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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0

침례(세례)의 의미 2268

LNCK 2010. 1. 18. 21:21

예수님의 수세를 통해서 배우는 침례(세례)의 의미        마3:13-17           10.01.10.설교스크랩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을 통해 세례의 의미를 살필 때, 롬6:3~4절과 연결지어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돋보입니다.

 


◑1. 예수님의 요단강 수세受洗는 우리가 따라 올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받으실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세례를 죄 있는 사람이 죄를 씻기 위해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므로,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무척 당황해했다.

‘제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제게 세례 받으러 나오십니까?’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①‘동일시의 침례’... 하나님이신 그분이 죄인인 인간과 동일시 identified 되사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와 같은 죄인의 자리에서 침례를 받으셨다는 말입니다.


②‘모범 침례’... 예수님을 따르게 될 그의 제자들이    *baptism of example

침례로 신앙을 고백하고 그분을 따라 오도록

그분 자신은 침례의 필요가 없었지만

온전히 모범/모본/example이 되시고자 하는 의도로 침례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우리가 따라갈 삶의 모범입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모)본example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으니.. 벧전2:21


▲2. 문제는, 불완전한 인간이, 과연 예수님의 완벽한 삶의 모범을 좇아갈 수 있을까요?

바로 여기에 성령의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성령에 이끌리는 평생을 사셨습니다.

①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시는 순간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분위에 임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3:16


②그리고 본문에 이어지는 마태4:1에 보면

예수께서는 바로 그 성령에 이끄심을 받아 광야로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4:1절 이후, 성령에 계속 이끌리시는 예수님의 공생애는 각자 연구합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러셨다면,

죄 많은 우리는.. 성령충만함을 구하며, 성령에 이끄심을 받는 삶을.. 더욱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삶을 흉내라도 내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내 힘만으로 절대 안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과 능력을 구하십시오.

그런 가운데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그리스도를 본 받아」

여러분은 혹시 역사를 통해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린 기독교 도서를 아십니까?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 Christi)입니다.         주1)

그런데 이 책은, 사놓고 가장 읽히지 못하는 책으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 <그리스도를 본 받아>가 끊임없이

모든 시대 그리스도인의 관심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본받음이 우리의 열망이요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을 어느 정도라도.. 내가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이 설교를 듣고도, 여러분은 다가오는 일주일의 삶 속에서 또 지치고 낙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 성령의 충만을 새롭게 구하십시오.

    우리가 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완전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슬럼프/다운/영적침체의 시간을 더욱 짧게 줄여가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한 시간만’ 침체에 빠지는 사람은.. 고수에 속하고

    ‘2~3일간’ 영적침체에 빠졌다가 되살아나는 사람은.. 중간에 속하고

    ‘2~3주간 이상’ 길게 침체에 빠지는 사람은.. 아직 믿음이 미숙한 것입니다.

    금년에는 ‘침체의 기간’을 줄이는, 실력을 기릅시다.



예수님의 요단강 수세受洗를 통해 배우는 '세례의 의미'는

◑2. <연합>의 새로운 삶의 시작을 보이신 것입니다.


▲요단강 침례는, 예수님의 삶(공생애)의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침례를 받는 것은

공식적으로 내가 성도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적용. 나의 침례는 ‘그리스도와 연합의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롬6:3-4은 성경에서 ‘침례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무릇 그리스도와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함이라.


이미 우리는 침례가 ‘동일시’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구절에서는 ‘연합’(본문에 ‘합하여, 함께’)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지내심

그리고 그의 부활에 연합된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윗 단락에서,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라고 설명했는데,

이 단락에서, 똑같은 뜻이지만 약간 다른 각도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입니다.


참으로 성령충만한 성도는, ‘자기가 예수님과 연합되었다’고 느끼며 삽니다.

반대로 믿음이 미숙한 성도는, ‘자기가 예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며 삽니다.


물론 침례를 받는 순간부터 즉시로 ‘연합’이 실감나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평생 우리 신앙이 성숙해 가면서.. ‘연합’을 점점 더 실감나게 체험하는 것입니다.


