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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의 함정 2263

LNCK 2010. 1. 15. 07:46

◈구제의 함정                            마6:3~4                       도서 정리/ 편집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6:3~4



▲차라리 중간보다 더 못할 수 있다.

거룩함, 경건이 참 고상하고 좋은 것이나,

도가 지나쳐서 ‘내가 최고로 거룩/경건하다’는 상태가 되면.. 교만으로 넘어진다.

‘내가 최고로 경건하다/잘났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계속 미끄러진다.

‘내가 훌륭하다’는 생각을 버리는 날까지!


설교에 재능과 은사를 받아서, 설교를 잘 하는 것은 참 좋은 것이나

‘내 설교가 최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그 최고에서 주루룩 미끄러지는 것이다.

‘내가 훌륭하다’는 생각을 버리는 날까지!


신앙의 세계에서, 누구든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으나

‘내가 최고다’ 하고 자만하는 순간부터.. 교만으로 넘어지기 시작해서

어쩌면 중간보다 더 못해질 수도 있다.

 

이때 이런 생각이 든다.

‘차라리 중간이나 했으면 좋았을 걸... 괜히 앞서가다가 추락하고 만다.’


사실은 ‘구제’를 설명하려다가, 서두에 너무 거창한 예를 들고 말았는데,

구제가 그렇다는 것이다.

구제함을 통해서 ‘나는 자비로운 사람이야, 나는 선한 사람이야!’ 라는

스스로 영적교만이나 우월의식에 빠져버린다면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는’ 차라리 구제 안 하는 게 더 낫다.

중간(구제 안 하는 보통사람)보다, 더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게 영적교만/우월의식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구제는 물론이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 뭔가 남다른 강점이 있을 때,

스스로 교만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자동적으로 영적 교만에 빠진다.


내가 스스로 거룩하다/최고다/선하다/자비롭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에게는 그 선의가 변질되고, 독선이 자라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내가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한 것은

사도바울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힘찬 전도활동..

바로 그것이 사도바울 자신에게 ‘교만의 올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제들이여,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내 자랑인 여러분을 두고

단언합니다만,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고전15:31


(자기가 전도 많이 한) 자랑을 하면서, 그는 ‘죽는다’고 고백한다.

자기가 '날마다 죽는' 이유가.. 자랑 때문이었다. 

그 자랑 때문에.. 자기가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6:3~4


이 말씀은,

자기가 구제를 하고 있다는 <의식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모르게 하라/ 은밀하게 하라’는 것이다.

본문의 오른손, 왼손은 모두 ‘자기의 손’이다.

내가 선을 행하지만, 그것이 선善인지도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구제를 하면서,

내가 그것을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내가 구제를 할 때, ‘구제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남을 도와준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그래도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그 구제 때문에.. 내가 영적교만에 빠지고.. 그 선한 일 때문에 내가 도리어 망하게 된다.


때때로 구제하고, 봉사하고, 다른 나라까지 가서 섬긴 간증을 듣는다.

그러면서 그 간증을 듣는 제가 막 두렵다.

‘저렇게 선한 일을 많이 하고도, 중간보다 더 못해 질 수도 있겠구나..’

 

이런 내용이 ‘너무 이상적idealistic이다, 비현실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예수님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본다.


유대 랍비 중에, 구제할 때 뒤로 돌아서서 구제했다. 그 이유는;

<받는 자가 누구인지 알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식이었다. 


또한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자기를 생색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상대방 배려 중심의 구제였다.


자칫 잘못하면, 차라리 구제를 안 하면 중간이라도 할 터인데,

구제라는 아름다운 행위를 하다가

도리어 더 심하게 망하기 쉽다는 것이다.


▲스펄전 목사 부부가 계란을 판매한 이유

그 당시 사회의 존경을 받던 스펄전 목사이었지만

주변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계란을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펄전과 그의 아내는, 여러 마리의 닭을 직접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두 부부는 자신들이 기르는 닭이 낳은 달걀을

그냥 나누어주는 법이 없었다.

반드시 돈을 받고야 계란을 건네주었다.


