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시는 하나님 이사야40:1~11 08.12.07.설교스크랩
*원제목 :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이사야 40:1~11절 본문을 <위로>라는 주제로 관통하는 점이 신선해서... 스크랩 했습니다.
◑‘위로’에 갈급한 세상 *comfort, consolation
▲‘프리 허그 FREE HUG’ 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안아주기 운동’이라고 불리는 이 캠페인은
호주 시드니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우리나라에는 2006년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프리 허그 피켓을 들고 길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원하면 안아주는,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일인데요, 우리 문화로 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부터 조금씩 번져나가서,
요즘도 강남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매주 이 캠페인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피켓에 “자유롭게 안아드립니다”라고 써서 들고 있었는데,
이건 영 어색한 번역이었지요.
“프리”라는 영어를 ‘자유로운’이라고만 생각해서 그런 건데,
이런 상황에서는 ‘대가없이, 조건 없이’ 라는 뜻이 더 어울리고,
그러니까 “자유롭게 안아드립니다”보다는
‘그냥, 대가나 조건 없이, 무조건 안아드립니다’로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만큼 사람들이 외롭다는 것 아닐까요?
이게 호주에서부터 전 세계로 번져나가고, 급기야 문화가 전혀 다른 한국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그냥 안아주는 것뿐인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끼리 서로 안아줄 뿐인데,
이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걸까요?
아마도 그만큼 사람들이 외롭다는 것 아닐까요?
다시 말하면, 위로받고 싶은데, 상처가 너무 많아서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데,
주위에 자기를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서라도, 위로를 찾으려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풍족하고, 뭐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현대 사회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지.. 우리가 지금 보고 있습니다.
모두가 위로받기 원하고, 위로받으려고 하지만,
결국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고 맙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 속에 상처를 안고 삽니다.
크거나 작거나, 깊거나 가볍거나, 많거나 적거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알고 보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로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디에서 위로받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위로가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어느 노인 요양원 원장님의 주요 일과는,
매일 회진을 도실 때, 다른 것을 하는 것보다 노인들을 한 분씩 껴안아 주신답니다.
물어보나마나 크리스천 원장입니다.
▲그래서 찾아다니는 게 유흥과 오락입니다.
놀이와 술과 도박과 게임과 향락과 쾌락과...
이런 것들에 빠져서, 세상 근심 다 잊어버리고 즐기면서 위로를 받으려는 건데요,
그런 건 다 돈을 받습니다. 돈으로 위로를 사라는 겁니다.
위로를 받고 싶으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래서 <프리 허그 운동>이 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돈 내지 않고 위로를 받으라, 말 그대로 공짜로 위로를 받으라는 거니까요.
하지만, 돈을 내건 공짜로 하건, 그게 위로가 됩니까?
그러고 나면 상처가 치유되고 아픔이 사라집니까?
술 깨면서 일어나는 아침은 더 큰 아픔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습니까?
◑포로된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은 <하나님의 위로의 선포>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를 선포하십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이 상처입고 고통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로가 절실하게 필요한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위로해주는 이 없고, 어디서도 위로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상태입니다.
포로요, 노예 신세입니다.
포승줄에 묶여 짐승처럼 끌려와서, 온갖 구박과 핍박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진 상처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더 이상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는,
그런 상처를 받게 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버려지고 상처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니까
사방에서 달려드는 적들에게 침략당하고,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가 되어서 집도 고향도 조국도 다 사라지고,
이렇게 엉뚱한 남의 나라 바벨론에서 눈물로 탄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에게 생긴 상처도, 또 그 상처의 원인도,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풍요와 다산의 우상을 따라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백성을 드디어 위로하시는 하나님 사40:1~2
이스라엘은 그동안 상처로 인해, 고통 받고 탄식하며 눈물 속에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이젠 됐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당해야 할 형벌을 다 받았고, 그들이 흘려야 할 눈물을 다 흘렸다고 하십니다.
예루살렘 주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죄에 대한 형벌도 다 받고, 지은 죄에 비하여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사40:2
이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때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사40:1
이 말씀은 예언자에게 선포하라고 맡기시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하나님 자신이 세상을 향해, 역사를 향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선포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절대적인 주권으로 세상을 향해 선포하십니다.