※'성례 의식'으로서의 침례(=세례)가 가지는 의미 한 가지

남녀가 사랑하면 부부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결혼식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공식적으로 부부의 삶을 인정해 주고 확인해 주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때부터 부부는 편안하게 공인된 부부의 삶을 공식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침례식은 성도들로 하여금 성도로서의

공적인 새 삶을 살게 하는 시작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침례를 통해 ‘여길지어다’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무엇으로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사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일 수 있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그 대답을 롬6:11의 말씀으로 가르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니까 죄 지을 일들에 대하여는.. 내가 ‘죽은 자’ 여기고

혈기가 일어날 때, ‘나는 죽었는데..’ 라고 여기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즉 하나님을 섬기는 일들에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라

즉, 내가 펄펄 살아있는 자로 여기며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설명하면, 우리 현실이 매우 힘들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현실은 내가 가난합니다... 그러나 부유한 자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피곤합니다... 그러나 내가 강건한 자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무능합니다... 그러나 내가 유능한 자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이 심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버린 자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요단강 수세受洗를 통해 보는 ‘세례의 의미’는

◑3. 대제사장으로서 <순종>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보이신 것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의 공생애 시작


①흥미로운 것은 구약의 제사장도 30세에 제사장에 취임하였고,  민4:3

그 제사장의 취임의식 가운데, 전신을 물에 잠그고 나오는 정결의식이 있었습니다. 레15-16장


그래서 예수님도, 30세 즈음에, 요단강에서 물에 잠그고 나오셨는데,

다름 아닌, 제사장 취임식을 예표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대제사장의 임직이라는 뜻이었습니다.


②히브리서의 기자는 예수님이 우리의 큰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는 자신의 거룩한 몸을 제물 삼아 갈보리 십자가라는 제단에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는 대 제사장의 소명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요단강 침례는

이 거룩한 구속사역에 대한 순종의 시작을 뜻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자각하고 사신 예수님

예수님 자신도 막10:45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요단강의 침례에 순종하신 예수님은

3년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우며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적용: 그렇다면 나도, 침례는 순종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①우선 우리 중에 아직 교회 나와 예수를 믿으면서도

‘침례 받기’에 순종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이 일부터 순종하십시오.

침례는 그를 따르기 시작한 사람들을 향한 주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지상 명령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 /마태28:19 가 아닙니까?


②그리고 침례를 계기로, 그 분의 명령을 따르는 순종의 삶을 시작하셔야 마땅할 것입니다.

때로는 그의 명을 따름이 내게 고난이고 손실이고 아픔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각자 적용해 봅시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순종하셨다면, 나는 어떤 삶을 순종할 것인가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한 청년


지난해 2009년 성탄절에, 우리는 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한인 교포 28살난 로버트 박(한국명, 박동훈)이라는 청년이

북한 땅에 인권을 촉구하기 위해서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북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자기를 구출하지 말아 달라고 자기는 죽으러 간다고

그러나 자신의 죽음을 통해 북한 땅에 인권이 존중되는

인류적 각성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단신 북으로 간 것입니다.


이 땅의 대부분의 신문들과 방송 매체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 일종의 만용과 영웅심으로 일을 저지른 식으로 보도한 후

아직도 이 사건은 기이한 침묵 속에

관심 있는 소수의 사람들의 입에서만 회자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그에 관한 진실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전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미국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Born-again한 후

노숙자 선교와 멕시코 빈민 선교를 하면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특별한 소명을 느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는 미국 교회에서 중국 선교사로 파송 받아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북한의 비참한 인권 상황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때부터 전 세계 북한 인권 및 탈북자 관련 100여개 단체의 네트워크인

<자유와 생명 2009대표>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한국에도 자주 방문하면서

탈북한 이들과 교제하며 북한 해방과 탈북자들의 보호가

그의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이 되어왔다고 합니다.


탈북자들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그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탈북자들을 보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주곤해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작은 예수>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는 작년 가을 이래 주님이 자기를 북으로 부르시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말렸지만 그는 주님이 가라고 하면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북으로 가기 직전에 그는 자기가 잡히면 오바마가 자기를 돕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북한 백성들이 자유를 얻기 전에 자신은 돌아오지 않겠다고


북한 당국이 자기를 죽인다면

자신은 북녘 땅의 수용소에서 짓밟히고 있는 10만 이상의 무죄한 남녀노소들과 기꺼이 함께 죽겠다고

그것이 자신의 십자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신앙이 순종이라면.. 누가 이 청년을 감히 비웃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제는 우리도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순종의 걸음을 결단해야 할 시간이 아닙니까?

                                                         

주1)                                                                                                           ▣ 부활, 추수, 성탄, 성찬, 장애  


토마스 아 켐피스/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1)

 

토마스 아 켐피스/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2)

 

토마스 아 켐피스와「그리스도를 본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