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인 순종 고전9:26 마이크 비클 Mike Bickle 말씀강해 1강/정리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고전9:26
오늘 이 주제는, 크리스천의 삶 중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주제는, 크리스천의 삶 중에서 가장 회피하는 주제입니다...
그것은 ‘전적인 순종의 삶’입니다.
▲사역보다 더 우선적인 것
성도로서의 최고의 의무는 사역ministry이 아닙니다.
물론 사역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성도로서 가장 중요한, 또한 최고의 의무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시간에서,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성도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대신에 인간관계의 갈등 줄이기,
사역의 연부년 확장,
재정의 안정 및 행복한 삶.. 이런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핵심을 적중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모두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우리 각 개인/공동체의 전적인 순종입니다.
우리 각자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주님은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마이크(설교자)야, 먼저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겠다.
네 삶의 전 영역에서, 너는 내게 온전히 순종했느냐?”
All the areas of your life,
did you bring them completely under my leadership?
‘네 사역의 확장도 필요한 것이지만,
네 삶의 전 영역... 즉 네 생각, 네 언어, 네 물질, 네 행위, 네 시간, 네 관심
이런 모든 삶의 영역들 속에서, 너는 내게 온전히 순종했느냐?’
주님은 내게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보다 더 우선적인 일
성도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무슨 업적을 성취하고,
어떤 어려움을 인내로 극복하고, 난관을 돌파해 내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주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자신이 원해서 걸어간 길이라면..
그 모든 고생과 수고도.. 헛수고, 쌩고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성도의 첫 번째 목표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다른 사람을 사용해서, 단 하루 만에라도, 온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주께서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원하시지만,
주님이 그보다 더욱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전적인 순종’입니다.
‘내 삶의 전 영역에서, 제가 주님께 순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고백을, 주님은 제일 듣고 싶어 하십니다.
▲이게 불가능하다고 여기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전적인 순종’이란
순종에 있어서, 어떤 정상에 도달한 상태가 아니라,
늘 순종의 삶을 살려는 부단한 노력을 뜻합니다.
우리 중에, 어쩌면 아무도, 완벽한 상태의 ‘전적 순종’에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늘 전적으로 순종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나아가는 자발적 자세와 노력’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적인 순종의 삶’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믿은 지 한 달 밖에 안 되는 초신자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믿음의 분량 안에서, 전적 순종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 발버둥치는 것입니다.
‘전적인 순종’은 꼭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단계가 어디에 와 있든지..
자기 단계에서 부단한 노력과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크리스천이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평생 동안...
혹시 우리가 넘어지고 자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적인 순종에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시 회개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경주race를 계속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모든 성도들이
날마다 경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나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경주, 그 선한 싸움을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사람.. 그가 패자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12:1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7
▲이것은 도덕적 완전주의perfectionism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48
이것은 산상수훈의 정점pinacle입니다.
영어로는 be perfect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헬라어 원문을 찾아보면,
똑같은 단어가 쓰인 다른 용례를 찾아보면,
그것은 ‘믿음이 온전해져라, 성숙해져라’는 뜻입니다.
오른 쪽 제목을 클릭해서 보시면, 다른 그 용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완전하라'의 의미
정리하면, ‘전적인 순종의 삶’은
도덕적 완전주의가 아니라, (=도달하기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날마다 순종을 통해서, 우리가 더 온전해 진다는 것입니다. (=도달 가능한 목표입니다.)
▲당신은 매일의 삶에서 contend/발버둥치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이 관점을 계속해서 자기 서신서에서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제 생각에, 사도바울은, 이 주제를, 다른 어떤 주제보다 제일 강조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매일을 삶을 살면서,
일주일의 삶을 지내면서,
혹은 한 달을 지내오면서..
이런 주제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채로.. 신앙생활을 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최후의 심판 때, 이렇게 내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네 삶의 전 영역에서 나를 사랑하고/순종하고자.. 찾고/노력하고/경주하고/도달하려고 애썼느냐?’
Did you seek/endeavor/contend/reach in your spirit to obey/love me, in all these areas of your life?
저는 우리 모두가 주님께 이렇게 대답하기 원합니다.
“예, 제가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려고 애썼습니다. contend했습니다.”
(완전히 경지에 올라갔다는 뜻이 아니고, 그렇게 하려고 발버둥쳤다contend는 뜻)
여러분이 진정 거듭났습니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진정 영혼이 거듭난 사람은, 진정 구원 받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이제 분명하고도 뚜렷한 목표와 방향이 설정됩니다.
‘이제 나의 남은 삶을, 오직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날마다 발버둥치는 삶.. 이것이 신앙의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들은.. 이런 본질을 무시해 버리고,
다른 현세적인 문제들을..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의 기도를 살펴보십시오. 무엇을 위해 주로 기도하십니까?
사업문제, 재정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자녀양육문제..,
그런 필요들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기도제목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는가?
