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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눅1:46~49 모두 스크랩 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정말 비운의 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내가 모든 세대에 가장 행복한 여인'이라 고백,
또는 예언하고 있습니다. 눅1:48
그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눅1:46~49
◑인생의 기쁨은 ‘대조’를 통해서 느낀다.
아무리 멋진 순간이라도.. 그것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매력은 없어지고 맙니다.
해외여행을 다니시는 분들은, 1년에 5번 다니면, 더 이상 재미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값비싼 음식을 드시는 분도.. 매일 드시는 분은.. 그것만큼 고역이 없다고 합니다.
즉, 인생의 기쁨이란 대조되는 삶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배가 고플 때에는.. 어떤 음식도 다 맛있습니다.
목이 마를수록.. 물맛은 더욱 더 시원합니다.
피곤할수록.. 잠이 너무나도 고맙지요.
몸도 마음도 쉼의 행복이 있는 것은.. 어떤 힘든 수고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 매일 집에서 쉬는 사람은.. 쉬는 것도 고역 중에 고역입니다.
우정의 가치를 높게 느낄 때는.. 혼자 남았다는 고독에 빠져 있을 때입니다.
햇볕을 고맙게 여기게 되는 것은.. 비나 추위 때문이며,
새벽이 기다려지는 사람은.. 파수꾼처럼 밤의 어둠이 깊은 사람입니다.
재회의 기쁨이 큰 것은.. 이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조되는 삶 속에서 인생의 기쁨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한 가지 통찰력을 줍니다.
만약 지금 오늘의 삶이 고되고 힘들다면..
그것은 내가 맞을 행복이 더욱 찬란하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함이라고요.
따라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 어려움의 반대편에는 그 만큼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가 지극히 크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은혜의 반대편 나락으로 깊이 떨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니, 주님은 나에게 크신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가끔은 나를 깊은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십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삶이 고달픈 사람은,
이 기회를.. 더 큰 은혜를 체험하는 계기로 삼으십시다.
먼저 된 자는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는 먼저 되는 것은.. 참으로 진리입니다.
◑스스로 비천하게 여길 때.. 은혜가 넘칩니다.
어렸을 때부터 행복하기를 바랐고 그래서 늦게나마 신학교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행복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불만만 늘어가고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신학교 생활이,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듯 했습니다.
▲금식을 해 보니까, 밥이 고마운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굶어보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일주일씩도 단식하던데 저는 이틀 안 먹으니
뱃가죽이 등에 붙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제가 얼마나 교만해있었나 반성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언가 하는데 마땅한 행복을 주시겠지!’
라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불러주신 것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불러주셨는데 뭐 대단한 일이나 해드리는 것처럼
제가 잔뜩 교만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침을 먹는데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식사는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밥알 하나하나를 헤아리며 그 하나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겸손함으로 살면, 신학교 삶도 행복하리라 느꼈습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비천하게 여길 때, 주님의 은혜를 느낍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나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눅1:46~48
마리아가 기뻐 뛰며 감사하는 이유는
바로 마리아께서 자신 스스로를 ‘비천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겸손이 바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고 기뻐 뛰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불평하고 우울해지는 것은.. 반대로 교만 때문이겠지요.
저는 겸손이 바로 행복의 비밀임을 깨닫고
이제 나 자신을 스스로 낮추기만 하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이론은 알겠는데, 실천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사정은 달랐습니다. 그런 감격은 며칠 내로 사라졌습니다.
다시 기쁘지 않았고, 다시 예배와 기도가 경배가 아니라, 의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겸손해지기 위해서 역사속의 믿음의 위인들의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많은 유명한 영성서적을 읽었지만.. ‘겸손하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성의 두 대가인 십자가의 성 요한과
아빌라의 테레사가 쓴 책을 모조리 읽기로 하고
제 기억엔 거의 다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영성에 왕도는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를 죽여 나가면
영성이 증가한다'고 하였습니다.
며칠 굶으니 겸손해진 저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계속 육체를 죽이다시피 하며 사는 것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도 끊임없이 겸손과 사랑을 강조하지만
결론은 십자가의 성 요한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마지막에 “노력하라.”라고 합니다.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일평생 조금씩 성숙해 가는 것!
세상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 중에,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이 비록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더라도 그 천재성을 노력으로 승화시키지 않았다면
그 재능은 자신 안에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고 행복(신앙의 득도)의 경지야..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겠습니까?
습관이 신앙의 덕 virtue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복된 노력이 결국은 몸에 베이고 그것이 덕이 되는 것이지
한 순간의 결심에 의해 겸손이나 사랑, 인내, 친절 등의
덕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내리시는 성령의 은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 내면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은혜와 더불어, 나도 힘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1년에 자신의 단점 하나씩만 고쳐도 모두 성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노력하지 않으면 살면서 자신의 단점 하나도 고치기 어렵습니다.
영성은 다름 아닌 ‘성령이 주도하시는 가운데 자기 애씀’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당부합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 5:16~18
이런 것들을 일시적인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하며 나의 일부로 만들어가야겠습니다.
어떠한 성자도 한 순간에 성자가 되신 분들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한 순간에 변화되었다고 하지만,
그는 재림 때나 ‘한 순간에 변화되리라’고 말하지,
평소에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며 우리 자신의 최선을 가르칩니다.
(사례1) 교인 중에 아주 대조적인 두 자매가 있습니다.
