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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내 생각보다 더 큰 성탄절을

LNCK 2009. 12. 24. 12:01

◈내 생각 보다 더 큰 성탄절 보내기          눅1:67          09.12.23 스크랩, 정리





눅1:67절에 사가랴의 예언이 나옵니다

사가랴가 자녀를 못 낳고 있다가 세례요한을 출생한 이후에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예언한 내용인데요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눅1:67~69


 

사가랴가 제사장을 하고 있었고,

반열의 순서에 따라서 대제사장도 하고 있지만

사실 오늘날 21세기에 사가랴와 비슷한 인물을 찾는다면

시골 교회의 목회자 정도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돋보이거나

세상에 높이 칭송을 받는, 인지도와 지명도가 높은

그런 인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아기를 하나 늙은 나이에 낳고 나서

예언하는 그 내용은 너무나 거창하고 휘황찬란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 그것을 이루는 것이라'


이제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고

자기가 낳은 그 아이(세례요한)는

그 메시아 앞에서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가 될 것이다..

이런 구절이 누가복음 1장에 쭉 이어집니다    1:69~79


마치 시골 교회의 목회자 같던 그 늙은 노인 할아버지 께서 하시는 예언치고는

너무나 거창하고 정말 놀랍습니다


▲먼저 우리는 그의 예언에 나오는 다윗의 언약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면의 모든 원수들을 다 물리치고

백향목으로 지은 궁전에서 편안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머무심을 상징하는 언약의 궤는

들판의 성막, 장막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마음이 늘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머무시는 그런 성전을

멋있게 짓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의 마음을 아셨지만

다윗이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너는 전쟁을 통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평화를 상징하는 성전을 건축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언뜻 보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을 못 짓게 하심으로써

더운 밥 주지 않으시고 대신에 찬밥을 주신 것처럼

그렇게 우리가 이해하기 쉽습니다만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더운밥 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셨는데요

'너는 성전을 안 지어도 되는데

내가 너를 위하여 다윗의 집을 세우겠다 일으키겠다' 그 언약이 사무엘하 7장 나오지요


'여호와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너의 집과 너의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너의 위 throne 가 영원히 견고 하리라' 삼하7:13


'네 보좌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사실 왕이 제일 걱정되는 게 뭐겠어요?


자기가 다윗 왕국을 이루고 또 다른왕국을 이루고 지나갔는데

자기 후손들 대에서 그 왕국이 무너져 버리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목회자들도 마찬가지겠죠

또 가정의 아버지도 마찬가지고요

자기가 뭔가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이루었으면

그 가정과 교회가 자자손손 대대로 계속 이어지고 이어지고

또 이어지기를.. 예수님 오실 때까지 계속!

그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네 다윗의 집을 내 God 가 일으켜 세워 주겠다

또한 그것이 영원하리라'고 이렇게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아! 성전은 못 지었지만 너무나 엄청난 약속을 받았지요!

그것은 식은 밥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고

훨씬 더 크고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오늘 본문 사가랴의 예언에 나오는 바와 같이

'그 다윗의 집에서 메시아가 오리라!'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약속하신 것은

즉 <내 생각보다 더 큰 성탄절을 보냅시다> 라는 것이 묵상글의 제목인데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자잘한 소원이나

그러한 계획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성전 건축 같은)


그러나 그것이 내 생각대로 안 될 때가 많다는 거지요

하나님이 나에게 더운 밥 안 주시고 찬밥을 주시는 것 같은 느낌을

우리가 받을 때가 혹시 있더라도


그러나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리라'는

이사야서 55:9절 말씀처럼

정말 우리가 그 하나님의 높고 깊으신 섭리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오늘 본문의 주인공 사가랴도 마찬가지지요

사가랴는 자식을 못 낳고 있다가

자기가 원하는 것은, 동네 사람들에게 남 부끄럽지 않게,

지역 사회에 그래도 얼굴을 이렇게 내밀고 다닐 수 있도록

자녀를 하나 낳았으면.. 하는 소원이 있어서

부부가 계속 오래도록 기도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그저 자녀 하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통해서 장차 오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그 선지자의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을..

그 예언을 지금 하나님께 받아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나던 그 날에!


▲정말 우리는 이 사가랴가

시골 교회 목회자와 같이

그렇게 지명도가 있거나 그렇게 인지도가 있는

그런 높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그가 자기 믿음을 올바로 지키고

자기 신앙생활을 흠이 없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해 나갔을 적에

하나님은 그의 후손을 통해서

그 나라와 그 백성을

아니 하나님 나라를 살리는..