‘온 땅의 모든 나라와 만물들아,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상처받고 탄식하며 통곡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이제는 누구도 더 이상 이스라엘을 무시하고 깔보고 짓밟아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겠다고 하십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마5:4
슬퍼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위로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40:3~5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사40:3~5
하나님의 위로는, 고통 받던 사람들에게로 하나님께서 오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옛 땅, 옛 나라가 다시 세워지고 회복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를 회복하고,
다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위로인 것입니다.
▲피상적 위로는, 참된 위로가 아닙니다. 40:6~8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주님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그렇다.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 영토, 민족, 이런 것들을 회복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나라가 다시 세워졌다고 상처가 회복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경제 회복은 필요하지만.. 참된 위로는 아닙니다.
요즘(08년12월경) 경제 문제가 심각한데,
경제가 회복된다고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다 해결됩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단지 경제 때문에 생긴 일들입니까?
사실 경제는 들의 풀과 들의 꽃과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한때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피어나지만,
들판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꽃들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지만, 그때뿐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듭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하나님의 입김이 한번 스쳐 지나가면,
그런 것들이 있었던 기억마저 희미해져 버립니다.
나라도, 경제도, 부귀영화도, 명예도 다 그렇습니다. 들에 핀 꽃이요 풀에 불과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습니다.
중요한 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겁니다.
나라가 회복되고, 주권을 되찾고, 경제가 발전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게 본질도 아니고, 그게 영원한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나라들이 지금은 이름뿐이거나
아예 지도에서 사라져버린 것을 숱하게 보아오지 않습니까?
영원한 건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그게 회복이고, 그게 위로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만이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하고,
우리의 아픔을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이.. 참된 위로 40:9~10
좋은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어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거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힘껏 높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여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계신다’ 하고 말하여라. 사40:9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오신다. 그가 권세를 잡고 친히 다스리실 것이다. 보아라,
그가 백성에게 주실 상급을 가지고 오신다. 백성에게 주실 보상을 가지고 오신다. 40:10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
그게 우리에게 위로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우리의 자리이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는 자리,
그 자리가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 자리입니다.
◑적용
▲위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위로가 절실한 때입니다.
모두가 상처받고, 모두가 낙심하고, 모두가 아파하는 때입니다.
모두가 위로받기 원하지만, 어디서도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길거리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부둥켜안고 위로받으려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게 얼마나 위로가 될까요? 그게 우리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요?
잠시 잊게 할 수는 있겠지만, 잠시 동안 아픔을 좀 덜어 줄지는 모르지만,
참된 위로는 되지 못합니다. 우리 상처를 낫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상처는.. 하나님이 우리를 멀리 떠나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상처를 늘여가고 있는 겁니다.
서로에게 위로받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막상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하나님 대신으로 의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엉뚱한 위로를 찾지 맙시다.
위로받기 원하고, 상처가 회복되기를 원하지만,
막상 우리가 되찾아야 할 자리, 되찾아야 할 모습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엉뚱한 데서 위로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요?
돈으로, 유흥으로, 쾌락으로, 술로, 인간관계로, 우리의 상처가 치유될까요?
그러면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고, 참된 위로입니다. 시73:2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약4:8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우리가 내 옆에 가장 가까이 두고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가 집착하고 매달리고 받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나의 주인은 과연 누구입니까?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다른 무엇입니까?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약4:8
내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삽니까?
무엇을 이루려고 이렇게 고생하며 살고 있습니까?
▲임마누엘이.. 복이요, 위로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것을 알려준 천사가 요셉에게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이르시기를,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마1:22~23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세상일로 상처받고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우리를 위로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에게로 오십니다.
(특별히 대림절 기간에) 지금 오고 계십니다.
▲영접의 기도
‘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주님께 가야 하는데, 주님이 이렇게 오셨군요.
저를 위로하시고, 저의 아픔을 낫게 하시려고 이렇게 오셨군요.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 이렇게 주님의 자리가 있습니다.
여기 오셔서 저와 함께 계셔주세요.
그래서 제가 있어야 할 자리, 주님의 백성의 자리에 제가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