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부족한 한 가지 막10:21 모두 펀 글, 09.10.1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막10:21
◑나에게 부족한 한 가지는...
‘나에게 부족한 한 가지는 무엇일까?’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그러나 다음과 같은 지침으로 찾으면 될 것이다.
나에게 부족한 그 무엇은
내가 가장 <집착>하고 있는 무엇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프지만 내가 <포기해야하는> 무엇이다.
내가 아직 집착하고 있고,
내가 아직 포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향하여야 하는 나의 온전한 사랑이 갈라지게 되는 무엇이다.
자, 그것을 찾자.
그리고 그것을 과감히 포기하자!
그제야
내가 예수의 참 제자가 됨을 믿자.
그때서야 그 포기가
30배, 60배, 1백배의 열매를 맺게 됨을 체험하리라. (선)
◑내적인 버림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서원했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만을 따르겠다’고 수백 번도 더 다짐을 했었건만,
돌아보니.. 버리기는커녕 엄청 쌓아만 왔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버림은 ‘내적인 버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옷장 안에 걸려있는 옷가지 몇 벌이나 제가 애지중지하던 물건들은
마음 한번 크게 먹으면, 단 10분 만에 박스 몇 개에 넣어서, 다 버릴 수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버림은 내적인 버림, 영적인 버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버림은 그릇된 내 의지를 과감히 접고
하나님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일입니다.
참된 버림은 하나님의 뜻을 보다 적극적으로 따르기 위해,
이웃을 보다 적극적으로 포용하기 위해
우리의 쓸데없는 고집, 지나친 자존심, 우월감, 자리에 대한 지나친 애착,
경직되고 완고한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일입니다... (국)
◑개인적으로 물질의 상한선 지키기
이 내용은 물질이 있으신 분들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물질이 없으신 분들도, 언젠가 그 날이 올 것이므로 기다립시다.
물질의 욕심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분들은 <상한선제>를 스스로 지킵니다.
약 20년 전에, 부산의 모 목사님은 자기집 재산 상한선을 1천만 원으로 정하셨습니다.
1천만원이 넘으면, 교회에 헌금을 하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든지,
자기 재산을 1천만원 이상 가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집은 교회 사택에서 사시고요.
그 당시 모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큰 지도적 영향력을 발휘하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시지만요.
사실 이것 실천 한 번 해 보신 분들 말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들 합니다.
사람들은 (일부 낭비벽을 가진 분을 제외하고) 모두 돈을 악착같이 모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잔고가 점점 늘어가는 재미도 쏠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상한선을 정해놓고, 그 선을 넘어버린 돈을 남에게 나눠주면,
한 가지 좋은 점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하나님 보시기에 떳떳해 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소에 좀 더 절약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고 하네요.
거룩한 것을 다루다가
손이 무감각해진 사람만큼이나
거룩하지 못한 이들도 없나네.
나는 나 자신이
'신학'으로 벌어먹지(축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늘 기쁘게 생각해 왔다네.. - C. S. 루이스/ <평신도 신학> p.163.
◑교회적으로 물질의 상한선 지키기
5년 전에 우리교회에 물질이 부족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 때 기도할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다’는 말씀을 강하게 받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데, 지금 아무리 어려워도 그게 무슨 문제겠는가!’
그런 마음에 확신이 들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여러분 가정도 마찬가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면... 물질은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
무에서 유가 창조된다는 믿음을 갖고 살면 해결된다.
창세기 1:1~2절을 보면, 유에서 유가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뭐가 좀 있어야만 된다. 시작할 때 얼마가 있어야 된다.
내가 시작하는데 누가 도와줘야 된다!’
그렇게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성경은 ‘없어도 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역사, 기적은 깡그리 없는 데서 잘 일어난다.
뭔가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역사와 기적이 일어나되, 적게 일어난다.
어떻게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가?
무식해야 한다. 그래야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
▲너무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 현대 교회와 교인들은 욕심이 너무 많다.
다시 말하면,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데 무의 상태를 만들지 않는다.
실제로 굉장히 어려운 적용이 되겠다.
다시 말하면 무에서 유가 창조되려면, 먼저 무의 상태가 되어져야 한다.
오늘 우리 삶에 유의 기적이 일어나기 원한다면
나의 삶의 부유한 것을 다 내버려야 한다.
무의 상태, 빈 그물, 빈 마음이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악착같이 가지는 것에는 다들 일등이다.
그러니 버리고 버려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만드는 일에는 꼴찌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면
오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무의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목사님, 저희는 지금 먹고 살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뭘 내려놔요?’
그렇게 말씀하는 것 보니까 아직도 자존심을 가득 갖고 있다.
말하는 투를 보니까 아직도 자만심 갖고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의 상태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데,
오늘 목회자부터 온 성도들이
머릿속에 (지식을) 가득 채우고,
가슴에 (자만심, 교만, 자랑, 탐욕) 가득 채우고
주머니에 (물질) 가득 채우고... 너무 많이 갖고 있다.