A자매는.. 부유한 집에서 곱게 자라 명문대학을 졸업한 뒤
의사한테 시집가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돈만 잘 벌어올 뿐 아니라, 아주 모범적인 가장입니다.
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도, 말썽을 피우지 않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입니다.
어느 것 하나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A자매를 ‘복 받은 여인’이라고 부러워합니다.
반면에 B자매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겨우 중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 전선에 뛰어든 이래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 하루도 편히 쉴 날이 없이 막일을 하며 삽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과 자식들도 항상 속을 썩이는 골칫덩어리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B자매를 보고 ‘지지리 복도 없는 여인’이라고 동정합니다.
그런데 두 자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 온갖 복을 누리고 있는 A자매는
자신의 복이 언제 깨질지 몰라 늘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평탄한 삶’이 영혼의 만족과 행복을 꼭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삶이 더 무료해지고, 허무할 수 있습니다.
(서두에 설명했듯이, 매일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은.. 그것에 행복을 못 느낍니다.)
그러나 B자매는 고통 중에도 불안하거나 불행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주님께서 큰 복을 주실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은 늘 가난하므로, 주님의 더 큰 은혜를 받아누릴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복된 여인은 누구일까요?
마리아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여인임을 노래로 고백합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눅1:48
어쩌면 이 고백은, 가장 고통스런 여인이었기에 가능한 고백일 것입니다.
(사례2) 빌딩에서 일하는 청소부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마치 자기 집 마당을 치우듯
빌딩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궂은일을 성실하게 하는 그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일하시는 게 참 행복해 보이십니다. 이렇게 어렵고 궂은일에 어떻게 만족하십니까?”
그러자 청소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는 제 일에 대해서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늘 불만이었지요.
그러나 저는 큰 병을 앓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면서..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습니다.
저의 생각과 마음이 완전하게 바뀌었습니다.
제가 하는 청소일이라도
더러운 지구의 한구석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제 일에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낍니다.
그리고 청소 일이라도 할 수 있도록, 제가 건강한 것이 얼마나 주님께 감사한지요!”
(사례3) 자기 부모에게 불만이 많은 자녀들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니, 저는 한순간도 어머니를 잊어본 적이 없어요.”
외국으로 입양 갔다가 20년 만에 돌아온 아들이
공항에서 어머니를 만나서 처음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살림이 어려워 도저히 많은 자식을 다 부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눈물을 머금고, 어린 아들을 미국에 입양시켜야 했습니다.
이제는 훌쩍 커서 대학생이 되어 돌아온 아들은
어머니에게 손때가 묻어 닳아버린 ‘작은 돌’과 ‘10원짜리 동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미국으로 떠날 때, 어머니가 고국과 어머니를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며
아들의 손에 쥐어준 것이었습니다.
“힘이 들 때 이 돌과 동전을 보며 매일 어머니를 생각했다.”는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통곡했습니다.
5살 어린이가 이국땅에서 언젠가는 다시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외로움과 고통을 이겨낸 것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3가지 사례는, 우리에게 한 가지 통찰력을 줍니다.
만약 지금 오늘의 삶이 고되고 힘들다면..
그것은 내가 맞을 행복이 더욱 찬란하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함이라고요!
비운의 여인 마리아가 '나는 모든 세대에 가장 행복한 여인으로 칭송받을 것이라'고 예언한 것은
자신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상대적으로 느끼는 행복과 은총이 더 클 것임을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이하 녹음 안 함 ..........................................
◑너무 올라와 버렸습니다.
▲인생은 바이킹
모처럼 저녁시간 서울 시내를 나갔었는데,
한 대형 백화점 앞은 그야말로 별세계였습니다.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안개 등,
휘황찬란한 성탄장식으로 저는 딴 세상에 온 듯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성탄장식처럼, 동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지요.
-사고로 인해 한순간에 가장을 잃고, 억울해하는 유족들
-자살을 생각할 만큼, 심각한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
-마땅한 거처도 없이 떠도는 외국인 근로자들
그런 얘기가 남의 얘기처럼 들리면 어쩌면 다행스런 일입니다만,
그러나 나 자신과 비슷한 얘기로 들려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값비싼 물건이 넘치는 대형 백화점에 가 보면,
내 삶이 너무 가난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스스로 측은하게 여겨집니다.
"도대체 왜 이런가?"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내가 너무도 높은 곳까지 올라와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실은 전혀 그게 아닌데,
우리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올라 갈 데까지 올라가 버렸기 때문에
현실에 늘 감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놀이동산에 있는 ‘바이킹’을 탈 때마다
‘아! 그래 인생이란 이런 것이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우리네 인생은..
하늘 높은 곳을 향해 힘차게 올라가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가슴 섬뜩함을 느끼며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때가 있습니다.
내 삶이 지금 아래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내 삶이, 지금 (바이킹 탈 때처럼) 너무 높이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높이 올라가 있을수록.. ‘스릴과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니까요.
그렇다고 ‘무조건 안전하게 바닥을 기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무슨 중요한 직위에 오르든지,
무슨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든지,
어떤 물질적 풍요함이 있든지,
‘내려 올 때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조심 조심 살자는 것입니다.
비슷하게 ‘시계추’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역사도 그렇고, 우리 개인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늘 감사하는 사람은.. 자기 무게중심이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요,
늘 불평하는 사람은.. 자기 무게중심이 너무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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