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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안 임하다가 임한 이유

LNCK 2010. 1. 18. 09:46

◈사마리아에 성령이 안 임하다가 임한 이유        행8:14-17     2010.01.10.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크게 2가지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1)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도, 왜 성령을 받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2) 왜 굳이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야, 그들이 성령을 받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적 배경

 

사마리아의 역사적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앗수르의 정책

이스라엘이 솔로몬 이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졌는데,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남유다가 되고,

유다와 베냐민을 제외한 나머지 10지파가 북이스라엘이 됩니다.

 

나중에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앗수르)에 멸망했는데,

앗시리아는, 자기들이 정복한 지역에 원주민이 살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원래 원주민은 다른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시키고,

그 지역에는, 또 다른 지역 사람들이 와서 살도록 했습니다.

전부 다 이주시키지는 못하니까,

남아있는 사람들은 새로 이주해 온 다른 민족과 강제로 결혼하게 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들이 살고 있는 그 땅이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자기들의 땅이라는 의식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거지요.

 

    (1937년경 스탈린도, 여러 민족을 중앙아시아에 이주시켜, 혼합시켜서,

    민족의식을 말살시키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사마리아라는 지역은 그렇게 해서 형성이 됐습니다.

원래 북이스라엘 지역이었는데,

이제 거기는 이스라엘 지파가 아닌, 다른 민족이거나 다른 민족과 혼혈인 사람들,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10지파가 (혈통적으로는) 실종되고, 2지파만 남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정책

남유다의 경우는 이와 달랐습니다.

바벨론은 점령지에서 쓸 만한 인재를 포로로 끌고 가서

자기들의 나라에서 교육받고 일하면서 살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백성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미국 이민정책과 비슷하나요?)

 

그래서 남유다의 귀족이나 학자나 기술자들은, 바벨론에 가서 살게 되었고,

남유다에는 가난하고, 기술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만 남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벨론이 몰락하고, 페르샤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정책

페르시아(바사)는 바벨론과는 달리,

자기가 점령한 지역을 그 지역 사람들이 직접 다스리게 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굳이 자기들이 직접 통치하기에는 영토가 너무 넓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이 잡아 온 유대인들을 다시 옛 남유다로 돌려보냈습니다.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 교육받고 페르시아 화 된 사람들이 가서 유다를 다스리면,

페르시아의 통치와 다를 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와 에스라 같은 사람들이

유다백성들을 이끌고 유다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대인’이라 부르는 이유

예수님 시대에는 이미 북이스라엘이었던 10지파는 사라지고 없었고,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을 유대인이라고 부르는 건,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유대지파의 사람들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베냐민 지파 사람들도 남아있긴 하지만,

베냐민은 워낙 소수라서 따로 구분해서 부르지는 않습니다.

 

◑행8장, 본문 배경

 

▲사마리아 지방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사람은 빌립 집사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하나인 빌립이 아니라,

스데반과 함께 교회의 맨 처음 집사가 된, 7집사 중 한 사람 빌립입니다.

 

스데반이 순교한 이후, 사울을 중심으로 교회를 없애려는 유대인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남녀를 불문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찾아내서 감옥에 넘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서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렇게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예루살렘에 머무르지 않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아주 무시하고 혐오했습니다.

이방인과 피가 섞인 그들을 이방인보다 못하게, 짐승처럼 여겼고,

그런 그들이, 이스라엘의 옛 땅인, 사마리아 지방에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못마땅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자기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자기들 역시 역사의 피해자인데,

유대인들이 자기들을 무시하고 혐오하는 게 기분 좋을 리가 없었지요.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유대인들을 증오하고 상종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관계가 계속되면서 유다와 사마리아는 원수지간이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 우리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 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서로 원수지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그런데 빌립은, 유대인이기는 하지만,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예루살렘에서 살던 사람이 아니고,

그리스 지역에서 태어나서 자라다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 온,

해외교포 출신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같은 유대인이라도 히브리파 유대인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외국 문명에 익숙하고, 헬라어에 능통하고,

외국인을 대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자연스럽고 개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정통 유대인들보다는 좀 더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었을 겁니다.