그러한 위대한 일을 감당하는 영적인 후손,

자기 아들 세례요한을 낳았던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죠 다윗 왕이 되기 전에는

그저 베들레헴 동네에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요즘도 베들레헴 이라는 도시가 크지 않습니다 그냥 작은 동네예요

그럼 3천년 전에는 얼마나 그 동네가 작았겠습니까


그 작은동네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던 한 목동이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과 신실한 신앙생활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기 믿음을 지켰을 적에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이스라엘의 목자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다윗이 원한 것은

성전 하나 멋있게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 하는 것, 그걸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생각에 3060100배 가 아니라

3천배 6천배 1만 배 이상의 크고 놀랍고 원대하고 위대한

그러한 일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 한 사람이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사는 이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요?


내 생각에는, 나는 아무 이름도 

그냥 그냥 살다가 그냥 그냥 사라져 없어져 버린다 라고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이 택하여 쓰시는 사람들은

그렇게 크게 뭘 위대하거나 높거나 유명하거나 그런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습니까


여기 나오는 사가랴도 시골에서 자기 혼자 이렇게 생각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어휴 내 한 몸 편하게 살지!

뭐 내가 여기서 믿음 지킨다고 누가 나를 봐 주겠나?

대강대강 대충대충 좋은 게 좋은 거지

적당하게 인생을 즐기며 살아야지..'


사가랴가 만약 이렇게 살았더라면

그렇게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가는 그 길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가랴 노인이

자기 한 사람의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아내 엘리사벳과 더불어 정직하게 행했을 적에

성경에 '흠이 없이 행하였더라' 이런 말씀이 나오죠   1:6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후손을 통해서

그 부부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일을 행하셨고

또 다윗도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다윗도 자기 혼자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고

결국 한번 실족한 일도 있었지만

그러나 내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서의 삶을 살았을 적에

<자기 생각보다 더 크고 놀랍고 상상하지도 못한>

그러한 일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자주 하신 말씀 가운데

'너희 믿음대로 될지어다!'

또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혈루증으로 12해를 앓고 있던 그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막5:34


그때 당시에 각종 질병으로 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

그것이 510년 이상 지속되던 사람들이

3백명, 천명이... 이렇게 많이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사람이 병을 갖고 그것이 치료되지 않고

510년 계속 이렇게 지나면 지치게 되지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시험 들게 됩니다


'어휴 내가 다시는 이제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섭섭해 하는 마음,

이런 부정적인 마음이 들게 되는데


그러나 12해를 혈루증을 앓았던 그 여인은

하나님께 대해서 믿음의 마음, 소망의 마음을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병에 걸려도 석 달, 6개월 정도 까지는

어느 정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을 수 있겠죠


그러나 그게 36년 9년 지나보십시오

그것 때문에 재산도 다 썼습니다

더 이상 낫겠다 라는 소망이 안 보입니다

그런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어요?


믿지만 최소한의 신앙생활을 하겠죠

거의 지옥 안 갈 정도 만큼만 최소한으로

'아휴 하나님 정떨어져요, 하나님 제 곁에 오시지 마세요!'

뭐 그런 식으로 우리 마음속이 이렇게 시험이 들 수 있지만


12년을 혈루증 앓은 여인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모르지만 내 삶의 환경을 볼 적에

어떤 소용돌이나, 어떤 여러가지 환란에 대한 이유와

그 섭리에 대해서 나는 모르지만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신실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막5:34


'네가 하나님께 가신 그 마음,

네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마음,

네가 하나님께 기대하는 그 마음 그대로

네게 다 이루어질지어다!'

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가랴가 늙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기를 주목하지 않는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이 행하고 자기 믿음을 지킨 결과

자기 후손을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었고


다윗도 정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살았을 적에

자기가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지만

그 놀라운.. 다윗의 집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은총을 받았다는 내용을 살펴 보았는데요


이론은 이론인데 우리가 하루 이틀 지나면

금방 또 다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67절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사가랴는 그냥 자기 생각을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이제 곧 다윗에게 약속하신

메시아, 다윗의 후손을 태어나게 하실 것이고

자기 아들이 그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가 될 것이다.. 라고

이렇게 뭔가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의 말씀을 받으면

그걸 잊어버리지 않게 되지요!


그 예언의 말씀을 받고 나서, (그 내용을) 기도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예언의 말씀을 받으면, 그 기도를 1년, 10년, 자기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계속 그 말씀, 그 언약, 그 약속, 그 예언을 붙잡고 기도하게 되는 것이죠


다른 표현으로 하면 '예언' 말고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셨다!'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뭔가 자기 후손을 통해서 놀라운 일이 생길 것 같은,

그런 강한 확신!

