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 탈출의 해법 왕하3:9~20 10.02.14.설교스크랩
▲던커크 철수작전의 기적, 1940년
프랑스는.. 세계 어느 나라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힘 있고 콧대 높은 나라입니다.
영국 역시.. 힘에서든, 문화적으로든 프랑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강대국입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가 지도에서 완전히 없어질 뻔한 사건이
70년 전인 1940년 5월에 있었습니다.
2차대전 때 이야기인데, 영국/ 프랑스/ 벨기에 연합군 도합 33만 명이
독일군에 의해서 프랑스의 던커크라는 북부 항구에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바다 외에는 퇴로가 없었는데, 그나마 항구 시설마저 독일군의 공습으로 파괴되어
큰 배는 와도 댈 데가 없었습니다.
오직 탈출 방법이 있다면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놓여있는
도버 해협이 홍해가 갈라지듯 마른 땅이 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곳마저 완전히 나치에 점령되면, 프랑스라는 나라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당시에 23만 명의 병력을 내보낸 영국 역시 그 군인들이 던커크에서 전멸하면
이제 본토를 점령당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이 <회고록>에서 쓰기를,
연합군 33만 명 중에서 5만 명 정도만 구출해도, 다행이라고 할 만큼
당시 상황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 위기 앞에서 5월 26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는 영국 국왕과 수상,
그리고 켄터베리 대주교 등이 참석한 국가기도회가 열렸고,
이것을 기점으로 영국의 수천 교회에서 일제히 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영국 국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일어나,
수백 척의 조그만 배들이 도버 해협을 건너 던커크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열악했던 영국 공군은
전 부대가 출격해서 던커크의 하늘을 방어했습니다.
이상한 일은, 그 결정적 시기에 탱크를 앞세우고 포위망을 좁혀가던 독일군 부대가
갑자기 공격을 중지한 것입니다.
히틀러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공격중지 명령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2차대전 전사(戰史) 중에서 가장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독일 군들이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조그만 배들은 도버 해협을 가로질러
던커크의 연합군과 군 장비까지 별 손실 없이 영국으로 탈출시켰습니다.
그때의 일을 두고 영국 국민들은, “1940년 5월 말의 그 며칠은
우리 국민 중 젖먹이만 빼 놓고는 모두 뭔가를 했던 때였다.
그렇게 다같이 달려들었기에 우리는 그 위기를 넘어갈 수 있었다” 하면서
지금도 자랑스럽게 말한다고 합니다.
▲본문 정황 : 물이 없어서 위기에 처한 3개국 연합군
본문에서 우리는, 비슷하게 3개국 연합군이 곤경에 처해져 있는 모습을 봅니다.
북 이스라엘, 남유다, 에돔 세 나라 연합군이 모압을 치러가는 중에
갈증 때문에, 연합군 전체가 한 자리에서 죽을 뻔한 아찔한 얘기입니다.
(본문의 사건을 통해, 위기가 올 때 허둥대지 않고
의연하게 벗어나는 법을.. 발견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지름길로 간다고 간 것이 잘못 들었는지,
7일 째 되는 날에 물이 똑 떨어지고 만 겁니다.
사람이든 가축이든, 먹을 물이 한 방울도 없게 된 것이지요.
밥은 못 먹어도 살지만, 뜨거운 광야 길을 가는 사람에게
물은 한 나절도 참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 왕(아합의 아들 여호람)은 탄식하면서 절망에 빠집니다.
하지만 유다 왕 여호사밧은 엘리사 선지자를 불러 오게 하지요.
엘리사는 자기를 핍박했던 이스라엘 왕(엘리야 때부터 아합 가문과 앙숙)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아무 일도 내켜 하지 않습니다. 왕하3:13
하지만 유다 왕의 권유는 거절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간절히 빕니다.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여호람)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왕하3:14
다음 날 아침 제사를 드리려고 일어났을 때,
엘리사의 예언에 따라 전날 파 놓았던 개울을 따라, 왕하3:16
물이 콸콸 쏟아져 흐르는 것을.. 사람들은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3개국 연합군 몰살 위기를 극복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사람을 찾으라.
구약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를 통해 일하실 때였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하나님의 사람’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터지면,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기도를 잊어 먹고 낙담하는 것처럼,
그 시대에도 급할 때 ‘하나님의 사람’ 찾는 일은 제쳐두고,
탄식부터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위기를 만날 때, 그 진면목이 나온다고
본문의 여호람은 평소의 자기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 왕하3:10
마치 모든 게 절망으로 다 끝난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유다 왕 여호사밧은 좀 달랐습니다.