내가 오늘 주님께 순종할 영역이 무엇인가?’... 이런 것을 살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사업/재정/자녀 문제로만 계속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 인격적 관계’라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빗나간 것입니다.
부처에게 비는 것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대상만 부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었을 뿐이죠.
이런 분들은, 어쩌면 진정 예수가 누구인지 아직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주님, 돈을 주세요, 돈이 부족합니다.
주님, 몸이 아픕니다. 몸을 고쳐주세요.
주님, 외롭습니다.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가 모두 필요합니다. 그것을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만 기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먼저priority 기도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과의 관계’이며, ‘내가 순종하고 있는가?’를 돌아보며,
‘내가 무엇을 순종할 것인지..’ 주님께 묻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기도를 매일 드리지 않는 사람은
왜곡된 신앙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역자들도 잘못될 수 있습니다.
사역자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 사역의 길을 열어주십시오. 주님, 제 사역을 크게 부흥시켜 주십시오!’
예, 그것도 필요한 기도입니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기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제가 주님께 순종해야 할 영역이 무엇입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만약 이런 기도가 우선되지 않고,
무조건 사역을 열어주시고, 사역을 크게 해 달라고만 기도하는 것은
그것은 뭔가 신앙이 왜곡된 것입니다.
사역이 자기 야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생애의 결론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7
그는 자기 사역의 광대성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기 사역의 외적 열매를 늘어놓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발버둥, 그 뜻에 순종하고자 했던 몸부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잠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일생에 걸쳐, 전 생애에 철저히 헌신/순종한 것입니다.
자기 전 생애에 걸쳐, 자신을 주님께 드리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허공을 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고전9:26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남은 생애도, 주님을 믿고, 섬길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주님 앞에 섰을 때,
만약 우리가 그동안 주님을 믿고 섬긴 것이.. 전혀 ‘인정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큰 재난입니다.
열심히 교회 봉사를 했지만,
주님을 사랑해서 한 것이 아니요, 주님께 순종해서 한 것이 아니요,
그저 내가 좋아서 하고,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 중심을 보시고.. 상 주실 것입니다.
그저 외모만 절대 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
그저 외모로만 주님을 섬기는 척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순종의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예상하건데, 많은 신자들이 마지막 심판날에 땅을 치며 후회할 것입니다.
‘내가 왜 지금까지 직장 문제, 사역 문제, 경제 문제, 건강 문제..
이런 것에만 신경 쓰며 살아왔을까?’
그러면서 그런 문제만 신경 쓰도록 한 사역자들을, 원망할지도 모릅니다.
평생을 신앙생활 해 왔지만, 자기중심적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채워주시는 분’ 정도로만 생각해 왔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는 것은.. 단적으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15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오늘날 복음을 너무 강조하면서 ‘율법폐기론’ 쪽으로 흐르는 것은
주님의 복음을 오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셨습니다. 마5:17~18
※율법론 보기 http://blog.daum.net/bible3/7373110
진정으로 사랑하는 증거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순종은.. 억지로 하는 순종/ 강제적인 순종/ 벌 받을까봐 무서워서 하는 (율법적인) 순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니까,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아내를 사랑해 보세요. 얼마나 그에게 순종적이 되는지요...
여러분의 남편/아내가 여러분에게 순종하지 않습니까? 사소한 부탁을 안 들어줍니까?
물어보나마나 입니다.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특별히 자기 정욕, 교만을 참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결코 주님을 사랑/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정욕을 이겨내기 위해 투쟁struggle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교만, 돈에 대한 욕심..
이런 것들과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것을 허용하는 것은, 그 우상을 섬기는 것이고,
그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중독>도 마찬가집니다.
현대인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중독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께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주님과 깊은 교제 관계를 가진다면
‘주님은 반드시 내가 중독된 잘못들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끊게 됩니다.
오래도록 중독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주님과 사랑의 관계에 놓여 있지 못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찬양을 드릴 때, 감정적으로 sentimental하게 드리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찬양을 드린 후의 삶에서, 주님께 순종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순종은 센티멘털한 감정적 느낌이 아니라
분명한 자기 의지로 자기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나를 도와주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너는 감정적으로 센티멘털하게 나를 잘 경배하는 구나. 그건 네 기분이다.
그렇지만 너는 그러고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바로 그 날에, 주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문제(전적 순종)가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기독교가 너무 무디어져dull 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전적 순종’ 이런 주제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현세적 축복으로 흐르는가 하면,
감정적 찬양으로 흐르는가 하면,
‘값싼 은혜cheap grace주의’로 구원은 따 놓은 당상으로 여기는가 하면,
예수 믿는 것이 ‘자기계발self-development’의 일환과 구분이 안 되고 있습니다...
(※한국어 비속어에 ‘띨하다’ 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 영어의 dull, 무딘 에서 온 말인 것 같습니다. 발음이 비슷하네요.)
좀 죄송한 표현이지만, 우리 기독교 신앙이 띨dull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 믿음론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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