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처럼 한거閑居생활도 필요하다 막6:30~34 06.03.27.설교스크랩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저는 이번 안식월 동안 브라질과 남미에서 참 좋은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평소에 들어오던 대로 그들은 참 여유롭게 삽니다.
땅이 크고 자원이 풍부한 만큼 그들은 대륙적 삶의 스타일을 아주 즐깁니다.
그들은 전혀 쫓기거나 급할 것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만만디입니다.
은행이나 관공서 어디를 가든지 줄서서 기다리기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처럼 서두르는 사람에게는
자기 은행 고객으로 적합하지 않으니, 다른 은행으로 가라고 할 정도입니다.
특히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관광지에서도 오후 1~4시까지 가게 문을 닫고 쉽니다.
그리고 식당은 점심식사 후에 문을 닫았다가 저녁 8시부터 문을 열고,
9시나 되어야 영업합니다. 그만큼 그들은 인생을 여유롭게 즐기며 삽니다.
그들은 미국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자기들의 경제 발전은 더뎌도 먹고사는 것만큼은 빈부를 떠나 황제같이 삽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그들의 식탁은 황제 식단을 차려놓고 먹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조급하거나 다급하게 살지 않습니다. 여유만만입니다.
21세기 속도경쟁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는 우리가 회복해야할 중요한 이슈입니다.
▲프랑스의 철학교수이자 수필가인 피에로 쌍소가 쓴 베스트셀러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책은 언제 읽어도 우리 마음을 새롭게 재충전 해줍니다.
그는 느리게 사는 지혜를 가르쳐주면서, 특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것과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여유 있는 마음 갖기를 강조합니다.
파스칼의 말대로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휴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21세기는 스피드가 숭배되는 세상이기에 조급증, 다급증, 속전속결주의, 속도의 테러,
소위 시간의 테러 때문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 심각한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현대인은 너무 바쁜 삶을 살다보니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해
조급한 하루하루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피에로 쌍소의 말대로 현대인들은 할 일이 너무 많고 바빠서 꿈꿀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때때로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쉴 때 창조적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고,
새로운 일을 시도 할 수 있는 새 힘을 재충전 하게 됩니다.
▲데일 카네기도 “멋진 삶의 출발은, 분명 일과 휴식, 노동과 여유의 천칭balance을
잘 조절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말합니다.
그래서 라이켄 이라는 사람은 안식과 휴식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3R로 정리해줍니다.
Reflection (과거를 돌아봄)
Refreshment (현재를 새롭게 함)
Recreation (미래를 새롭게 창조)입니다.
잠시 멈추어야.. 앞을 멀리 내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충분히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나님 되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즉 인간은 미완성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머지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쁠수록 천천히 속도를 조절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잠시 멈출 줄 아는 느림의 철학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운동선수에게나 질문해 보십시오.
컨디션이 가장 좋은 선수일지라도 계속 밀어 붙이다보면 결국 ‘벽’에 부딪히고 맙니다.
그래서 자신의 좋은 실력이나 기록에 훨씬 미달하고 맙니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도 계속 밀어붙이기만 하면
결국 벽에 부딪쳐 슬럼프에 빠지고 맙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결코 ‘벽’에 부딪히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잠깐이든, 한 시간이든, 하루든, 혹은 며칠 동안이든,
쉬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곧바로 안식을 취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무들링(moodling, 무드잡기?)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간단하게 말해 호숫가 나무 그늘 아래 누워서 흘러가는 구름을 지켜보는 것,
공원 벤치에 앉아 꽃향기에 빠져보는 여유,
집이나 사우나에 가서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망중한에 빠져 보는 것과 같은 한가함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한거閑居라고도 표현합니다. *한가하다. 거주하다.
◑예수님의 한거 생활
예수님께서는 이런 무들링을 좋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쁜 순간일수록 그 현장을 떠나거나, 그 일을 잠시 멈추시고 한거를 즐기셨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토막잠(낮잠)까지도 주무셨습니다. 이것이 무들링의 기술입니다.
어떤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으러 밀려오는데도
예수님은 그 자리를 떠나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그런데 막4:36절을 보면, 헬라어로는 ‘무리를 떠났다’(leaving)는 말인데,
그 헬라어 Aphiemi는 '무리를 버리셨다'(abandon)는 뉘앙스가 강합니다. -렉시컨 보기-
때로는 더 큰 사역을 위해, 잠시 떠남과 멈춤이 필요한 것입니다. 휴식을 위해 잠시 단절하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도 우주를 창조하시면서 일주일 중 하루는 완전히 쉬셨습니다.
절대능력자 하나님도 쉼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짧은 기간 동안 인류 구원이라는 거대한 사역을 하시면서도
잠깐씩 휴식을 취하는 한거생활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마가복음은 이점을 역력히 강조합니다. ‘한적한 곳에서의 안식’ 입니다.
막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1: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막4:35~36,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막6:31~32,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이에 대하여 금세기 최고의 정신의학자이면서 내면치유자인
폴 트루니에 박사는 참 아름답게 해석해줍니다. Paul Tournier
세상을 구원한다는 예수님의 책임이야말로
이 세상 어느 누구의 책임보다 더 막중한 것이었습니다!
이 지상에서 이곳저곳을 부산하게 돌아다니며 서두르고,
자기의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일일이 만나보고 싶은
유혹을 느낀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우리 주 예수님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서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저 경탄할 만한 차분함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과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제자들이 앞으로 나서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 선생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가질 시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위대한 사명, 전 인류를 향한 그의 위대한 사명을 이루시는 과정에서도
예수님은 자주자주 여유롭고 평화로운 한거를 즐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목회사역에 여념이 없는 제자들을 데리고
푸른 풀밭(Green Grass)으로 데리고 가서, 편안히 쉬게 하신 것입니다.
