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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LNCK 2010. 2. 3. 21:58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삿5:1~12          2010.01.24.설교스크랩

 

 

본문 드보라 사사의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우리)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구하시고, 도우시는지.. 어떤 패턴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자주, 드보라 시대에 이스라엘을 돕던 방법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의외의 사람(여인 드보라)을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본문 설명

 

▲적은 강하고, 이스라엘은 허약했습니다.

드보라가 나타나기 전 이스라엘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는가 하면

가나안 왕 야빈이 9백승의 철병거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20년 동안 심히 학대했다/삿4:3 라고 합니다.

 

이 정도 규모의 철병거(전차)를 가지고 있으면

그 인근의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는 뜻입니다.

(아직 철기문화가 널리 보급되지 못한 청동기 시대에,

가나안 왕 야빈은 철기문화를 일찍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5:6,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을 읽으면서, 제가 몇 해 전에 다녀온 북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한번은 평양에서 묘향산으로 구경을 갔는데, 가는 길이 고속도로였습니다.

차로 한두 시간 달렸던 것 같은데,

그 길을 오가는 동안에, 제가 일부러 마주 오는 차를 헤아려 봤습니다.

 

여러분, 서울에서 대전쯤 가는 길에 만나는 자동차가 몇 대쯤 될 것 같습니까?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열 대를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 넓은 대로가 완전히 비어 있었고, 다니는 차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드보라가 나타나서 나라가 회복되기 전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대로가 비었고..

 

사람들이 아예 길에 다니지 않고,

꼭 다녀야 할 사람들은 큰길로 갔다가 낭패를 볼 수 있고, 눈에 뛸 수도 있어서

오솔길로 다녔다는 것입니다.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다.. 5:6

 

5:7,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다,

     즉, 마을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5:8, 그때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다 ... 전쟁이 코앞에 닥쳤다는 뜻이지요.

 

5:8b, 이스라엘의 4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그때 이스라엘 4만 명이 성문 안에 있었는데,

그 4만 명이 방패와 창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본문에 자세한 설명이 없으니까 상상해 보면

적이 쳐들어오니까, 아마 사람들이 무서워서 성벽 안으로 모여든 것 같습니다.

그 안에 4만 명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성 바깥에는 적이 무서운 병기를 가지고 와서 공격하려고 하는데,

성 안에 이스라엘은.. 속수무책이라는 것입니다. 무기조차 없습니다.

(아마 여호수아 때, 너무 쉽게 가나안을 점령해서,

이스라엘이 군비에는 신경을 안 썼던 것 같습니다.)

 

이런 기막힌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드보라를 부르셨습니다.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을 부르신 상황이.. 얼핏 보면, 좀 웃기는 코미디 같습니다.

 

가장 전쟁에 경험 많은, 실전에서 이긴 경험 있는 용사를 세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가장 칼싸움 잘하는 사람이나, 가장 뛰어난 전략가를 불러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여자 사사 드보라를 세웠습니다.

지금 당장 전쟁을 해야 하는 데, 여성이 전쟁에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드보라는 산 속에서 한 10년 동안 무술을 갈고 닦은 사람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하나님의 인사이동은 항상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엉뚱해 보이는 사람을 부르셔서 일을 맡기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아무나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믿음의 사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용병술, 인재기용술은.. 물론 성공으로 끝났습니다.

그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고, 그런 다음에

여선지자 드보라가 바락(장군)과 함께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던 찬송이 삿5장 내용입니다.

 

 

◑관찰 및 해석

 

▲1. 의외의 인물을 사용하신다.

 

5:12,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이렇게 반복된 표현이 나옵니다. ‘깰지어다’가 무려 4번이나 나오네요.

(성경에 이렇게 4번이나 반복되어 기록한 곳은, 매우 희귀합니다.)

 

제 생각에는, 하나님이 “드보라야! 깨어나라.” 얘기했을 때,

드보라가 무척 미적거렸다는 것입니다.

“예, 제가 가겠습니다.” 라고 단번에 대답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내가 드보라가 되어서 전쟁에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스라엘 나라는 망한 것과 똑같습니다.

20년 동안 짓밟히고 있던 희망이 없던 나라에,

전쟁이라고는 잘 모르는 드보라에게

주님께서 “네가 일어나라! 네가 깨어나라!”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벌떡 일어나서 전쟁에 나갈 수 있겠습니까? 맨정신으로는 그렇게 못 합니다.

 

4번 말해서 ‘드보라가 절대 안 갔다’에 제가 내기를 걸겠습니다.

천국 가서 드보라를 만나서 물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한 40번은 주님이 말씀하지 않았을까? 이런 묵상을 해봤습니다.

