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에 대한 마음의 준비 행21:27-22:1 10.01.24.설교스크랩/정리
*원제목 : 환란 중에도 담대한 이유 좀 단단한 음식이네요!
◑핍박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있었던 바울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사는데, 어떤 고난을 당할지라도
끝까지 갈 준비가 되었습니까?
본문에, 사도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다가,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매를 맞았습니다.
사도바울이 하지도 않은 일,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왔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쓰고 죽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21:28,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함이라.
(실제로는, 이방인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성전 앞에서 드로비모에게, 성전 소개를 해 준 것입니다.)
그것은 이방인을 경멸하는 유대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죄입니다.
21:31, 그들이 그(바울)를 죽이려 할 때에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 상황에서 두려워하거나 당황하거나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보려고 발버둥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을 전하려 하였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막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내가 이런 기회에 전도를 할 수 있을까?’ 도리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맞아 죽을 상황이 되었을 때
로마 군대가 와서 사도바울을 체포함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때 바울은, 천부장에게 허락을 얻어서, 도리어 폭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시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죽음의 위협과 핍박 앞에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이렇게 담대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바울이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으로부터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을 당하고
이러한 환란이 있으리라' 하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마음에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그랬지.’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그 상황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거나
또는 도망가려고 하지 않고
그 상황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더 생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똑같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5:11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그 외에도, 참 성도의 길에는 핍박이 따를 것이라는 말씀이
성경에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들이, 실제로 그 말씀대로, 핍박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고,
또 누구로부터 욕을 듣고 또 거짓말로 증언을 받는다든지 할 때
‘아, 이런 일도 있을 것이라고 그랬지.’ 라고 인정하고,
마5:11절 말씀대로 오히려 기뻐하면 됩니다. 이상하게 생각할 게 아니란 말입니다.
딤후3:12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가정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결단하는 순간부터 여러분에게 박해가 닥칠 때
‘아, 그랬지. 그렇게 말씀하셨지.’라고 여러분이 마음을 붙잡으면..
그 상황이 여러분에게 전혀 다르게 보인다 말입니다.
오히려 ‘내가 지금 올바른 길로 가고 있나보다..
내가 가는 길을 사탄이 두려워서, 극심하게 훼방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기뻐해야 합니다. (물론 약간 두렵고 떨리는 가운데에서도 말입니다.)
▲또한 사도바울의 경우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키십니다.
찬송가에도 있죠?
♪(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리 예비할 힘을 주시고♬ (찬464 곤한 내영혼)
하나님은 신비하게, 우리가 닥칠 환란과 어려움에 대해
미리 예비할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적 음성’이든지, ‘꿈과 환상’이든지
어떤 ‘경고’를 받으면, 금식을 하든지, 기도를 더 세게 하든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대처를 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의 준비가 없는 사람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사람을 원망합니다.
핍박하는 사람들과 대항해서 싸웁니다.
그러면서 자기 신앙이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게 오래되면 영적 침체를 경험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성격이 점점 나빠집니다. 악/원한/분노에 사로잡힙니다.
결국 사탄이 승리합니다.
자기는 파멸합니다.
(하나님은 2~3년 후에, 다시 똑같은 test를 치르게 하십니다.)
◑고난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두려워 말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 중에
가장 자주 나오는 명령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하라’가 아닙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이 가장 중요한 명령이지만, 가장 많이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어떤 명령보다 자주 등장하는 명령은 “두려워 말라.” 입니다.
오길비라는 신학자는, 성경에 ‘두려워 말라’는 구절이 총 366번 등장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중에, 제일 하시고 싶은 말씀이
1년 365일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두려워할만한 일을 종종 만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말고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10:28
어쩌면 우리가 이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두려움’의 시험은 반복적으로 계속 찾아올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도, 하나님이 주권으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옵니다.
하나님이 마귀의 시험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 시험을 통과하고, 강인한 영적 체력(맷집)을 연마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똑 같은 시험은,
내가 그것을 이기고 완전히/가볍게 통과할 때까지, 계속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의 시험도.. 그것을 가볍게 이길 때까지.. 계속 (연단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두려움은 ‘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하나님이 정말 싫어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짓는 죄 중에 간음죄, 살인죄 등의 윤리적인 죄가, 우리 눈에는 항상 두드러지지만,
실제로는 영적인 죄가 훨씬 심각한 죄입니다.
