가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나 하나가 움직이면, 결국 온 교회가 움직이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 교회가 움직이면.. 그게 곧 세상이 움직이는 첫 걸음인 겁니다.


심지어 우리는 하나님까지도 탓합니다.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저놈 나쁜 놈인데, 왜 저놈이 저렇게 성공하고 떵떵거리면서 삽니까?

왜 악한 자들이 잘살고,

하나님 잘 믿고 정직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고생해야 합니까?'


'왜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싹 쓸어버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십니까?

세상의 불의와 악을 보고도 왜 못 본체 하십니까?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십니까?'


두 남자가 이야기를 합니다.

한 남자가, 이 세상에 가난과 고통과 전쟁을 허락하신 까닭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묻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친구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무서워서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듣고 있던 친구가 뭐가 무섭냐고 묻자 

“하나님께서 나한테 똑같은 질문을 할까봐 무서워!”라고 대답합니다.


(나를 바라보면서, ‘넌 뭘 했느냐?’고 물으실까봐 겁난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런 현실에 대해서는 손끝 하나도 안 움직이면서

그런 현상을 두고 하나님을/주위 사람을 탓하기만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이 모든 불의를 세상에 허락하신 까닭이 무엇이냐?’고 주님께 여쭤볼 때마다

성령께서 내 귀에 대시고

‘그렇게 묻는 너는, 이 모든 불의가 세상에 횡횡하는데, 너는 무엇을 했느냐?’

되물으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머리)의 지체가 되고, 일심일체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손과 발인데,

실제로 손과 발이 움직여야 될 문제를

도리어 머리되신 예수님께 ‘왜 안 움직이시느냐?’고 하소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머리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이란 증거입니다.)


▲마치는 말 : 나 한 사람이 시작해야!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따지기를 그치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 하나가 시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내가, 우리가, 우리 교회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을 살면, 세상이 변합니다.

세상이 거룩해지고, 세상이 경건해집니다.

그래서 세상이 좀 더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다. 빨리 내려가야 되겠다'고 생각하실 날이

더 빨리 오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지만, 하나님의 나라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 다시 오시기를 고대하며 기다리지만,

주님도 우리가 주님을 향해 다가오기를 고대하며 기다리십니다.


그 날이 속히 오게 하는 건 (부분적으로) 우리에게도 달려 있습니다.

우리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나 하나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탓하지 말고, 내가 변하기 시작하고,

나로부터 시작된 변화가 세상을 뒤집어 놓게 해야 합니다.


천년 같은 하루를, 천년동안 하루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속 타지 않으시도록, 더 안타깝게 우리를 기다리시지 않아도 되도록,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로, 그 나라를 향해 달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기다리시게 할 겁니까?

언제까지 우리 때문에 애타게 할 겁니까?

방법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 방법을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말씀대로,

나 한 사람부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을 살아서,

그 나라가 더 빨리 다가오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를 위해 준비된 그 복된 나라가

우리가 준비하는 모습, 그래서 우리가 천국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 종말, 내세, 심판  

 

 

▲ <재림> 관련글 찾아보기   http://blog.daum.net/yhbg67/6906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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