다시 말해서 믿음이 자기 마음에 생기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크리스마스 때

하나님께서 이러한 믿음을 우리 각자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렇게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을 수 있고

그렇게 사람들이 가치 있게 눈여겨보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나 한 사람, 각자 각자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고 하나님께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정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길로

하나님께서 우리 후손을 통해서

육적인 후손이 될 수도 있고, 영적인 후손 즉 제자들을 통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그것이 일어나려면 무엇보다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자신이 그것을 확실히 밀어야 되는데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 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언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또 다른 어떤 방식을 통해서 내 마음속에 강한 확신(즉 믿음)을 주는 것이지요!


그러한 하나님이 주시는 그 믿음의 선물,

약속의 은총을 받게 되시는

복되고 귀한 성탄절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 아래는 원래 원고, 위에는 녹음을 위해서 정리한 원고 ....................


◑마침내 ‘다윗의 집’의 약속이 이루어지다.


▲성전 대신에 다윗의 집을 약속하시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면의 모든 원수들을 다 물리치고

백향목으로 지은 궁전에서 편히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머무심을 상징하는 약속의 궤는 들판의 성막 안에 있었기에

그는 마음 아파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머무르시는 백향목 성전을 짓고자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다윗의 믿음을 아셨지만,

다윗이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셨다.

다윗이 전쟁을 통해 피를 많이 흘려 (역대상22:8)

평화를 상징하는 성전을 건축하기에는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을 못 짓게 하심으로써

‘더운 밥’ 대신에 ‘찬 밥’을 주신 것처럼 이해된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더운 밥’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셨다.

그것은 바로 <다윗의 집>이었다.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을 이루고  삼하7:11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7:16


이는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임하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었다.

(그러니까 성전건축의 약속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다. ‘식은 밥'이 결코 아니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는 다르다/훨씬 크고 높다는 것이다.)


 

▲그 약속은 성탄을 통해서 성취된다.

그 예언이 성취되었음이, 천사와 사가랴의 찬송을 통해서 나타난다.


천사: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눅1:32


사가랴: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눅1:68~69


▲적용1. 다윗 한 사람의 깊은 믿음이, 그의 후손을 살렸고, 그의 백성을 살렸고,

영원한 왕권을 누리도록 하였다.

한 사람의 믿음으로 그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가 탄생하도록 했다.


한 사람의 믿음이 후손 전체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민족과 나라에 영향을 준다.

한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며,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가!

자신의 믿음을 소중하고 고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비록 내가 죄를 지은 죄인일지라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죄에서 벗어나자.

부족하고 허물 많은 죄인일지라도 (다윗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가?)

나의 믿음을 통하여 나의 후손과 내 나라가 하느님께 축복받는다는 점을 생각하고,

자신의 믿음을 소중하고 고귀하게 여기자.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됨으로써, 후손과 나라에 축복을 주는 삶을 살자.           <봉>


 

▲적용2. 다윗은 성전 건축을 원했으나

하나님은 더 큰 다윗의 집의 건축을 원하셨다.


오늘 내가 원하는 무슨 건축(자녀의 건축, 사업의 건축, 사역의 건축)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해서.. 결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심하지 마시라.


하나님은 더 크고 놀라운 것(‘다윗의 집’ 같은)을 계획하고 계시며

나의 깊은 기도와 교제 가운데.. 하나님은 그 놀라운 계획을 내게 보여주실 것이다.


또한 그 ‘다윗의 집’은

오늘 내가 ‘다윗의 길’로 행할 때,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어쩌면 마구간이 더 나았다.


베들레헴을 방문한 요셉과 마리아는 행색이 초라했기 때문에

여관주인의 ‘방이 없다’는 냉대를 받고서 (방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마구간에서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마구간이 여관보다 여러모로 더 나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마구간도, 인간의 냉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MT를 가거나, 가족들끼리 단체 여행을 가면

어떤 사람은 아예 숙소를 빠져나와서 자동차에 가서 잠을 청한다.

북적거리고 소란스런 숙소보다는, 차라리 자동차 안이 더 낫기 때문이다.


①마구간도 짐승 울음소리로 시끄러울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떠드는 소리와, 짐승이 떠드는 소리는 차원이 틀리다.

전자는 ‘소음’이라면, 후자는 ‘정겨운 고향의 소리’가 된다.


