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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생명을 드리는 것

LNCK 2010. 2. 23. 21:45

◈기도는 생명을 드리는 것              살전5:17               인터넷설교 녹취

 

 

◑서론 /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

 

여러분, 먼저 질문 드립니다. ‘기도’가 뭡니까?

하나님과의 대화’요!

 

맞습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요즘 ‘하나님과 대화’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하고 불러 놓고는

청구서 가지고 나가서 쏼라 쏼라 하면서,

자기 청구서를 숨 쉴 틈도 없이 읽어내려 가지는 않습니까?

다 청구하고 나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고 기도를 마칩니다.

 

여러분, 그건 ‘독백’이지, ‘대화’가 아닙니다. ①

기도가 ‘대화’라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과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대화’라고 할 때,

오늘 여러분이 시장에서, 물건 파는 상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눴을 것입니다.

‘이거 사세요.’

‘안 사요.’

‘싸게 드릴 테니까 그냥 사세요.’

‘다음에 살게요.’

 

이런 것은 어떤 의미에서 ‘대화’라고 할 수 없죠.

‘대화’라는 것은.. 그냥 말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서,

어떤 인격적인 교감이 일어났을 때.. 비로소 대화라고 말하는 겁니다. ②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끊임없이 내가 원하는 것만 시종일관 늘어놓는 것은.. ‘대화’가 절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에는,

반드시 나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감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기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또한 협박, 타협도.. 대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③

‘하나님, 언제까지 이것 안 해 주시면.. 나 신앙생활 그만 두겠어요.’ (협박)

‘만약 제가 취직되면, 헌금 얼마 드릴게요.’ (타협)

그게 대화가 아닌 이유는.. 이런 대화는 인격적 교감이 아니라 ‘독백’이기 때문이죠.

 

▲우리 기도가 인격적 교감이 안 일어나는 이유

 

너희는 기도할 때, 많은 말을 해야 들을 줄 생각하지 말아라.

구하기 전에, 너희 필요한 것을 다 아시느니라.  마6:7~8

 

‘하나님이 내 필요를 다 아신다’는데..

우리가 너무 ‘필요 위주’로 기도하니까... 인격적 교감이 안 일어나는 겁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의 친척이나 친구 중에

누가 매일 찾아와서 ‘주세요, 주세요!’

이것을 10년이나 매일같이 해 보세요. 그와 인격적 교감이 일어나겠는지...?

 

어떤 부모가 그러더라고요.

자기 아들이 결혼해서, 대학교수가 되었는데,

아직까지 집에 찾아와서 매달 손 내 밀 때는..

친부모지만.. 솔직하게 ‘자식 잘못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필요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에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단, 일용할 양식입니다.) 라고 가르치셨고,

또한 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 (물질적인 필요만 구하라는 뜻은 아님)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처음부터~끝까지,

    그것도 1년 365일, 예수 믿은 지 10년 동안 계속

    자기 필요만 집요하게 기도한다면.. 인격적 교감(기도의 본질)이 안 일어납니다.

   

    기독교는 우상에게 절하고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인격이시기 때문에... 인격적 교감이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설교 서두에 제가 질문을 드리니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 하는 것이라고... 다 알고 계시네요. 맞습니다.

    그 ‘대화’는... 반드시 ‘인격적 교감’이 일어나는 것임을 꼭 명심하면서

    오늘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다시 질문해 봅시다.

    ‘그렇다면 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 교감을 갖고 있습니까?’

 

   기도로.. 하나님과 인격적 교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1. 기도로 충전 받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여러분, 언제 가장 간절한 기도가 나오는가요?

예,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입니다.

그러다가 간절히 기도해서, 그 ‘발등의 불’이 해결되고 나면

내 기도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맨송맨송(맹숭맹숭의 표준말) 해집니다.

간절함이 다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기도를 계속 시키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예, 그에게 계속 문제와 시련을 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만 기도하니까요!

(과거에 다들 그렇게 기도하셨죠? 문제가 생길 때만 기도, 말입니다.)

 

 

그런데 발등에 불 떨어지지 않고도, 열심히 기도하려면

- 기도로 날마다 재충전 받는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여러분, 아침마다 산책이나 운동 나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누가 가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다들 자발적으로 운동 나갑니다.

왜냐하면, 아침 운동을 하면, 무슨 호르몬이 분비되어서

‘자기 기분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 기분 좋아지는 맛을 느끼니까,

자기 스스로 아침운동을 자발적으로 계속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충전 받습니다.