◑적용
그래서 저는 매우 실제적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서두르지 않는 습관을 생활화 합시다.
우리가 잘 아는 보험 사업가 리처드 호프만은,
‘현대 문명에는 인간을 살해하는 3가지 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심장병도 아니고 암도 아니고 교통사고도 아니다.
그 3가지는 바로 달력이요, 전화요, 시계다.’라고 합니다.
요즘은 휴대폰과 인터넷 때문에 한가하게 쉬지를 못합니다.
특히 시계 덜 보기 습관을 기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배 시간에도 시계를 자꾸 보는 분들일수록 성미가 조급한 분들이에요.
그리고 가능하면 저속운행의 삶을 생활화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여겨집니다.
이것을 관상적 저속운행의 삶이라고도 말하는데,
최근 신조어로는 ‘Slobbie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들’
(slower but better working people)이라는 뜻입니다.
즉 ‘실수’는 ‘충분한 휴식’보다 훨씬 더 큰 손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관조적 삶의 느긋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이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하면 ‘빨리 빨리’라는 말을 적게 쓰면 좋겠습니다.
빨리 일어나, 빨리 세수해, 빨리 나와, 빨리 옷 입어, 빨리 가, 빨리 와,
그리고 빨리 자, 그 다음에 또 빨리 일어나.
사실 우리는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해치우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가장 빠른 길이 유일한 길이 아니며, 가장 중요한 길도 아닙니다.
오히려 맛있는 차를 끓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뜸이 들수록 음식 맛이 좋아 집니다.
우리 아버지의 교훈입니다. “서두르면 다 놓치고, 기다리면 다 잡는다.”
▲2. 자기만의 휴식 방법을 개발하십시오.
최근에 우리 교회를 다녀가신 미국 드류 대학 L. Sweet 박사가 개발한
자기만의 휴식방법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나는 안식을 선언하고… 커피 한잔을 홀짝이며 반스앤노블(교보문고)의 서가 사이를
어슬렁거리다가, 닥치는 대로 책이며 잡지를 집어 들었다.
나는 안식을 선언하고… 오후의 한창 때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20분 간 잡담했다.
나는 안식을 선언하고… 책 원고의 마감시간이 이미 지났건만,
좋은 친구들을 불러내 좋은 음식을 맘껏 즐겼다.
나는 안식을 선언하고… 집안의 각 방마다 꽃과 ‘향기 양초’를 놓아두고
향기가 다른 각 방에서 각기 다른 책을 읽었다.
나는 안식을 선언하고… 별 다른 이유 없이 2마일을 걸어서
나와 아내가 좋아하는 식당엘 찾아 갔다.
나는 안식을 선언하고… 사우나를 하고 나서 아이들과 야단법석을 떨며 놀았다.
나는 안식을 선언하고… 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 곧 욕실엘 갔다.
나는 안식을 선언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사정을 살피는데 몰두했다.
(우리도 각자 나름대로 자기만의 휴식 방법을 개발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자연을 관찰하며 하나님의 신비를 느낍시다.
사도 요한의 제자였으며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의 일화입니다.
자고새 한 마리와 놀고 있던 폴리캅을 향해, 지나가던 사람이
“성자라는 분이 어떻게 새와 놀며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폴리캅은 빙그레 웃으며,
“활도 쓰지 않을 때는 줄을 풀어놓아야지. 언제나 줄을 메어두면 못쓰게 되고 맙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만물이 그러하듯 인간에게도 적절한 쉼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자연을 관찰할수록 하나님의 신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을 관찰할 때, 먼저 ‘경이로운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잎사귀 하나에서도 질서와 대칭, 다양성과 복잡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경험한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55:12)라는 말씀 그대로
우리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꽃과 나무들, 땅에 기어 다니는 많은 벌레와 곤충들을 친구로 삼는 것입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저술한 도스토예프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 심지어 모래 알 하나까지 사랑하라.
나뭇잎을 사랑하고, 모든 빛을 사랑하고, 동물과 식물을 사랑하라.
모든 것을 사랑하라. 모든 것을 사랑하면 만물에 드러난 하나님의 신비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신비를 느끼는 순간, 우리는 날마다 그것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는 산책 기도를 즐깁니다.
어떤 신학자는 ‘거룩한 배회’라고 말합니다.
나무와 꽃들, 벌레와 곤충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신비를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4.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삽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그처럼 바쁜 와중에서도 한거생활을 즐기셨습니다.
그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사람들이 충분히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나님 되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즉 인간은 미완성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어차피)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입니다. (김지평 작사)
그러므로 나머지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메시아 콤플렉스’를 벗어나야합니다.
특히 하나님은 서두르시지 않습니다. God isn't in hurry.
♬주님의 시간에, 주의 뜻 이뤄지기 기다려,
주의 뜻 이뤄질 때 우리들의 모든 것 아름답게 변하리, 기다려.♪
그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다 맡기고
예수님처럼 한거생활을 누릴 줄 아는 행복한 영성의 사람이 되어보시기를 축원합니다.
....................................
멈춰 서서 바라보자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어느 목사님께서 2005년 6월 제/설교자의 병문안으로 보내주신 시)
근심으로 가득 차
멈춰 서서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이랴.
나뭇가지 아래 멈춰 서서 양이나 젖소처럼
물끄러미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숲을 지나다가 다람쥐가 풀밭에
도토리 숨기는 것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한낮에도 밤하늘처럼 별들로 가득 찬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미인의 눈길에 돌아서서 춤추듯 움직이는
발걸음을 지켜볼 시간이 없다면
눈에서 시작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근심으로 가득 차
멈춰 서서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불쌍한 인생 아니랴. ▣ 크리스천 삶(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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