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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믿음 2241

LNCK 2009. 12. 22. 16:13

◈지식과 믿음                                딤후3:7                                 인터넷설교 녹취


저희가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니라  딤후3:7



◑우리에게 존재하는 모순... 지식으로 아는데, 실제 삶으로는 모른다.


지성과 믿음/영성은 관련이 있지만,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천국을.. 지식으로는 아는데.. 실제로는 모른다.

우리 성도들은.. 천국에는 가고 싶지만, 그렇게 빨리 가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여러분, 과거에 미국이 좋은 줄 알고, 이민 가고자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라도 속히 이민을 떠나고자 했다. 더디게 떠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오늘 나에게, 천국에 하루라도 속히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천국이 좋은 줄은 알지만, 천국이 정말 진짜 좋은 줄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삼층천 체험이 있어서 그런지

천국에 진심으로 (빨리) 가고 싶다고 했다.  고후5:8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천국을 지적으로만 알지, 실제적으로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능한 오래 세상에서 장수하다가,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때 천국에 가겠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을 좋아하면서도.. 멀리하게 된다.

우리는 사도바울의 설교를 듣기는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사도바울의 삶을 그대로 따르기는/본받기는.. 주저한다.


아니, 만약에 사도바울이

자기 집 지하 셋방에 세를 들어온다면.. 아마 싫어할 것이다.

그냥 다른 사람을 받을 것이다. 여러 가지로 껄끄럽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 그런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의 설교를 듣고 싶어 하고, 그의 바울서신서를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사도바울처럼 살기를 원치 않고,

사도바울과 함께 사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떤 말씀을 내 귀로 들었다고, 지적으로 내가 배웠다고..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지식적으로 습득한 것과, 그 말씀을 내가 살아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여러분, 운동선수들이 ‘음식’과 ‘식습관’을 매우 주의한다.

체중조절과 컨디션 유지를 위해서.. 음식을 아주 가려서/조심해서 먹는다.


그러나 어느 선까지는.. 음식 조절이 필요하지만,

결국 운동선수의 실력을 좌우하는 것은, 그의 운동실력이지, 식습관이 아니다.


뭘 먹느냐/어떻게 먹느냐로.. 운동선수의 기량이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필요하더라도..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이, 좋은 꼴을 먹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좋은 꼴을 먹었다고, 그들이 모두 좋은 성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성도가 되려면, 좋은 양식을 먹어야 하지만

그 먹은 양식을, 어떻게 자기 몸으로 살아내고/소화해 내느냐에.. 더 많이 달려 있다.


▲그래서 아무리 말씀을 더 많이 듣는다 해도.. 저와 여러분은 변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자기가 귀로 들은 말씀으로, 직접 살아내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설교자이기 때문에, 여러분보다는 성경과 책을 더 많이 보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말씀에 대한 지식적 습득이,

설교자인 제가, 여러분 성도님들보다 더 많이 변화되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목회자인 제 두려움이다.

 

(그런데 귀로 들은 말씀을, 직접 몸으로 살아내려면, 먼저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계속 기도해야 한다.

자기가 듣고 은혜받은 말씀을 붙잡고 몇 달 계속 기도하다보면.. 그 말씀을 살아낼 실천력이 생긴다.)  


▲150년 전 중국선교 이야기

미국 선교사들이 말을 타고 다니면서, 중국에서 복음을 전할 때였다.

그들이 미국에 보낸 선교편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중국 시골의 무식한 농부들에게

나는 그들이 알고자하는 성경공부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나에게 성경을 배우는 저 농부들은

성경의 저자들(모세, 다윗, 베드로, 바울)을

날마다 자기들 삶 속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겸손한 고백이기도 하겠지만)

무식한 중국 농부 성도들의 삶이

신학을 많이 공부한 미국 선교사보다.. 더 주님과 가까이 동행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기독교 신앙에 지식은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결정적 요인들이 반드시 있다.

그 성경의 지식대로, 자기가 살아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성경공부나 신학적 지식의 필요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성경공부나 신학적 지식을 토대로.. 그 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고전4:20


▲목회자가 힘들어도, 성도들이 은혜 받는 이유

목회자가 정말 설교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어떻게 힘들게 설교할 때가 있다. 안 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떤 사람들은, 은혜 받았다고 말한다.


목회자는 너무 마음이 괴로워서 비몽사몽간에 설교했는데,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니..

그 이유는, 설교자가 준비가 많이 안 되어 있어도.. 성도들이 잘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성도들이 그랬다는 것이다.

선교사가 좀 지칠 때에도, 성도들이 뜨거우니까.. 은혜를 풍성히 받더라는 것이다.


▲구 소련 당시 시베리아로 유배를 간 성도들이 있는데,

제가 실제로 만나 뵌 분은, 자기 부모가 시베리아로 유배 갈 때 따라갔던 분인데,

당시 그는 6살이었고, 지금은 물론 이 분이 노인이 되었다.


그 노인의 간증에 의하면,

그들이 구 소련 당시, 시베리아에서 가질 수 있었던 성경은

유배 떠날 때, 와이셔츠 안 쪽에 바늘로 꿰매서 몰래 가져온

정말 몇 페이지 밖에 안 되는 성경이.. 그들이 가진 성경의 전부였다.


그런 상황에서 어릴 적부터 자라왔으니,

자기는 도대체 성경 전체가 어떤 책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 분은, 그렇게 단 몇 쪽밖에 안 되는 성경을 가지고도

예수님과 동행하며.. 시베리아에서 일생을 행복하게 잘 살아오셨다고 한다.