또 사마리아 사람들도 빌립을 대하는 것이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았을 것이고요.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 사역  (행8:5~8)

빌립은 사마리아성에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했는데,

사람들이 빌립이 행하는 표징을 듣고 보면서,

그가 하는 말에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왜냐하면, 빌립이 말씀을 선포할 때 귀신들린 많은 사람들에게서

악한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고,

많은 중풍병 환자와 지체장애인이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마리아 지방에 복음이 전해졌고,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질문 과 대답 

 

1)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도, 성령을 받지 않을 수 있는가요? 

2) 왜 굳이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야, 그들이 성령을 받게 되었을까요?

 

빌립은 예수를 믿겠다고 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아직 성령이 내리시지 않았다는 겁니다.

 

행2:38-39에, 예수 믿으면 성령을 받는다고 약속되어 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이방인?),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의 전도를 통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도..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요?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행8:12

 

이 질문에 대답을 얻는데, 열쇠가 바로 마술사 시몬입니다.

시몬은 원래 사마리아 지방에서 유명한 마술사였습니다.

그는 마술을 부려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스스로 큰 인물인 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낮은 사람으로부터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사람은 하늘의 위대한 능력의 소유자이다/8:10 라며, 그를 따랐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따른 것은,

그가 오랫동안 마술을 통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사마리아에 와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니까,

남녀노소가 다 그의 말을 듣고 세례를 받았고,

시몬도 역시 믿게 되었고, 세례를 받은 후에 항상 빌립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시몬은, 빌립이 표징과 큰 기적을 잇달아 행하는 것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시몬, 성령의 능력을 돈 주고 사려고 하다.

그런데, 거기 베드로와 요한이 왔고,

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손을 얹어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보고,

시몬은, 자기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사람들에게 성령을 받게 할 수 있다면, 아주 큰 돈벌이가 되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시몬은 사도들에게 돈을 내고서 성령의 능력을 사겠다고 합니다.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도록 내게도 그런 권능을 주십시오. 8:19

 

앞에서, 분명히 시몬도 빌립이 전도하는 것을 듣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몬이 하는 행동은, 성령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고,

돈을 주고 성령의 능력을 사겠다고 하는 겁니다.

이게 뭡니까? 시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었을까요?

 

시몬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했던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시몬이 빌립의 전도를 받고서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디에도 회개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기의 삶과 자기의 존재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거기 응답해서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예수를 믿은 게 아니라, 빌립이 전하는 얘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서,

참 좋은 얘기다, 참 귀한 가르침이다, 그러고 말았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은 게 아니라,

그냥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의 말로 듣고 말았다는 겁니다.

유대교에서는 지금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예언자 가운데 하나로 인정한다고 합니다.

 

지금 시몬이 가진 생각도 그런 겁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고는, 예수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 가운데 여기고,

그가 한 말을 들어서, 배워서, 좋은 말로 여겼을 뿐이라는 겁니다.

 

예수의 세례나 세례요한의 세례나 그게 그거라고 여긴 것이고,

그러니 정말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회개도 하지 않고, 죄용서도 받지 못했고,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으니,

성령을 받을 도리가 없는 겁니다.        *질문1의 답변 참조   

그래서, 성령의 권능을 돈주고 사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고요.

 

▲마술사 시몬은 사마리아 교인들의 표본

지금 식으로 말하면, 마술사 시몬은,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는 믿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고, 회개도 하지 않고,

결국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착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시몬만이 아니라,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 가운데

세례는 받았지만 성령은 받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베드로의 지적은 8:20~23절에 나와 있습니다. 각자 읽어보십시오.)

 

▲1. 예수를 진실로 믿지 않으니, 성령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질문1의 답변)

요즘 교회에서 죄에 대한 설교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성공하고 출세하고 부자 되는 축복은 넘쳐나는데,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오직 예수만이 나의 생명, 구원이시라는 사실을 삶을 통해 고백하는 일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시몬의 상태요, 사마리아인의 상태였습니다.

돈으로 축복을 사겠다는 발상이나,

헌금을 많이 하면,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실 거라고 믿고,

그런 목적으로 헌금하는 사람이나 다를 바가 뭡니까?

 

누가 자기의 죄를 언급하면 발끈해서 화를 낼 줄이나 알았지

도무지 회개할 줄 모르는 것도.. 바로 그런 식의 믿음에서 나오는 겁니다.