무의 상태를 만들어 보시라!
▲제가 이번에 캄보디아 다녀오면서 큰 깨달음이 있었다.
‘비전센터 건축 내려 놔! 땅바닥에 다 내려 놔!
너무 높아져 있어, 너무 자랑을 많이 해, 너무 심령이 커져 있어!
옛날에 우리 못살 때처럼 ‘정말 우린 하나님 밖에 없다’고 말한 것처럼
무의 상태로, 제로로 돌아가야 해, 하나님 앞에서 다 내려놓아야 해!’
그렇다. 하나님 한 분만, 예수님 한 분만 있으면 된다.
뭘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고 그래야 교회가 꼭 부흥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저를 캄보디아 오지에 (단기선교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만 남겨놓고 다 내려놓으라는 뜻인 줄 믿습니다.
이 캄보디아 오지 마을에서
나의 부풀었던 마음, 나의 생각, 나의 욕심을
다 내려놓고 돌아가겠습니다.’
이 캄보디아 오지 마을에서 교회 건축도 내려놓고, 입당도 다 내려놓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집이니, 아버지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저는 다시 여기에서 제로 상태로, 빈 그릇, 빈 그물로,
무의 상태로 돌아가겠습니다.
생활비도 내려놓겠습니다.
건강 문제도 내려놓겠습니다.
명예도 자랑거리도 내려놓겠습니다.
업적들도 내려놓겠습니다.
미래의 계획들도 내려놓겠습니다.
나의 삶이 무의 상태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삶이 무의 상태가 되었을 때, 유를 창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예수님 한 분 만으로 갑니다.
하나님 이제까지 써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금년에 어디 쓰셔도 저는 감사할 뿐이고,
어디라도 즉시 믿음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새해에 이렇게 빈 그릇과 빈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 드린다. <이 단락 출처보기 -클릭-
▲감자탕 교회를 아십니까?
남의 상가에 세들어 사는 이 교회가 교우들에게는 천국을 맛보며 살게 해주고,
세상에는 천국의 기쁨을 나누며 산다고 합니다.
이 교회 교우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사랑이 넘치는 교회’,
‘천국을 경험하고 확장하는 교회’, ‘주일이 기다려지는 교회’,
‘우는 이와 함께 울고 웃는 이와 함께 웃는 교회’,
‘교회재정을 100만원만 남기고 집행하는 교회’,
‘절기헌금 전액을 구제비로 집행하는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절대 예배당을 짓지 않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해마다 5천만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급하고
재정의 대부분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며 살고 있는 교회입니다. (펀 글)
◑힘 빼는 일
▲대본에 충실하게 삽시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기보다
자기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이루야 할 목표까지 자기 스스로 다 설정한 이후에
모자라는 부분에 대해 하나님의 힘을 빌리려고 한다.
그래서 오래 동안 신앙생활을 하고서도,
하나님은.. 자기 인생에 모자라는/필요한 부분에 와서,
도움을 주시고 떠나가는(보내드리는) 단역 배우와 같고,
모자라는 힘을 채워주시는 조력자와 같이..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대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인생의 원 작가이시며, 연출가이시다.
우리들은 우리 인생 대본이 어떻게 쓰여 있는지 모른다.
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져 갈지도 모른다.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그날 하루의 대본의 분량만큼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가 지나온 인생의 드라마는
내가 도저히 내 힘으로 쓸 수 없는, 감동과 은혜의 작품이 될 것이다.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그들은 주님을 섬기며 금식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의 대본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불러서 시키는 일’ 을 교회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좀 일찍
바울이 교회를 탄압하기 전에 불러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은 바울이 하게 될 일이 자신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이루실 일이기 때문에
그를 지금 늦게 부르셨다.
저는 어려서부터 바닷가 가까이에서 자랐다.
그래서 바다에서 수영은 웬만큼 한다.
수영을 잘 하는 사람들의 비결은 .. 어깨에 힘을 빼는 것이었다.
그 힘을 다 빼고 나니까, 수영을 오래동안 해도, 그렇게 힘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힘을 길러야 했는데,
이제는 좀 더 빠른 속력으로 수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힘은,
이전에 뺐던 힘과는 전혀 다른 힘이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 각자에게 있는 병든 이기심의 힘
세속적 가치관의 힘을 빼야지만.. 바른 신앙인의 길을 갈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러서 쓰실 사람들은,
그 일 부터 먼저 시작하신다.
‘힘 빼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내시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셨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모세가 40년 동안 제왕교육을 받고
40년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낮아지는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모세가 그 기간을 ‘하나님의 훈련’으로 여기고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적어도 모세 자신은, 자기가 지금 훈련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세가 광야에서 한 일은.. '힘 빼는 일'이었다...
바울도 다메섹 체험 이후에 10년 이상 고향에서 칩거한 것도.. 다름 아닌 '힘 빼는 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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