그는 성경지식이 너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지식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식이 있고도, 참된 믿음의 삶을.. 만약 오늘 내가 살아내지 못한다면..

차라리 아무 지식이 없이, 참된 믿음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씀을 많이 듣는 분들은.. 작은 ‘실천’이라도 병행하시기 바란다.

여러분,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

수영을 배우기 위해, 서점에 가서, 수영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샀다.

마크 스피츠 등 유명 수영선수가 쓴 책도 빼놓지 않고 사서.. 다 독파했다.

게다가 ‘올림픽 수영역사’등 역사에 관한 책도 다 읽었다.


그렇다고 수영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 책들은, 프로급에 속하는 수영선수들에게는 필요하겠지만,

일반 수영 초보자들에게는.. 전혀 필요 없다.

‘지식을 몰라서, 수영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바이올린 등 악기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바이올린을 켜면서, 그 연주법을 배우는 것이지..

그냥 음악책만 읽는다고..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저와 여러분은

이미 ‘아멘’으로 받은 말씀들을

순종하고/실행하고/직접 내 몸으로 살아내는데 치중하게 되시기 바란다.


사도바울의 설교 그만 듣고 (진짜 그만 들으라는 뜻은 아님)

그 설교말씀대로 한 번 살아보시기 바란다.

그럴 때, 사도바울의 메시지가, 내 마음속에 깊이 생명력 있게 꽂힐 것이다.


▲설교에 대해 불만이 많으신 성도님께

여러분 성도님들 가운데, ‘맵다/짜다/싱겁다..’ 여러 가지 말들이 난무할 수 있다.

물론 제가 설교를 지루하게 해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여러분, 한 사흘 굶어보시라. 그러면 식은 밥에 된장국도 꿀맛이다.


북한이나 회교권에 가서.. 말씀에 몇 달 쫄쫄 굶다가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으면,

예배를 시작할 때, 먼저 눈물부터 주루룩 흘러내릴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설교가 너무 홍수처럼 많고, 기독교 서적들이 너무 범람해서

어쩌면 ‘배가 불러서 하는 소리’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설교자 편에서도, 더욱 생명력 있는 말씀을 준비해야 하겠지만)

 

성도들의 설교에 대한 불평이.. 완벽한 정당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는 것이다.

-자기가 생명력으로 넘치는 사람은.. 어떤 설교를 들어도 ‘아멘’ 한다.

-그리고 더 좋은 설교 들으려 하지 마시고, 그 열심으로,

지금까지 들은 설교들을.. 한 번 직접 자기 몸으로 그대로 살아보시기 바란다. 


▲여러분, 12사도들도.. 처음에는 성경에 그리 박식하지 않았다.

‘씨 뿌리는 비유’를 듣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서,

예수님께 다시 설명을 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 설교를 한 번만에 잘 들어서 이해했더라도

금방 돌아서서 다시 까먹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람은 잊어버리게 되어 있다.

(물론 나중에 성령이 ‘생각나게’ 해 주셔서.. 그들이 성경을 기록했지만)


그러나 어쨌든 그들이 잘 한 것이 있는데..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을 신뢰한(믿은) 것이다.

그래서 풍랑이 거세게 이는 바다 속으로.. 베드로가 풀쩍 뛰어내렸다.

이것은 ‘지식’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물론 믿음이 흔들려서 곧 가라앉기는 했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앞서 가라’고 하면.. 그들은 앞서 갔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실 때도.. 그들은 아이의 도시락을 가져 와서 예수님께 드렸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실 때, 그들은 성령이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행1:4


12사도가 지적 능력은 조금 떨어졌는지 모르나,

예수님이 명하실 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순종했다.

신약 복음서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거나 주저했다는 기록이.. 거의 없다.


▲제가 어떤 신학생을 군대에서 만났는데, 그는 성경지식이 너무 형편없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도달하도록) 역사하느니라. 몬1:6


그런데 그 친구는 ‘정신이 나가서 미친다’로 오해하고 있었다.

좀 무식한 친구였다.

그래서 자기는 ‘그리스도께 돌아버리기/미치기 원한다’는 것이다. 위 구절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의 잘못된 성경지식을 교정해 주는, 나를 통해서는, 사람들이 예수를 안 믿는데,

그 무식한 신학생(전인덕)을 통해서는, 전도가 막 되는 것을 보았다.


그 친구의 간증 한 토막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가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이 구절이 자기 마음에 뜨겁게 와 닿았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눅10:5


그래서 그는, 그가 방학동에 살 때인데,

자기 동네 통 반의 모든 집을 찾아가서,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리면서

‘평안하십시오!’ 라고 자기가 먼저 평안을 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떤 사람이 막 자살하려고 하다가

그 친구의 방문을 받고, ‘평안하십시오!’ 라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낸 사람인줄 알고, 자살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 간증을 말씀드린 것은,

지식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종의 삶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비정상적인 행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의 강권하심이 강하게 올 때는.. 비정상적인 행동이라도 안 할 수 없다.)


여러분, 전도 잘하는 사람 중에..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누가 신구약 성경을 3백독 하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전파하여..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이다.


▲저희가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니라  딤후3:7

지식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혹시 그의 신앙이 너무 이기적/자기중심적일 수 있다.


항상 배우지만, 그 수많은 지식이

자기 이기심 하나 해결하지 못한다면..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후략)

                                                                                                                                 #1112

 

※관련 글

 

 결국은 순종하는 믿음이다              지식과 믿음, 환란과 믿음                                                        ▣ 믿음론 (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