여러분, 아내가 남편을 믿지 못할 때, 그 남편의 심정이 어떨까요?
남편이 아내를 믿지 못할 때, 그때 아내 심정이 어떨까요?
누가 여러분을 믿지 않을 때.. 여러분은 그때 어떤 마음이 드세요?
똑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 즉 두려움’을 큰 죄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길을 가는.. 마음의 준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아주 쉽게, 나랑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감사하게 받아들이지만
내가 지고 가야할 십자가는.. 냉담합니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람은,
자기도 십자가를 자원해서 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크게 감동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장기려 박사가, 수많은 장기려 의사를 낳았고,
한 사람의 마더 테레사가, 수많은 마더 테레사를 세계 도처에서 낳았습니다.
한 사람의 슈바이처가, 수많은 제2, 제3의 슈바이처를, 온 세상에서 낳았습니다.
예수님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성자들도, 그러하였거늘
예수님의 십자가는.. 수많은 제2, 제3의 십자가 지고 가는 성도를 낳았습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해서 그 길을 갑니다.
자기 마음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큰 충격과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가는 성도는,
‘좁은 길, 고난의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벧전4:12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복음은
말로 이해하고 수긍하기는 쉽습니다. 쉽게 '아멘!'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몸으로 살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자기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말’로 구원받았습니다. 또는 ‘말뿐인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진짜 믿음은 ‘말뿐인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행함’이 수반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믿음을 분명히 합시다. 언어를 분명히 써야 합니다.
‘나는 혹시 (말뿐인) 믿음으로 구원받지 않았는지요?’
‘말뿐인 믿음’으로는 구원 못 받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닙니다. 롬3:28, 갈2:16
그렇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절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행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니면 나는 '말뿐인 믿음'입니다.
▲환란 중에..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체험합니다.
단순히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환란 앞에서 담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환란을 담대하게 이길 사람은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환란 중에도 흔들림이 없었던 것은
단순히 환란이 있을 것을 안 것만 아니라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길 힘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늘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환란을 당해도 담대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운전을 배울 때, 이론을 배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닌 것을
운전면허를 가진 분은 다 아실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들.. ‘예수 안에 거하기’, ‘환란을 담대히 이기기’ 이런 것들도
설교를 통해서는 단순히 이론만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실제로 환란을 통과하게 하심으로써
내가 설교와 성경읽기를 통해 배운 모든 이론들이
정말 실제임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여러분은 혹시 면허증만 10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실제 주행능력이 있으십니까?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혹시 면허증만 10년 소지하는 것으로 만족하시렵니까?
아니면 진짜 도로주행을 하는 ‘운전경력자’가 되기 원하십니까?
그 모든 차이는.. 환란과 핍박을 통과했느냐/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도자는 환란과 핍박을 통과한 사람 가운데 나옵니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 다니엘, 엘리야, 에스겔, 베드로, 사도바울, 사도요한..
환란과 핍박을 통과하지 않고, 영적지도자가 된 사람이 있으면.. 추천해 주십시오.
환란과 핍박을 통과하지 않고는, 절대 지도자가 탄생될 수 없습니다.
‘지갑 속 면허’는 경력이 30년이라도, 절대 승객을 태우고 차를 운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환란과 핍박을 통과한 가운데
사람들을 안전하게 하나님 나라로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탄생되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담대해야 합니다.
담대하지 않고는, 절대로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일을 해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이 담대한 지도자로 변화되는 코스는.. '환란과 핍박'이란 과목을 패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여러분에게 극심한 환란과 핍박이 닥친다면
‘하나님이 나를 지도자로 만드시려는구나!’ 하고 내심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평탄한 요람에서는.. 영적지도자가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마치는 말
성도 여러분, 마음 준비는 되었습니까? 진리를 결론 삼으셨습니까?
사도바울은 마음의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환란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갔고,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로마에까지 인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사도바울 같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하나님의 종이 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일평생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마음의 준비가 있는 사람이.. 그 고비/파도를 잘 넘길 수 있으며 (가끔씩 폭풍으로 큰 파도가 칩니다. not 항상)
또한 하나님은 그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성령으로 그를 인도해 가십니다.
본문의 사도바울이 그랬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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