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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게 살기

LNCK 2010. 2. 19. 12:27

◈지혜롭게 살기           눅7:35               모두 스크랩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눅7:35, 마11:19


우리 즉 신자들은 '지혜의 자녀들'입니다.

'지혜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각자 가진 믿음으로 진정 행복하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만큼

지혜가 옳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반대로 만약 신앙인들이 행복해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 믿어봐야 별 수 있나?’


내 삶이 변화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진리까지도 왜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으로

내가 진정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에 있어서, 내 마음에 완벽한 만족은 없습니다.


내가 불평과 불만이 있고,

기분이 언짢거나 마음이 섭섭하면.. 남의 나쁜 점만 눈에 쏙쏙 들어옵니다.

좋은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의 들보(대들보만한 나무)만 눈에 뜨입니다.


그러니 평소의 마음 상태가 중요합니다. 평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평화스러우면.. 많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만족은 없습니다. 80%의 만족과 20%의 불만이 ‘정상’입니다.

그러므로 약간의 불만족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100% 만족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꼭 ‘완벽한 남자’ 만났다는 사람이.. 나중에 고생하더라고요)


대인 관계에서는 사소한 것이, 여차하면 감정적인 문제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작은 불만이 ‘긴장을 유지시켜’

오히려 건전한 관계를 지속시켜 줍니다.


20%의 불만이 있습니까? 그게 정상적인 상태입니다.

만족하고 삽시다.



◑10센티미터 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자는 무엇이든 그 길이를 마구 재고 다니면서, 스스로를 으스대었습니다.

“넌 길이가 5.4센티미터야. 넌 키가 9.8센티미터밖에 안 돼.

넌 코의 길이가 6.2센티미터야. 10센티미터도 안 되는 것들이 까불고 난리야.”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10센티미터 자는 저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울은 이 10센티미터 자를 보자마자 자기 몸 위에 올려놓았어요.

그러고는 코웃음을 터뜨리면서 비웃는 것이 아니겠어요?

“하하, 넌 겨우 5그램이군. 짜식! 아주 가벼운 놈일세.

비켜라! 상대하기도 싫으니까.”


저울은 더 이상 가벼운 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휙 가버렸습니다.


10센티미터 자는 너무 기가 막히고 억울했습니다.

저울이 자기 멋대로 자기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이 몹시 기분 나빴고

그래서 이 자는 저울을 향해서 실컷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10센티미터 자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 또한 남들을 함부로 평가하고 많은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이 10센티미터 자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을 꼬집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끊임없이 부정적인 말들을 상대방에게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그러면서도 상대방으로부터는 늘 좋은 말만을 듣고 싶은 우리들이라는 것이지요.



◑'적당한 거리'라야 잘 보인다


무릇 모든 '봄'은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너무 멀어도 잘 안 보이지만, 반대로 너무 가까워도 잘 안 보입니다.

그래서 잘 보려면, '적당한 거리'가 중요합니다.

 

눈이 얼굴에 있고

얼굴이 눈에서 제일 가깝지만

입 언저리에 붙은 밥풀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나를 잘 보기 위해서는

‘타자의 바라봄' 즉 '객관적 시각’이 필요한데

그 객관적 시각의 핵심은 '적당히 떨어짐' 입니다.


너무 가까운 측근은, 가까우니까 나를 잘 보면서도

잘 보지 못하는 면이 있는데

나의 좋은 면만 보고, 칭찬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적당한 거리와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할 때

특히 자기의 잘못을 보지 못함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또 그러니 자신을 잘 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자명합니다.


자기를 잘 보기 위해서는,

①자기의 눈만으로는 자기를 보지 못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②자기의 모습을 일러주는 다른 이의 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셀럽(유명인사)이 아닌 이상,

우리는 자기 측근을 가지기도 어렵고,

내게 관심을 갖고서 객관적으로 조언해 줄 사람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이때 우리는 서로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못 보니,

'타인의 거울'을 통해서, 나를 잘 보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누가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하면

그 '타인의 거울'을 통해서, 공공장소에서 나 자신의 목소를 낮춤을 배우는 것입니다.


반대로 누가 집안 정리를 깔끔하게 잘 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면 그 '타인의 거울'을 통해서, 내가 배우는 것입니다. '나도 저렇게 정리하며 살아야겠다'


정리하면

-내가 나를 보는 것은, 잘 못 볼 수도 있습니다. 너무 거리가 가까워서요!

-내 측근과 내 편이 나를 보는 것도,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역시 거리가 가깝거든요!

-적당한 거리에서 객관적 평가를 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며,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내 스스로 '타인의 거울'을 열심히 바라봐야 합니다.

  삼인행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 거든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내 스승이 있다



◑사랑은 비밀스러운 성격이 있습니다.


가끔 미혼 연예인의 공개연애 뉴스가 나와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때가 있는데,

얼마 지나면 그들의 결별 뉴스가 나와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혼기를 앞둔 청년들 사이에

인격이 가벼운 사람은, 자기 연애 소식을 사방에 퍼뜨리고 다닙니다.

이런 경우 파혼되기 쉽습니다. 주위에서 말이 많아 지거든요.


그러나 무게 있는 사람은, 자기 연애 소식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만의 비밀로, 결혼하기 직전까지, 비밀로 붙여둡니다.

이런 경우 비교적 결혼에 순조롭게 이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벌어집니다.

교회에서도 예수님을 만났다, 성령님을 만났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잘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쉽게 드러낸다면

100% 하나님과의 참 사랑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도, 깊어질수록 둘 만의 비밀로 키워가듯이,

또한 부부간의 사랑도,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다 까발리는 사람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입니다.


사람과의 사랑도 둘만의 장소에 숨어서 하고 싶다면

하나님과의 사랑은 더욱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공개하라’고 지시를 하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하나님과 자신의 신비적 경험은.. 남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저 10년에 한 번쯤 이야기하는 것은 괜찮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남달리 특별한 믿음의 사람’인양 교만하게 될 가능성이 크며,

그런 이유로, 또 괜히 사람들에게 존경은커녕 질투와 미움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주님과 은밀한 관계를 계속적으로 갖기 위해서도,

그것을 ‘비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커다란 저택에 가 보면, 아니 보통 아파트도 마찬가집니다.

집의 침실은 현관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이루어지는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어떤 비밀들을 지니고 있습니까?

계속 그 두 분만의 은밀한 교제를 키워나가시기 바랍니다.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당도가 아주 높고 품질 좋은 과일 생산해내기로 유명한

한 과수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과일나무에는 보기만 해도 탐스런 알찬 과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지요. 


오다가다 들르는 사람들은 ‘보기에 탐스럽다, 잘도 가꿨다, 맛도 있다’ 하고 쉽게 말하지만,

좋은 과실수로 만들기 위한 주인내외의 노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른 봄부터 정신없이 바쁘답니다.

쓸모없는 가지들은 가차 없이 잘라내야 되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하답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퇴비며 비료를 주는데, 이것 역시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튼실한 과일이 주렁주렁 달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에 앞서 일조량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긴 장마라도 오게 되면 걱정이 태산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1등급을 만들기 위해서는 흠이 하나도 없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포도나 배를 일일이 종이로 하나하나씩 싸주어야 합니다.

새들의 공격도 막아야지, 병충해의 공격도 막아야지...


그 주인 내외의 설명을 들으면서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좋은 나무라는데..

‘좋은 열매 맺는 나무란 그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가꾸고, 퇴비를 주고, 병충해를 막아주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나는 가만히 앉아서, 스스로 좋은 나무인체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생각’만으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