위에서 ‘뭘 달라’는 기도는.. 이런 교감이 잘 안 일어나지만,

하나님과 진실한 교제의 기도는.. ‘생명의 기운’을 충전 받습니다.

이것은 운동하는 사람이 느끼는 어떤 호르몬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것입니다.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공급받는 사람은.. 매일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안 하면.. 도리어 힘들어집니다. '생명'이 고갈되어서요.

여러분, 자동차도 며칠에 한 번씩 주유소에 가서 충전 받고 와야 하죠?

마찬가지로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성령을 충전 받는데..

 

실제로 이것을 계속하다 보면..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뭐 이렇게 계속 가서, 때마다 충전을 받고 와야 하나?’ 

 

그래서 기도가 수준에 오르면,

충전 받을 필요 없이, 아예 코드를 딱 꽂아 놓습니다.

이것이 ‘쉬지 말고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쉬지 말고 기도하기’는 자동적으로 되어 버립니다.

 

우리의 기도가, 코드를 하늘에 딱 꽂아놓은 것처럼

그래서 하나님의 영의 기운이, 언제나 내 속에 넘쳐흘러 들어옵니다.

그때 우리는 진정 ‘기도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전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무엇을 구해서, 무엇을 응답받는 것이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날마다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영의 기운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아침에 기도해서.. 우리는 아침부터 영적 충전을 받습니다.

영적인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점심 때 영적인 고갈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 점심 때 또 기도해서, 하나님의 영적인 충전을 또 받습니다.

 

영적인 일을 더 많이 하거나,

아니면 죄를 지어서.. 그래서 영적인 고갈이 왔다면

저녁 때.. 또 기도해서.. 영적인 충전을 또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저(박순이 사모)는 어떤 날은, 저녁에 피곤해서,

    ‘딱 1~2분만 기도하고 자야겠다.’ 생각하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나중에 눈 떠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은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자신을 늘 가득히 충전하시기 바랍니다.

 

 

◑2. 기도는.. 시간(생명)을 바치는 것

 

제 경우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기도를 제대로 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려면.. 일단 기도 시간을 따로 떼놓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시간을 바치는 것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지식도 중요하지만.. 내 생명입니다.

그런데 ‘시간’은.. 다른 말로 생명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간의 길이가, 생명의 길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다시 말하면 내 생명을 바치는 것이요,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헌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의 시간 드림’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 내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야 합니다.

    특히 40대를 지나서, 인생 후반전을 사시는 분들은,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고, 헛되게,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루하루를.. 가장 소중하게 보내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할 때

    ‘내가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의 시간을 바쳤는가?’를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런 인생이 가장 뜻있고, 의미 있는/열매 맺는 존귀한 인생을 사는 것이요,

    별안간 닥쳐올 임종의 시간도.. 편안히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전화를 걸었을 때 ‘통화 중’ 신호를 듣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즉각 내 전화를 받아주십니다. ‘그래, OOO구나!’

 

그런데 문제는, 주님이 나에게 전화 거셨을 때.. 종종 ‘통화 중’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내 일에 바빠서, ‘하나님의 전화 벨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음성/전화’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도 시간에도.. 자기 혼자 딴 생각하고/독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세요!

이렇게 기도(하나님 체험, 하나님의 영으로 충전하기)하지 않고는,

성령충만 못 받습니다.

내 시간을 바치지 않고, 내 마음을 드리지 않고는.. 성령충만 못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유지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떼어놓을 줄 압니다.

반면에 성령충만 하지 못한 사람은.. 너무 잡다한 일로 바빠서.. 시간을 떼놓지 못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시간/말씀묵상시간을 제일 우선순위로 떼어 놓으세요.

기도하는 시간이.. 하루 중에 가장 값진 투자를 하는 시간입니다.

나는 오늘 하루하루를 헛되이 기도 없이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3. 기도는.. 친밀함을 느끼는 것

 

▲기도시간에.. 가만히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기

기도할 때, 너무 피곤해서 말이 안 나올 때도 있습니다.    주1)

그런데 기도가 깊어질수록.. 말이 점점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 경지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만약 초청강사인 제가 오늘 낯선 여러분과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있다면,

    뭔가 억지로라도 서로 대화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서로 마주앉아서 아무 말 하지 않으면.. 서로 무척 쑥스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연인 사이에 두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고 있지만, 서로 곁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

    아무 대화가 없어도.. 두 사람은 행복과 만족감을 족히 느낍니다.