요셉과 마리아는.. 여관주인과 (또 거기 있었을)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피해서

그들은 ‘따로’ 조용하게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멋있게 보낼 수 있었다.


②그리고 목자들이 찾아와서 경배하기가,

여러모로 마구간이 훨씬 더 유리한 조건이었다.

장소도 더 넓었을 것이고, 그래서 경배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목자들이, 예수님 가족을 찾기도 더 쉬웠을 것이다.

마구간은 보통 문이 없거나, 있어도 그게 바리게이트이지, 꽉 닫힌 문이 아니다.


방이 없어서 <마구간에 숙소를 정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멋있게 보내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를 어디에다 ‘누이시든지’

어쩌면 그곳이 더 기도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고,

세상과 떨어져 조용히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더 좋은 여건이 될 수 있다.


※동방박사들이 찾아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한 시점과 장소는 '마구간'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0~11


-본문에 박사들은, 마구간이 아니라, 집에 들어가서 경배했다. 

(성경에 '마구간'이란 말도 안 나온다. 다만 '구유'에 뉘었다는 말씀에 근거에 '마구간'으로 추론한다.)

-또한 '아기'로 번역된 헬라어 '파이디온'은 제법 자란 아이를 뜻한다.

그래서 KJV성경은 young child로 번역했는데, 적어도 생후 6개월은 지난 시점이라고 본다...

 

 

③한 가지 더, 좀 낭만적으로 생각한다면

만약에 주님이 ‘여관방’에서 탄생하셨다면.. 오늘날 성탄연극이 별 재미없었을 것이다.


특히 요즘은 ‘여관’이란 이미지가 아주 좋지 않다.

그래서 예수님이 집 근처 ‘호수 여관, 강변 모텔’에서 탄생하신다고 연극을 하면,

엄마들은, 자기 아이들 눈을 자기 손으로 가릴지도 모른다.

‘여관’이란 이미지 때문이다.


그래서 어쨌거나 여관주인의 냉대가.. 성탄절 역사에 한 몫을 단단히 한 셈이다.

만약 그녀의 냉대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오늘 성탄절에, 누가 나를 냉대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면..

꼭 싫어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만약에 요셉과 마리아가 (당연히 그러지 않았겠지만)

‘아니, 구세주가 탄생하리라고 약속하셔놓고, 하나님, 이게 마구간이 말이나 됩니까?’

라고 하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더라면.. 아주 우스운 꼴이 될 뻔 했다.

 

 

◑한 아이의 소박한 간구


어떤 은행에 어린 꼬마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은행 창구의 한 은행원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아줌마, 저 만원만 빌려주세요.”


이 어린 꼬마아이의 말에 은행 안의 모든 사람들이 아이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한 중년의 신사가 이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만원을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데?”


아이는 떳떳하게 그리고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신발을 사려고요. 날이 너무나 추워서 꼭 필요해요. 나중에 꼭 갚아드릴게요.”


아이의 신발은 헤어져서 발가락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옷도 낡은 옷이며,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초췌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중년의 신사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백화점으로 데리고 가서

아이에게 따뜻한 신발을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옷과 장난감도 사주려고 하는데,

이 꼬마아이가 눈을 크게 뜨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필요한 건 신발뿐이라고요. 이 많은 것을 다 갚을 수는 없어요.

그러니 이 신발만 가져갈게요.”


이 아이의 소박한 마음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사실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큰 아름다움과/ 큰 힘과/ 큰 부는

그다지 크게 쓸모없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잘 관리할 수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못할 바에는.. 내가 잘 관리할 수 있고 (쌓아놓는 것이 아니라, 나눠주는 것)

또 내가 되갚을 수 있을 정도가 좋습니다.

나중에 주님과 결산회계 account 볼 날이 반드시 있으니까요.                                       <찬>


오늘도 뭔가 필요가 있는 사람은, 소박하게 주님께 간구해 봅시다.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131:1


인도의 마더 테레사는 이런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위대한(큰) 사랑을 갖고, 작은 일들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준비 다 해놓고, 조용히 물러서는 사람


세례 요한 자신은 결코 나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해 세상의 중심에 섰지만,

예수님이 오시자 조용히 물러섰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비켜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준비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내가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삶 속에서

예수님을 위해 그 자리를 비워드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모습입니다.


영화를 한 편 생각해보세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의 역할을 엑스트라가 대신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분명히 망할 것입니다.

엑스트라는 그 영화의 감초 역할만 충실하면 그만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성탄절도,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엑스트라인 내가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하려고 한다면

가장 형편없는 영화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 부활, 추수, 성탄, 성찬, 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