그걸 다 기록할 수는 없고, 성경에 줄여서 4번만 ‘깰지어다’ 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드보라도 내적으로 갈등이 많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평소에 자기가 사사가 되어서 백성들을 재판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4:5

오합지졸이긴 하나 이스라엘에 군대도 있었고, 장군들도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감동을 주신 것일까요? 군인들 다 제쳐놓고서...

 

여러분, 하나님은 군대의 힘이나, 사람 숫자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에 감동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빈부노유를 가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헌신된 사람’을 불러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드보라 같은 인물도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면,

오늘날 당신도 얼마든지, 하나님은 불러 쓰실 수 있습니다. (드보라가 ‘아줌마의 힘’의 원조?)

 

 

우리가 드보라처럼 쓰임 받으려면

하나님의 부름 앞에서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목숨까지 걸어야 합니다.

목숨을 걸지 않는 헌신은 헌신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다리시고, 그렇게 헌신을 하니까

드보라에게 돕는 사람들을 붙여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동역할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이제 드보라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부르셨지만,

꼭 그 한 사람을 통해서만 일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동역자를 붙여 주십니다.

 

①하나님은, 제일 먼저 장군 바락을 붙여주십니다.

(이 대목에서, 모세를 도운 아론이 생각나네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하는 일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사람, 물질을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변 환경을 감동시켜서, 사명자를 돕도록 해 주십니다.

 

또한 바락을 도와서 1만 명의 군대가 소집됩니다. 4:10

하나님의 역사에는, 동역하는 자들이 순조롭게 모아집니다.

 

바락이 부름에 응했지만, 바락은 드보라만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자기 혼자 나가서 싸우는 것은 두려워서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보라에게 함께 동행해 줄 것을 부탁해서, 전쟁터로 나가지 않습니까?

 

그때 드보라가 

이번 전쟁에서 네가 적장의 목을 베는 최후의 영광은 얻지 못할 것이다. 4:9

라고 예언합니다. 바락이 믿음 없이 행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반쪽 믿음만 갖고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② ‘귀인과 백성들이 내려왔다’고 말합니다. 5:13

여러분,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지면, 그 결과는 끔찍한 것입니다.

적이 아예 이스라엘을 멸종시키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들을 향해서 만 명의 군대를 조직해서 싸우러 나온 이스라엘을

완전히 재기 불가능할 정도로 짓밟아 놓자고 하면서, 적들이 나왔을 것입니다.

 

이럴 때 아군 편에서, 항상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말고, 우리 몸이나 보전하자.

지금 이만한 상태에서 그래도 이 정도라도 유지하는 것이 낫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아야 한다.’

 

특히 뭔가를 좀 누리고 살던 계층의 사람들이 항상 그런 논리를 폅니다.

귀족들은 그런 논리에 굉장히 잘 무장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드보라를 통해서, 바락을 통해서

이 전투에 함께 참여하라고 요청 받았을 때

5:13절, 귀인과 백성들이 내려왔다고 말합니다. 귀족들이 전투에 함께 동참한 것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여호와께서 나(드보라)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 라고 노래합니다. 5:14

 

백성들이 마음을 합해서 전장에 나아갔을 때,

그 배후에 하나님이 함께 동행 해 주신 것입니다.

 

③또 의외의 인물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께서 또 한 여성을 등장시킵니다.

 

적장 시스라가 전쟁에서 패한 후에 도망을 가는데, 야엘의 집(장막)에 들어갑니다.

모세 장인의 후손들(겐 족속)인데,

그 집에 들어갔다가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우유를 얻어 마시고 깊은 잠이 들었는데

야엘이 적장을 죽입니다.

여성 야엘을 통해서 적장을 죽입니다.  4:21

 

야엘은 그 이름 뜻이 '산 염소'입니다. mountain goat

바락 장군의 이름 뜻은 '번개' 입니다. 벼락으로 외우면 쉽게 기억되죠.

 

그런데 하나님은 적장 시스라를 죽이는데 있어서, '번개'를 사용하시지 않고,

'산 염소'를 사용하십니다. 참으로 유머라고 할까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약한 자를 들어서 사용하시는 하나님! 고전1:27.

 

 

▲3.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5:15~16절에 보면, 르우벤 지파 얘기가 나오는데,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전쟁에 갈까/말까 토론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토론을 하고난 다음에 전쟁에 나갔느냐? ... 안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드보라를 통해서 부르시는데

‘이 전쟁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기회를 놓쳤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5:23절을 보면 메로스성 기록이 나옵니다. 이 성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저주 받은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데, 성경해석자들은 생각하기를,

저주까지 받은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은 그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드보라를 방해했거나 적에게 도움을 주는 이적행위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합니다.

 

 

◑적 용

 

본문은, 드보라 당시 그 때만 통용된 방식이 아니고

두고두고 시대마다 쓰시는 하나님의 행동 패턴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의외의 사람을 들어서, 의외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언제나!