 

그러니까 기도에 숙달되지 못한 사람은,

마치 서로 어색한 두 사람이 커피숍에 마주 앉은 것처럼

뭔가 대화를 쉴 새 없이 해야.. 그 어색함이 사라지고, 서로 좀 친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도에 더 깊은 경지에 올라간 사람은,

아무 말이 없어도,

깊은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느낍니다.

고요히 하나님 앞에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경지를 경험해야 합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얘긴데

약초를 캐면서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 집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할아버지는 산에 올라가서 약초를 캐고는, 오후에 내려오셨습니다.

그것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시는데,

그 분은 약초를 캐어 내려오는 길에 꼭 예배당에 들러서

혼자서 기도를 두 시간 하고 나오셨습니다.

 

목사님이 하루는 물었습니다.

“집사님은 무슨 기도제목이 그렇게 많아서, 그렇게 오래 기도하십니까?”

 

“목사님, 특별히 기도제목이 많아서, 오래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저를 내려다 보십니다.

저도 하나님을 마주 봅니다. 하나님과 제가 서로 마주 봅니다.

그 순간이 제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제 사랑을 고백하고

또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이 제게 은혜를 베푸시고,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그 힘과 능력으로 제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기도의 친밀함'을 알고 계신 거지요.

 

▲하나님과 대화하실 때, 솔직한 표현으로 말씀드리세요.

여러분, 우리는 부부사이라도, 원색적인 말을 쓰면 안 됩니다.

부부사이에, 또는 부모 자녀사이에, 물론 모든 만남도 마찬가지지만,

가식과 외식은 안 되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나 솔직한 것이 ‘도가 지나쳐서’ 너무 솔직하면

오히려 그것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솔직해야 하지만, 동시에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대화할 때는.. 원색적으로 표현해도 괜찮습니다.

시편에 ‘저주시’라고 나오는데,

‘다윗이 어쩌면 저렇게 악독한 저주를 퍼 부었을까?’ 하면서

다윗의 신앙이 의심될 정도로, 다윗은 심하게 저주기도를 발설합니다.

 

이 ‘저주시’ 이해에 있어서 어떤 신학자는

‘기도로 하나님께 아뢸 때는 저주라도 괜찮다/허용된다.’고 해석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절대 사람에게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엄연한 죄입니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꺼멓게 타드는 자기 마음을 어디에 하소연할 데는 없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라도 하소연 하지 마세요. 듣는 사람도 괴롭고, 시험에 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갖 하소연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저주까지도요!

(※이 부분에 신학적 견해가 다를 수도 있으나, 일단 시편 저주시에 대한 해석으로, 이런 해석도 있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다 고백하고 나면.. 자기 정신건강에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하소연은 가급적 하지 마세요. 듣는 사람도 힘들고, 시험들고, 괴로우니까요.

 

▲아무 일이 안 일어나도, 기도로 맡기는 법을 터득하세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cast, 던지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벧전5:7

 

여러분, 호수나 바다에 나가서, 돌멩이를 집어서 던진 적 있으시죠?

그렇게 던져버리고 나면.. 그 돌멩이는 절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게 위 벧전5:7절에 나오는 ‘던진다’는 의미입니다.

 

내게 무슨 ‘불안한 마음/기도제목’이 있는데

단 하루 만에 주님께 던져버렸다고.. 내 마음이 호수처럼 평안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게 불안한 마음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그렇게 하세요.

기도로 주님께 다 던져버리세요. 맡겨버리세요. ‘하나님, 책임져 주세요!’ 하면서요.

이렇게 매일 기도하다보면.. 어느 시일이 되면.. 그 불안한 마음이 싹 없어질 것입니다. (후략)

내 염려가 하나님께 맡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주1)  기도할 때, 콧물/눈물/하품이 심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스트레스와 피로가 풀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콧물과 눈물을 휴지로 닦아내면 됩니다.

 

그러면 기도 전에는 왜 콧물/눈물/하품이 안 나오는가 하면,

그 스트레스와 피로가 꽉 뭉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내 영혼이 먼저 긴장완화release되면서,

그에 따라서 내 정신과 육체도 긴장이 풀립니다.

그래서 콧물/하품이 심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한 동안 콧물/하품을 심하게 한 후에는.. 기분이 매우 상쾌해 집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건강/스트레스 해소에도 아주 좋은 것입니다.          

 

박순이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