그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스펄전 목사 부부는 구두쇠라든가, 돈만 아는 욕심쟁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스펄전 목사 부부는 그런 비난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스펄전의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 때에 비로소 스펄전 목사 부부가 왜 그렇게 돈을 받았는지 알려졌다.

계란을 판 대금이 두 명의 늙은 과부들의 생활비를 대는데

고스란히 사용된 것이 밝혀졌다.


스펄전 목사 부부는 자신들의 선행이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았고

또 늙은 과부들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그 많은 비난을 침묵으로 감수해 왔던 것이다.


▲다른 사람 이름으로 구제

어떤 장로님은, 사실은 자기가 도와주면서도

‘누가 도와주라고 맡긴 돈을 전달한다’면서.. 마치 자기는 전달자인 것처럼 말씀한다.

순진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서 그 말을 믿는다.

그런데 집에 와서 가만히 기도해 보면,

사실은 그 장로님이 도와주신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관련 예화 .......................................



◑늙은 우체부가 존경 받았던 이유

 

우체국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늙은 집배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집배원이 새로 취직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는, 늙은 집배원이 존경을 받는 이유를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늙은 집배원은 배운 것도 없었고, 또 가진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에 비해서 기운이 넘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늙은 집배원은 기운이 모자라서

일을 처리하는 속도도 남들보다 훨씬 늦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체국에서 축구시합이 있었습니다.

축구시합은 점점 과열되었고,

그 결과 젊은 집배원이 다리를 다치게 되었습니다.

전혀 걸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다리가 아파서 절룩거리며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요.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니면서 일을 해야 하는 집배원(우체부)로서

다리를 절룩거리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 예상되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이 젊은 집배원의 집에

바로 그 늙은 집배원이 아무도 모르게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오늘 축구시합에서 다친 것을 보았네.

자네의 할 일을 내가 대신해 줄 테니.. 내일은 푹 쉬게나.

무리하면 다리가 덧나서, 회복 속도가 더 느려질 거야..”


그제야 젊은 집배원은

그 능력도 없고 힘도 없는 늙은 집배원이 존경 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남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기를 좋아합니다.

또한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하지만 돈 많다고, 높은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해서 존경받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앞선 늙은 집배원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할 때에야

진심으로 존경받을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릴 때 조기교육


마리아구호소에는 스물네 시간 따뜻한 밥과 국이 준비되어 있다.

새 가족이 입소할 때마다 가장 먼저 식사를 했는지부터 묻는다.

이삼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었다는 이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며칠을 굶은 이들한테는 먼저 물을 먹이고, 죽을 드렸다가, 후에 밥을 드린다.

그리고 밤 2시든, 3시든 새로 입소한 가족이 배가 고프다면

언제라도 밥을 차려드린다.


영양실조로 빼빼 마른 그들은, 입소 후 한 끼에 두 그릇씩 먹는데

몇 개월만 지나면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다.

제때 양껏 식사를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기에

처음 입소했을 때 밥부터 챙겨준 것이 고마웠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수녀회에 딸린 2만 명이 넘는 식구들을

한 끼도 굶긴 적이 없으시다.

나는 식사를 할 때마다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어제는 아저씨들이 직접 농사지은 상추와 호박잎으로 푸짐한 밥상을 마련해 주셨고,

오늘은 된장국과 현미밥을 마련해 주셨다.


문득 제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하루는 이웃집 준호 어머니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햅쌀밥을 새하얀 바가지에 가득 담아 오셨다.

참기름 냄새가 솔솔 나는 산나물 반찬과 함께.


그 쌀은 절토골이라는 깊은 산속 손바닥만한 다랑이에서

손으로 훑어서 수확한 것이었다.         *다랑이: 산비탈 계단식 좁고 긴 논

쫀득쫀득한 햅쌀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어머니가 왔다 갔다 하시는 동안, 나는 단숨에 한 그릇을 비웠고

어머니 밥만 남겨두었다.


그런데 마침 한 노숙자가 동냥을 청하러 왔다.

어머니는 당신의 밥을 전부 그에게 주셨다.

나는 “그것은 어머니 밥인데`….” 했지만

어머니는 “이 밥은 오늘 저 사람의 양식으로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거야.”라고 하셨다.      ▣ 구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