 

▲1. 당신도 ‘그 한 사람’ 입니다. 미적거리지 맙시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뭐라고 핑계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드보라 시대뿐 아니라, 오늘도 드보라 같은 한 사람을 계속 부르십니다.

 

그 남자를 위해서, 한 여자를 찾아, 당신이 그 사람의 아내가 된 것을 아십니까?

그 여자를 위해서, 한 남자를 찾아, 당신이 그 여자의 남편이 된 것을 아십니까?

우리 모두가 바로 ‘그 한 사람’입니다.

 

그 상황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될 그 한 사람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 직장 에서, 바로 그 상황, 바로 그 교회, 그 목장 속에서

내가 감당해야 될 드보라와 같은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사명에 눈을 뜰 것이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사명에 전혀 눈을 뜨지 못할 것입니다.

 

빌2:13절에, 우리 마음속에 행하시는 하나님이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아, 하나님이 저 일을 원하시는구나!

내가 저 일을 해야 되겠구나!’ 라는 소원(감동)이 생길 때

그 소원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특별한 꿈과 환상의 직접적인 지시가 없어도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셔도, 우리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듭니까?

하나님이 ‘네가 그 일을 좀 해봐라. 네가 그 사람들을 좀 살려봐라’

그런 음성이 들릴 때 우리는 뭐라고 반응합니까?

‘아휴, 하나님. 왜 하필 나입니까? 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미적거립니다.

 

11년 전, 하나님이 제게 개척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개척교회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몇날 며칠 동안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얼마나 핑계거리가 많습니까?

‘하나님, 나는 돈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는 나이가 많습니다.

하나님, 나는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는 지금 우리 회사의 사장도 아니고, 말단직원인데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런 핑계를 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2. 바락처럼 후회하지 마세요.

바락이 전쟁이 끝난 다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바락은 지금 부름 받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장군입니다.

사실 이 사람이 적장 시스라의 목을 쳐야 맞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손에 적장 시스라가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살림 살던 여성 야엘의 손에 적장이 죽임을 당하고

그 영광이 야엘에게로 돌아갑니다.

 

우리도 미적거리다가는..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바락은 이 전투에 참가했기 때문에 좀 낫습니다.

반대자들은.. 아마 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의외의 사람을 일으키십니다. 

2009년 12월 24일, 중국에서 북한 회령 쪽으로 입국한 박동훈 선교사입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분명히 정신이상자는 아닐 텐데

어떻게 이런 무모한 짓을 했을까?’

그러면서도 참 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주간 드보라를 읽으면서

지금 이 시대에 박동훈 선교사 같은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깨워서 놀랍게 쓰시는 (드보라 같은)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략)

 

우리 주님이 바로 그렇게 이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구원할 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세상을 구원할 자라면

로마보다 더 강한 자여야 하고, 로마보다 더 화려한 자여야 하고,

더 뛰어난 자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자라고 나타난 분은 초라한 목수 아들이고, 배운 것도 별로 없고,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이 사람이 과연 무엇을 한단 말인가?’ 이렇게 느껴지는 사람이

바로 구원자라고 사람들 눈앞에 서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탄도 파악하지 못했던 놀라운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지 마시고

가정에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일터에서, 목장에서, 드보라처럼 순종할 때

오늘 본문에서 드보라와 바락이 얻었던 이 영광과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결단의 기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그 세상을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우리를 꼭 필요한 ‘그 한 사람’으로 부르시고, 우리를 쓰시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깨어나라 awake’고 부르시는 이 부르심 앞에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 제가 부족하지만,

우리 주님이 앞서 가셨고, 드보라가 그 뒤를 좇아갔고,

여러 주의 종들이 앞서 그 길을 좇아갔던 것처럼

부족하지만 저도 이 반열에 서겠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지만, 두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이 길을 가겠습니다.

드보라에게 바락을 붙여 주었던 것처럼 동역자들을 붙여 주시고

반대자들의 반대 앞에서 약해지지 않도록 저희를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를 이 땅에서/ 내 삶의 자리에서 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더 든든히 서 가게 하소서.

 

..................................

 

▲5:21절, 기손 강이 무리를 표류시켰다고 말합니다.

기손 강은, 9백대의 철병거가 쓸모없어지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전략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강은, 항상 강이 아니고, 우기가 되어 비가 오면 강이 되었다가

건기에 비가 안 오면 맨땅이 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 맨 땅은 주로 교통 대로로 이용됩니다.)

 

그런데 지형지물을 잘 모르는 적들이 들어왔다가

비가 올 때, 갑자기  꼼짝 못하고 진흙땅에 붙잡히는 경우가

이스라엘의 전쟁 역사 중에 자주 나오는데

바로 이때도 그런 사건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이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나를 이길 자가 아무도 없을 걸!’ 하고

떠들어 댔던 그 9백대의 병거가,

하나님께서 내리는 빗방울에 꼼짝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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