 

교회를 무슨 사교클럽 정도로 생각하고,

사람 만나고 사귀기 위해서 교회 나오는 사람들,

그냥 기분 좋게 왔다 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

교회에서 봉사도 하지 않고, 손해 볼 일은 조금도 하려고 하지 않고,

기도도 형식적으로 할 뿐, 나의 진정을 담아 기도하지 않고,

 

쉽게 말하면, 그냥 문화 생활하려고 나오는 사람들,

그게 바로 사마리아 사람의 상태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말하자면 아직 성령이 내리시지 않은 상태에 있다

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니, 종교생활은 하는데 신앙생활은 할 수가 없지요.

교회에서도 혈기 부리고 자기 고집 부리고 자기 멋대로 하려고 하지요.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말해도, 자기주장만 하고 자기 하려고 하는 대로만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 상처주고, 교회에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서 늘 남의 탓을 하지요.

자기는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소극적이다, 협조를 안 한다,

다 자기한테 떠맡기고 도와주지도 않는다, 그럽니다.

 

다른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지요.

그게 자기 탓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아니라, 자기 고집이 자기를 주장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2.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야, 특별히 성령이 임하신 이유    (질문2의 답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시몬 같은 사람도 있었던 거구요.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갑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유대인들의 수준, 딱 그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는 걸 보고 이상하게 여겼고,

예수님께서 마지막 예루살렘에 가실 때, 사마리아를 지나시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행을 영접하지 않고 문전박대를 하니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저들을 태우라고 하자고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전형적인 유대인’이었지요.

 

▲화해한 곳에 성령이 임하다  

그런 그들이 사마리아로 갑니다.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시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니,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건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유대와 사마리아는 서로 혐오하고 증오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유대인인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갔고,

사마리아에서 예수를 믿기로 한 사람들은,

유대인인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기도를 받았습니다.

 

멀찍이 앉아서 기도하지 않고, 몸과 몸이 마주치며,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성령께서 임재하셨습니다.

 

원수 되었던 둘이 한 자리에서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었을 때,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서로 하나가 되었을 때, 거기 성령께서 임재하셨다는 겁니다.

 

진정한 화해가 없는 곳에는, 성령이 역사하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순수 유대인, 반면에 빌립은 헬라파 유대인)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한 것은, 일종의 ‘화해의 시도’였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셨던 것입니다.

 

▲화해가 없는 곳에, 성령의 임하심은 커녕

오히려 심판과, 성령의 근심/소멸이 있을 것입니다.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마5:21-24

 

※다른 성경구절은 각자 찾아보세요.

 

▲예루살렘과 사마리아가 만나서

서로 하나가 되어 기도하는 그 자리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지 않았더라면,

혹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거절했더라면,

오늘 이런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사람들이 서로 화해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서로 화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기 고집, 편견, 오만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성령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남북 관계에 적용 

 

지금 북한에 공식적으로 교회가 두 개 있습니다.

평양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라는 곳인데요, 물론 북한 정부가 세운 전시용 교회입니다.

외국 손님들이 오면 거기서 예배를 보게 하고,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선전하기 위해 세운 교회들입니다.

 

거기서 예배드리는 북한 사람들은,

마치 오늘 사마리아 사람처럼, 신앙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종교행사에 동원되었을 뿐인 사람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니까,

내가 당신들을 만날 필요도 없고,

당신들을 위해 기도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지금 우리 남한의 기독교인들이 북한의 그런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은 가짜니까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우리는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게 방해하는 게 됩니다.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서 함께 예배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거기서도 성령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겁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가로막을 권리는 없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그런 생각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혹시 편견은 아닐까요?

하나님이 거기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만 진짜고, 나머지는 다 가짜라는 교만은 아닐까요?

 

▲마치는 말

요한과 베드로가, 또한 사마리아인이 서로 아집과 반복을 깨고 화목한 것처럼,

우리가 성령을 받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편견과 차별, 아집과 독선을 포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걸 그대로 가진 채로는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인 베드로와 요한이 자기들에게 왔을 때,

그들을 용납하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이 자기 머리에 손을 얹게 허락하고,

그들에게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이전에는 상종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예수를 믿기로 했기 때문에, 복음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그들에게 가서,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편견을 버리고, 차별을 포기하고, 아집을 내려놓을 때, 그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 받지 않은 교인인 채로는, 오늘 사마리아인처럼,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일들도,

다 의미 없는 헛수고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런 상태로 계속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이 말씀이, 우리의 이야기이기를 바랍니다.

 

                                                                                                         

*원제목 :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