위기가 닥치자 곧 바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묻고 왕하3:11
바로 인근에 엘리사 선지자가 살고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교회 식구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 하세요.
여러분! 우리가 곤경에 처하고 위기에 빠질 때 처음으로 해야 될 일은
하나님의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물론 이 얘기는, 지금도 엘리사 같은 이를 찾아 가라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그런 사람도 없거니와, 그게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도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친히 세우신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로 모실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자기의 처지를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알리는 일,
특별히 담임목사에게 사정을 알리고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
그 옛날 하나님의 사람을 찾는 일과 같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주(內住)하시는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것으로도 얼마든지 스스로 응답받고, 해결함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믿음의 형제자매에게 기도를 부탁할 때
그 응답과 위기의 문제해결은, 더욱 신속할 것입니다.
앞서 ‘던커크 철수작전’이나 ‘엘리사를 찾은 일’에서 보았듯이요.
약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 중보기도할 공동체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그랬습니다.
왕들에게 부탁을 받았는데도 엘리사는 선뜻 응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여호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아합)의 선지자들과 모친(이세벨)의 선지자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라. 왕하3:13~14
무슨 말인가 하면,
엘리사 선지자는 ‘내가 당신을 위해 기도해 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사와 이스라엘 왕은.. 평소에 관계가 나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곧 엘리사는 마음을 바꿉니다.
‘어떻게 내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소? 내가 온 것은 오로지 유다 왕을 봐서요!’
그러나 엘리사와 유다 왕은.. 평소에 관계가 괜찮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중보기도를 부탁하려고 해도, 그럴 만한 공동체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자기의 어려운 사정을 호소해도
평소에 공동체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당장 급할 때, 어디에 기도 부탁할 데도..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엘리사의 안 올 결심을 바꾸게 한 유다 왕 여호사밧이 되시겠습니까?
▲두 주 전에, 우리 교회 한 자매가 음악 콩쿨 하루 전날 구토가 나오고 몹시 아팠습니다.
그래서 당일 날, 콩쿨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가 잘 한 게 뭐냐 하면,
목사와 자기의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기 사정을 알리고 기도를 부탁한 겁니다.
그래서 당일에, 억지로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가서, 콩쿨에 참가했습니다.
결과는, 2명을 뽑는 대회에서, 거기에 입상한 것입니다.
그의 주변 형제자매들이 ‘특별한 기도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래도 만약에 중보기도가 없었더라면
아마 음악 콩쿨(대회)에 나가는 일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중보기도의 힘’을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사람(엘리사)’을 찾았다는 것은
오늘날에 적용하면, 바로 이런 뜻입니다.
반대로 또한 우리 각자가, 리더나 해결자로서 기도요청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엘리사 입장에 놓이기도 합니다.
◑2. 일상 가운데의 응답
▲오늘 엘리사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면 참 색다르고, 재미있습니다.
지금 모두들 갈증 때문에 죽을 지경인데, 느닷없이 거문고 타는 사람을 불러달라고 합니다.
(거문고라고 번역했지만, 지금의 작은 하프 비슷한 악기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지금 음악을 듣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감이 엘리사에게 임하더니
해결방법을 가르쳐 주시더라는 겁니다.
이 얘기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보통 선지자들이 썼던 고전적인 방식은 뭐였습니까?
제사 드리고, 금식하고, 부르짖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응답은 음악을 들으면서, 즉 일상 가운데서 해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도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묵상 가운데서.. 우리 기도가 응답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신앙적인 분위기(금식, 철야 등) 가운데서만
응답해 주시는 경직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해결법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닙니다.
꼭 기도를 통해서만 오는 것도 아닙니다.
엘리사처럼, 찬양을 드리다가/듣다가.. 응답(강한 확신과 감동)이 올 때도 있습니다.
(지금 군대가 주둔해 있는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두는 게 좋겠다 싶은 겁니다.)
그렇게 기도를 해도 풀리지 않던 문제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한마디 툭 던진 말에
“아! 그거였구나!” 응답 받을 때도 있습니다.
또 아주 골몰하던 문제가
자기가 지금 읽고 있던 책의 한 문장 때문에, 해결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모든 면에서 믿음의 안테나를 곧추 세워서
그 비슷한 전파가 지나가면 재빠르게 잡아야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붙잡을 수 있도록, 깨어있으십시오!
엘리사가 하나님께 응답 받은 대로, 군사들이 그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 놨나 봅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 됐을 때, 어떻게 됐다고요?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왕하3:20
이렇게 ‘물 부족 위기’를 해결한 3개국 연합군은
이어서 모압 과의 전투에서도 멋지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왕하3:24~27
(후략) ▣ 교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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